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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vitohol (아틸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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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fsanevî (전설상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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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rnik (이르네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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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rmi ailesi 에르미 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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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abası -이름 불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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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nesi -이름 불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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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ostun (603-60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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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urbat 대 불가리아 창건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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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Batbayan : 대 불가리아의 와해 이후 하자르국의 예속민으로 카프카스에 거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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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Kotrag 이틸 불가르 혹 볼가 불가르의 시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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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Asparuh 투나 불가르 -다뉴브 불가리아 초대 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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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Kuber 아바르 재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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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Altseko 주 : 아마도 롬바르드족의 알보인왕을 따라 이탈리아로 이동한 불가르족의 지도자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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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rmesiy (718-72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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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ervel (701-71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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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var (724-73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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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돌궐 제국의 와해로 군소 투르크족의 서쪽으로 이주함에 따라 기존에 살던 투르크계 민족은 동쪽에서 온 동족과의 마찰을 피해 남러시아, 헝가리로 이주한다. 당시 유럽은 중세 초기로 게르만 족들이 세운 여러 왕국들이 있었지만. 이들 투르크계 유목민에게 상대가 되질 못 했다. 하지만 훈족이 망하고 아바르 족이 들어오듯 불가리아는 아바르 족을 멸망시켜 발칸 지역에 거주하게 되지만. 또다른 압력을 받아 이주해온 투르크 계 민족 (하자르, 페체네크, 킵차크), 그리고 훈 족 계통의 귀족을 지도자로 삼은 마자르 족의 압박을 받게 됐다..
2. 유목 국가의 칸의 등극은 회의로 통한 추대나 정복을 통한 등극이 주를 이룬다. 유목 국가들은 특히 지도자의 역량에 따라 그 군사력이 크게 좌지우지하기 때문에 지도자의 리더쉽은 매우 중요하다고 할 수 있겠다.. 더불어 농경국가처럼 장자 우선 계승제같은 체계적인 계승법을 마련하지 않았기 때문에 내분이 많이 일어났고. 이는 유목 국가의 큰 약점이다. 1차 불가리아 제국도 초기에 그러한 상황을 통해 크룸 칸 이전까지 별다른 활동을 펼치지 못했다. 하지만 이건 비단 1차 불가리아 제국만 아니라 모든 유목 국가에 포함된다.
3. 642년 야르무크 강에서 이슬람과의 전투에서 패배한 비잔틴 제국은 급격한 영토 축소로 인해 쇠락의 길을 걷고 있었습니다. 이집트와 북 아프리카는 이슬람의 영토가 되었고. 이탈리아는 롬바르드족의 정복으로 이탈리아의 영토의 대부분을 상실했다. 그리고 유스티니아누스 대제 때부터 방치되오던. 발칸 반도는 슬라브족이 차지하게 되어 제국의 존립을 더욱 힘들게 했고. 더군다나 불가르족이 슬라브족을 규합하여 불가르 왕국을 세운 이후 비잔틴 제국은 콘스탄티노플과 가까운 이 북방의 이웃을 달가워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왕가의 시조로 삼는 훈족의 아틸라와 같이 제국의 부를 이루는 콘스탄티노플을 호시탐탐 노렸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비잔틴 제국은 동쪽에서 새로이 들어오는 투르크계 유목민족을 이용하거나 직접 원정을 통해 수시로 불가르 왕국을 견제해왔고 어느 정도의 효과를 거두기도 하고 피해를 입기도 했다. 그러나 크룸 칸의 등장으로 비잔틴 제국은 또다른 국면에 맞이했다..
테르벨 이후 크룸 칸까지의 칸은 다음과 같습니다.
725~740 세바르(Sevar)
740~756 코르미소스(Kormisos)
756~762 비네츠(Vinech)
762~765 벨레크(Velec)
765~767 사빈(Sabin)
767 우마르(Umar)
767~772 토크투(Toktu)
772 파간(Pagan)
773~777 텔레리그(Telerig)
777~802 카르담(Kardam)
4. 크룸~ 시메온 시기 불가리아
중부 유럽에서 아바르 칸국이 샤를마뉴 재위시의 프랑크 왕국에 의해 멸망되는 시점에서 등장한 크룸은 헝가리 남부와 트란실바니아를 점령하고 영토를 넓혀 동유럽의 강력한 통치자로 부상하자 갑작스런 투나 불가르 칸국의 흥기로 불안을 느낀 니케포루스 1세는 811년 크룸을 공격하지만 크룸의 반격을 통해 오히려 전사하고 비잔틴 군은 전멸하게 되었다. 크룸은 전사한 니케포루스 1세의 머리를 베어 그의 두개골을 금박에 씌어 술잔으로 사용했다고 합니다. 이러한 행위는 고대 스키타이, 흉노ㅡ훈, 돌궐(고대 투르크)에서도 보이는 것으로 일종의 '적에 대한 경고 메세지'라고 볼 수 있다.


차르 사무엘은 유능한 지휘관이였지만 한 수위인 *6 '불가록토누스(Bulgaroctonus)를 만났다는 점에서 그는 매우 운이 없었다. 만약 무능한 황제가 그의 상대자였다면 제 2의 크룸, 시메온이 되고도 남았을 것이다.
차르 사무엘 사후 뒤를 이은 가브리엘 란도미르(1014~1015)와 이반 블라디슬라프(1015~1018)이 계속 저항했지만. 결국 1018년 1차 불가리아 제국은 멸망하게 된다.
이후 비잔틴 제국은 395년 이후 무려 720년만에 발칸 지역을 다시 회복하게 되고 불가리아는 1180년까지 지배를 받게된다. 이후 킵차크 출신의 이반 아센(Ivan Asen)과 페테르 아센(Peter Asen) 형제를 주축으로 아센 왕가의 제 2차 불가리아 제국이 세워짐으로 불가리아는 다시 부활하게 된다.
*5 클레이디온 전투(Battle of Kleidion) : 벨라시차 전투로 불리기도 한다. 1014년 차르 사무엘의 공격으로 피해를 입은 바실리우스 2세가 직접 출정하여 불가리아 군을 벨라시차 산으로 유인하여 승리를 거둔 전투로 이 전투로 인해. 비잔틴 제국은 1180년까지 발칸반도에서의 주도권을 가지게 된다.
*6 '불가록토누스(Bulgaroctonus) : 비잔틴 제국의 중흥기의 절정을 이룬 바실리우스 2세를 가리키며
불가록토누스란 '불가리아의 학살자'란 뜻으로 클레이디온 전투로 사로잡힌 불가리아 포로 1만명에게 100명당 99명은 모조리 장님으로 만들고 1명만 애꾸눈으로 만들어 차르 사무엘에게 보낸 것에서 유래했으며
차르 사무엘은 전투의 패배와 비참한 포로의 모습을 보고 충격을 받아 얼마되지 않아 사망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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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Dulo ailesi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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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ru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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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okum (81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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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tseng (81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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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murta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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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oin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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Zvinitzi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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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lamir (831-83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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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Presian (836-85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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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ria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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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oris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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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ukus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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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ladimi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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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Simeon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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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avril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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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akov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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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upraksiya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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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na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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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chael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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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Pet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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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ria [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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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van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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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enyamin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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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I. Boris (969-97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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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Romanus 크룸 가계의 마지막 차르로 이 차르가 콘스탄티노플에 억류된 사이 차르 사무엘이 등장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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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72~1014) 사무엘 (Samuel)
쇠퇴일로에 있던 불가리아 제국을 일시적으로 부흥했던 차르로 비잔틴 제국을 상대로 초기에는 그리스를 휩쓸고 콘스탄티노플을 압박하지만 클레이디온 전투로 그의 시도는 불발로 끝나게 된다.
(1014~1015) 가브리엘 란도미르(Gavriel Randomir)
(1015~1018)이반 블라디슬라프(Ivan Vladislav)
출처 : 터키 위키디피아
작자 미상 ROME AND ROMANIA, 27 BC-1453 AD
-워랜 트레드골드 저,박공순 옮김 2003 <<비잔틴 제국의 역사>>, 서울 : 가람기획
이희수 저 2005(개정) <<터키사>>, 서울 : 대한교과서(주)
르세 그루쎄 저, 김호동, 유원수, 정재훈 옮김 2005년(개정) <<유라시아 유목제국사>>, 서울 : 사계절
첫댓글 불가리아인들도 비칸티움 제국 못잖게 고생 해가면서 비잔티움과 전쟁을 치뤘군요. 몰랐습니다.
사실 1차 불가리아 제국이라곤 하지만, 사무엘의 제국과 크룸-시메온의 제국은 서로간에 별반 체제 연속성이 없었습니다. 시메온의 제국이 한번 완전히 무너진 후, 구 불가리아 동부에는 비잔티움의 직접 지배 시스템이 구축되었으며 서부 지역은 불가리아 귀족들이 그대로 제국의 귀족이 되면서 지배 체제내로 편입이 됩니다. 사무엘의 아버지가 바로 그런 사람들 중 하나였지요. 사무엘이 불가리아 제국을 다시 일으켜세웠지만 그 제국은 크룸-시메온과는 달리 무게 중심이 서쪽으로 꽤나 치우쳐있었습니다.
그 점에 대해서는 저도 궁금했던 지라.. ㅎㅎ 좋은 답변 감사드립니다. 자료를 좀 더 찾아봐야겠군요 ㅎㅎ
게다가 구 불가리아 제국 동부 지역에 대해서는 과거와는 달리 비잔티움 제국에게 상당 부분 중요한 방어선을 이미 내주고 시작한 꼴이었으니.....굳이 불가록토누스가 아니었더라도 장기적인 견지에서는 결국 뿌리 부분인 동부 부분의 통제력을 상실한 불가리아 제국은 비잔티움 제국을 이길 수가 없었을 것으로 보입니다. 이후 구 불가리아 제국 지역은 지속적으로 인력과 군사와 장교를 비잔티움 제국에 공급하면서 제국의 또다른 저력이 솟아나는 원천이 됩니다. 어느 정도는 상당히 비잔티움 화가 되는데, 고구려와 발해가 과연 수당에 그랬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하자르족은 유대교돌궐족이고 그 근처의 베네치그족(돌궐족의 일파)이 분탕질합니다.(사실상 불가리아제국의 영토는 그리 오래 지속되지 않습니다.)
베네치그가 아니라 페체네크족입니다;; 페체네크족 경우에는 오우즈족한테 쫒겨나서 유럽에 분탕질 치게 된거구요 ㅎㅎ.. 뭐 거기에 대해서는 다음에 언급할 생각입니다.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