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근래 한국방송에서 방영하는 근초고왕을 즐겨보고있습니다.
복식, 건물, 용어등 나름대로 고증을 통하여 방영을 하는것 같은데 그런면에서 퓨전사극하고는 달라서 매 회 방영될 때마다 기대감을 가지고 보고있습니다.
제가 글을 남긴이유는 다름이 아니라 고구려 고유 왕칭호에 대해 궁금해서 글을 남기게되었습니다.
근초고왕에서는 백제 왕을 어라하라고 부르더군요. 사극 방영전 백제왕을 신하들은 어라하, 건길지라고 불렀다는 것은 백제사 관련 책이나 검색사이트에서 쉽게 찾아보고 해서 알고는 있었습니다.
문제는 백제왕 칭호가 아니라 고구려도 나름대로 왕칭호를 가지고 있었다고 생각이 들고 어떻게 왕을 불렀는지 궁금하여 글을 남깁니다. 사극에서는 신하가 왕에게 예~ 태왕, 태왕의 명을 따르겠습니다. 폐하가 아닌 태왕이라고 칭호를 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신하가 왕을 태왕이라고 그냥 부른다... 제가 역사적 지식이 그렇게 깊지는 않습니다만.. 그리고 비유가 맞는 지 모르겠습니다만 중국에서 신하들이 황제를 부를 때 황제폐하라고 부르는 것이 아니라 그냥 황제라고 부르는 것과 같고 조선시대 때 주상전하라고 부르는 대신 주상이라고 부르는 것과 같다고 생각이 드네요.
유득공의 저서 발해고를 보면 왕을 칭할때 기하, 가독부라고 불렀다고 하는데
발해는 고구려를 계승한 나라라고 하지 않습니까?
혹시 고구려도 태왕을 칭할때 태왕기하라고 하지 않았을까요?
아니면 태왕폐하가 맞는것인지 ...자세한 답변을 듣고싶습니다.
첫댓글 고구려의 지배자는 "왕" 입니다. 고구려 문명권의 지배자가 태왕으로만 불리웠다는 증거는없는것입니다. 태왕이라는것이 결국 왕앞에 클 태(太)자를 하나 덧붙인것입니다. 조선시대왕의 시호에는 대왕이라고 되어있습니다. 그렇다고 조선의 지배자의 칭호가 대왕이라고할수는없지요. 광개토대왕비에는 1대 추모왕 2대 유류왕 3대 대주류왕 이렇게쓰고있습니다. 태왕이라는말은 없지요. 廿年庚戌東夫餘舊是鄒牟王屬民中叛不貢王躬率往討 광개토대왕비에도 태왕이라는말보다 그냥 광개토왕이라는 표현이 더많이 등장합니다.
고구려 초기에는 태왕이라는 개념이 없었기 때문에 왕이라고 칭했던 것입니다. 하지만 광개토왕릉비, 중원고구려비, 모두루묘지명 및 진흥왕순수비 등에 태왕이라는 호칭이 명백하게 등장하고 있습니다. 특히 고구려나 신라를 보면 太라는 글자가 특별한 의미를 갖기 때문에 한동안 혼용되었을지언정 태왕이라는 명칭은 분명히 있었다고 봐야 합니다. 그래서 진흥왕이 고려와 신라를 압도하자 스스로 태왕이라고 불렀던 것입니다. 이렇게 증거가 명백한데 태왕이라는 것이 없었다고 볼 수 없습니다.
광개토대왕비에는 광개토왕을 그냥 왕이라고 부른 것이 13번 이며 태왕이라고 부른 것은 3번, 광개토경평안호태왕이라고 부른 것이 4번이지요. 만약 고구려초기기록에서는 태왕이라는 호칭이 보이지않고 종국에는 태왕이라는 호칭만이 보인다면 모를까.. 한비석에 다양한호칭이 등장하고 그중 그냥 왕이라는 호칭이 압도적으로 많지요. 이것을 볼때 고구려의 지배자는 일반적으로 왕이라고 불렸고, 태왕이라는 것은 마치 조선의 역대 왕들이 대왕이라는 존호를 받았듯이 높임의 의미로 부른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모두루 묘지명은 또 어떻습니까? 국강상광개토지호태성왕(國崗上廣開土地 好太聖王) 이렇게 나왔있지요. 만약 태왕이라는 말자체가 고구려문명권의 지도자를뜻하는 고유명사였다면 왜 그사이에 성스러울 성"聖" 자를 넣었을까요? 차라리 성태왕이라 썼겠지요. 오히려 이 태왕이라는 단어역시 국강상광개토경평안호태왕에서 평안자를 생략하고 국강상광개토경호태왕이라썼듯 편의상나온 한가지의 호칭이나 조선시대왕앞에 대자가붙은이유과 같다고 보는것이 옳다고봅니다. 대통령이나 대통령각하나 대통령님이나 대한민국 국가원수나.. 같은말이지요.
분명 처음부터 있던 개념이 아니기 때문에 혼용되는 시기가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태성왕'을 말씀하셨지만 비슷한 그 시기에 '성태왕' '성왕' 등도 있습니다. 우리는 용례를 알 수 없으니 '성'이라는 글자가 어디에 위치하느냐를 논할 수 없습니다. 중요한 것은 적어도 광개토태왕 때부터는 기존의 '왕'보다도 더 높은 호칭이 필요했던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 금석문이나 유물 등에서 그와 같은 용어가 혼용되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후에는 어떻습니까. 발견되는 유물들에서는 모두 태왕을 사용하고 심지어 신라마저 태왕을 칭합니다. 이것은 '황제''가한''선우' 등과 같은 용어로 굳어졌다는 것입니다.
성태왕 성왕등도있으니 더더욱 태왕을 고유명사로 볼수없는것입니다. 만약 태왕이라는 호칭이 사용화되었고 그것이 왕보다 높은의미를 지녔다면 절대로 '왕'이라는 호칭은 더쓸수없습니다. 국가의왕을 지칭하는말입니다. 백성들사이의 대화에서 상용화가되기전까지 혼용되었다는것은 이해할수있는일이나 왕의업적을 기려세운비석에서 왕보다 높은뜻을 지닌 태왕이라는 고유명사가 버젓이 존재하는데 왕이라는호칭을 사용한것은 목이 달아날일입니다. 태왕이 왕보다 상위에 있는 어떠한 계서를 뜻하는 말이라면, 그것을 함부로 줄여서 "왕" 이라고 쓸 수는 없지요. 이는 후대사람들이 부족한근거로 자의적으로 판단할일이 아닙니다.
고구려는 독자적인 문명권을 이룩한 국가였고 황제는 중화문명권의 지배자를 얼컫는말이었습니다. 고구려인에게 가장높은사람은 고구려왕이지 중국황제가 아닙니다. 중국의 개념을 끌어와서 왕보다 더높은무엇... 이런식으로 생각할 필요는전혀없는것입니다. 삼국사기까지 논하자면 조금 길어지겠지만 저개인적으로는 광개토왕이라는표현이 가장정확하다 생각하고 어느정도 근거가있는 광개토태왕이던 후세사람들이 알렉산더대왕처럼 존경하는 의미로 대라는 글자를붙여 광개토대왕이라하던 상관은없다고 봅니다.
건성님. 광개토태왕비에 왕이 몇번 나오고 태왕이 몇번 나온다고 지적하신 부분은 좀 납득하기가 어렵군요. 중국 사료에서 황상이라고 표현하기 보다 上으로 표기하는 예는 압도적으로 많은데 그럼 황상, 황제는 존칭표현이고 상이 정식 용어라서 그렇다는 얘기가 되어버리지 않겠습니까? 무례한 말씀을지도 모르겠습니다만 제 느낌에는 주장이 결론적으로 설득력이 있느냐 없느냐를 떠나 이 건에 한해서는 반론의 방식이 조금 문제가 있는 것 같습니다.
무례한것은없습니다. 제 논지는 고구려문명권의 지도자가 왕보다 높은뜻을지닌 고유명사인 태왕으로만 불리웠다는 증거는없다는것입니다. 한비석에서 그냥 왕이라는 호칭을 훨씬더빈번하게 사용하고있는데 어찌 고구려왕의 호칭이 태왕이었다 단언할수있을까요? 실례되는 말이겠으나 제느낌에는 뭐랄까.. 중국의 황제라는 호칭과 비교하여 단순히 왕이라는호칭은 한끗발낮아보이고.. 그래서 조금더 높고 그럴듯해 보이는 태왕이라는호칭을 어떻게든 끌어쓰자는것은 아닌지.. 생각될정도입니다.
황상에 관한 예시는 핀트가 약간 어긋난것같습니다. 돌부처님의 논지대로라면 고구려에서는 초기에는 왕이라했고 태왕이라는 왕보다 높은뜻을지닌 호칭이 새로이 등장하면서 그렇게 부르게되었다.. 라는것인데 만약 '태왕이라는것이 왕보다 상위에있는 어떠한 계서를 뜻하는 고유명사라면' 명확히 그보다 낮은의미인 왕이라는표현을 태왕의 업적을 기리는 비석에 14번이나 '왕' 이라는 호칭을 사용한것은 상당히 모순되는일이아니겠느냐... 는 뜻에서 드린말이었습니다.
건성님 주장에는 두 가지가 잘못되었다고 생각됩니다. 첫째는 광개토태왕 시기에 만들어진 금석문만을 언급하고 있다는 점이고, 둘째는 조선과 비교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광개토태왕 시기에 혼용되었다는 것은 국가적으로 왕 보다 상위의 존재가 필요하다는 인식은 하였으되 아직 국가적으로 정식적인 명칭이 정해지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후기에 발견되는 유물이나 금석문에서는 혼용되는 예가 거의 없으며 신라조차 명확히 태왕이라는 호칭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조선과 비교를 하시는데, 조선은 국가적 틀이나 제도가 황제보다 아래인 왕에 맞추어진 국가입니다. 그러니 대왕이 미사여구에 불과한 것입니다.
그러나 고구려나 백제 신라는 국가의 크기나 제도가 황제나 가한 등에 비견될 존재가 가능하기 때문에 그에 맞는 호칭이 필요한 것입니다. 여러 왕이 있는데 그 상위의 존재도 같이 왕이라고 부를 수 없지 않겠습니까. 상식적으로도 장성 이남의 황제와 북방의 가한이라는 독자적 명칭이 있는데 동아시아에서만 왕을 고수하겠습니까. 태왕이라 부르는 것은 후대인의 자의적 해석이 아니라 당시 사람들이 남긴 자취를 통해 그것을 존중하는 것이라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할 것입니다.
고구려인들이 조선과는달리 주변국과 사대자소관계를 형성하고 다른 국가에 비해 우위에 있다고 생각하였음은 사실일 것이나, 일단 자기들 스스로도 왕을 항상 "태왕" 이라고 부른 것도 아니니 "태왕은 황제라는 뜻이며, 왕보다 높은 것" 이라고 어찌 함부로 주장할 수 있겠습니까? "태왕(太王)" 이라는 것은 존호이지 그 자체가 분리될 수 없는 새로운 의미의 칭호는 아니라는것입니다. 삼국사기 고구려본기에도 그냥 광개토왕이라고 나오지요. 결국 태왕이라는것은 '평가'를 전제로한 기다란호칭의 준말로서 보아야한다고봅니다. 중국측사서에서는 '고구려 국왕 안(安)'이라 부른 사례가더많지요.
금석문은 삼국사기 편찬 이후에 발견되었는데 삼국사기의 그것이 의미가 있을까요? 또한 고구려가 백잔이라 불렀다 하여 실제로 백잔이 아닌데 중국측 표현이 의미가 있을까요? 단순히 기다란 호칭의 준말로 보기에는 여러 왕에 해당하는 시기에 해당하는 금석문이 발견되지 않습니까.
단지 주변국에 대한 우위 뿐만 아니라 제도 자체도 그렇습니다. 이미 왕을 신하로 두고 있는데 자신도 왕에 그칠리가 있겠습니까. 태왕을 특별한 존재로 보는 것이 주류적인 태도이며 타당한 견해가 아닌가 싶습니다.
물론입니다. 태왕을 특별한 존재로보는것이 잘못되었다는것이 아닙니다. 일면타당한 견해이지요. 허나 삼국사기를 작성할당시 김부식은 우리보다는 조금더 많은사료를 볼수있었을것이라 생각됩니다. 김부식은 사료와 증거가 부족하여 왕이라했을까요? 허나 중요한것은 우리기록에는 고구려 문명권의 지도자를 왕이라부른 사례도있고 긴~별호로 부른사례도있고 태왕이라부른사례도있고 호태왕이라부른사례도있고 성왕이라고부른사례도있습니다. 왕을 언제나 태왕으로만 불렀다는것이 증명되지않는이상 후세사람들이 규정할문제가 아니라는것입니다.
금석문이 삼국사기편찬이후에 발견되었다는사실이 사사하는바가 그리크지는않다고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상식적으로 신라시대에는 지금보다는 고구려에 관련한 사료가 많았을것이기때문이지요. 고구려중기의 왕들은 태왕이라고 불리웠겠지요. 사료에 태왕이라고 나오니까요.
건성님 주장에서 잘못된 점은 건성님은 상대방이 근거로 제시한 것에 충분한 답변을 달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돌부처님은 분명 금석문과 신라의 예를 들면서 태왕이 일반적으로 사용되었음을 주장하셨는데 건성님은 돌부처님의 근거에는 답을 하지 않고 계속 태왕은 일반적인 호칭이 아니었다고 하십니다. 삼국사기가 편찬될 당시에는 고구려가 남긴 사료는 한 줄도 존재하지 않았다고 감히 이야기할 수 있습니다. 고구려가 쓴 사료가 있다거나 김부식이 볼 수 있었던 사료들에 고구려에 대한 충분한 정보가 담겨 있었다면 삼국사기가 그리 빈약했을까요?
그리고 고구려에서는 太자가 大자보다 가지는 의미가 달랐습니다. 단순히 미칭으로 하려고 했으면 大로도 충분했겠지요. 이외에도 태왕에 대해서 김용만 선생님이 글을 쓰신 것이 있는데 고구려 게시판의 5269, 5235, 4185, 3316 번 글을 참조하시기 바랍니다.
글쎄요. 저는 단한번도 무엇인가를 증명하려는 노력을 하지는않았습니다. 고구려 문명권의 지배자가 태왕이라고만 불리웠다고 볼수는 없다는 이야기를 계속했다고 생각합니다. 돌부처님이 들어주신 예시가 틀렸다는것이 아니라 그런가하면 왕이라불린 사례도있고 수많은 다른 칭호들이 사용됬음이 확인되었는데 어찌 후세사람의 입장에서 함부로 고구려 지배자의 칭호는 오직태왕이다.. 태왕이라 불러야한다.. 라고 주장할수있다는말인가? 라는것이지요. 저는 고구려의 지배자가 태왕이라 불리지않았다는 이야기를 한적도없고 태왕이라는 호칭을 사용함이 잘못이라는이야기를 한적도없습니다.
이런데 제가 굳이 돌부처님이 들어주신 예시에 어떤 답변을 달아야한다는말씀이신가요? 신라의왕도 태왕이라 불리웠고 금석문상에 수차례 태왕이라는 호칭이 나옵니다. 돌부처님의 말씀처럼요. 저는 이것을 부인한적이없는데 제가 무슨답을드렸어야했다는것인지 알지못하겠습니다. 고구려의 지배자는 태왕이라고불리지않았다 와 고구려의 지배자는 태왕이라고만 불리지않았다.. 라는 두문장은 분명히다르겠지요. 뭐랄까 좀더 근본적인 관점에서 고구려의 지배자가 태왕이라고만 불리웠다.. 이는 철저히 고유명사다 라고 하려면 그렇다는쪽에서 증명을 해야합니까 그렇게만 볼수는없다는쪽에서 증명을 해야합니까?
동시대에 새겨진 비석에서 고구려의 지배자를 부르는 여러가지 호칭이 자유롭게 등장합니다. 고구려사람들도 자신들의 지배자를 태왕이라고만 부르지는않았다는것입니다. 돌부처님의 말씀도 틀린것이 없지요. 들어주신 근거들을 보자면 분명 고구려중기이후의 지배자들은 태왕이라고 불리웠으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