과거의 정치는 오늘에 역사이고 오늘에 정치는 미래의 역사다. 따라서 한 시대의 인물이나 역사를 평가할 때 이념이 다르다거나 개인적 이해관계로 인한 증오심으로 인물이나 역사를 왜곡시켜 평가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우리가 배운 조선시대 역사나 근 현대사에는 많은 거짓과 왜곡된 역사를 가르치고 배웠다. 한 시대의 인물이나 역사는 팩트(사실)로 평가 해야 한다.
대한민국을 건국한 이승만대통령을 비롯해 박정희대통령과 전두환대통령을 악마화하고 부정하는 세력들은 자칭 민주화운동 가면을 쓴 좌익 세력들이다. 특히 전두환 대통령은 국민들 머릿속에는 군부 독재자로만 각인되어 왔다. 대다수 국민들은 전두환 대통령의 정책과 업적을 모르고 있거나 안다 해도 사회적 분위기 때문에 매도당할까 두려워 아무도 말하지 않는 것이다.
필자는 전두환장군 군부시절 피해 당사자의 한 시람이다. 지금도 그때를 생각하면 누구보다도 평생 전두환 대통령을 저주하며 살아야 할 사람이다. 하지만 50여 년의 세월이 흘렀다. 사람이 나이를 먹는 것은 늙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 경륜을 쌓고 성숙해지는 것임을 알게 된다. 매사를 감정이나 기분으로 처리하는 것이 아니라 사리를 분별하고 이성적으로 판단하게 된다는 의미다.
세계 어느 나라에도 모든 국민을 만족시키는 지도자나 정책은 없다. 이재명 같은 범죄자도 대통령을 하고 있지 않는가. 이것이 정치의 현실이고 미래의 역사다. 한 시대의 인물을 평가할 때는 공(功)은 공대로 과(過)는 과대로 평가해야 한다. 전두환 대통령의 과는 과장된 부분도 있고 확인이 안 된 부분도 있긴 하나 과만 있고 공적은 없었는지 알아볼 필요가 있다고 본다.
전두환 대통령은 박정희 대통령이 추진하던 산업화정책을 계승 발전시켜 대한민국 현대사에서 경제발전과 사회인프라 구축에 큰 기여를 한 것으로 평가받는다. 급속한 산업화와 국제적 위상을 높였으며 오늘날 국민들이 풍요로운 삶을 사는 경제발전 기반을 마련한 대통령이다.
주요 정책은 연 9%의 경제성장으로 ▲국민소득 3배 성장 ▲서울 올림픽개최 성공 ▲한강개발, ▲고물가에서 저물가시대유지 ▲개인 컴퓨터시대개막 ▲마이카시대개막 ▲전 국민의료보험 실시 ▲군 현대화로 안보강화 ▲교육개혁으로 대학자율화 ▲중소기업육성 ▲반도체산업 ▲무선통신개발(핸드폰) ▲독립기념관건축 ▲일본 경협자금 40억 달러 차관유치 ▲일본 천왕 사죄 ▲외환보유로 채무국에서 채권국전환 ▲6.29 선언과 직선제 개헌으로 민주주의 실현▲임기 5년 단임제 실현 등의 많은 업적을 남겼다.
1981년 전두환 대통령은 미국을 방문 레이건 대통령과 정상회담에서 일본은 6,25 전쟁으로 많은 돈을 벌었다.
북한의 재침으로 한국이 공산화되면 일본도 공산화위협을 받는다. 그런데 미군과 한국군이 북한의 침략과 위협을 지켜내 일본은 안보를 무임승차하고 있다. 그러니 일본으로부터 안보자금 100만 달러를 받아내야겠으니 협조를 해달라고 했다. 레이건 대통령도 억지스럽긴 해도 일부 인정되는 부분도 있었던지 별말을 안 했다.
귀국 후 노신영 외무장관을 통 해 일본대사에 전달 일본 정부는 정신 나간 소리라며 펄적 뛰었다. 하지만 레이건 대통령의 도움을 받아 최종 협상에서 경협자금 40억 달러를 유치했다. 박정희대통령이 일본 정부로부터 받아낸 무상 3억 불과 유상(차관) 3억 불에 비하면 경제협력 자금으로 무려 13 배나 유치해 경제발전을 성공시킨 탁월한 외교력을 발휘했다.
1984년 전두한 대통령은 한국 대통령으로는 최초로 일본 국빈 방문을 했다. 이때 히로히토일본 천왕은 환영만찬장 환영사에서 "금세기에 양국 간의 불행한 과거가 있었던 것은 진심으로 유감이며, 다시는 되풀이되어서는 안 된다" 며 사과를 했다. 세계 2차 대전 주역인 일본 천왕으로부터 한국대통령이 최초로 사과를 받아낸 것이다.
노태우대통령도 1990년 일본 국빈 방문 환영 만찬장에서 환영사를 통해 아키히토 천왕은 "일본에 의해 초래된 불행한 시기에 한국인들이 겪었던 고통을 생각하며 '통석(痛惜)의 염(念)을 금할 수 없다".(애통하고 애석한마음)고 사과를 했다. 일본국민들이 신(神)으로 섬기는 천왕의 사죄를 이끌어낸 당당한 대통령들이다. 이를 계기로 일본정부는 총리를 비롯해 외무상 등이 16 차례의 사과를 했다. 좌파들은 국민들에게 일본에 대한 적개심만 부추기는 선전선동만 할 뿐 사과도 받지 못하는 방안 퉁수들 뿐이다.
1985년 4월 노태우대통령과 소련고르바초프 대통령은 제주에서 정상회담을 갖고, 양국이 수교를 맺게 되었다. 당시 외화 부족에 시달리던 소련은 우리 정부에 30억 달러 경협차관을 요청했다. 노태우 정부는 북방정책의 일환으로 1991년부터 3년간 소련 경제협력 차관으로 14억 7천만 달러를 빌려주었다.
그런데 소련은 경제사정이 어려워 이 돈을 갚지 못하는 대신 현물(무기)로 주겠다고 했다. 이를 일명 '불곰(구소련을지칭한말) 사업'이라고도 한다. 불곰사업은 러시아의 첨단무기와 기술을 도입하여 한국의 국방력강화와 방위산업발전에 전환점이 되었고 K 무기 10 대 수출국에 큰 기여를 했다.
제1차 불곰사업(1995~1998)은 약 2억 1,400만 달러 상당의 차관 상환으로 T-80U 전차 33대, BMP-3 장갑차 33대, 메티스- M 대전차 미사일, 이글라 휴대용 대공미사일 등을 인도받았다. 제2차 사업(2002~2006년)은 5억 3,400만 달러 규모 상환으로 무레나급 공기부양정, 11-103 훈련기, Ka-32A 헬기 등 해상 및 항공기 등 인도로 국내 방위산업기술을 촉발시켜 자체 개발한 K2 흑표 전차, K9 천둥 자주포, 천궁 방공미사일 등 자주국방의 초석이 되었다.
뿐만 아니라 2023년 한국은 사상 최초 세계 10대 무기 수출국 반열에 올랐으며, 유럽, 중동, 아시아 등 전 세계에 K2 전차, K9 자주포, 천무 로켓시스템 등을 수출하고 있다. 노태우 정부가 소련에 경협차관을 빌려줄 수 있었던 근원은 전두환 대통령의 경제발전으로 외화를 보유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전두환 대통령의 공(功)은 온데간데없고 과(過)만 부각하는 좌파들의 선전선동에 속아 국민들은 군사 독재자로만 기억하고 있는 것이다.
박정희 대통령 서거 후 국가권력 전환 시기에 김영삼 씨나 김대중 씨가 정권을 잡았으면 이나라는 어떻게 되었을까? 김영삼, 김대중 대통령의 주요 정책을 보면 박정희 대통령이 추진하던 산업화정책은 깡그리 폐기되었을 것임을 알 수 가있다. 천만 다행히도 전두환장군이 대통령이 되어 박대통령의 산업화 정책을 계승 발전시켜 오늘에 경제적 풍요를 누리게 됨을 알게 된다.
김영삼대통령의 주요 정책 ▲금융실명제추진 ▲하나회해체 ▲세계화추진 ▲역사바로 세우기 등이다. 역사바로 세우기로 일본의 버르장머리를 고친다고 중앙청(일제 때 총독부)을 헐어내고 일본 정부와 각을 세웠다. 당시 우리 기업들은 정부보증으로 일본에서 단기자금(최저 3개월~1년)을 빌려 쓰고 상환기일이 되면 이자만 갚고 서환하는 형식을 취해해 왔다.
그런데 일본 정부가 회수조치를 취하자 외환보유 5억 달러인 한국은 국가 부도위기를 맞게 되어 IMF(국제통화기금)로부터 돈을 빌렸다. IMF는 국가부도 위기인 나라들에 비싼 이자로 돈을 빌려주고 경제는 IMF의 통제를 받게 된다. 그래서 대출금리 18%로 중소기업들이 파산되고 구조조정으로 실직자가 늘어나는 등 국민들이 고통을 겪었다.
김대중대통령의 주요 정책 ▲구조조정 ▲금 모으기 운동 ▲햇볕정책 등이다. 남북관계 개선한다고 극비리에 북한 김정일 정권에 4억 5천만 달러(5000억 원)를 퍼주고 김정일과 정상회담 후 돌아와서 "북한은 핵미사일 개발할 의지도 없고 능력도 안 된다"라며 만약 "북한이 핵을 개발하면 내가 책임지겠다"고했다. 우리의 안보와 국방을 무력화시키고 북한에 핵미사일 개발 성공시킨 것이 대표적 치적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전두환 대통령은 평상시에 "내가 죽으면 화장해 유골을 북한이 바라다보이는 북방 고지에 뿌려달라"고했다고 한다. 가족들은 이를 유언으로 받아들였다. 하지만 북방 고지에 들어가려면 국방부장관 승인을 받아야 한다. 그런데 보수정권인 윤석열 대통령 때도 실현을 못하고 4년째 유골을 집안에 안치하고 있다. 매장이라도 하려고 겨우 파주에 땅을 구했으나 무슨 압력이 들어갔는지 이도 무산됐다. 전직 대통령이 묻힐 자리조차도 허용하지 않는 이 나라가 민주주의 국가 맞는지? 민주주의 국민이라고 자부할 수 있는지 묻고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