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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사회에서 땅보다 더 강렬하게 사람들의 욕망이 투영되는 공간은 없다. 그러다 보니 땅에는 늘 차지한 자와 쫓겨난 자의 역사가 새겨진다. 서울의 중심이면서 한강과 맞닿은 지리 조건을 갖춘 용산은 땅의 슬픈 운명을 웅변한다. 1905년에는 러일전쟁에서 이긴 일제가 이 곳에 군사·철도 기지를 세웠다. 황현은 <매천야록>에서 “왜인들이 숭례문에서 한강에 이르는 구역을 멋대로 점을 쳐서 군용지라는 푯말을 세우고 경계를 정하여 우리나라 사람이 침범하지 못하게 했다. 이때부터 그들이 하고자 하는 바가 있으면 번번이 군용지라는 명목으로 빼앗아갔다”고 적었다. 해방과 함께 용산의 주인은 미군으로 바뀌었다. 주한미군사령부, 미8군사령부 등이 들어선 용산 땅에는 미군과 미군속 등 2만여 명이 모여들였다.
외세 침탈의 아픈 역사 간직한 용산
21세기 들어 미군기지 이전이 가시화할 즈음부터 용산에는 민간의 거센 재개발 바람이 들이닥쳤다. 군사적 필요에 따른 규제와 개발 압력의 팽팽한 긴장 속 침묵이 아우성으로 바뀌는 순간이다. 어느 땅에든 자그마한 빈틈만 보여도 아파트를 세워 올리던 ‘재개발 연합체’가 군침을 닦으며 용산에 눈길을 돌린 건 필연이다. 그들은 양계농가 하나 없는 용산을 두고 ‘서울의 마지막 노른자위’라고 부른다.
땅을 차지하려는 자와 그 땅에서 쫓겨나는 자의 드라마도 본격화됐다. 주연은 ‘재개발 연합체’의 핵심인 재벌 건설사와 정비용역 업체, 철거용역 업체, 관청 등이다. 개발이익을 독점하는 대부분의 땅주인들이 치솟는 땅값에 즐거운 비명을 지르며 드라마를 보는 사이, 푼돈을 손에 쥐고 쫓겨나는 세입자들은 고통의 비명을 지른다. 호프집이나 식당 등을 운영하던 세입자들과 경찰관 등 6명이 목숨을 잃은 지난 1월20일 남일당 건물 화재 사건은 용산에서 개봉을 앞둔 거대한 비극의 서막에 불과한지 모른다.
2008년 용산지구단위계획구역 사업현황도를 보면, 용산에는 10개 특별계획구역, 5개 도시환경정비구역, 1개 주택재개발 사업이 진행 중이거나 최근 완료됐다. 여기에는 사업비만도 28조원이 들어가는, 단일 개발로는 단군 이래 최대 규모라는 국제업무지구 조성 계획도 포함돼 있다. 사업 현황에는 포함돼 있지 않지만 한남동 등 일대의 뉴타운 사업도 4월3일 정비계획이 발표되면서 출발 총성이 울렸다. 용산 전체가 공사 현장인 셈이다.
토건 공화국을 향해 달리는 폭주기관차에 브레이크는 없다. 재개발에 대해 심각하게 돌아보지 않는 한, 현재 용산에서 벌어지는 사건들은 언제 어느 곳에서나 재현될 수 있는 우리 사회의 미래이기도 하다. 지금 용산을 돌아봐야 하는 까닭이다.
서부이촌동: 서울시·시공사와 주민의 충돌
“사유재산 강탈하는 서울시장 물러가라.” “개인 행동은 죽음입니다. 동의서 거부만이 살길입니다.” “삼성과 야합하고 주민 배제하는 서울시의 독재 개발 결사반대.”
일방적 사업계획 발표로 주민 반발
지난 3월18일 서울 용산구 서부이촌동. 동원·대림·성원아파트 등 8개 동 아파트 벽면은 서울시와 삼성을 비난하는 펼침막으로 가득했다. 아파트 경비실 앞에는 시행사인 (주)용산역세권개발 직원의 출입을 금지하는 입간판이 서 있고, 주민들이 외부 출입자를 감시하려고 설치한 간이 천막은 이곳의 살벌한 분위기를 그대로 드러내고 있다. 이곳에서는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걸까?
애초 코레일이 이 지역의 길 건너편인 철도정비창 터 44만2천㎡를 국제업무지구로 개발하려 했다. 그런데 2007년 서울시가 철도정비창 터에 서부이촌동(12만4천㎡)까지 합쳐 56만5천㎡를 통합 개발하도록 코레일에 제안해 합의가 이뤄졌다. 서울시와 주민들의 갈등의 시작이었다.
서울시는 오세훈 시장의 ‘한강 르네상스’ 계획에 따라, 한강과 정비창 터를 가르고 있는 이 아파트 지역을 통합해 개발하는 게 효율적이라고 본다. 중국에서 용산까지 오가는 배가 머물 선착장 시설을 만들어야 국제업무지구의 기능을 온전히 수행할 수 있다는 게 서울시의 논리다. 28조원에 이르는 사업비 조달 등을 위해 서울시와 금융기관, 건설업체 등 30개 출자사가 컨소시엄을 꾸려 민간 개발 방식으로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서울시가 지역 주민들과 별다른 협의 없이 사업계획을 일방적으로 발표하면서 주민들의 반발을 키웠다. 삶의 터전을 재개발한다면서 아파트 주민들에게 어떤 보상이 이뤄질지 구체적으로 밝히지도 않은 채 개발에 동의한다는 도장부터 먼저 찍으라는데 누가 동의할 수 있겠느냐는 것이다. 이런 반감은 전체 주민 2200여 명 가운데 절반가량이 살고 있는 동원·대림·성원 등 3개 아파트 주민들에게서 극단적으로 표출된다. 이 아파트 주민들이 꾸린 비상대책위원회는 전체 주민의 86% 이상이 서명한 통합개발 반대 동의서를 지난해 서울시에 제출했다. 또 주민 50%의 동의만 받으면 나머지 절반의 의사와는 무관하게 개발을 할 수 있도록 한 도시개발법은 위헌이라며 헌법소원도 냈다. 비대위 쪽 주민 40여 명은 3월18일 박장규 용산구청장 비서실을 점거농성하다 해산을 요구하는 경찰과 대치하기도 했다.
‘성원아파트 통합개발반대 비상대책위원회’의 성시훈 총무는 “지난해 단 한 차례 주민설명회를 한 것을 빼고는 아파트 주민의 주거권이 달린 문제에 대해 서울시나 시행사 쪽에서 주민들의 동의를 구하려는 노력을 전혀 보이지 않고 있다”며 “서울시는 통합 개발 계획을 당장 철회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서울시 도시계획국의 한유석 용산지구팀장은 “시에서 전문가 자문을 받은 결과 기존 부지에다 서부이촌동 지역까지 포함하면 국제업무지구의 시너지 효과가 있을 것으로 보고 개발계획을 세운 것”이라며 “사업 추진 체계상 보상은 감정평가를 해봐야 알 수 있는데, 그전에 미리 보상액을 제시해달라는 주민들의 주장은 받아들이기 어려운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시공사 삼성에 대한 비판 여론도 비등
지은 지 3∼15년밖에 되지 않은 아파트들을 허물려는 것도 문제라는 게 주민들의 시각이다. 또 시행사인 (주)용산역세권개발이 동의서를 받으러 다니는 과정에서 협박도 서슴지 않았다고 비대위 쪽은 주장했다. 회사 쪽이 “동의서 접수 첫날에 동의서를 제출하면 3500만원의 현금 보조금을 지급한다”고 하면서 “동의하지 않는 주민에게는 민간 개발의 혜택과 큰 평형 입주권을 주지 않는다”는 홍보물까지 돌렸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이 회사의 김병주 홍보팀장은 “설명회 말고도 별도의 홍보관과 홈페이지를 운영하는 등 적극적인 홍보활동을 펴고 있다”며 “사업 지연에 따른 이자 비용만 하루에 수억원씩 되는 상황에서 일찍 도장을 찍어준 분들에게 인센티브를 주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고 말했다. 3월31일에는 (주)용산역세권개발이 터 주인인 코레일 쪽에 내야 할 전체 토지 매입대금 8조원 가운데 2차 중도금 8천억원의 납부기한을 넘기면서 사업은 초반부터 난관에 봉착한 상태다.
주민들은 서울시와 함께 삼성그룹을 주요한 비판 대상으로 삼고 있다. 삼성물산과 삼성생명, 호텔신라 등 삼성 계열사들이 (주)용산역세권개발에서 차지하는 지분은 14.3%로, 코레일(25%)과 롯데관광개발(15.1%)에 이어 세 번째지만 사실상 주간사의 구실을 삼성물산이 맡고 있는 탓이다.
아파트 주민들의 강한 반감과 달리 인근 시범아파트와 단독주택에 사는 주민들 사이에선 이번 사업 시행을 환영하는 분위기도 상당하다. 해당 지역의 한 부동산업자는 “이 지역 주민 30% 이상이 이미 동의서에 도장을 찍은 것으로 알고 있다”며 “빨리 동의서에 도장을 찍어주고 보상비를 받는 게 차라리 낫다고 보고 있다”고 말했다.
변창흠 세종대 교수(행정학) 등 전문가들은 주민 절반의 동의만 받으면 나머지 주민들의 토지를 사실상 강제수용할 수 있도록 한 현행 ‘도시개발법’은 주민의 주거권을 침해하는 성격이 짙으므로 주민 3분의 2 이상의 동의를 받도록 법을 개정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본다. 시의 도시개발 정책에 따라 사업이 이뤄질 경우 도시개발법이 적용되고, 일반 주택재개발 사업에는 도시 및 주거환경 정비법이 적용되는데, 후자에서는 주민의 80% 동의를 받아야 사업 추진이 가능하다. 남철관 성동주거복지센터 국장도 강제수용과 관련한 법·제도가 주민의 권리를 강화하는 쪽으로 전환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곳처럼 시의 도시개발 계획을 반영하지만 실제로는 민간 개발의 형식을 띠는 경우에는 주민 동의를 받을 때 개발이익을 추정해 어떻게 돌려줄 것인지 그림을 미리 내놓는 것도 필요하다.
한남뉴타운: 조합추진위와 구청의 갈등
지난 4월3일 정비계획에 대한 주민 공람에 들어간 한남뉴타운 지역도 조만간 ‘뜨거운 감자’로 떠오를 분위기다. 한남 뉴타운 사업은 한남동과 보광동, 이태원동, 서빙고동 등 109만여㎡를 아우르는 매머드급 재개발 사업으로, 민간 주도의 단일 뉴타운 사업으로는 면적이 가장 넓다.
문제는 용산구청 쪽이 2000년대 초반부터 결성된 기존 재개발조합 설립 추진위원회를 인정하지 않기로 하면서 불거졌다. 박장규 용산구청장은 용산 4구역 참사가 난 지난 1월20일 보광동 주민센터에서 연 ‘2009 신년 인사회 및 동정 보고회’에서 “개발을 한다니까 보광동·서빙고동 일대에 서울시 브로커들이 죄다 모였다”며 “이 사람들은 (건설)회사에서 수십억원씩 받아먹었으니 동민들이 몰아내야 한다”고 밝혔다. 기존 추진위를 겨냥한 말이다. 용산구청 도시계획과 관계자도 “기존 추진위들은 비리·불법을 저질렀을 가능성이 높은 게 사실이라, 얼마 전 이 지역에서 ‘드림팀’으로 불리는 삼성물산·대림·포스코·현대산업개발 4개사를 불러 앞으로 (기존 추진위에) 돈을 주지 말라고 못박았다”고 말했다.
박장규 용산구청장 “서울시 브로커들이 죄다 모여들었다”
구청은 4월 초 한남 뉴타운 지역의 7800여 땅주인들에게 일제히 공문을 보내기도 했다. 구청은 공문에서 “건실한 조합설립추진위 조직 구성 여하에 한남 재정비촉진사업의 성패가 달려 있다”며 “신중히 생각해 투명하고 공명정대하며 건실한 조합설립추진위에 동의서를 제출해달라”고 부탁했다. 이런 주장은 얼핏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 나눔과 미래 등 시민단체들이 ‘건설사가 종잣돈을 대서 추진위를 지원한 뒤 이들이 나중에 조합을 꾸리면 건설사에 특혜를 주는 식의 재개발 커넥션’을 비판해온 것과 맥이 닿는 듯하다.
하지만 이미 50% 이상의 주민 동의서를 받아놓은 기존 추진위 쪽은 구청이 명확한 근거도 없이 자신들이 부패했다고 여론몰이를 하고 있다고 반발한다. 만약 불법이 있다면 법적으로 대응을 하면 되는 것이지 구청이 추진위 구성에 대해 ‘감 놔라 대추 놔라’ 해서는 안 된다는 논리다. 한남 뉴타운의 한 추진위원장은 “구청의 방침대로라면 최근에 꾸려져 활동 중인 단일한 새 추진위 쪽을 구청이 밀어주는 꼴밖에 되지 않는다”며 의혹의 눈길을 보냈다. 그러나 새 추진위 쪽 관계자는 “기존 추진위들은 우리와 서로 경쟁하는 상태지만, 상대를 헐뜯어 좋을 일은 없다”며 말을 아꼈다. 구철회 용산구청 뉴타운추진팀장도 “주민들이 (기존 추진위의) 잘못된 걸 모르고 손해 보게 되는 걸 막겠다는 취지”라며 “당연히 자치단체장은 그럴 의무가 있다는 법률 자문을 받고 하는 일”이라고 말했다.
이 밖에 한남 뉴타운 지역이 각종 고도제한지구, 수변지구 등으로 지정돼 저층 개발이 추진되다 보니 개발이익이 거의 나지 않을 것이라는 점도 일부 지역 주민들의 불만이다. 한남 뉴타운 지구의 한 추진위원장은 “사업이 5년 넘게 지연되는 과정에서 각종 ‘쪼개기’가 횡행해 조합원 수가 엄청 늘었다”며 “현재 계획대로 저층 개발이 된다면 조합원들조차도 사업이 끝난 뒤 입주하지 못하는 이들이 나올 것”이라고 주장했다.
전문가들도 대체로 기존 추진위의 문제점을 인정한다. 한 재개발 전문가는 “이들 추진위가 시공권을 확보하려는 건설회사의 이익을 대변하는 수준으로 전락하고 있다는 지적에 일리가 있다”고 말했다. 그럼에도 구청이 미리부터 기존 추진위를 부정하고 새 추진위를 옹호하는 듯한 자세를 취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는 게 전문가들의 시각이다. 윤순철 경실련 시민감시국장은 “주민들이 바꾸자고 나서면 모를까 구청이 조합추진위원회를 갈아치우겠다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사업 추진에 따라 추진위 설립 신고를 받을 때 법적 요건을 따져 제동을 걸면 그만이라는 것이다. 저층 개발에 따른 문제에 대해서는 개발이익을 보장하려는 목적으로 용적률을 높여줄 순 없다는 전문가들의 의견이 대세다.
용산역 2·3구역: 조합·관청과 세입자의 대결
만우절인 4월1일 오후 용산역 앞. 참사 현장인 남일당 건물에서 큰길 바로 맞은편에 있는 이곳은 ‘용산역 전면 2·3구역’으로 지난해 이미 관리처분 인가가 났다. 이곳에서 만난 상가 세입자들은 기대보다 낮은 영업손실보상금에 뿔이 날 대로 났다.
2001년 입주해 보증금 2천만원에 월 100만원의 세를 내고 치킨집을 운영하고 있다는 ㅈ아무개(64) 사장은 조합이 3600만원을 제시하자, 감정평가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는 다른 상가 세입자들과 함께 서울지방토지수용위원회를 거쳐 중앙토지수용위원회에까지 이의 제기를 해놨다고 했다. 3구역 세입자인 그는 “대부분 카드 결제로 한 달에 2천만원가량 매출이 난다”면서 실제 장부를 보여준 뒤 “8년 전 개발 소식도 모른 채 들어올 때 들어간 권리금 7천만원을 다 내놓으라고 할 수는 없는 노릇이지만, 세 달치 영업손실보상금으로 3600만원만 받고 나가라는 건 너무하지 않느냐”고 말했다. 그는 4월6일까지 보상금을 수령해가라는 조합 쪽의 2차 통고에도 응하지 않을 것이라며 “바로 옆 4구역 참사를 보면서, 돌아가신 분들에게는 죄송한 말이지만, 우리는 조금 나아지겠지 했는데 전혀 그렇지 않다”고 말했다. 그는 조합 보상금만 갖고 나가면 다른 곳에서도 장사하기 힘들다면서 “우리도 4구역 세입자처럼 그렇게 해야지 어떡하겠냐”고 말했다.
“우리도 4구역 세입자처럼 할 수밖에”
같은 구역에서 슈퍼마켓을 운영하는 한 세입자도 한숨을 내쉬기는 마찬가지였다. 땅주인들이 10여 년 만에 6∼7배가량 뛰어오른 땅값의 달콤한 맛을 보는 지금, 세입자들은 울화가 터진다고 했다. 권리금 5천만∼1억원씩 주고 들어와 장사하다 2천만원대 보상금만 받고 나가서 무얼 해서 먹고사느냐는 것이다. 이런 상가 세입자가 3구역에만 120여 명이 버티고 있다.
2구역에서 만난 한 세입자 겸 슈퍼마켓 주인은 “여기는 화약고”라고 했다. 4년 전 1억원의 권리금을 줄 테니 전세권을 팔라는 제의를 뿌리쳤는데, 이번에 나온 보상금은 2900만원이라고 했다. 그는 “아무리 못 받아도 8천만원은 돼야지 않겠냐”고 말했다.
참사가 난 4구역과 마찬가지로 상가 세입자들에 대한 보상금 문제는 2·3구역에서도 똑같이 불거지고 있다. 특히 2구역의 경우는 20명의 상가 세입자가 강경대응 방침을 밝히고 있다. 서울지방토지수용위원회 결정을 기다리고 있다는 2구역 상가세입자협의회 문내수 총무는 “(보상금 문제에 대해) 결국 행정소송으로 갈 수밖에 없을 것 같다”며 “요즘 (망루 쌓을) 높은 빌딩 알아보고 있다”는 말로 이들의 분위기를 전했다. 그는 “전철련이 좋아서가 아니라 우리 힘만으로는 안 되니까 힘을 빌리기 위해 요즘 전철련 쪽과 연계하려고 접촉 중”이라고 말했다.
2·3구역에는 성매매 집결지도 자리하고 있다. 보상금 문제를 제기하는 일반 상가 세입자 130여 명 말고도 100여 명에 이르는 포주 세입자 문제까지 겹쳐 더욱 복잡한 양상을 띠고 있다. 본인이 월세를 얻어 직접 성매매를 하고 있는 김민지(38·가명)씨는 “제대로 된 보상금액이 나오지 않으면 나 자신의 성매매 사실을 폭로하는 방식을 통해 건물 주인도 가만두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포주 세입자들은 “조합이 세입자인 성매매 업주들에게 1500만∼2천만원 정도만 보상금을 주겠다는 말을 계속 흘리고 있어 감정평가 자체를 막고 있다”며 “개발 뒤 일반 분양 몫에 대한 우선 분양권이라도 달라고 요구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에 2구역 조합의 연제은 이사는 “4구역의 참사를 되풀이해서는 안된다는 생각을 갖고 원만하게 처리하려고 한다”며 “서너 차례 감정평가를 시도했으나 세입자 대책위 쪽이 방해하는 바람에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고 밝혔다.
근본적으로 땅주인들이 개발이익을 모두 가져가도록 한 재개발 제도의 개선이 필요하다. 세입자에 대한 보상 문제는 감정평가 제도의 개선과도 맞닿아 있다. 저마다 다른 현장 세입자의 상황을 충분히 반영할 수 있는 감정평가를 하지 않는 한 갈등은 지속될 수밖에 없다. 세 달치에 해당하는 영업손실 보상비를 네 달치로 늘리겠다는 정부 대책은 땜질 처방이라는 지적도 일고 있다. 윤순철 경실련 시민감시국장은 성매매 집결지 문제에 대해서도 일반 원칙을 적용해야 한다고 본다. 윤 국장은 “그들도 대한민국 국민이고 다른 일반 세입자들과 구별할 이유가 없다”고 했다.
용산 4구역: 조합과 조합원 사이 송사
참사에도 불구하고 철거를 재개한 국제빌딩 주변 용산 4구역도 시끄럽기는 마찬가지다. 조합 행정의 불투명성을 둘러싸고 조합과 조합원들 사이에 송사가 잇따르고 있다.
4구역 일부 조합원들로 구성된 비상대책위 쪽은 지난해 조합장을 비롯한 조합 이사 4명을 도시 및 주거환경 정비법 위반 혐의로 고소했다. 도정법 81조 등에 따라 설계·시공·철거·정비용역 업체와의 계약서는 조합이 인터넷에 공개하거나 조합원의 열람·등사 요청이 있을 때 공개해야 하는데 이를 공개하지 않았다는 등의 이유였다. 고소된 4명 가운데 벌금 100만원씩에 약식 기소된 2명은 정식 재판을 청구해 현재 1심이 진행 중이다.
비대위 관계자는 “지난번 참사 직후 조합 쪽에서 우리가 요구한 서류들을 일주일 안에 복사해서 보내주겠다고 해놓고는 아직까지 보내주지 않고 있다”며 “조합원이 용역업체들의 사업참여 제안서도 아닌 조합과의 계약서를 공람 신청했는데도 안 보여주고 이에 소송까지 제기했는데도 볼 수 없다는 게 말이 되느냐”고 말했다. 다른 조합원도 “조합이 개별 조합원의 감정평가액 전체도 공개하지 않고 있다”며 불만을 토로했다.
조합 운영 둘러싸고 23개 소송 제기돼
그러다 보니 조합을 상대로 한 각종 소송이 빗발치고 있다. 4구역 조합이 지난해 11월 낸 소식지에 따르면, 그동안 모두 26건의 소송이 조합을 상대로 제기됐는데 이 중 상당수는 조합의 불투명한 운영과 연관된 것이다. 조합이 관리처분계획을 결의하는 총회를 열면서 조합원들에게 법정 기일 안에 내용을 통지해주지 않았다거나, 정비·분양 용역비가 지나치게 많다는 등의 논란이다.
4구역 조합 쪽의 오동렬 변호사는 “법적인 쟁점은 법원에서 판단할 문제”라며 “이사 회의록 등의 공람·등사는 안 해주겠다는 것이 아니라, 화재 참사 직후 배아무개씨 등이 가져갔던 철거계약서가 언론 등 외부에 유출된 과정을 먼저 확인해달라는 것이 조합의 입장”이라고 말했다.
조합 행정을 투명화하려면 민간 재개발이라 할지라도 정비계획 수립과 감정평가, 회계업무 등에 재개발 사업의 인허가권자인 지자체가 적극적으로 나서도록 제도를 개선할 필요가 있다. 주거 관련 시민단체인 ‘나눔과 미래’의 이주원 국장은 “합법적인 정보공개 요구를 무시하는 조합 간부와 행정관청에 대한 처벌을 강화하고, 특히 회계감사는 제3자인 공인기관이나 공공에 공식적·강제적으로 맡기게 해야 한다”고 말했다. 토지주택공공성네트워크는 현재 공개하도록 돼 있는 각종 계약서뿐만 아니라 조합의 회계장부 등의 정보까지도 조합원 10분의 1 이상이 요구할 경우 공개하도록 하는 도시 및 주거환경 정비법 개정을 추진 중이다.
지금 용산을 지배하는 건 시청과 구청, 땅주인, 건설사, 용역회사 등의 절제되지 않은 욕망이다. 뜨겁게 타오르는 이 욕망의 덩어리는 이미 남일당 건물을 한 차례 쓸고 갔다. 6명의 목숨이 불꽃과 함께 가버리고 난 뒤에도 우리 사회는 이 불덩어리를 통제할 용기와 지혜를 찾지 못한 듯하다. 땅을 향한 모두의 욕망을 성찰하고 제도의 난맥을 세밀히 점검하지 않는 한, 불에 탄 망루는 용산의 현재이자 대한민국의 미래다.
전종휘 기자 symbio@hani.co.kr·임주환 기자 eyelid@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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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비평 2009/04/13 08:52 손석춘
진실이 묻히는 게 가장 무섭다. 서울 용산에서 참혹하게 죽은 철거민의 유족들이 한결같이 토로하는 말이다. 여론시장을 독과점한 신문들은 유족들의 말을 시들방귀로 여긴다. 그들에게는 드러날 진실이 더는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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