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곧’이란 이름의 뜻과 진도의 곶(串)
메칠 전에 고향 칭고덜하고 오이도에 놀러갔다가 오든 질에 시흥시 ‘배곧초등학교’ 옆을 지남시로 여그 ‘배곧신도시’는 어째 ‘배곶’이 아니고 ‘배곧’인지가 의아하다고 말들 했었다.
바로 옆 김포시에 월곶(月串), 강화군에 갑곶(甲串)이 있고 황해도 장연군의 장산곶(長山串) 등도 있어서, 이러한 ‘곶’이 아니고 ‘곧’이라는 지명이 더욱 생소하고 궁금했다.
곶(串)은 바다 쪽으로 뾰족하게 뻗은 육지나 그러한 곳을 뜻하는데 일본은 주로 갑(岬)이라 쓰고 우리는 곶(串)을 썼기에 일제 강점기에 장기갑(長鬐岬), 간절갑(艮絶岬) 등 ‘-갑’으로 바꿔 썼다가 '-곶'으로 되돌린 지명들도 제법 있다. 본래 우리나라 지명은 곶(串)이 대부분이라 월곶(月串), 갑곶(甲串) 외에도 울산시에 있는 간절곶(懇切串), 포항시의 호미곶(虎尾串), 황해도 장연군의 장산곶(長山串) 등도 있다.
이러한 지형에는 갑(岬)과 곶(串) 외에 단(端)·각(角)·취(嘴)·말(末) 등을 쓰기도 하였다.
진도의 지명에도 -구지(꾸지)가 이러한 지명으로 댓꾸지(군내면 죽전), 상당구지(임회면 탑립), 진구지(임회면 팽목), 동구지(임회면 동구), 넙구지(조도면 산행) 등 여러 곳에 이런 지명이 있으며 나룻배가 드나들던 곳들은 거의 나리꾸지, 나루꾸지로 불렸었다.
옛 문헌상 1446년(세종 28년)의 <세종실록> 111권에 <珍島南面女歸山串牧場第一所珍島郡事 第二所金甲島萬戶 第三所南挑浦萬戶分掌 西面富支山串 北面海原串兩牧場 珍島郡事兼之>로 진도의 여귀산곶(女歸山串), 부지산곶(富支山串), 해원곶(海原串)이란 지명이 나오며 <세조실록, 1475>, <신증동국여지승람, 1530년>, <여지도서, 1757년> 등에도 진도의 곶(串)이라는 지명들로 사월곶(沙月串), 대사읍곶(大沙邑串), 요곶(蓼串), 상당곶(上堂串) 등이 나오고 인근 해남에 우수영이 들어오기 이전 그곳 이름은 황원곶(黃原串)이었다.
거기에 더해서 배로곶, 타빈곶, 트라팔가르곶, 혼곶, 희망곶 등으로 쓰고 여기서 곶은 영어 단어 ‘cape’을 옮긴 말이다.
그런데 ‘배곧신도시’의 ‘배곧’이란 이름은 이러한 지명에서 온 것이 아니다.
‘배곧’이라 불리고 시흥시 정왕동에 속하는 이 지역은 본시 육지가 아닌 바다였었다. 그러다가 1986년 12월에 총포화약성능시험장으로 공유수면(公有水面)을 매립(埋立) 면허를 받아 한화그룹에서 매립공사를 벌여 1992년부터 매립지의 역사가 시작되었다. 이후 2010년 1월 ‘군자지구 도시개발계획’으로 변경되고, 2012년 10월 ‘군자배곧신도시’라는 이름이 붙어서 드디어 ‘배곧’이라는 이름이 본격적으로 사용되었다.
그럼 바다 쪽을 향해 부리 모양으로 뾰족하게 뻗은 육지를 말하는 곶(串)이라는 지명의 ‘배곶’이 아니고 왜 ‘배곧’이 되었을까?
‘배곧’이란, 1914년 국어학자 주시경 선생이 ‘선어강습원’ 이름을 ‘한글배곧’으로 바꾸어 사용한 데서 시작하였다. 즉 ‘배곧’은 순우리말로 ‘배움 곳’. ‘강습소, 학교, 학원’등의 뜻을 가지고 있다. 그렇다고 주시경 선생의 ‘배곧학당’이 이 지역에 있었던 것도 아니고, 황해도 평산 출신인 주시경 선생의 일가와도 아무 인연이 없는 지역이다. 다만 신도시 개발 당시에 서울대학교와 서울대학병원을 세우겠다는 계획에 맞춰 순수하게 '교육신도시'라는 뜻을 나타내기 위해 정책적으로 붙여진 순우리말 지명이 ‘배곧’이 되었다.
하지만 근처에 ‘배곧한울공원’ 역시 순우리말로 한울의 ‘한’은 ‘큰’, ‘울’은 ‘우리’의 준말이기에, ‘큰 나’ 또는 ‘온 세상’이라는 뜻이고, ‘배곧누리초등학교’와 ‘배곧해솔초등학교’ 등 이곳에서 듣고 보게 되는 좋은 우리 이름 쓰기들이 반갑다.
한편 곶(串)과는 반대로 쓰이는 물굽이 만(灣)이라는 글자는 물길이 안쪽으로 휘어지며 굽어 들어간 곳이라는 의미다. 해만(海灣)도 같은 뜻이고, 후미지다고 말할 때의 후미나 안곡(岸曲)도 역시 같은 뜻의 표준말이다. 그래서 갑(岬)과 곶(串)은 길쭉하게 나간 곳이고 만(灣)과 해만(海灣), 후미(구미), 안곡(岸曲)은 휘어져 들어 온 곳을 뜻한다.
진도에는 군직기미(고군면 벽파), 땅기미(고군면 모사), 송천기미(의신면송군), 헌복기미(임회면 동헌), 깊은기미(지산면 심동), 꼴기미(조도면 읍구) 등 수십여 개의 -기미, -끼미, -금이라고 불리는 지명들이 많이 있다.
한데 진도의 지명에서 대개 -구지(꾸지)는 串이 되고 -기미(끼미)는 灣이 된다. 그러나 어떤 곳에서는 여기네 저기네 위치상으로 이견(異見)을 말함은 나간 곳이 있으면 그 바로 곁에 패여 들어온 곳도 반드시 있기 마련이라 이들 모두는 ‘삐쭉하니 텨나가고 옴막하니 둘옴시로 곧 굽이지고 휘어진 곳’들의 지명이 된다.
<진도사투리사전 저자 조병현>
첫댓글 귀한 지식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