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울 추위가 한풀 꺾였던 지난 1월 15일 오후 경기도 양수리에 위치한 서울종합촬영소를 찾았다. <약속>의 김유진 감독이 4년 만에 연출하는 <와일드 카드>(제작:씨앤필름|유진E&C)의 촬영 현장 공개가 있었던 것. 두 명의 형사 오영달(정진영 분)과 방제수(양동근 분)를 두 축으로 하는 <와일드 카드>는 형사가 주인공으로 등장했던 기존의 다른 영화들과는 달리, 전적으로 형사의 시점으로 이야기가 진행되는 형사 액션물이다. 어떤 사건이 일어날지 형사들이 예측할 수 없는 것처럼, 영화를 보는 관객들에게도 사건에 대한 복선 조차 주어지지 않는다. <와일드 카드>는 관객과 형사가 한 마음이 되어 사건을 풀어가는 스타일의 영화이다.
깜깜한 세트를 헤매다 촬영이 진행 중인 현장으로 도착한 순간, 잠시 움찔하는 기분이 든다. 세트 안은 영락없는 경찰서, 그것도 무시무시한 범인들이 설치는 강력계로, 덩치 좋은 형사와 범인들로 가득하다. 평소 경찰서와는 담을 쌓고 지내는 바른 생활 기자인지라, 난생 처음 보는 모습에 강한 호기심이 생겨난다.
“열중쉬어, 차렷, 뒤 돌아. 눈 감아. 눈 뜨면 죽인다!”
10년 경력의 베테랑 형사 오영달(정진영 분)의 날카로운 목소리가 쩌렁쩌렁 울린다. 이들 너머 유치장 안에는 험상궂게 생긴 마스크의 일명 ‘퍽치기 일당’(‘퍽치기’는 사람을 마구잡이로 때려 기절시킨 후, 금품을 갈취하는 범죄 조직이란다) 4명이 위압적으로 서있다. 이들 앞을 오가던 여자, 요리조리 이들의 얼굴을 뜯어보다 “없는데요?” 라고 말하고, 이에 오 형사 좌절한다. 그런데 조금 이상하다. 보통 다른 영화들에서는 이런 경우 반대쪽을 볼 수 없는 곳에 용의자를 몰아놓은 상태에서 얼굴을 확인하도록 하지 않았던가? “혹시 샛눈이라도 뜨면 어떡하지? 저 여자 엄청 불안하겠네.” 당연히 이런 느낌이 들 수 밖에 없다. 그러나 어쩌랴. 이것이 바로 한국의 실상이라는 것을.
이어 촬영된 장면은 오영달과 김 반장(기주봉 분)이 사건에 대한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걸어오고, 김 반장이 사건의 결정적 단서가 나왔다는 전화를 받고 출동을 지시하는 장면. 그런데 이날 따라 세트장이 하얀 먼지로 가득하다. 촬영 현장 취재는 처음이라는 한 기자가 그 이유를 묻는다. “양수리 촬영소는 원래 먼지가 많아요. 스탭들이나 배우들이나 전부 마스크 차림인 이유가 바로 그 때문이죠.”라고 자신 있게 말하는 순간, 촬영장 한 켠에서 스모그를 뿜어내는 기계를 발견했다. 먼지가 아닌 경찰서 강력계의 나른한 오후 분위기를 화면에 나타내기 위해 스모그를 뿜고 있었던 것.
순조롭게 진행되던 촬영에 문제가 발생했다. 김 반장 역할의 기주봉이 대사가 꼬이기 시작한 것이다. 이 장면의 김 반장의 마지막 대사는 “장 형사! 빨리 시경 감식반에 가서 지문을 받고, 자료실에서 신원파악해 와.” 그러나 한 번 꼬여 버린 대사는 테이크가 계속되면 될수록, 더욱 꼬여만 간다. 결국 여러 번의 NG 끝에 김유진 감독, 스탭으로 하여금 대사를 적은 커닝 페이퍼를 기주봉의 시선에 서있도록 한다. 우여곡절끝에 결국 OK 사인이 나고, 주변 스탭들에게 미안한 기주봉 한 마디한다. “에이~, 스타일 다 구겼네.” 그의 이 말에, 피곤할 법한 스탭들과 동료 배우들이 큰 웃음으로 응수한다.
지난 1998년 박신양, 전도연 주연의 <약속>으로 흥행 홈런을 쳤던 김유진 감독은 1980년대와 90년대를 대표하던 중견 감독들의 활동이 부진한 2003년 현재, 충무로 현장을 굳건히 지키고 있는 몇 안 되는 중견 감독 중 한 명이다. 이번 <와일드 카드>를 위해 김유진 감독은 <약속>의 원작이 된 연극 <돌아서서 떠나라>의 이만희 작가와 함께 1년 간의 현장 취재를 거쳤다. 그는 세상에서 제일 험한 일을 하는 보통 형사들의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긍정적이고 따뜻한 시각으로 바라보는 영화를 만들고 싶었다고 그는 덧붙인다. 또한 그는 ‘대부분의 어린 학생들의 장래 희망이 형사가 될 것’이라는 말로 <와일드 카드>에 대한 강한 자신감을 내비친다.
<약속>에서 우직한 조직폭력배로 등장했던 정진영이 <와일드 카드>에서는 살인 사건 전담 경력 10년의 베테랑 형사 오영달로 또다시 이미지 변신을 꾀한다. 소림사 스타일의 승려(<달마야 놀자>), 깡패보다 더 깡패 같은 검사(<킬러들의 수다>)를 거쳐 본격적으로 형사 연기에 도전한 셈. 그의 파트너인 방제수는 오영달과 8살 차이가 나는 전형적인 신세대 형사로, 최근 드라마 <네 멋대로 해라>로 큰 인기를 모은 양동근이 특유의 카멜레온 같은 연기력을 선보일 예정이다.(실제로 정진영과 양동근은 15살 차이가 난다) 방제수는 지는 것은 절대 못 참는, 말보다 주먹이 먼저 나가는 스타일의 형사이지만, 자신이 좋아하는 여자의 마음을 사로잡기 위해 불심검문도 서슴지 않을 정도의 엉뚱함도 가지고 있다.
화면에서 보여지는 활달한 ‘구리구리’ 이미지와는 달리 양동근은 과묵할 정도로 말을 아끼는 소심한 청년이다. (이날 그는 자신에게 쏟아지는 플래쉬 세례에 어리둥절해 잠시 무장해제되기도 했다) 그에게 던져지는 여러 질문에도 그는 “음 그건 원래 그런 건데요.”, “그냥 열심히 연기하고 있습니다” 등의 짧은 대답을 계속한다. 그런데 이런 그가 밉지 않다. 양동근은 언제나 스크린 안에서는 같은 또래의 그 누구도 흉내낼 수 없는 폭발적인 연기 폭을 보여주지 않았던가. 이런 그가 대견스러운지, 옆에 있던 정진영이 양동근을 ‘괴물 같은 놈’이라고 거든다. 분명 이는 배우가 들을 수 있는 최고의 칭찬일 것이다.
지난 10월 촬영을 시작한 <와일드 카드>는 현재까지 전체 45회 촬영 분량 중 80퍼센트 정도 마무리된 상태이다. 과연 <와일드 카드> 같은 본격 형사 영화가 조폭 코미디의 뒤를 이어 주류 한국 영화의 자리를 차지할 수 있을까? 이에 대한 해답은 영화가 개봉되는 4월에 확인 할 수 있을 것이다.
출처 hotmai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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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실에 영화 촬영장 동근사진 올렸습니다.
역시 동근이는 과묵하네여~~4월이여 빨랑와라!
네멋에서 정말 열연을 해주었는데
이번 영화에서도 동근이의 진면목을 볼수있엇으면하네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