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이 총무 왜 나한테는 사전 연락도없이 장소를 니 맘대로 바꿨어?
그런일이 좀 있어 조금있으면 알게 돼 하며 이놈이 입가에 은근한 미소를 띄운다.
이날(12월 중순)은 대구 달서구 거주자 동갑들 6명이 분기별로 한번씩 만나 식사 한끼 하면서 그간의 화제들을 나누는 犬公 겟날로 이번엔 본인 주관이였으며,당초엔 돼지고기 수육 잘 하기로 소문난 우리 아파트 앞 놀부보쌈 집이였는데 갑자기 카카오톡으로 정이품 횟집으로 변경 연락이 온 것이었다.
18시가 임박해 헐레 벌떡 들어온 심가놈이 어이 고경 갑자기 총무에게만 연락해 장소를 바꾼것 미안하게 됐어.오늘 식사는 내가 낼께 넌 내년 1/4분기에 하면 안될까?
그야 괜찮아,그런데 자네가 오늘 꼭 해야 할 무슨 이유라도 있는거야?
그리고 오늘 니가 사면 다음 너 차례를 앞당겨 한단 말이가?
넌 2/4분기에 했잖아.
아니야 내 차례가 되면 내가하고 이번은 년말이고 또 나에게 특별한 날이야.
내가 추가로 별도로 하는거야.즉 오늘 내가 한턱 내는거야.
그리고 회도 돌돔으로 사전 예약 해 뒀으니 한껏 먹어.그리고 2차는 주차장 앞 빵빵 가요주점에 젤 큰방으로 8시까지 간다고 예약 해 뒀어 한다.
주인 왈 돌돔이 좀 귀한데 특별히 구해서 준비 해 뒀단다.
한 사라에 12만원짜리 2사라가 들어 오데요.
술은 23년산 포도주였다.
내용인즉 오늘 처음으로 하는 말인데 한달여 전 엄마가 갑자기 배가 아프다면서 영대 병원 응급실로 실려가 중 환자실에서 4일한 입원한 일이 있었어.
그때 우리 마눌은 모르긴 해도 엄마가 죽기를(돌아 가시기를)바랐는지도 몰라.
너거들 다 아는 사실이지만 엄마가 마눌을 얼마나 미워했고 무슨 일이든 터집을 잡고 이웃이나 친지들께 며느리 험담을 재미로 살어신 분이잖아.
아직까지도 내 나이 떡국 한그릇만 먹어면 70인데 경제권도,집안 살림도,통장도,모두 엄마가 갖이고 있잖아?
4일간 병원에 입원 해 계시면서도 집 사람이 간병 하겠다는걸 꼴도 보기 싫다면서 매일 9만원씩 주는 간병인을 썻어.
어제 오늘 일도 아니고 그저 뜻없이 친구들과 저녁 먹은후 병원에 들렸더니 엄마가 예고도 없이 오후 4시경 퇴원 하고 연락도 없이 사라진거야.
마눌께 연락하니 모른다하며,이제 나이가 낼 모래 100살인데 어디가서 죽었겠지 지발 좀 죽기나 해 하며 전화를 탁 끊더라고,
어떻게 찾아 볼 방법이 없었어. 유별나게도 눈에 넣어도 안 아프게 끔직히 생각하는 여동생(부산 거주)께 전화 해 보니 오늘 오후에 퇴원한다고 전화 왔었어 그리고 나한테 온다하던데 아직 안 오셨어.그때가 아마 밤 9시경이였을거야.
통화중에 폰에 연락이 와 받으니 엄마였다.
엄마다.
나 지금 범어 로타리 그랜드 호텔에 있는데 너 혼자 좀 와 줄레?
황급히 달려갔다.
문을 들어서니 경산에 사는 둘째 여동생과 같이 계셨다.
엄마가 욱아 미안하다.날 용서해다오하면서 엉엉 울면서 여동생도 같이 울었다.
한참을 울다가 욱아 저길 봐라.
거기 옷걸이엔 여자용 아주 고급 투닝과 고급 오바가 걸려있었다.
니 애비가 대구에서도 내 놓으라 할 정도로 갑부였고 뭐 하나 부러울게 없던 때 였는데 내가 무슨 망쪼가 들어서인지 며느리가 시집 올때 저걸 안 해 와서 밉게 보였던거야.
그래서 오늘 내 돈으로 한벌 해 입고,이렇게 연락도 없이 퇴원하여 며느리를 그렇게 미워한 이 죄를 어떻게 사과해야 며느리가 날 받아줄지? 그래서 순이(둘째 여동생)만 불러 의논 중이였어.니가 오늘 집에가서 며느리한테 잘 구슬려 며느리가 승락하면 낼 11시경 너하고 같이 나 대리러 오느라.며느리가 여태 당한 수모를 못 풀겠다면 안 와도 된다.
나 혼자 조그만 아파트 한개 사서 참회하면서 혼자 살께 하셨단다.
중환자실에서 옆 침대에 누워있는 할머니가 참회의 눈물을 흘리면서 내 이 죄를 어찌할꼬로 시작된 이바구를 듣고 나도 뭔가 모르게 찡하는 죄스러움을 깨닫게 됐더랍니다.
그 할머니도 5년전에 남편과 사별하면서 임종전에 자기의 손을 꼬옥 쥐면서 임자 며느리를 미워하지마,요새 그런 며느리 구하긴 하늘에 별따기야.그 많은 시동생(3명) 시누이 (4명)다 대학 보내고 지 새끼들 4명 수발하는거 쉬운일이 아니야. 우리가 돈이 없어?뭐가 모자라, 그렇게 오손 도손 의 좋게 잘 사는 그렇게 알뜰이 사는 며느리 뭐가 그렇게 미워.그날 임자가 점심먹고 식중독에 걸린게 왜 며느리 죄야. 다른식구들은 다 괜찮았는데 임자만 설사를 했잖아? 왜 뭤땜에 며느리가 임자 죽일려고 한 짓으로 생각 해,시집 올때 좀 적게 해 온것 그것이 그렇게 서운 했어? 내가 몇배로 더 해 줬잖아.
며느리는 남편의 방직공장 상무 딸이였답니다.
집은 김천이였고 상무는 업무에는 남 달리 충실했지만 가정이 그리 부유하지를 못 했다네요.어느날 점심시간 친구들과 점심을 먹어면서 너무도 맛이 좋아 아빠와 같이 먹은다며 사서 싸 들고 회사 상무실로 들어온 여학생(영대 재학생)이 아빠와 대화하는걸 목격한 순간 아 요새 저런 처녀가 있었나? 점찍은 후 대학 졸업 2년만에 며느리로 삼게 됐다는군요.
문제는 시동생들 양복 한벌씩 못 해온 며느리가 그리도 밉드래요.
남편이 저 세상으로 가신 그 이듬해 저녁에 화장실에서 샤워를 하고 있는데 며느리가 시 어머니가 샤워하는것을 모르고 보일러 급탕을 생각없이 꺼 버렸다나요.그날 이후 시어머니의 학대가 극에 달했고 자기를 죽일려는 작태라며 머리채를 잡고 뒤 흔더는등 내가 지금 생각하면 내가 왜 그랬을까하며,참회의 눈물이 중환자실 옆,옆 침대 대여섰명도 소리없는 눈물을 흘리면서 누워 있드래요.며느리가 식음을 전폐하고 이틀동안 누워 있더니 밤에 수면제를 먹고 남편 옆자리에서 자결 했답니다.내가 저승에가서 며느리를 어찌 대할꼬,난 곧 죽는데, 난 반드시 지옥으로 떨어지겠죠?그 노인은 당년 83세로서 취장암 말기라더랍니다.
같이 안 가겠다는 마눌을 이틀동안 무릅끓고 구슬리고 사정하여 같이 호텔로 갔다.
호텔문을 들어서니 부산 여동생,경산 여동생,남동생 3명이 어제밤부터 와서 같이 기다리고 있었다며 엄마가 마눌앞에 무릅꿇고 빌더래요.
어머님 왜 그러세요 이러지 마세요. 그저께 못 온것은 어젯밤 시 조부님 기일였잖아요.아 참 그렇네 야아야 며늘아 미안하다 그럼 날 용서 해 주는거니? 그럼 어머님이 누구세요. 제가 사랑하고 없어면 안되는 남편이며,애들아빠인 남편의 어머님이신데 용서 하고 안 하고가 어디 있습니까?솔직히 말씀드리면 어머님이 절 왜 미워하셨는지 압니다.오늘 처음 말씀 드립니다만.사실 말씀드릴 기회가 없었고,남편이 하지 말래서 못 했어요,
결혼때 친정 어머님께선 요새 시어머니는 한복도 한복이지만 철따라 이불,양복,한복 한벌씩 하는것이 전통이라면서 해야 한다는것을 이양반이 우리집에 돈 많아 그런거 안 해도 된다면서 그돈 자기달라 해서 주게 된것이였습니다.
아버지 모르게 쓸데가 있다면서 말입니다.
그것이 오늘날까지 내가 어머님께 수모를 당한것 남편께 지금부터 저가 갚을 것입니다.
물꼬가 터지기 시작하더니 기회는 이때뿐이라고 생각 했던지 반 시간여 시머머니께 모두 술술 말을 해 버리데요.
오늘 이 시점을 계기로 어머님에 대한 감정을 모두 다 잊겠습니다.
그리고 친부모님 이상으로 잘 모실께요.하더래요.
큰애야 오늘 수요일이지.너거 점심먹고 모두 집으로 가거라.
내가 며느리하고 오붓이 갈때가 있다.
마눌은 어머님이 가자는 대구은행에 가시더니 은행장 접견실을 좀 빌리더니 통장 4개를 다 주더래요.
너거도 나이가 이제 70인데 이거 나도 이제 귀찮다.
나도 돈이 조금있어야 너한테 용돈 달란 말 안하고 마음대로 슬것 아니냐면서 5천만원 있는 보통 예금 통장만 엄마가 챙기고 정기예금,적금,통장 4개를 며느리와 아들 연명으로 명의 이전 하더랍니다.
은행장과 의논해 상속세 안 무는 방법도 의논해 처리했답니다.
이 일로 인하여 나와 마눌은 50여억원 돈도 이제 갖였고 하여 오늘 한턱 낸다.
그리고 앞으로도 술 자주 살께.
미닫이 저편에서도 시끌 버끌 하더니 언제 부터인가 이 심가놈의 말을 귀 기울여 듣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우리 견공 6명중 유일하게 지 애비득인지,돈 득인지는 알수없는 심가놈 혼자만 서기관으로 사령장받아 석달 후 퇴직했다.나머니 우리 5놈은 사무관 출신으로 심 서기관놈 밥은 여러번 얻어 먹었음다.
엄마는 아 내가 이렇게 며느리를 미워하다가 어느날 아무도 알지 못하는 그런일,객사도 할 수 있겠구나의 위기감이 오더래요(아들께 나중에 한 말씀)
다사다난 했던 甲午년,국가적으로는 두번다시 생각키 싫은 대 참사들,정치인들의 무 분별한 당리당략,괴뢰 김정은의 몰 지각한 만행,이런 모두를 훌훌 날려 보내고 대망의 乙未年을 맞이하면서 보다 낳은 生,보람되고 한번 더 살고픈 세상을 기대하면서,
그리고 나의 送年思를 이렇게 써 봅니다.
우리님들 희망찬 을미년에는 더 더욱 건강하시고 名石 取石의 원년이 되시길 바라마지 않습니다.
두서없는 졸필 끝까지 읽어주셔서 고맙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