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소련 붕괴 후 지배적 思潮였던 ‘세계주의’ 퇴조… 민족주의 대두로 ‘협력’보다 ‘갈등’ 가능성 높아져
⊙ 에스퍼 美 국방장관, 군사적 초점을 中東에서 中·러로 이전 선언… 미 對 중·러 관계, 본격적인 군사적 적대 관계로
⊙ 트럼프의 對北 최후통첩… 어떤 식으로든 北核 문제 해결될 것
⊙ 정치·경제·군사적으로 한반도가 오랫동안 당해보지 못했던 격변의 한 해가 될 것
이춘근
1952년생. 연세대 정치외교학과 졸업, 미국 텍사스대학 정치학 박사 / 세종연구소 연구위원, 한국해양전략연구소 연구실장, 자유기업원 국제문제연구실장·부원장, 한국경제연구원 외교안보연구실장 역임. 現 국방부 정책자문위원 / 《미·중 패권경쟁과 한국의 국가전략》 《격동하는 동북아시아》 《현실주의국제정치학》 등 저술
⊙ 에스퍼 美 국방장관, 군사적 초점을 中東에서 中·러로 이전 선언… 미 對 중·러 관계, 본격적인 군사적 적대 관계로
⊙ 트럼프의 對北 최후통첩… 어떤 식으로든 北核 문제 해결될 것
⊙ 정치·경제·군사적으로 한반도가 오랫동안 당해보지 못했던 격변의 한 해가 될 것
이춘근
1952년생. 연세대 정치외교학과 졸업, 미국 텍사스대학 정치학 박사 / 세종연구소 연구위원, 한국해양전략연구소 연구실장, 자유기업원 국제문제연구실장·부원장, 한국경제연구원 외교안보연구실장 역임. 現 국방부 정책자문위원 / 《미·중 패권경쟁과 한국의 국가전략》 《격동하는 동북아시아》 《현실주의국제정치학》 등 저술
2020년이다. ‘0’이라는 숫자로 끝나는 해는 특별한 이유가 있는 것이 아님에도, 한 시대가 끝났다거나 새로운 시대가 시작된다는 의미를 가질 수밖에 없다. ‘0’자가 들어간 해는 우리 모두에 의해 무엇인가 다른 해로 인식되기 때문이다. 21세기의 세 번째 10년(3rd decade)이 시작되는 2020년은 지난 수년 혹은 수십 년 동안 진행되어왔던 국제정치의 몇 가지 변화 요인이 좀 더 구체적인 모습을 나타내 보이는 해가 될 것이다.
2020년은 21세기가 시작된 2000년 이후, 혹은 더 길게 본다면 1990년 미·소 냉전(冷戰)체제가 종료된 이후 2019년까지 진행된 국제정치의 기본적인 모습이 거의 완전하게 변하는 결정적인 해가 될 것으로 보인다.
1990년은 소련의 멸망으로 냉전체제가 와해된 해였다. 소련이 없어진 세상에서 미국은 유일 패권국(覇權國)이 되었고, 자국이 오랫동안 원하던 국제질서를 온 세상에 적용시킬 수 있게 되었다. 미국이 만든 국제질서는 ‘세계화(世界化)의 시대(age of globalization)’라고 불리던 것으로서, 미국이 숭앙하는 자유주의와 시장경제의 이념을 국제정치 차원에 적용시킨 것이었다.
세계가 급격히 경제적으로 통합되는 과정에서 소외된 세력인 이슬람이 미국을 향해 일으킨 9·11테러는 세계화의 진행을 잠깐 막는 듯했다. 그러나 세계화의 무드에 적극 올라탄 중국의 역할로 세계화의 도도한 흐름은 지속되었다. 그러는 동안 유일 패권국의 지위를 다져나간 미국은 온 세계를 자유와 평화의 세상으로 만들 수 있다는 믿음에 바탕을 둔 ‘자유주의적 국제주의(liberal internationalism)’에 근거한 외교정책을 실시했다. 클린턴(1993~2001년), 부시(2001~2009년), 오바마(2009~2017년) 대통령이 충실히 집행한 이 정책은 미국이 명쾌한 승리를 거두지 못한 채, ‘항상 전쟁을 치르고 있어야만 하는(permanent war)’ 나라가 되게 하였다. 미국 사회 일각에서 이에 대한 반감(反感)이 서서히 무르익고 있었고, 2016년 대선(大選)에서는 24년간 지속되어온 자유주의적 국제주의에 근거한 미국 외교정책에 노골적으로 반대하는 트럼프가 당선되었다.
세계주의의 퇴조
2017년 1월 취임 이후 트럼프가 전개하는 미국의 대외(對外)정책은 세계주의가 아니라 ‘일국주의(一國主義)’ ‘민족주의’ 혹은 ‘미국우선주의’라고 부를 수 있는 것으로 급격히 바뀌고 있었다. 패권국가인 미국의 정책 변화는 그동안 익숙해 있던 국제질서의 기본 양식을 뿌리째 건드리는 것이었다.
자유주의적 국제주의라는 국제적 간섭을 기본으로 가정하는 외교정책을 변화시키는 미국의 행동은 세계적 차원의 국제정치상 대변동을 불러일으킬 것이며, 미국의 깊은 개입을 외교·안보정책의 기초로 삼았던 세계 여러 나라의 행동 방식에 큰 충격을 가하게 될 것이다. 2020년은 지난 수년간 변질되어 오고 있던 세계주의(globalism)가 돌이키기 힘들 정도의 국가주의로 변화해버리는 전환점(turning point)이 될 것이다.
지난 여러 해 동안 나타난 국제정치의 큰 변화는 1990년대 초반 이후 세계 대부분의 국가에서 풍미되었던 ‘세계화 혹은 세계주의’ 개념이 거의 완전하게 쇠퇴(衰退)하고, 이를 대체할 개념으로 ‘민족주의 혹은 국가주의(nationalism)’가 점차 노골적으로 부각되었다.
세계주의는 2020년을 기점으로 기력을 다시 회복하기 어려울 것 같다. 국제정치의 변화 양상 중 가장 충격적인 것으로 인식된 사건은, 영국의 유럽연합(EU) 탈퇴 현상(브렉시트)과 트럼프 대통령의 당선이었다. 물론 트럼프만이 별종 인물은 아니다. 공화당 후보 17명 중 미국의 자유주의적 국제주의 외교정책을 지지하는 사람은, 오하이오주(州) 지사던 존 케이식 한 사람밖에 없었을 정도로 미국의 대외정책 관련 분위기는 바뀌어 있었다.
無정부 상태의 도래
브렉시트(Brexit)와 트럼프의 대통령 당선은 국제주의 혹은 세계주의의 종언(終焉)을 더욱 분명하게 했지만, 세계화 시대의 종언 현상은 그 이전에 이미 여러 곳에서 나타났다. 러시아 푸틴 대통령의 집권, 중국 시진핑(習近平) 주석 출현, 일본 아베(安倍) 정권 출범 역시 세계 주요 국가 지도부가 세계주의를 지향하는 세력이 아니라 국가와 민족을 강조하는 세력으로 교체됨을 의미했다. 세계 정치를 주도하는 강대국 다수의 수뇌부가 세계주의에 회의적(懷疑的)이며 좀 더 민족주의적인 인물들로 바뀐 것이다.
민족주의 혹은 국가주의 세력의 대두는 자유 진영의 대표 국가들인 미국·영국·일본은 물론 구(舊)사회주의 진영의 핵심 국가인 러시아와 중국 등 다양한 국가에서 일어난 일이라는 점에 유의해야 한다. ‘미국·일본·영국’ 대(對) ‘중국·러시아’라는 대결구도가 다시 형성되고 있는데, 양측 모두가 민족주의로 무장한 지도자들에 의해 통치되고 있다는 점이 심상치 않다. 이 대결구도는 2020년 더욱 치열해질 것이 분명하다. 2020년은 마치 냉전 시대를 방불케 하는 진영 간 대결이 벌어지는 두 번째 냉전 시대(The Second Cold War)의 첫해가 될 것이다.
지난 20~30년 동안 세계 정치를 지배해온 세계주의자들이 입에 달고 살던 국제 관계의 기본 용어는 ‘함께(together)’라는 말이었다. 반면에 국가주의자 혹은 민족주의자들이 사용하는 국제정치의 기본 용어는 ‘애국’ 혹은 ‘스스로’였다. 국제주의를 지향하는 국가들이 모여 사는 세계와 비교할 때, 애국주의 혹은 민족주의를 지향하는 국가들이 모여 사는 세계의 모습은 국제정치의 원형, 즉 무정부 상태(anarchy)에 더욱 가까운 것이 될 수밖에 없다. 애국주의적 국가들이 모여 있는 세계는 국가 간의 갈등·분쟁 혹은 전쟁 가능성이 교류·협력의 가능성보다 훨씬 더 높은 세계가 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中國夢 vs MAGA
2019년 한 해 동안 미국 트럼프 대통령과 펜스 부통령은 공식적인 루트를 통해 최근 진행되는 세계적 차원의 갈등을 ‘전체주의와 자유주의의 갈등’이라 규정했다. 자유주의를 대표하고 자유주의를 수호해야 할 사명이 있다고 믿는 미국은, 전체주의를 대표하는 가장 강력한 국가인 중국과 본격적인 투쟁을 벌이겠다고 선포했다.
미국은 2019년 11월 19일 상원에서는 만장일치로, 20일 하원에서는 417대 1로 홍콩 시민들의 민주화운동을 지지하는 법안 두 건을 통과시켰다. 이 법안은 일주일 후인 11월 27일 트럼프 대통령이 사인함으로써 법제화되었다. 미국이 홍콩의 자유시민혁명을 지지했다는 사실은, 미·중 관계가 단순한 패권 경쟁을 넘어서 문명과 체제의 싸움이라고 볼 수 있는 사건이다.
미국과 중국의 갈등은 누가 그 원인을 먼저 제공했느냐를 따지기보다는, 힘이 막강한 두 나라가 각각 협력과 교류를 강조하기보다는 자국 중심주의적 이익을 추구하기 시작했다는 데서 자연스럽게 발발한 일이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민족주의자인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2012년 18차 당 대회에서 총서기에 오르면서 처음으로 ‘중국몽(中國夢)’이라는 국가 목표를 제시했는데, 이는 중국이 미국을 앞질러 세계를 주도하는 국가가 되겠다는 말이었다.
‘중국몽’에 대항하는 미국의 구호는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만들자(Make America Great Again·MAGA)’로, 2016년 트럼프의 대선 선거전 구호이다. ‘중국몽’이 ‘MAGA’보다 먼저 쓰인 말이라는 점에서 본다면, 중국이 먼저 미국에 도전장을 내민 데 대해 미국이 대응한 것이라고 말할 수도 있겠다. 미국이 ‘MAGA’라는 애국적 구호를 본격적으로 사용하기 시작하자, 시진핑의 중국도 ‘중국몽’이라는 용어를 더욱 빈번히 사용했다. 시진핑은 집권 5년 차인 2017년 전당대회에서는 ‘중국몽’을 무려 32차례나 언급하며 2050년까지 세계 최강국으로 우뚝 서겠다는 목표를 반복해서 강조했다.
단순한 패권다툼이 아니라 價値싸움
그러나 미국이 2050년경 중국에 패권의 지위를 평화적으로 빼앗길 가능성은 만무하다. 미국 전략문화(strategic culture)의 본질을 모르는 사람들은 중국이 평화적으로 미국의 패권을 빼앗을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그렇지 않다.
미국은 전쟁에서 패배하지 않은 채 자국의 패권적 지위를 중국에 양보할 나라가 결코 아니다. 어떤 패권국도 전쟁에서 지지 않은 채로 자국의 패권적 지위를 도전국에 물려준 적이 없다는 것이 반복적으로 나타나는 역사의 교훈이다. 하물며 미국 같은 나라가, 중국이 경제력은 물론 군사력마저 미국에 도전할 수 있을 정도로 막강해질 때까지 앉은 채로 기다리지는 않을 것이다. 그 전에 미국은 군사력이 아닌 다른 수단으로 중국을 제압하면서 중국으로부터 패권을 차지할 것이다. 그것이 최근에 더 구체적으로 나타나기 시작한 미국의 대(對)중국 행동이다.
2018년부터 본격적으로 진행되기 시작한 미·중 무역전쟁을 두 나라가 돈 몇 푼 때문에 싸우는 것으로 이해하면 안 된다. 미국과 중국의 다툼은 21세기를 누가 지배할 것이냐를 두고 싸우는 싸움, 그 이상의 싸움으로 보아야 한다. 왜냐하면 미국과 중국의 싸움은 자유주의와 전체주의의 싸움이라는 속성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인간이 지향해야 할 가치가 ‘자유’여야만 한다고 믿는 미국이, 중국과 러시아 더 나아가 북한의 전체주의 체제를 파괴 내지 교체시키려는 현실을 예의 주시해야 할 것이다.
미국의 에스퍼 국방장관은 2019년 12월 8일, 미국은 군사적 초점을 중동(中東)에서 중국과 러시아로 이전(shift)하게 될 것임을 공식적으로 언급했다. 2020년의 미·중 관계, 미·러 관계가 본격적인 군사적 적대 관계로 빠져들 수 있음을 공개적으로 선언한 것이다.
미국은 이 같은 작전을 혼자 힘만으로 하지 않을 것이다. 미국은 이미 2018년 5월 31일 태평양사령부(Pacific Command)를 인도-태평양사령부(Indo-Pacific Command)로 확대 개편했다. 다른 대통령과 달리 취임 해인 2017년 국가전략보고서를 간행한 트럼프 행정부는, 중국과 러시아를 견제하기 위해 일본・인도・호주・대만 등과 군사적 협력 관계를 대폭 강화하겠다고 선언하였다. 미국은 특히 한국・일본・미국의 3자 안보협력 관계를 미국의 대전략을 수행하는 데 사활이 걸린 문제로 중요성을 지속적으로 강조해오고 있다.
日 육상자위대의 상륙작전 훈련
미국의 홍콩 자유법안 통과에 대해 중국은 미국 군함의 홍콩 기항(寄港) 금지로 맞서고 있다. 이에 대해 미국의 한 상원의원은 미국 군함을 대만에 기항시키자는 아이디어를 냈다. 중국은 그럴 경우 전쟁도 불사할 것이라며 반발하고 있다. 2020년은 두 나라가 향하는 방향이 어딘지 더 말할 필요도 없어 보이는 상황이다.
국제정치의 미래를 정확히 예측하는 인물로 ‘21세기의 노스트라다무스’라는 별명까지 있는 조지 프리드먼 박사는, 2010년 간행된 《향후 100년》이라는 저서에서 2020년의 중국은 ‘종이호랑이’가 될 것이라고 해서 많은 사람을 놀라게 했다. 지난 수년간 중국의 모습은 프리드먼 박사 말이 맞는 것임을 증명해주고 있는 듯하다. 미국의 목표는 중국을 미국에 도전하기에는 역부족인 나라로 만드는 데 있는 것이지, 중국을 소멸시키는 것은 아니다. 과연 2020년은 중국이 더 이상 미국에 도전할 수 없는 처지의 나라로 전락하는 한 해가 될 까? 필자는 ‘그렇게 될 것’이라는 쪽에 기꺼이 한 표를 던지고 싶다.
미국은 중국을 약화시키는 동시에 일본을 강화시키고 있다. 미국은 이미 일본의 재무장을 사실상 허용했다. 미국군은 일본의 육상자위대 병력에 공격 훈련인 상륙작전 연습까지 꾸준히 시키고 있을 정도다. 그것도 하와이, 캘리포니아 등지에서 말이다.
한국이 미국과 갈등 관계에 놓여 있는 동안 일본은 미국의 적극적인 동맹국으로 급부상하고 있으며, 이와 더불어 자위대의 군사력도 일취월장 강화되고 있다. 일본의 무장을 그토록 반대하는 한국의 ‘진보’ 정권이 일본의 무력 강화에 오히려 적극 협조해준 꼴이 되어가고 있다. 2020년 하계 올림픽을 주최하게 될 일본은 이를 계기로 정말 ‘보통국가’가 될 수 있는 허가장을 미국으로부터 받아낼지도 모른다.
北核은 미국과 싸우지 않기 위한 것
한국 정부가 ‘진보적’이라는 세력에 의해 장악될 때마다 북한 핵 문제는 한국인의 문제가 아니라 미국과 북한 사이의 문제처럼 치부되는 경향이 있었다. 진보를 자처하는 많은 한국인은 북한이 핵을 개발하는 이유를 미국의 강압정책에서 찾았다. 지독히도 못살게 구는 미국에 대항하기 위해 북한은 핵폭탄을 만들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북한 핵 문제는 남북 문제가 아니라 미국과 북한 사이의 문제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생각하던 사람이 집권하고 있는, 현재 한국 정부는 북한 핵 문제의 당사자처럼 행동하지 않았다. 대신 그들은 중재자처럼 행동했다. 그리고 지난 2년여 동안 한반도에 평화가 찾아왔다고 선전했다.
북한 핵에 대해 원천적으로 잘못된 생각에 근거한 정책은 애초부터 성공을 거둘 수 없었다. 북한이 핵을 만드는 이유는 미국과 싸움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그와는 정반대다. 북한은 미국과 싸우지 않기 위해 미국까지 날아가는 핵폭탄을 만드는 것이다.
김정일이 당시 김일성이 살아 있을 때 한 말이다.
“수령님 대에 조국을 통일하자면 미국 본토를 때릴 수 있는 능력을 가져야 한다. 그래야 마음 놓고 조국통일 대사변(大事變)을 주동적으로 맞이할 수 있다.”
이 말이 보여주는 바는 북한의 핵전략은 국제정치의 기본 원리에 정확히 기초하고 있다는 사실과, 북한의 지도 세력은 핵 전략의 원리를 제대로 이해하고 있다는 사실을 말해준다.
북한이 핵을 보유하려는 궁극적 목표는, 미국 본토를 핵 공격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춤으로써 한반도 문제에 대한 미국의 개입을 원천적으로 억제하겠다는 것이다. 미국은 북한의 핵이 미국 본토를 확실하게 공격할 수 있게 되는 날이 온다면 더 이상 마음 놓고 대한민국을 군사적으로 지원할 수 없게 될 것이다. 반면 미국이 한국을 도와주는 일을 주저할 수밖에 없게 되는 날, 북한은 한국과 ‘평화적’으로 통일할 수 있게 될 것이다. 미국의 도움을 받을 수 없는 한국이, 한국 전역은 물론 미국 본토까지 공격할 수 있는 핵무장한 북한과 싸울 수는 없을 것이다. 북한은 그런 날이 온다면 한국은 항복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하고 있다. 즉 북한 핵 전략의 궁극적 목표는 한국을 싸움도 하지 않은 채 굴복시키는 데 있는 것이다.
‘가짜 평화 시기’의 종언
이 같은 목적을 위해 북한은 이미 수십 년 동안 문자 그대로 ‘고난의 행군’을 지속해왔다. 밥을 굶어가며 만든 핵무기가 이제 얼마 있지 않으면 그 목적을 달성할 수 있는 수준에 이르게 되었다. 미국의 전문가들은 “방치할 경우, 북한의 핵미사일이 미국에 도달할 시간은 1년 남았다”는 말을 오랫동안 해왔다. ‘작년에도 똑같은 말을 하지 않았느냐’는 기자들의 질문에 미국 관리들은 “내년에도 그렇게 말했으면 좋겠다”고 대답하곤 했다.
북한 핵 문제에 대한 미국과 북한의 입장은 180도 전면 배치되는 것으로, 타협점을 찾을 수 없는 것이다. 북한은 무슨 일이 있어도 미국 본토를 공격할 수 있는 핵 능력을 보유해야 하며, 미국은 무슨 일이 있어도 그것을 막아야 한다. 북한 핵미사일이 미국에 도달하는 것을 허용하는 날, 미국은 21세기 미국의 사활이 걸린 동아시아에서 패퇴(敗退)되는 처지에 당면할 것이기 때문이다.
2020년은 미국과 북한의 밀고 당기기가 결론나야만 한다. 미국과 북한은 물론 북핵 관련 주변 국가들은 북한 핵을 제거하기 위한 모든 방법을 썼다. 그리고 미국과 북한은 2019년 12월, 북한 핵은 이제까지 사용하던 방법만으로는 해결될 수 없다는 사실을 시인하기 시작했다. 물론 북한 핵 문제는 결코 설득과 대화만으로 해결될 수 없다고 믿는 사람들이 적지 않았다. 이들은 북한 핵의 본질을 정확히 이해하고 있는 사람들이었으며, 결국 2019년 말 이들의 견해가 올바른 견해였음이 더욱 뚜렷하게 증명되었다.
트럼프 대통령도 결국 2019년 12월 3일 김정은에게 “군사력을 사용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북한은 미국과의 협상에 핵 문제는 포함되지 않는다는 사실상의 최후통첩을 보냈다. 그러고 나서 북한은 다시 대륙간탄도미사일 발사 카드를 만지작거리고 있다. 만약 북한이 대륙간탄도미사일을 시험 발사한다면 이는 트럼프가 그동안 업적이라고 말해온 것을 면전에서 부정하는 일이 될 것이며, 결국 북핵 문제를 원점으로 되돌리는 일이 될 것이다. 그러나 시간도 되돌아가는 것은 아니다. 미국도 북한도 이제는 북핵 문제에 대해 결론을 내려야 할 때가 되었다. 2020년은 시기적으로 그럴 수밖에 없는 해가 될 것이다.
美, 北에 양보할 수 없어
우선 2020년은 트럼프 대통령이 재선에 도전하는 선거전을 치러야 하는 해이다. 트럼프가 정말 북한 문제를 평화적으로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았겠지만, 본질적으로 더욱 우수하고 국민들의 칭찬을 받을 수 있는 ‘평화적인 해결’ 방안을 강구한 것은 사실이었다. 임기 첫해인 2017년 북한에 대해 ‘분노와 화염’을 뿜겠다던 트럼프 대통령은 2년 이상 김정은을 다독거리는 데 힘을 썼다. 그렇게 함으로써 수많은 보수주의자의 원성을 사기도 했다. 그러는 동안 트럼프는 일관성 있게 북한의 목을 조르고 있었다.
북한에도 미국에도 운명의 시간이 다가오고 있다. 2019년 말 북한의 행동은 ‘더 이상 미국의 경제제재를 인내할 수 없다’는 단말마적 상황을 표현한 것이다. 트럼프 역시 북한의 도발에 굴복할 수 없는 처지다. 결국 2020년은 북한 핵 문제가 모종의 결론을 내야 하는 해가 될 것이다.
오래 끌던 심각한 국제 문제의 결말은 대개 ‘힘의 관계’를 정확히 반영하는 모습으로 끝난다. 미국과 북한은 동급의 힘을 갖춘 나라가 아니다. 미국과는 상대가 안 될 정도로 허약한 김정은에게 북핵 문제가 유리하게 끝날 가능성은 없다. 미국은 중국 문제와 북한 문제를 같은 맥락의 문제로 보고 있기에 더욱이 김정은에게 양보할 수 없는 것이다.
各自圖生해야 하는 해
현 정권의 외교부 장관이 감비아 대통령을 만나 북핵 문제를 논의했다는 소식을 듣고, 우리나라 많은 국민이 실소(失笑)를 금치 못한 적이 있었다. 매년 새해가 되면 세계 정치의 전망을 논하곤 하는데, 우리나라의 운명에 ‘의미 있는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나라는 세계 200개가 넘는 나라 중 5개국도 안 될 것이다. 미국・중국・일본・러시아 외에 어느 나라가 우리의 ‘운명’에 심각한 영향을 미칠 수 있을까?
그럼에도 2020년의 세계 정치를 전망하라고 한다면 필자는 많은 나라가 ‘각자도생(各自圖生)해야 하는 해’라고 말하고 싶다. 각자도생은 스스로가 알아서 살길을 챙긴다라는 의미의 사자성어(四字成語)다.
2019년 가을, 미국은 터키군이 시리아 영내에 진입하는 데 길을 터주는 듯한 행동을 했다. 그런 미국은 지난 수년 동안 미군과 함께 ISIS를 무찌르는 군사작전에 동참했던 쿠르드족을 배반했다는 비난을 받았다.
국제정치를 도덕과 정의의 영역으로 본다면 그런 비판은 타당할 수도 있다. 그러나 국제정치는 힘과 이익의 영역이지 도덕과 정의의 영역이 아니다. 미국의 행동은 의리를 배반한 것이 아니라 힘과 이익을 선택한 것이라고 해석해야 맞다. 쿠르드족이 미군을 도운 것 역시 의리 때문이 아니라 이익 때문임은 물론이다. 그들이 정말 의리 때문에 미국을 도왔다면 쿠르드족의 천진난만한 외교가 허무한 결과를 초래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학자들은 해가 바뀔 때마다 새해를 ‘격변의 한 해’가 될 것이라고 말하는 습관이 있다. 2020년은 습관적인 말이 아니라 진정으로 한반도가 오랫동안 당해보지 못했던 격변의 한 해가 될 것임이 분명하다. 정치・경제・군사적 측면에서 그렇다는 말이다. 걱정스러운 일은 국내 정치・경제의 영역에서 무지막지한 쓰나미를 정면에서 맞닥치고 있는 현재의 한국 정부가 과연 더욱 심각한 문제인 국제 정치의 쓰나미에도 잘 버텨낼 수 있을지이다.⊙
2020년은 21세기가 시작된 2000년 이후, 혹은 더 길게 본다면 1990년 미·소 냉전(冷戰)체제가 종료된 이후 2019년까지 진행된 국제정치의 기본적인 모습이 거의 완전하게 변하는 결정적인 해가 될 것으로 보인다.
1990년은 소련의 멸망으로 냉전체제가 와해된 해였다. 소련이 없어진 세상에서 미국은 유일 패권국(覇權國)이 되었고, 자국이 오랫동안 원하던 국제질서를 온 세상에 적용시킬 수 있게 되었다. 미국이 만든 국제질서는 ‘세계화(世界化)의 시대(age of globalization)’라고 불리던 것으로서, 미국이 숭앙하는 자유주의와 시장경제의 이념을 국제정치 차원에 적용시킨 것이었다.
세계가 급격히 경제적으로 통합되는 과정에서 소외된 세력인 이슬람이 미국을 향해 일으킨 9·11테러는 세계화의 진행을 잠깐 막는 듯했다. 그러나 세계화의 무드에 적극 올라탄 중국의 역할로 세계화의 도도한 흐름은 지속되었다. 그러는 동안 유일 패권국의 지위를 다져나간 미국은 온 세계를 자유와 평화의 세상으로 만들 수 있다는 믿음에 바탕을 둔 ‘자유주의적 국제주의(liberal internationalism)’에 근거한 외교정책을 실시했다. 클린턴(1993~2001년), 부시(2001~2009년), 오바마(2009~2017년) 대통령이 충실히 집행한 이 정책은 미국이 명쾌한 승리를 거두지 못한 채, ‘항상 전쟁을 치르고 있어야만 하는(permanent war)’ 나라가 되게 하였다. 미국 사회 일각에서 이에 대한 반감(反感)이 서서히 무르익고 있었고, 2016년 대선(大選)에서는 24년간 지속되어온 자유주의적 국제주의에 근거한 미국 외교정책에 노골적으로 반대하는 트럼프가 당선되었다.
세계주의의 퇴조
2017년 1월 취임 이후 트럼프가 전개하는 미국의 대외(對外)정책은 세계주의가 아니라 ‘일국주의(一國主義)’ ‘민족주의’ 혹은 ‘미국우선주의’라고 부를 수 있는 것으로 급격히 바뀌고 있었다. 패권국가인 미국의 정책 변화는 그동안 익숙해 있던 국제질서의 기본 양식을 뿌리째 건드리는 것이었다.
자유주의적 국제주의라는 국제적 간섭을 기본으로 가정하는 외교정책을 변화시키는 미국의 행동은 세계적 차원의 국제정치상 대변동을 불러일으킬 것이며, 미국의 깊은 개입을 외교·안보정책의 기초로 삼았던 세계 여러 나라의 행동 방식에 큰 충격을 가하게 될 것이다. 2020년은 지난 수년간 변질되어 오고 있던 세계주의(globalism)가 돌이키기 힘들 정도의 국가주의로 변화해버리는 전환점(turning point)이 될 것이다.
지난 여러 해 동안 나타난 국제정치의 큰 변화는 1990년대 초반 이후 세계 대부분의 국가에서 풍미되었던 ‘세계화 혹은 세계주의’ 개념이 거의 완전하게 쇠퇴(衰退)하고, 이를 대체할 개념으로 ‘민족주의 혹은 국가주의(nationalism)’가 점차 노골적으로 부각되었다.
세계주의는 2020년을 기점으로 기력을 다시 회복하기 어려울 것 같다. 국제정치의 변화 양상 중 가장 충격적인 것으로 인식된 사건은, 영국의 유럽연합(EU) 탈퇴 현상(브렉시트)과 트럼프 대통령의 당선이었다. 물론 트럼프만이 별종 인물은 아니다. 공화당 후보 17명 중 미국의 자유주의적 국제주의 외교정책을 지지하는 사람은, 오하이오주(州) 지사던 존 케이식 한 사람밖에 없었을 정도로 미국의 대외정책 관련 분위기는 바뀌어 있었다.
無정부 상태의 도래
브렉시트(Brexit)와 트럼프의 대통령 당선은 국제주의 혹은 세계주의의 종언(終焉)을 더욱 분명하게 했지만, 세계화 시대의 종언 현상은 그 이전에 이미 여러 곳에서 나타났다. 러시아 푸틴 대통령의 집권, 중국 시진핑(習近平) 주석 출현, 일본 아베(安倍) 정권 출범 역시 세계 주요 국가 지도부가 세계주의를 지향하는 세력이 아니라 국가와 민족을 강조하는 세력으로 교체됨을 의미했다. 세계 정치를 주도하는 강대국 다수의 수뇌부가 세계주의에 회의적(懷疑的)이며 좀 더 민족주의적인 인물들로 바뀐 것이다.
민족주의 혹은 국가주의 세력의 대두는 자유 진영의 대표 국가들인 미국·영국·일본은 물론 구(舊)사회주의 진영의 핵심 국가인 러시아와 중국 등 다양한 국가에서 일어난 일이라는 점에 유의해야 한다. ‘미국·일본·영국’ 대(對) ‘중국·러시아’라는 대결구도가 다시 형성되고 있는데, 양측 모두가 민족주의로 무장한 지도자들에 의해 통치되고 있다는 점이 심상치 않다. 이 대결구도는 2020년 더욱 치열해질 것이 분명하다. 2020년은 마치 냉전 시대를 방불케 하는 진영 간 대결이 벌어지는 두 번째 냉전 시대(The Second Cold War)의 첫해가 될 것이다.
지난 20~30년 동안 세계 정치를 지배해온 세계주의자들이 입에 달고 살던 국제 관계의 기본 용어는 ‘함께(together)’라는 말이었다. 반면에 국가주의자 혹은 민족주의자들이 사용하는 국제정치의 기본 용어는 ‘애국’ 혹은 ‘스스로’였다. 국제주의를 지향하는 국가들이 모여 사는 세계와 비교할 때, 애국주의 혹은 민족주의를 지향하는 국가들이 모여 사는 세계의 모습은 국제정치의 원형, 즉 무정부 상태(anarchy)에 더욱 가까운 것이 될 수밖에 없다. 애국주의적 국가들이 모여 있는 세계는 국가 간의 갈등·분쟁 혹은 전쟁 가능성이 교류·협력의 가능성보다 훨씬 더 높은 세계가 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中國夢 vs MAGA
2019년 10월 1일 건국기념일 행사에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中國夢’을 다시 강조했다. 사진=AP/뉴시스 |
미국은 2019년 11월 19일 상원에서는 만장일치로, 20일 하원에서는 417대 1로 홍콩 시민들의 민주화운동을 지지하는 법안 두 건을 통과시켰다. 이 법안은 일주일 후인 11월 27일 트럼프 대통령이 사인함으로써 법제화되었다. 미국이 홍콩의 자유시민혁명을 지지했다는 사실은, 미·중 관계가 단순한 패권 경쟁을 넘어서 문명과 체제의 싸움이라고 볼 수 있는 사건이다.
미국과 중국의 갈등은 누가 그 원인을 먼저 제공했느냐를 따지기보다는, 힘이 막강한 두 나라가 각각 협력과 교류를 강조하기보다는 자국 중심주의적 이익을 추구하기 시작했다는 데서 자연스럽게 발발한 일이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민족주의자인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2012년 18차 당 대회에서 총서기에 오르면서 처음으로 ‘중국몽(中國夢)’이라는 국가 목표를 제시했는데, 이는 중국이 미국을 앞질러 세계를 주도하는 국가가 되겠다는 말이었다.
‘중국몽’에 대항하는 미국의 구호는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만들자(Make America Great Again·MAGA)’로, 2016년 트럼프의 대선 선거전 구호이다. ‘중국몽’이 ‘MAGA’보다 먼저 쓰인 말이라는 점에서 본다면, 중국이 먼저 미국에 도전장을 내민 데 대해 미국이 대응한 것이라고 말할 수도 있겠다. 미국이 ‘MAGA’라는 애국적 구호를 본격적으로 사용하기 시작하자, 시진핑의 중국도 ‘중국몽’이라는 용어를 더욱 빈번히 사용했다. 시진핑은 집권 5년 차인 2017년 전당대회에서는 ‘중국몽’을 무려 32차례나 언급하며 2050년까지 세계 최강국으로 우뚝 서겠다는 목표를 반복해서 강조했다.
단순한 패권다툼이 아니라 價値싸움
그러나 미국이 2050년경 중국에 패권의 지위를 평화적으로 빼앗길 가능성은 만무하다. 미국 전략문화(strategic culture)의 본질을 모르는 사람들은 중국이 평화적으로 미국의 패권을 빼앗을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그렇지 않다.
미국은 전쟁에서 패배하지 않은 채 자국의 패권적 지위를 중국에 양보할 나라가 결코 아니다. 어떤 패권국도 전쟁에서 지지 않은 채로 자국의 패권적 지위를 도전국에 물려준 적이 없다는 것이 반복적으로 나타나는 역사의 교훈이다. 하물며 미국 같은 나라가, 중국이 경제력은 물론 군사력마저 미국에 도전할 수 있을 정도로 막강해질 때까지 앉은 채로 기다리지는 않을 것이다. 그 전에 미국은 군사력이 아닌 다른 수단으로 중국을 제압하면서 중국으로부터 패권을 차지할 것이다. 그것이 최근에 더 구체적으로 나타나기 시작한 미국의 대(對)중국 행동이다.
2018년부터 본격적으로 진행되기 시작한 미·중 무역전쟁을 두 나라가 돈 몇 푼 때문에 싸우는 것으로 이해하면 안 된다. 미국과 중국의 다툼은 21세기를 누가 지배할 것이냐를 두고 싸우는 싸움, 그 이상의 싸움으로 보아야 한다. 왜냐하면 미국과 중국의 싸움은 자유주의와 전체주의의 싸움이라는 속성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인간이 지향해야 할 가치가 ‘자유’여야만 한다고 믿는 미국이, 중국과 러시아 더 나아가 북한의 전체주의 체제를 파괴 내지 교체시키려는 현실을 예의 주시해야 할 것이다.
미국의 에스퍼 국방장관은 2019년 12월 8일, 미국은 군사적 초점을 중동(中東)에서 중국과 러시아로 이전(shift)하게 될 것임을 공식적으로 언급했다. 2020년의 미·중 관계, 미·러 관계가 본격적인 군사적 적대 관계로 빠져들 수 있음을 공개적으로 선언한 것이다.
미국은 이 같은 작전을 혼자 힘만으로 하지 않을 것이다. 미국은 이미 2018년 5월 31일 태평양사령부(Pacific Command)를 인도-태평양사령부(Indo-Pacific Command)로 확대 개편했다. 다른 대통령과 달리 취임 해인 2017년 국가전략보고서를 간행한 트럼프 행정부는, 중국과 러시아를 견제하기 위해 일본・인도・호주・대만 등과 군사적 협력 관계를 대폭 강화하겠다고 선언하였다. 미국은 특히 한국・일본・미국의 3자 안보협력 관계를 미국의 대전략을 수행하는 데 사활이 걸린 문제로 중요성을 지속적으로 강조해오고 있다.
日 육상자위대의 상륙작전 훈련
일본 자위대는 2017년 8월 괌에서 미국·프랑스·영국군과 함께 합동훈련을 했다. 사진=AP/뉴시스 |
국제정치의 미래를 정확히 예측하는 인물로 ‘21세기의 노스트라다무스’라는 별명까지 있는 조지 프리드먼 박사는, 2010년 간행된 《향후 100년》이라는 저서에서 2020년의 중국은 ‘종이호랑이’가 될 것이라고 해서 많은 사람을 놀라게 했다. 지난 수년간 중국의 모습은 프리드먼 박사 말이 맞는 것임을 증명해주고 있는 듯하다. 미국의 목표는 중국을 미국에 도전하기에는 역부족인 나라로 만드는 데 있는 것이지, 중국을 소멸시키는 것은 아니다. 과연 2020년은 중국이 더 이상 미국에 도전할 수 없는 처지의 나라로 전락하는 한 해가 될 까? 필자는 ‘그렇게 될 것’이라는 쪽에 기꺼이 한 표를 던지고 싶다.
미국은 중국을 약화시키는 동시에 일본을 강화시키고 있다. 미국은 이미 일본의 재무장을 사실상 허용했다. 미국군은 일본의 육상자위대 병력에 공격 훈련인 상륙작전 연습까지 꾸준히 시키고 있을 정도다. 그것도 하와이, 캘리포니아 등지에서 말이다.
한국이 미국과 갈등 관계에 놓여 있는 동안 일본은 미국의 적극적인 동맹국으로 급부상하고 있으며, 이와 더불어 자위대의 군사력도 일취월장 강화되고 있다. 일본의 무장을 그토록 반대하는 한국의 ‘진보’ 정권이 일본의 무력 강화에 오히려 적극 협조해준 꼴이 되어가고 있다. 2020년 하계 올림픽을 주최하게 될 일본은 이를 계기로 정말 ‘보통국가’가 될 수 있는 허가장을 미국으로부터 받아낼지도 모른다.
北核은 미국과 싸우지 않기 위한 것
2017년 8월 30일 ‘화성-12형’ 발사 훈련모습. 북한의 미사일은 미국과 싸우지 않고 적화통일을 하기 위한 수단이다. 사진=뉴시스 |
북한 핵에 대해 원천적으로 잘못된 생각에 근거한 정책은 애초부터 성공을 거둘 수 없었다. 북한이 핵을 만드는 이유는 미국과 싸움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그와는 정반대다. 북한은 미국과 싸우지 않기 위해 미국까지 날아가는 핵폭탄을 만드는 것이다.
김정일이 당시 김일성이 살아 있을 때 한 말이다.
“수령님 대에 조국을 통일하자면 미국 본토를 때릴 수 있는 능력을 가져야 한다. 그래야 마음 놓고 조국통일 대사변(大事變)을 주동적으로 맞이할 수 있다.”
이 말이 보여주는 바는 북한의 핵전략은 국제정치의 기본 원리에 정확히 기초하고 있다는 사실과, 북한의 지도 세력은 핵 전략의 원리를 제대로 이해하고 있다는 사실을 말해준다.
북한이 핵을 보유하려는 궁극적 목표는, 미국 본토를 핵 공격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춤으로써 한반도 문제에 대한 미국의 개입을 원천적으로 억제하겠다는 것이다. 미국은 북한의 핵이 미국 본토를 확실하게 공격할 수 있게 되는 날이 온다면 더 이상 마음 놓고 대한민국을 군사적으로 지원할 수 없게 될 것이다. 반면 미국이 한국을 도와주는 일을 주저할 수밖에 없게 되는 날, 북한은 한국과 ‘평화적’으로 통일할 수 있게 될 것이다. 미국의 도움을 받을 수 없는 한국이, 한국 전역은 물론 미국 본토까지 공격할 수 있는 핵무장한 북한과 싸울 수는 없을 것이다. 북한은 그런 날이 온다면 한국은 항복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하고 있다. 즉 북한 핵 전략의 궁극적 목표는 한국을 싸움도 하지 않은 채 굴복시키는 데 있는 것이다.
‘가짜 평화 시기’의 종언
이 같은 목적을 위해 북한은 이미 수십 년 동안 문자 그대로 ‘고난의 행군’을 지속해왔다. 밥을 굶어가며 만든 핵무기가 이제 얼마 있지 않으면 그 목적을 달성할 수 있는 수준에 이르게 되었다. 미국의 전문가들은 “방치할 경우, 북한의 핵미사일이 미국에 도달할 시간은 1년 남았다”는 말을 오랫동안 해왔다. ‘작년에도 똑같은 말을 하지 않았느냐’는 기자들의 질문에 미국 관리들은 “내년에도 그렇게 말했으면 좋겠다”고 대답하곤 했다.
북한 핵 문제에 대한 미국과 북한의 입장은 180도 전면 배치되는 것으로, 타협점을 찾을 수 없는 것이다. 북한은 무슨 일이 있어도 미국 본토를 공격할 수 있는 핵 능력을 보유해야 하며, 미국은 무슨 일이 있어도 그것을 막아야 한다. 북한 핵미사일이 미국에 도달하는 것을 허용하는 날, 미국은 21세기 미국의 사활이 걸린 동아시아에서 패퇴(敗退)되는 처지에 당면할 것이기 때문이다.
2020년은 미국과 북한의 밀고 당기기가 결론나야만 한다. 미국과 북한은 물론 북핵 관련 주변 국가들은 북한 핵을 제거하기 위한 모든 방법을 썼다. 그리고 미국과 북한은 2019년 12월, 북한 핵은 이제까지 사용하던 방법만으로는 해결될 수 없다는 사실을 시인하기 시작했다. 물론 북한 핵 문제는 결코 설득과 대화만으로 해결될 수 없다고 믿는 사람들이 적지 않았다. 이들은 북한 핵의 본질을 정확히 이해하고 있는 사람들이었으며, 결국 2019년 말 이들의 견해가 올바른 견해였음이 더욱 뚜렷하게 증명되었다.
트럼프 대통령도 결국 2019년 12월 3일 김정은에게 “군사력을 사용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북한은 미국과의 협상에 핵 문제는 포함되지 않는다는 사실상의 최후통첩을 보냈다. 그러고 나서 북한은 다시 대륙간탄도미사일 발사 카드를 만지작거리고 있다. 만약 북한이 대륙간탄도미사일을 시험 발사한다면 이는 트럼프가 그동안 업적이라고 말해온 것을 면전에서 부정하는 일이 될 것이며, 결국 북핵 문제를 원점으로 되돌리는 일이 될 것이다. 그러나 시간도 되돌아가는 것은 아니다. 미국도 북한도 이제는 북핵 문제에 대해 결론을 내려야 할 때가 되었다. 2020년은 시기적으로 그럴 수밖에 없는 해가 될 것이다.
美, 北에 양보할 수 없어
우선 2020년은 트럼프 대통령이 재선에 도전하는 선거전을 치러야 하는 해이다. 트럼프가 정말 북한 문제를 평화적으로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았겠지만, 본질적으로 더욱 우수하고 국민들의 칭찬을 받을 수 있는 ‘평화적인 해결’ 방안을 강구한 것은 사실이었다. 임기 첫해인 2017년 북한에 대해 ‘분노와 화염’을 뿜겠다던 트럼프 대통령은 2년 이상 김정은을 다독거리는 데 힘을 썼다. 그렇게 함으로써 수많은 보수주의자의 원성을 사기도 했다. 그러는 동안 트럼프는 일관성 있게 북한의 목을 조르고 있었다.
북한에도 미국에도 운명의 시간이 다가오고 있다. 2019년 말 북한의 행동은 ‘더 이상 미국의 경제제재를 인내할 수 없다’는 단말마적 상황을 표현한 것이다. 트럼프 역시 북한의 도발에 굴복할 수 없는 처지다. 결국 2020년은 북한 핵 문제가 모종의 결론을 내야 하는 해가 될 것이다.
오래 끌던 심각한 국제 문제의 결말은 대개 ‘힘의 관계’를 정확히 반영하는 모습으로 끝난다. 미국과 북한은 동급의 힘을 갖춘 나라가 아니다. 미국과는 상대가 안 될 정도로 허약한 김정은에게 북핵 문제가 유리하게 끝날 가능성은 없다. 미국은 중국 문제와 북한 문제를 같은 맥락의 문제로 보고 있기에 더욱이 김정은에게 양보할 수 없는 것이다.
各自圖生해야 하는 해
현 정권의 외교부 장관이 감비아 대통령을 만나 북핵 문제를 논의했다는 소식을 듣고, 우리나라 많은 국민이 실소(失笑)를 금치 못한 적이 있었다. 매년 새해가 되면 세계 정치의 전망을 논하곤 하는데, 우리나라의 운명에 ‘의미 있는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나라는 세계 200개가 넘는 나라 중 5개국도 안 될 것이다. 미국・중국・일본・러시아 외에 어느 나라가 우리의 ‘운명’에 심각한 영향을 미칠 수 있을까?
그럼에도 2020년의 세계 정치를 전망하라고 한다면 필자는 많은 나라가 ‘각자도생(各自圖生)해야 하는 해’라고 말하고 싶다. 각자도생은 스스로가 알아서 살길을 챙긴다라는 의미의 사자성어(四字成語)다.
2019년 가을, 미국은 터키군이 시리아 영내에 진입하는 데 길을 터주는 듯한 행동을 했다. 그런 미국은 지난 수년 동안 미군과 함께 ISIS를 무찌르는 군사작전에 동참했던 쿠르드족을 배반했다는 비난을 받았다.
국제정치를 도덕과 정의의 영역으로 본다면 그런 비판은 타당할 수도 있다. 그러나 국제정치는 힘과 이익의 영역이지 도덕과 정의의 영역이 아니다. 미국의 행동은 의리를 배반한 것이 아니라 힘과 이익을 선택한 것이라고 해석해야 맞다. 쿠르드족이 미군을 도운 것 역시 의리 때문이 아니라 이익 때문임은 물론이다. 그들이 정말 의리 때문에 미국을 도왔다면 쿠르드족의 천진난만한 외교가 허무한 결과를 초래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학자들은 해가 바뀔 때마다 새해를 ‘격변의 한 해’가 될 것이라고 말하는 습관이 있다. 2020년은 습관적인 말이 아니라 진정으로 한반도가 오랫동안 당해보지 못했던 격변의 한 해가 될 것임이 분명하다. 정치・경제・군사적 측면에서 그렇다는 말이다. 걱정스러운 일은 국내 정치・경제의 영역에서 무지막지한 쓰나미를 정면에서 맞닥치고 있는 현재의 한국 정부가 과연 더욱 심각한 문제인 국제 정치의 쓰나미에도 잘 버텨낼 수 있을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