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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다 왕 아비얌 15:1~2
1 느밧의 아들 여로보암왕 열여덟째 해에 아비얌이 유다 왕이 되고
2 예루살렘에서 삼 년 동안 다스리니라 그의 어머니의 이름은 마아가요 아비살롬의 딸이더라
아비얌에 대한 하나님의 평가 15:3~8
3 아비얌이 그의 아버지가 이미 행한 모든 죄를 행하고 그의 마음이 그의 조상 다윗의 마음과 같지 아니하여 그의 하나님 여호와 앞에 온전하지 못하였으나
4 그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다윗을 위하여 예루살렘에서 그에게 등불을 주시되 그의 아들을 세워 뒤를 잇게 하사 예루살렘을 견고하게 하셨으니
5 이는 다윗이 헷 사람 우리아의 일 외에는 평생에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하게 행하고 자기에게 명령하신 모든 일을 어기지 아니하였음이라
6 르호보암과 여로보암 사이에 사는 날 동안 전쟁이 있었더니
7 아비얌과 여로보암 사이에도 전쟁이 있으니라 아비얌의 남은 사적과 그 행한 모든 일은 유다 왕 역대지략에 기록되지 아니하였느냐
8 아비얌이 그의 조상들과 함께 자니 다윗성에 장사되고 그 아들 아사가 대신하여 왕이 되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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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말씀 요약]
3년간 유다를 다스린 아비얌은 아버지 르호보암이 행한 모든 죄를 행하고, 그의 마음이 다윗의 마음과 달리 하나님 앞에 온전하지 못합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다윗과 맺은 약속 때문에 그의 후손이 왕위를 잇게 하십니다. 아비얌 때도 여로보암과 전쟁을 하고, 그가 죽으니 아들 아사가 왕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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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다 왕 아비얌 15:1~2
르호보암의 뒤를 이어 아비얌이 유다 왕이 됩니다. ‘아비얌’은 ‘나의 아버지는 얌이다’라는 뜻입니다. ‘얌’은 ‘바다’를 뜻하기도 하고, 고대 우가릿에서는 ‘바다의 신’을 뜻하기도 합니다. 이는 하나님을 섬기는 왕의 이름으로 적절하지 않기에 역대기에서는 ‘나의 아버지는 하나님이다’라는 뜻인 ‘아비야’라고 부릅니다(대하 12:16). 그의 어머니는 마아가며, 아비살롬의 딸로 소개됩니다. 아비살롬은 다윗의 아들 압살롬을 가리키는데, 압살롬의 딸은 다말뿐입니다(삼하 14:27). ‘딸’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바트’는 ‘딸’뿐 아니라 ‘손녀, 증손녀’ 등 여자 후손을 지칭할 때도 사용합니다. 그러므로 마아가는 압살롬의 손녀로 보는 것이 적절합니다. 아비얌은 3년 동안 왕위에 올랐다가 젊은 나이에 죽습니다.
● 더 깊은 묵상
‘아비얌’은 역대기에서 ‘아비야’(대하 12:16)라고도 불립니다.
그의 이름에는 어떤 뜻이 담겨 있나요? 내 이름은 어떤 의미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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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비얌에 대한 하나님의 평가 15:3~8
아비얌의 마음은 그의 조상 다윗의 마음과 같지 않습니다. 이에 아비얌은 하나님 보시기에 온전하지 못한 왕으로 평가받습니다. 그는 아버지 르호보암이 행하던 우상 숭배를 그대로 행했습니다. 그럼에도 하나님은 다윗과의 약속을 지키셔서 다윗의 후손이 왕조를 이어 가게 하십니다. 다윗이 완전해서가 아닙니다. 죄를 범했지만 하나님께 중심으로 회개했고, 징계를 받으면서도 끝까지 하나님을 떠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다윗이 헷 사람 우리아의 일 외에는 평생에 하나님 보시기에 정직했고, 그분의 명령을 어기지 않았다고 하십니다(5절). 하나님의 은혜로 아비얌은 평안히 다윗성에 묻히고, 그의 아들이 왕위를 잇습니다.
● 더 깊은 묵상
신앙이 바르지 못한 아비얌에게 하나님이 은혜를 베푸신 이유는 무엇인가요?
나의 연약함에도 선조(부모)의 신앙으로 누리는 은혜는 무엇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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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연약할지라도
찰스 스탠리의 「용서」에 15세 소녀 페시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13세부터 그녀는 당시 18세 청년과 성관계를 가졌습니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 죄악의 길에 들어선 소녀는, 청년이 자신을 떠나자 심한 불안으로 괴로워했습니다. 상담자를 찾아갔지만, 그와도 육체적 관계를 맺게 되었고 그런 자신을 끊임없이 자책하다가 스탠리 목사를 찾아왔습니다.
그녀는 죄책감 때문에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고백했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죄악을 하나님이 용서하지 않으실 거라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용서는 나의 주관적인 느낌이 아닙니다. 용서는 하나님이 우리에게 하신 일에 속한 것이지 우리의 느낌에 따라 달라지는 것이 아닙니다.
용서하지 못하는 마음과 죄책감은 자신을 부당하게 질책합니다. 그리고 자신의 죄를 끊임없이 재현하게 만듭니다. 우리는 예수님 보혈의 공로에 의지해 자신을 용서해야 합니다. 내 힘으로는 하나님 말씀을 다 지킬 수 없기에, 하나님을 찾고 의지하는 것이 최고 믿음입니다. 날마다 내 죄를 회개하고, 영원한 구원의 언약인 하나님 말씀을 사모하길 바랍니다. 우리 연약함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구원의 등불을 끄지 않으시고 때를 따라 우리를 도우십니다. 하나님은 우리 안에 시작하신 선한 일을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반드시 이루실 것입니다(빌 1:6).
그럼에도 살아냅시다 / 김양재_ 두란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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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기도
하나님, 오늘 제가 한 순종이 자녀와 다음 세대에게 전해진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연약하고 어리석은 인생이지만 하나님 마음에 맞는 사람이 되기 위해 치열한 싸움을 멈추지 않게 하소서. 심판 중에도 긍휼을 잊지 않으시는 하나님께 기대어 날마다 새롭게 변화되게 하소서.
오늘의 찬송(새 292 주 없이 살 수 없네)
하나님은 우리의 믿음을 보시고, 우리를 굳게 세워 주시는 하나님입니다.
‘나’에게 말씀하신 것을 적용함
주님 보시시에 온전한 삶이 될 수 있도록 모든 노력을 기울이도록 하자
주님 보시기에 올바르게 살아가고, 주님의 명령에 온전히 순종하며 나아가는 삶이 되도록 최선을 다하자
주님께서 늘 우리를 주시하고 계시며, 우리와 더 깊은 관계 안에 거하길 원하신다는 것을 잊지 말고, 그분의 제자로서, 그분의 일꾼으로서의 역할을 성실히 감당해 나가도록 하자
하나님은 어떤 분입니까?
1-5절 아비얌은 그의 아버지만큼, 그의 할아버지의 말년만큼 악한 왕입니다. 그럼에도 하나님은 그의 종 다윗에게 “예루살렘에서 내 종 다윗이 항상 내 앞에 등불을 가지고 있게 하리라”(11:36) 하신 언약을 기억하시고, 다윗 왕조가 계속해서 이어지도록 하십니다. 우리아를 죽이고 그의 아내를 빼앗은 다윗의 끔찍한 죄에 대해 ‘그것 외에 정직하게 행했다’ 평가하시며 덮어주시듯, 그의 자손들의 죄에도 불구하고 다윗 왕조를 안전하게 지키신 것입니다. 여로보암의 왕조와 비교하면 불공평해 보이기까지 하는 하나님의 호의입니다. 하지만 이 불공평한 용서의 은혜는 다름 아닌 오늘 나를 향하고 있습니다.
내게주시는교훈은무엇입니까?
2,3절 아비얌의 어머니 마아가는 아세라상을 만들어 섬기는 우상숭배자였으므로(15:13), 아비얌 앞에서 이교적 신앙 행태를 보여주었을 것입니다. 우상을 묵인하고 방조하는 아비얌의 악행 또한 그의 아버지 르호보암과 너무도 닮아 있습니다. 아비얌은 하나님 나라 왕조의 정체성과 자부심, 세상의 전제군주와 구별되는 거룩함을 선대를 통해 배우지 못했습니다. 도리어 하나님과 우상을 겸하여 섬기며 자기 욕망을 챙기는 간교함과 위선을 보고 배웠을 것입니다. ‘자식은 부모의 거울’이라는 말이 가장 확실하게 적용되는 영역이 ‘신앙’입니다. 우리는 자녀 앞에서 어떤 신앙을 보여주고 있습니까?
6-8절 북이스라엘이 갈라져 나온 이유는 다윗의 길로 이스라엘을 회복시키기 위함이었고(11:38), 남유다 역시 하나님의 성전을 밝히는 등불로 남아 신앙을 회복해야 할 사명이 있었습니다. 그렇게 하나님께 돌이킨 남북은 다시 하나의 이스라엘로 연합해야 했지만, 우상숭배에 열중하는 여로보암과 아비얌은 전쟁만 벌입니다. 탐욕이 지배하는 자들에게 형제사랑이 있을 리 없고, 제사장 나라의 정체성과 소명의식이 있을 리 없습니다. 세상이 조롱하든 말든 부끄러워할 줄 아는 능력을 잃은 채 서로 파멸을 재촉하고 있습니다. 내가 전쟁하려는 대상은 세상을 사랑하려는 나 자신입니까, 아니면 누구든 내 욕망을 가로막는 사람입니까?
‘이는 다윗이 헷 사람 우리아의 일 외에는 평생에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하게 행하고 자기에게 명령하신 모든 일을 어기지 아니하였음이라’ - 아비얌이 여호와 보시기에 악할지라도, 유다 왕조가 쇠하지 않는 것은 바로 다윗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어떤 것을 평가하는데 기준이 될 만한 사물을 가리켜 시금석이라고 합니다. 열왕기 기자는 유대와 이스라엘 모든 왕의 시금석을 다윗에게 견주어 비교하고 있습니다. 다윗만큼 하나님 앞에 기준이 되는 왕도 없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러나 다윗은 최소한의 표준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최대한의 모델이 될 수 없는 것은 헷 사람 우리아만 하더라도 다윗보단 월등히 낫기 때문입니다. 그는 전쟁터에서 불려와 집으로 보내지만 아내에게 가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벗어나지 않으려고 혼신의 힘을 다합니다. 그 모두 하나님 앞에서 온전하기 위하여 다윗보다는 한결 자기 부정을 실천했던 사람들입니다. 구약시대는 가고 오늘 날 우리는 신약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이는 다윗의 표준이 끝나고 예수 그리스도의 사람들이 표준이 되었다는 말입니다. 이 시대의 시금석이 그렇게 되어야 하는 것은 주님께서 그렇게 사셨기 때문입니다. 제자된 우리도 당연히 그렇게 살아야 하죠. 교회개혁의 선구자 존 후스는 화형을 당하면서도 예수님처럼 그들을 구원해달라고 기도 드렸는데, 그 좋은 실례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이제 우리의 표준도 업그레이드되어야 할 것입니다. 다윗으로 그칠 것이 아니라 주님과 그 제자들을 모델로 해야 합니다. 주님은 다음과 같이 말씀하십니다. ‘나를 믿는 자는 내가 하는 일을 그도 할 것이요 또한 그보다 큰 일도 하리니’ - 우리 모두의 목표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분을 따라야 합니다. 그것이야말로 주님께서 말씀하신 큰 일로, 인간의 몸을 입고 신의 성품에 참여하는 그런 존재가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어떤 분입니까?
4,5절 솔로몬 시대에 시작된 우상숭배에도, 꺼지지 않는 등불처럼 다윗의 자손을 계속 왕으로 세워 주셨습니다. 다윗과의 언약과, 다윗의 신실함 때문입니다. 그리고 다윗의 신실함을 유다의 왕을 판단하는 기준으로 삼으십니다. 다윗이 완벽해서가 아닙니다. 그도 끔찍한 죄를 저질렀지만, 돌이킬 줄 알았고 도리에 맞게 살 줄 알았습니다. 하나님이 내 인생의 등불이 되어 주셨으니, 부족하지만 나도 다른 이의 길을 비추는 등불이 되길 기도합시다.
내게 주시는 교훈은 무엇입니까?
1,2절 아비얌이 유다의 왕이 된 해는 여로보암이 통치한 지 18년이 되는 해였습니다. 그가 즉위한 해를 북이스라엘 왕의 연도에 맞춰 명시합니다. 이는 비록 왕국이 분열되어 있지만, 그들은 한 피를 나눈 한 형제이고, 같은 신앙을 가진 동족이며, 한 하나님의 통치를 받는 한 백성, 한 나라라는 사실을 잊지 않게 해줍니다. 협소한 분단 인식을 버리고 통일적 시각을 가져야 합니다.
2,3절 아비얌은 다윗의 마음을 닮은 왕이 될 수도 있었고, 르호보암의 길을 걸을 수도 있었습니다. 불행히도 아버지 르호보암의 종교적 악행(14장 23절)을 그대로 따릅니다. 솔로몬 시대에 시작된 우상숭배가 르호보암 시대를 거쳐 아비얌 시대까지 계속 답습됩니다. 지켜야 할 다윗의 온전한 신앙 전통은 끊어지고, 사라져야 할 죄의 유산은 대를 이어 세습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맡기신 자녀를 남부럽지 않게 키우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말씀으로 양육하는 것이 부모의 가장 큰 책임입니다. 그리고 참된 신앙 교육은, 결코 잃어버리지 말아야 할 것을 얻기 위해 잃어버려도 될 것을 버리라고 가르치는 것입니다. 그것은 부모의 삶을 통해 가르쳐 주어야 합니다.
6~8절 르호보암과 그 아들이 보기에 왕국 분열과 국력 쇠퇴의 원인은 여로보암에게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여로보암과의 전쟁에 골몰한 것입니다. 자신의 욕망을 죽이는 전쟁이 아니라 형제와 동족을 죽이는 전쟁을 계속하였습니다. 나는 누구와 싸웁니까? 내 속의 죄입니까, 내 밖의 이웃입니까?
기도
공동체-저와 우리 공동체의 삶이 세상의 기준이 되게 하소서.
르호보암을 이어 아비얌이 남유다의 왕이 되었습니다 아비얌은 어떻게 왕이 될 수 있었을까요? 르호보암은 아내가 18명, 첩이 60명이었지만, 그 중에 아비얌의 어머니 마아가를 모든 처첩보다 더 사랑했습니다 그래서 외견 상으로는 28명의 아들들 중에서 마아가의 아들인 아비얌이 르호보암의 총애를 받아 왕이 된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그가 왕이 된 근본적인 이유는 다윗 때문이라고 말씀합니다
"하나님 여호와께서 다윗을 위하여 예루살렘에서 그에게 등불을 주시되 그의 아들을 세워 뒤를 잇게 하사 예루살렘을 견고하게 하셨으니"(왕상15:4)
또한 아비얌이 중과부적의 군사로 전쟁할 때에, 어떻게 40만의 군사로 여로보암의 80만 대군을 이길 수 있었을까요? 다윗의 하나님을 의지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여로보암과 온 이스라엘을 아비야와 유다 앞에서 치시니 이스라엘 자손이 유다 앞에서 도망하는지라 하나님이 그들의 손에 넘기셨으므로 아비야와 그의 백성이 크게 무찌르니 이스라엘이 택한 병사들이 죽임을 당하고 엎드러진 자들이 오십만 명이었더라 그 때에 이스라엘 자손이 항복하고 유다 자손이 이겼으니
이는 그들이 그들의 조상들의 하나님 여호와를 의지하였음이라"(대하13:15~18)
그러나 아비얌은 자신이 왕이 된 근본인 다윗과 같지 않았고, 자신의 승리의 근본인 하나님 앞에 온전하지 못했습니다
"그의 마음이 그의 조상 다윗의 마음과 같지 아니하여 그의 하나님 여호와 앞에 온전하지 못하였으나"(왕상15:3)
아비얌의 재위기간은 삼 년에 불과했지만, 죄를 범하는데는 충분한 시간이었습니다
"아비얌이 그의 아버지가 이미 행한 모든 죄를 행하고"(왕상15:3)
참으로 우리가 왕 같은 제사장이라 일컬음을 받는 것은 오직 다윗의 후손 예수 그리스도로 인함입니다
"일찍이 죽임을 당하사 각 족속과 방언과 백성과 나라 가운데에서 사람들을 피로 사서 하나님께 드리시고 그들로 우리 하나님 앞에서 나라와 제사장들을 삼으셨으니"(계5:9~10)
그런데 어떻게 그리스도를 배반하겠습니까? 그러므로 오직 우리의 왕 같은 제사장 됨의 근본이신 그리스도를 본 받고, 우리의 모든 승리의 근본이신 아버지 하나님의 말씀 가운데 행하기를 원합니다
(왕상 15:1~8절
❝언약의 은혜 안에서 충성 된 삶❞
❚ 연약하고 부족한 인생이라 할지라도 하나님은 약속을 신실하게 이루시는 분이십니다..
✔ 충성되게 살아가야 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 하나님은 불순종에 대해 반드시 벌하시는 분이시기 때문입니다(1~3절).
죄가 내 인생을 가로막고 있을 때, 하나님과 마음이 일치될 수 없으며 그래서 내 삶이 불완전한 관계에 놓이게 됩니다. 다윗은 죄를 지었을지라도 곧바로 엎드려 기도하며 회개함으로써 죄 사함을 받고 하나님과 완전한 관계를 지속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다윗 이후의 왕들은 하나님께 불순종하며 회개치 아니하고 가증스럽고 완악한 마음을 유지함으로써 하나님과 온전한 관계를 갖지 못하였습니다. 그러므로 항상 말씀과 기도로 내 자신의 몸과 마음을 거룩하게 하여 세상 끝날까지 하나님과 온전한 관계를 이루는 삶을 살아가야 하겠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불순종한 삶에 대하여 반드시 벌하시는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 하나님은 약속하신 것을 반드시 지키시는 분이시기 때문입니다(4~5절).
내 자신이 하나님께 인정받는 삶의 길은 오직 하나님의 말씀을 지켜 행하는 것뿐입니다. 주님의 말씀을 항상 내 마음에 둠으로써 범죄치 말며, 다윗과 같이 하나님 보시기에 올바르며, 온전히 행하는 자의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내 자신의 어떠한 잘못과 실수에도 하나님의 계획과 뜻은 결코 무너뜨리지 못합니다. 하나님의 언약을 받은 다윗이 우리아를 죽이고 그 아내를 취했지만, 다윗 왕조에 대한 하나님의 계획은 결코 취소되지 않은 것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생명의 말씀에서 벗어나지 않도록 끝날까지 실족지 아니하도록 영적으로 깨어 기도하는 삶을 살아가야 하겠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약속하신 것에 대하여 반드시 지키시는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 하나님은 충성하는 자를 반드시 복 주시는 분이시기 때문입니다(6~8절).
겸손히 하나님께로 나아가 하나님을 온전히 의지하는 삶을 살아갈 때, 하나님은 내 인생 가운데 승리를 주십니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 앞에 엎드려 겸손히 도움을 구할 때, 하나님은 나에게 찾아오시고, 나의 한계를 넘어 이기게 하시는 분이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그 은혜와 사랑을 기억하며 그동안 내 안에 조용히 스며들어와 있던 우상들을, 내가 그렇게도 의지하고 사랑했던 우상들을 정리해야 하겠습니다. 하나님께 인정받고, 진정한 사랑을 받기 위해 죄와 싸워 이길 줄 아는 삶을 살아가야 하겠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충성되이 살아가는 자에게 반드시 복 주시는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오늘도 삶에 스며드는 우상을 없애고, 하나님의 기준에 합당하도록 깊이 있는 말씀 묵상과 겸손한 눈으로 자신을 성찰하며 살아갈 뿐만 아니라 길이 참으시고 포기하지 않으시는 하나님의 사랑에 응답하여 하나님의 길을 충성스럽게 걸어가는 삶을 살아갈 수 있기를(왕상 15:1~8절)...
사랑과 은혜가 풍성하신 하나님 아버지,
진노 중에라도 긍휼을 잊지 않으시고
그 신실한 언약을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결국 이루신 것을 다시 한번 깨닫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그 뜻에 합당한 삶으로 날마다 변화되고,
우리를 대신하여 싸우시고 승리를 예비하신
일상의 전투와 전쟁 가운데 온전히 의지함으로
순종하는 주님의 제자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이 시간에도 열방 가운데 하나님의 구원의 기쁜 소식 전하시는
선교사님들의 가정과 사역위에 기름 부어주시고,
그 모든 필요에 넘치도록 아버지께서 풍성히 공급하여 주시옵소서.
질병과 전쟁, 기근과 핍박, 온갖 자연재해로 말미암아
고통받고 신음하는 이들을 아버지께서 긍휼히 여겨 주시고,
치유와 회복의 손길을 베풀어 주시옵소서.
이 나라와 백성의 하나님을 경외하고,
오직 아버지의 은혜와 사랑을 높이는
거룩한 제사장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감사와 찬양을 아버지께 올려드리며,
우리의 길과 진리와 생명 되신 예수님의 거룩하신 이름으로 간절히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