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 월드컵 축구대회는 “여성들은 축구를 싫어한다”라는 편견을 단박에 날려버렸다. 서울 광화문이나 시청 등 거리응원이 벌어졌던 어디든 태극기를 들고 붉은 셔츠를 걸치고 화려한 얼굴그림을
한 채 목청 터지게 응원하는 여성들을 쉽게 만날 수 있었다. 붉은 악마가 1995년 축구 동호회로 시작했을 때만 해도 여성회원은 10여명에 불과했으나 이제 총회원 23만 중 여성회원이 40%를 훌쩍 넘어섰다. 시청률 조사기관 티엔에스 미디어코리아는 원래 축구 경기의 주요 시청자층이 30대 남성이었으나 월드컵 대회 기간에 남녀가 비슷한 시청률을 보였다고 밝혔다.
거리응원에 열성적으로 참여한 여성들은 거리응원이 평소 금기시한 공개적인 장소에서 자기 표현을 허용하는 등 억압에 대한 스트레스를 풀 수 있는 공간을 제공했기 때문이라고 입을 모은다.
한국팀이 경기를 할 때마다 호프집에서 직장 동료들과 응원을 한 고미정(30·교사)씨는 “지금까지
여자들이 밤 늦게까지 단체로 소리지르며 놀면 이상하게 쳐다보지 않았냐”며 “처음으로 공개적인 장소에서 울고 웃으면서 억압된 감정을 풀 수 있었다”고 말했다.
수능을 앞두고도 네 차례나 광화문을 찾은 이현아(19)양은 “우리 팀이 이기는 것보다 도로 행진이나 얼굴 페인팅을 통해 개성을 표현할 수 있는 자유가 좋았다”며 “앞으로도 자유롭게 자기 표현을
할 수 있는 마당이 마련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주부 강옥자(55)씨는 “남녀노소 구분 없이 열광적으로 어울리는 분위기에서 차별없는 동등한 시민으로서 강한 소속감을 느꼈다”고 말하기도 했다.
외신들은 이번 한국 월드컵 대회가 전례없는 대규모 거리응원에도 불구하고 무사히 끝난 것은 여성과 가족단위의 참여가 많았기 때문이라고 분석하기도 했다.
연세대 김현미 교수(사회학)는 이번 대회의 여성 참여를 달라진 응원문화에서 찾았다. 그는 “지금까지 축구 관전문화에서 여성은 기껏해야 치어리더로 활약해 남성의 눈요깃감에 불과했으나 붉은
악마가 보여준 응원은 성·나이·지역을 해체한 평등한 문화였다. 앞으로 양성 평등 문화를 만드는
동력이 될 것이다”라고 분석했다. 한편, 남성 중심의 스포츠와 만족주의가 결함된 월드컵 문화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도 있다. 대전대 권혁범 교수(정치학)는 “여성들의 열기가 여성 스포츠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지지 않고 '대한의 자랑스런 남아'라는 구호 아래 국가주의와 남성주의 노선이 합리화되는 도구로 이용되면서 여성을 비롯한 사회적 약자를 배제시킬 수 있다고 지적했다.
김아리 기자ar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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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경/뉴욕 유니온 신학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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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롭고 평등한 세상 앞당겼으면” /현경
6월 한달을 붉은 악마들 속에 끼어 ‘열애’하는 여자처럼 보냈다. 축구를 통해 ‘천지개벽’이 일어나는 것 같았다. 나는 시간과 공간이 정지된 존재의 느낌 속에서 붉은 파도를 타고 신들린 여자처럼 춤추고 노래했다. ‘작은 고추는 맵지 않다. 오직 작을 뿐이다’라는 결론을 내고 독재와 분단주의, 가부장적 폭력으로 가득찬 이 땅을 떠났던 내 젊은 시절이 있었다. ‘야수의 뱃속’이라는 뉴욕에서 외국인 지식생산 노동자로 살아가면서 막연히 고향이 그리울 때면 버지니아 울프의 말로 스스로를 위로했었다.
“여자인 내게 조국이란 없다. 여자인 내겐 전세계가 내 조국이다.”여자의 삶을 억압하는 남자들의
획일적인 민족주의, 국가주의, 권위주의 담론의 핵심인 ‘조국’이 여자의 억울함, 분노와 슬픔의
상징으로 보였었다. 고추제국주의가 판치는 ‘그들만의 대한민국’이 뭐 그리 그리울 것인가?
그런 내게 이변이 일어났다. 나는 붉은 티셔츠를 입고 시청앞 광장에서 “대~한민국“을 목이 터져라 응원하고 있었다. 이 신들린 응원은 내게 ‘해원’의 제례였다.
내겐 치유되어야만 하는 상처가 있었다. 내 젊음의 고통속엔 공산주의 서적을 읽었다는 이유만으로
고문당하고 죽음까지 당한 친구와 선배가 있었다. 시청 앞에 모여 독재정권에 정항하다 죽어간 젊은
넋의 한 때문에 통곡하던 시절이 있었다. 트럭을 탄 젊은이들이 태극기를 흔들며 광주 금남로를 달리다 정부군에게 살육당한 아픔이 있었다. 나는 ‘빨갱이가 되라’는 티셔츠를 그들의 억울함에 기억하며 입었고, 한으로 얼룩진 시청 앞을 생명의 장으로 바꾸기 위해 나왔고, 태극기를 흔들며 트럭을 타고 달리는 젊은이들과 광주의 젊은이들을 기억하며 합세했다. 그들만의 대한민국이 우리들 모두의 ‘대~한민국’이 되기를 염원하면서 ‘미친년 널 뛰듯이’응원했다.
언제 여자인 내가 내 조국에서 ‘미친년 널 뛰듯이’신나게 놀아보았는가? 그것도 시청 앞 광장에서 경찰의 보호까지 받아가면서. 나는 상업주의, 자본주의에 물든 또 정치적으로 올바르지 않은 월드컵이라 할 지라도 이 행상에 감사한다. 왜냐면 월드컵 경기를 통해 여자들의 열정, 욕망의 공적 표출의 장이 마련됐기 때문이다. 많은 여자들이 축구를 보며, 또 경기가 끝난 후 어떤 선수를 왜 좋아하는지에 대해 끊임없이 토론했다. 정치·경제·사회 또 개인적인 삶 속에서 ‘아름다운 남자’‘믿을만한 남자’를 찾기 어려운 이 때, 자기 모든 존재를 바쳐 땀을 흘리며 싸우는 우리 선수들을 보면서 우리들의 좌절된 욕망을 채우고 있었다. 이렇게 우리들은 ‘집단 연애’에 빠질 수 밖에 없었다.
이 열애에 빠진 여자들과 함께 즐거워하면서 난는 유시엘에이에서 고고학을 가르치던 교수, 마리아
김바투스를 떠올렸다. 그는 신이 여성이었던 가부장적 문명 이전 고대사회에서 평등, 평화, 예술이
꽃을 피웠고 인간의 공격성이 스포츠를 통해 승화됐다고 한다. 이러한 모성적 문명의 회구에 대해
동서양의 현자들은 지배와 종속에 근거한 ‘양’의 문명이 막을 내리고 보살핌과 나눔에 근거한 ‘음’의 문명이 도래할 거라고 예언했다. 나는 월드컵을 경험하며 이 모성적 문명의 회구를 예감했다. 또 이 모성적 문명의 조속한 도래를 위해 이제 여성 축구팀도 육성해야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남성들의 집단게임에서 배제되어온 여성의 공격성도 스포츠로 승화시킬 때 더 평화롭고 평등한 세상이 올 것이다. 나는 여성들이 주체가 된 대안적 월드컵을 제안하다. 경기의 수익을 평화만들기와 폭력에 희생당한 모든 사람들의 상처를 치유하는 데 쓰는 그런 월드컵. 그 땐 남북한 여성이 한국팀으로 뛰고 우리는 더 큰 ‘대~한민국’을 외칠 것이다.
글을 끝내기 전 사랑 고백을 하나하자. 한국 남성들에게 하고 싶은 말 ‘작은 것이 아름답다!’서해안 교전으로 우리는 다시 현실로 돌아왔다. 그러나 온 존재를 다 바친 열애를 한 사람들은 그 사랑 때문에 이 부서진 세상을 다시 껴안을 수 있다.
/여성도 당당한 주체로
현경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