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마엘을 기억하라
(출애굽기 15:22-27)
초등학교 때 집 근처 보습학원을 다녔습니다.
2층 건물이었는데 다양한 가게가
함께 있었어요.
학원 옆에는 짜짱면 집이 있어서
항상 달콤짭짤한 냄새가 코를 찔렀고,
그 옆에는 호프집이 있었어요.
지하에는 다방이 있었는데
나중엔 장사가 안 되었는지
아예 셔터를 내리더군요.
문제는 1층이었습니다.
1층에는 오락실이 있었습니다.
저는 친구들과 쉬는 시간만 되면
오락실에 내려와 한판만 하고
올라갔습니다.
그때 많이 했던 게
킹오브파이터란 게임입니다.
맨날 이러니 공부가 되겠습니까?
당연히 성적은 오르지 않았죠.
나중엔 오락 실력만 늘어서
쉬는 시간 10분은 넘기는 경우도
생겼습니다.
한 번은 학원 원장님이 내려오셔서
저희들을 데리고 올라가신 적도
있습니다.
그런데 오락 게임을 해보면
특징이 있습니다.
첫 번째 단계는 비교적 쉽습니다.
그런데 두 번째부터는 생각보다 어려워요.
그리고 점점 난이도는 올라갑니다.
뒤로 갈수록 100원으로 안 되죠.
그런데 가끔 보면 100원으로
끝판까지 가는 사람들이 있어요.
오락실의 고인물들이죠.
그 형님들은 컨트로부터 장난이 아닙니다.
컴퓨터가 어떻게 공격을 하던지
쉽게 막고 피합니다.
그리곤 자신의 필살기를 이용해서
공격을 이깁니다.
저는 여기서 믿음 생활과의
비슷한 점을 발견했어요.
처음엔 아무런 경험치 없이
신앙생활을 합니다.
그러다 위기를 만나면 우왕좌왕 하는 거죠.
때론 실패도 하고, 좌절도 합니다.
그러다 주변에 있는 믿음의 선배들을 통해,
혹은 교역자를 통해
위기 속에서 어떻기 신앙을 붙드는 지
배웁니다.
이후엔 비슷한 어려움을 만나면
마귀의 공격을 분별하고 쉽게 이겨냅니다.
그렇게 믿음의 고수가 되어가는 거죠.
그래서 고난을 많이 겪으신 분들을 보면
엄청 평안해 보입니다.
우리 같은 ‘어떻게 이런 위기 속에서도
저럴 수 있지?’란 생각이 들기 마련이죠.
오늘 본문에도 위기를 만났을 때
두 부류의 반응이 등장합니다.
말씀을 통해 우리의 신앙 수준을 살펴보고,
어떻게 믿음의 고수가 되는지 알아봅시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430년간
이집트의 노예로 살았었습니다.
그러던 중 하나님은
그들의 부르짖음을 들으시고
구원하시기로 작정하십니다.
그리고 광야에서 양을 치던
80세 할아버지 모세를 부르십니다.
그를 필두로 하여 이스라엘을
이집트에서 내보내십니다.
그렇게 한참을 걷고 또 걷다가
첫 번째 위기를 만납니다.
바로 ‘홍해’였어요.
홍해를 건너기엔 불가능했습니다.
어디서 나무를 구해와 배를 만들겠으며,
돌아가려는 길에는 이미 이집트 군대가
흙먼지를 날리며 쫓아오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바로 이 상황 속에서 이스라엘은
믿음의 초보 수준을 보여주죠.
그들은 모세를 향해 원망을 늘여놓습니다.
출애굽기 14:11
그들이 또 모세에게 이르되
애굽에 매장지가 없어서
당신이 우리를 이끌어 내어
이 광야에서 죽게 하느냐
어찌하여 당신이 우리를
애굽에서 이끌어 내어
우리에게 이같이 하느냐
이러한 불평 소리가
하늘을 향했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모세를 통해
홍해를 가르십니다.
그렇게 놀라운 기적을 경험한 이스라엘은
또 다시 광야 길을 걸어갔습니다.
3일 쯤 지났을 무렵
또 다른 문제가 생겼습니다.
바로 ‘목 마름’이었어요.
이들은 새로운 위기 앞에서
어떻게 행동했을까요?
처음엔 참고 걸었어요.
그런데 옆에서 애들이 자꾸
“아빠 목말라요. 엄마 물주세요.”를 외치자
화가 차오르기 시작했지요.
다들 입이 말라서 쩍쩍 갈라지고 있었고,
입술은 마른 땅과 같이 되었죠.
뜨거운 광야의 햇살은
그들의 머리 위를 강하게 비췄습니다.
이런 상황 속에서 물이 없다는 건
사형 선고와 마찬가지였죠.
바로 그때 누군가가 외칩니다.
“저.. 저기 오아시스다!”
너도 나도 필사적으로
그 사람이 가리킨 방향으로 뛰었습니다.
그런데 첫 번째로
물을 마신 사람이 외치죠!
“으악! 너무써!”
알고보니 이 물은 너무 써서
먹을 수 없는 물이었어요.
그래서 그곳 이름을 “마라”라고 했어요.
결국 이들의 참을성은 폭발하고 맙니다.
24절을 보면
“백성이 모세에게 원망하여 이르되
우리가 무엇을 마실까 하매”라고 나왔어요.
이게 성경이니까 점잖게 기록된 거지,
실제로 얼마나 화가 났을까요?
우리도 그렇잖아요.
간절히 기대하던 일이 이뤄지지 않으면
실망하고 맙니다.
그게 화로 이어지기도 하죠.
차라리 계속 물이 없었더라면
참고 갔을텐데,
보이는 물을 먹지 못하자
화가 폭발한 겁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는 인생을 살면서
목마름을 경험합니다.
성공에 대한 목마름,
대학 합격에 대한 목마름,
연애에 대한 목마름,
자녀 교육에 대한 목마름,
돈에 대한 목마름,
건강에 대한 목마름,
멋진 외모에 대한 목마름,
이상적인 배우자에 대한 목마름 등이 있죠.
그러다 만난 시원한 오아시스가
먹지 못하는 거라면 어떨 것 같으십니까?
원하는 대학, 원하는 직장에 갔는데
거가가 더 지옥같이 힘들다면 말입니다.
이 배우자는 나의 이상형이었다고 만났는데
살아보니 그렇지 않다면 말이죠.
돈이 우리 가정에 목마름을
해결할 줄 알았는데
그걸로 인해 가정이 망가진다면 어떻겠어요?
자녀의 성공을 위해
유학도 보내고 뒷바라지 다했는데
더 반항하고 무시한다면 어떨 것 같으십니까?
이스라엘의 상황 속에 들어가봅시다.
200만명이 모세를 향해
분노의 눈을 뜨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들의 입에는 원망, 저주, 불평,
심지어 욕설이 나오지 않았까요?
모세가 도대체 우리를 어디까지 인도한 거냐며
소리쳤을지도 모릅니다.
이 원망이 모세 한 사람만 향한 것이었을까요?
아니라고 봅니다.
지금 이들은 불기둥과 구름기둥을
따라왔어요.(출 13:21 참고)
이것은 하나님의 임재를 상징하죠.
이들은 모세를 향해 외쳤지만
진짜 원망의 대상은 하나님이었어요.
이들의 구원자 하나님이었어요.
예수를 믿고 살아가는 우리는 어떤가요?
문제가 너무 크고
내가 이겨낼 힘이 전혀 없다고 느낄 때
하나님을 향해 서운한 적 없습니까?
‘하나님이 정말 계신 게 맞습니까?’
여기서 생각해 볼 게 있어요.
원망과 불평으로는 얻을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다는 거예요.
원망한다고 갑자기 물이 생기지 않았어요.
하늘에서 에비앙이 떨어지는 게 아닙니다.
땅을 팠는데 갑자기 탄산수가
터져 나오는 게 아닙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위기 앞에서
어떤 반응을 보여야 할까요?
이스라엘 백성들의 원망을
직격탄으로 맞은 사람이 있습니다.
이들의 리더인 모세죠.
그렇다면 모세는 어떻게 반응했을까요?
25절을 살펴보겠습니다.
출애굽기 15:25
모세가 여호와께 부르짖었더니
(Moses cried out to the LORD, NIV)
지금 모세가 뭘 했습니까?
부르짖었답니다.
(Moses asked the LORD for help, CEV)
하나님께 도와달라고 기도한 것입니다.
똑같이 광야에서 3일을 보냈던
모세였습니다.
그도 똑같이 목말랐어요.
그러나 그는 문제 앞에서
반응이 달랐습니다.
기도는 호흡과 같습니다.
쉬지 않고 호흡하는 것처럼
주님께 기도할 때
우리 영혼은 건강해집니다.
문제를 만나도 이걸 원망이나 불평으로
이어가지 않게 됩니다.
오히려 문제의 해결자 되시는
주님께 무릎으로 나아가게 만들죠.
19세기 전설적인 설교가
스펄전이라고 아십니까?
그와 동시대에 살았던 분이 바로
고아의 아버지라고 불린 조지 뮬러입니다.
둘은 친구요, 동역자였습니다.
어느 날 스펄전이 자신의 고아원 사역을 위해
300파운드가 필요하다는 소식을 들었어요.
그는 고민했지만 이내 자기 인맥을 동원해서
집회를 다니며 후원금을 모았습니다.
300파운드가 딱 모였을 때
감사기도를 드렸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하나님께서
이런 감동을 주시는 겁니다.
“스펄전, 그 돈을
네 친구 조지뮬러에게 가져다 줘라.”
저라면 사탄아 물러가라고 했을 것 같아요.
스펄전도 처음에 그랬습니다.
그런데 그 음성이 점점 강해졌답니다.
결국 돈을 들고 조지뮬러를 찾아갔어요
가보니 친구 뮬러가 하나님 앞에
간절히 기도하고 있었지요.
그의 기도 소리가 스펄전에게 들렸습니다.
“하나님 저희 아이들에게
섬길 돈이 필요해요.
주님은 아시죠?
300파운드.”
스펄전은 이 소리를 듣고 그에게
돈을 주며 말했습니다.
“여기 하나님의 응답 왔소!”
그 후 스펄전은 돌아와서
깊은 생각에 잠겼습니다.
‘주님의 일을 한다고 하면서
나는 내 힘으로 했고
조지뮬러는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했구나.’
그 후 스펄전은 매 순간 하나님과 동행하며
기도하는 습관을 놓치지 않았다고 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는 문제 앞에 기도하고 있습니까?
모세는 문제 앞에서 기도했습니다.
기도는 하나님의 응답을 얻는 통로입니다.
이제 하나님께서 어떤 해결책을 주시는 지
살펴봅시다.
25절입니다.
출애굽기 15:25
모세가 여호와께 부르짖었더니
여호와께서 그에게 한 나무를 가리키시니
그가 물에 던지니 물이 달게 되었더라
하나님께 간구하자 주님은
바로 응답하셨습니다.
그리고 한 나무를 보여 주시며
그걸 물에 던져야 한다는 것도 말씀하셨죠.
만약 제가 모세였다면
말씀을 듣고 당황했을 것 같습니다.
상식적으로 물에 나무를 넣는다고
쓴 물이 달게 변할까요?
불가능합니다.
그러나 모세는 그대로 순종했어요.
이 모습을 보며 사람들이
어떤 생각을 했을까요?
‘뭐야 저 노인네가 치매가 왔나?
왜 저러는 거야?’
‘나뭇가지를 꺾어서 물에 넣는다고
뭐가 달라지냐?’
사람들의 조롱과 멸시가 느껴졌을 것입니다.
물가로 내려가는 모세의 뒤편에서
수군거리며 의구심을 품은 사람들이 존재했겠죠.
그러나 여러분,
믿음은 순종입니다.
순종하면 역사가 일어납니다.
요한복음 2장을 보면
가나 혼인잔치 이야기가 등장합니다.
여기서 잔치의 포도주가 떨어지고 말죠.
혼인 잔치에서 포도주는 꼭 필요한 것이었어요.
그게 없으면 잔치의 진행자는 망신을 당합니다.
바로 그때 예수님께서
하인들에게 말씀하십니다.
“항아리에 물을 가득 채워라”
이 항아리는 75-110리터의 물을 채울 수 있는
큰 항이리였어요.
하인들은 물을 뜨며 생각하지 않았겠습니까?
‘이게 뭔 고생이냐?
이런다고 물이 포도주가 되긴 해?’
그런데 묵묵히 그 말씀에 순종했어요.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가득 채운 항아리의 물을
잔치를 맡은 자에게 가져다 주라고 했어요.
그랬더니 그 사람이 놀라며 말하죠.
“이건 내 인생 최고의 포도주입니다!”
여러분 이 사람이 술에 취해서
이런 고백을 한 걸까요?
아닙니다.
물이 포도주로 변했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순종은 기적을 만듭니다.
모세의 순종으로 쓴 물은
단물로 변화되었습니다.
인생의 쓴물을 단물 되게 하시는 분은
오직 하나님뿐이십니다.
그 하나님을 경험하려면
먼저 기도하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문제보다 하나님을 바라보며
부르짖을 때 해답이 보입니다.
그리고 그 해답으로 가려면
‘순종’이라는 기차를 타야 합니다.
우리 모두 위기 앞에 기도하고 순종함으로
기적을 경험하시길 축복합니다.
그렇게 마라의 사건 이후에 이스라엘은
엘림으로 인도함을 받습니다.
27절입니다.
출애굽기 15:27
그들이 엘림에 이르니
거기에 물 샘 열둘과
종려나무 일흔 그루가 있는지라
거기서 그들이 그 물 곁에 장막을 치니라
학자들에 따르면 엘림과 마라의 거리는
10km정도 밖에 안 된다고 합니다.
너무도 가까운 곳에 엘림이 있었죠.
하나님은 우리의 삶에 축복을
이미 예비하신줄 믿습니다.
우리는 그날까지 믿음으로
순종의 길을 가기만 하면 됩니다.
불평을 멈추고 감사로 영광 돌리십시오.
그것이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뜻입니다!
설교를 준비하며 예전에 썼던 일기장을
우연히 보았습니다.
2019년 겨울에 쓴 건데,
내용을 요악하면 다음과 같아요.
그날은 제게 참 힘든 날이었나봐요.
그대로 읽어드릴게요.
오늘 퇴근을 하고 몸과 마음이 너무 지쳐서
빨랫줄에 널린 미역처럼
축 쳐진 상태로 소파에 누웠다.
무의식 중에 찬양 한 곡을 틀었는데
영어 찬양이었다.
그날따라 가사가 또박또박 들렸다.
“I believe you’re my healer.”
난 믿네. 당신은 내 치료자입니다.
따라 부르려는데 입술이 벌벌 떨리고
소리내어 찬양할 수 없었다.
성령의 강력한 은혜가
내 위에 부어졌기 때문이었다.
이어지는 가사에서
”Nothing is impossible for you.“
당신에겐 능치 못할 일이 없습니다!
이 부분을 듣다가 눈물이 터졌다.
흐느낌이 울부짖음으로, 통곡으로 변했다.
그동안 하나님을 잊고 살았던 것을 회개했다.
사실 지금의 어려운 상황이
영원히 지속될 것 같았다.
그래서 하나님을 향해 원망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젠 아니다.
“하나님께 능치 못함이 없다!”
그리고 말씀을 읽는데
이 부분이 화살처럼 마음에 꽂혔다.
히브리서 10:35-36
그러므로 너희 담대함을 버리지 말라
이것이 큰 상을 얻게 하느니라
너희에게 인내가 필요함은
너희가 하나님의 뜻을 행한 후에
약속하신 것을 받기 위함이라
사랑하는 여러분,
지난 2024년을 돌아보십시오.
한순간도 주님의 인도하심이 없던
순간이 있었나요?
역사의 주관자되시는
하나님은 어제와 오늘, 앞으로 영원토록
우리를 이끄실 것입니다.
오늘 설교의 제목이 뭔지 아십니까?
“홍마엘을 기억하라”입니다.
홍: 홍해의 기적을 기억해야 합니다.
마: 마라의 쓴물이 단물되는 은혜를
기억해야 합니다.
엘: 엘림까지 예비하신 은혜를 기억해야 합니다.
저는 우리 교회가 이제까지 홍해도 건넜고
마라의 쓴물도 마셔봤다고 생각합니다.
이제 앞으로 쓴물이 단물 되는
은혜를 경험할 것입니다.
그 후에 엘림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광야 같은 현실 속에서도
엘림으로 인도하실 것이라 확신합니다.
교회뿐입니까?
우리 가정에도 하나님은
쓴 물이 단 물되는 은혜를 주실 것입니다.
우리 모두가 이러한 믿음을 가지고
다가오는 2025년을 힘차게 맞이하시길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