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영미 산문집/ 난 그 여자 불편해/ 아미출판사/ 2023
며칠 전에 최영미 산문집이 나왔다. 산문집치고는 제목이 아주 도발적이다. 어느 날부터 최영미 시인이 투사적인 사람으로 바꼈다.
견고한 문단 권력에 대들고 난 이후에 최영미 시인의 책을 내주겠다는 출판사가 나오지 않았다.
문단 거목 고은 시인과 맞장을 뜬 댓가였다. 그래서 시인은 직접 출판사를 차렸고 이 책도 그렇게 세상에 나왔다.
책 앞부분에 최영미 시인이 고은과의 법정 싸움 기록이 나온다. 그래서 오늘 내 글은 최영미보다 고은 시인에 초점을 맞추고 사건 발단을 되짚어 본다.
괴물 - 최영미
En선생 옆에 앉지 말라고
문단 초년생인 내게 K시인이 충고했다
젊은 여자만 보면 만지거든
K의 충고를 깜빡 잊고 En선생 옆에 앉았다가
Me too
동생에게 빌린 실크 정장 상의가 구겨졌다
몇 년 뒤, 어느 출판사 망년회에서
옆에 앉은 유부녀 편집자를 주무르는 En을 보고,
내가 소리쳤다
"이 교활한 늙은이야!"
감히 삼십년 선배를 들이박고 나는 도망쳤다
En이 내게 맥주잔이라도 던지면
새로 산 검정색 조끼가 더러워질까봐
코트자락 휘날리며 마포의 음식점을 나왔는데,
100권의 시집을 펴낸
"En은 수도꼭지야. 틀면 나오거든
그런데 그 물은 똥물이지 뭐니"
(우리끼리 있을 때) 그를 씹은 소설가 박 선생도
En의 몸집이 커져 괴물이 되자 입을 다물었다
자기들이 먹는 물이 똥물인지도 모르는
불쌍한 대중들
노털상 후보로 En의 이름이 거론될 때마다
En이 노털상을 받는 일이 정말 일어난다면,
이 나라를 떠나야지
이런 더러운 세상에서 살고 싶지 않아
괴물을 키운 뒤에 어떻게
괴물을 잡아야 하나
*계간 황해문화/ 2017 겨울호
몇 년 전 한 문예지에 실린 이 시로 인해 한국 문단에 미투 바람이 몰아쳤다. 괴물이란 시의 파장으로 한국 문단은 발칵 뒤집혔다.
고은뿐 아니라 다른 시인도 성추행을 했다는 고발이 연달아 나오면서 그동안 수면에 가라 앉아 있던 문단의 치부가 드러나게 된 것이다.
성추행 가해자로 지목되어 비난을 받던 어느 교수는 자살을 했다. 고은 시인은 이 고발 풍자시 하나로 하루 아침에 한국 문학에서 기피 인물이 되었다.
해마다 가을이면 노벨문학상 후보로 빠지지 않고 거론되었던 고은 아닌가. 어느 핸가는 노벨상 수상이 유력하다는 외신까지 전해지면서 가슴이 설레기도 했다.
성추행 폭로 이후 고은 시인은 노벨상 후보에서도 완전히 사라졌다. 그 때쯤 창비에서 고은의 신간 시집을 출간할 예정이었는데 이 사건으로 없던 일이 되었다.
고은은 가족과 아내에게 부끄러운 일을 하지 않았다며 성추행을 인정하지 않았다. 고은은 최영미에게 명예훼손으로 손해배상 청구를 했고 최영미는 법정에 섰다.
긴 공방을 벌인 끝에 1심과 2심에서 법원은 최영미의 손을 들어줬다. 패소한 고은 시인이 항소를 포기하면서 이 사건은 일단락되었다.
이렇게 한국 문단에서 잊혀져가던 고은이 지난 달에 신간 시집을 냈다. 미투 사건 이후 5년 만이다. 이번에도 최영미가 총대를 맸다.
최영미 시인은 사과와 반성도 없이 문단에 복귀한 고은과 시집을 낸 출판사를 싸잡아서 위선을 실천하는 문학이라고 비판했다.
고은뿐 아니라 시집을 낸 실천문학사까지 비꼰 것이다. 이걸로 여론은 고은 시인의 복귀를 반대하는 쪽으로 완전히 기운다.
당장 책 공급을 중단하고 시집을 회수하라는 거센 반발에도 불구하고 실천문학사는 작가의 출판 자유를 내세우며 여론을 무시했다.
그 출판사 대표는 반대 여론 때문에 시집을 회수할 생각이었으면 애초에 출판하지 않았을 거라고 말했다.
그랬다가 여론이 더욱 들끓자 결국 실천문학사는 백기를 들고 사과문을 발표한다. 시집 발행을 하면서 사려 깊지 못해 죄송하다. 시집 공급을 중단하겠다.
또한 문예지 실천문학도 자성의 계기로 삼고 올 연말까지 2023년에는 발행을 중단하기로 했다.
문득 서정주 시인이 생각 난다. 미당은 빼어난 작품성에도 불구하고 친일 경력과 암울했던 시절 독재자를 찬양했다는 이유로 시인 대접을 제대로 받지 못했다.
나도 한때 미당 시에 흠뻑 빠져 살기도 했지만 그의 이력을 떠올리면 늘 가슴 한 켠이 불편했다. 고은 시인도 미당 못지 않게 좋은 작품을 쓴 것은 맞다.
미당도 고은도 한국 문단의 거목이다. 두 사람 작품은 후배 시인에게 많은 영향을 끼쳤다. 굳이 작품성으로만 둘 중 하나 고르라 한다면 나는 서정주 시인을 택하겠다.
어쨌거나 작가를 오직 작품으로만 평가할 수 없다는 것에 동의한다. 이번 고은 사태를 보면서 더욱 굳어진 생각이다.
과연 고은은 최영미 시 제목처럼 한국 문단의 괴물인가. 최영미의 책을 출간하겠다는 출판사가 없는 것도 보이지 않는 고은의 영향력이 출판계까지 미치기 때문이다.
영향력 있는 자가 장악한 문단 권력은 이렇게 견고하다. 오징어 게임으로 K 드라마를 만방에 떨친 깐부 할아버지 오영수는 한국 최초로 골든 글러브 남우조연상을 받았다.
뒤늦게 스타덤에 올라 활발히 활동하던 오영수도 성추행으로 고소를 당해 지금 재판 중이다.
예능프로 등 여러 방송에 출연하고 광고도 찍고 했는데 이 사건으로 오영수 또한 한순간에 무대 뒤편으로 사라졌다.
화제 속에 출연하고 있던 연극에서도 중도 하차를 했으니 무대 뒤편으로 사라진 건 맞다.
남자가 술 먹고 여자 가슴 좀 주무를 수도 있는 게지. 이제는 큰일 날 소리다.
학창 시절 동료에게 가한 학폭이 알려져서 운동을 그만 두고 쫓겨난 프로 선수도 있다. 이렇듯 시대는 변했다.
철없던 10대 시절에 생긴 일이라고 아이들은 싸우면서 크는 것 아니냐는 항변은 통하지 않는다. 가해자는 잊을지 모르나 피해자는 평생 그 상처를 안고 살아야 한다.
오영수 나이는 79세, 고은은 올해 90세다. 늘그막에 이 무슨 망신이냐고 할지 모르나 지은 죄를 되돌릴 수는 없다.
구십 살의 고은 시인이 죽기 전에 명예를 회복할 일은 요원해 보인다.
고은에게 돌을 던질 만큼 너는 깨끗하게 살았냐고 묻는다면 할 말은 없다. 탈탈 털 것도 없이 나라고 그동안 살아오면서 한 점 부끄럽지 않은 삶을 살았을 것인가.
도둑질이나 성추행 같은 것은 하지 않았더라도 하자가 많은 오염 투성이 삼류 인생이었다. 그래서 나는 늘 다짐한다. 손가락질 받는 괴물이나 진상은 되지 말자고,,
안 늙을 수는 없겠으나 추하게는 늙지 말자고,, 참회록까지는 아니더라도 얼룩진 내 삶에 대한 반성은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다.
첫댓글 책 소개 감사합니다
궁굼해지네요
네, 홍실님
이 책이 강추하고 싶을 정도로 빼어난 문장은 아니지만
외로웠을 여성 시인의 지난한 과정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 겁니다.
예전 뉴스를 통해 대충 알고 있었는데~
오늘 확실한 전말을 알게 됐네요.
나이 들어 추한 말투..언어..그리고 행동을 하는 경우를 가끔 봅니다.
En 시인은 명성 이라도 있지..내세울 것 없는 분들도..
최 영미 시인의 용기가 가상 합니다.
이 시대 용기 있는 몇 몇의 여성들이 있어 한때 Me Too 광풍이 불었습니다.
문학 계 뿐만 아니라 영화 계,사법 계를 망라 했었죠.
그 때를 계기로 어느 정도 다른 세상을 맞이 했네요.
역시 김포인님은 깨어 있는 문화인입니다.
오래전에 있던 일을 왜 이제 와서 들추냐는 사람도 있지만
저는 늘 상처 받은 약자 입장에서 보려고 노력합니다.
제가 지은 죄가 많아서 그러는지도,,^^
공감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좋은 책 소개
함 읽어보세요.
저는 동네 책방에 갔다가 품절이라 해서
인터넷으로 주문해서 읽었네요.
꽃들이 먼저 알아
-최 영미-
꽃들이 먼저 알아
당신이 날 버리기 전에
내가 먼저 떠나지 않을 거야
나비가 날아든다는 난초 화분을 집 안에 들여놓고
우리의 사랑처럼 싱싱한 잎을 보며 그가 말했다
가끔 물만 주면 돼.
물.에 힘을 주며 그는 푸른 웃음을 뿌렸다
밤마다 나의 깊은 곳에 물을 뿌리고픈 남자와
물이 말라가는 여자의 불편한 동거
꽃가루 날리는 봄과 여름을 보내고
첫눈이 오기 전에 나는 그를 버렸다
아니,화분을 버렸다
소설을 쓴답시고 정원을 배회하며
화분에 물 주기를 잊어버렸다
꽃들이 더 잘 알아.
나비가 날아들지 않는 난초 화분 옆에서
시들시들 떨어진 꽃잎을 주우며 그가 말했다
얘네들이 더 잘 알아.
당신이 날 어떻게 생각하는지
당신이 날 버리기 전에
내가 먼저 시들지 않을 거야
먼저 버린 건, 당신 아니었나?
----------------
최영미 시집에 있는 것 중,
좋아하는 시 올려봅니다.
한국 문단에도 새바람으로 변화가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가희님 좋은 시 올려주셨네요.
당신이 날 버리기 전에 내가 먼저 떠나지 않을 거야
이렇게 꽃들이 먼저 아니 가희님도 더불어 알고,,ㅎ
글 잘 읽었습니다.
고은 시인이 다시 시집 출판한다는 소식에 소심한 분개를 했던 일인으로써
보편적이고 지극히 상식적인 생각에 적극 공감합니다.
아무리 작품으로 승부한다는 문학이지만
여론은 정말 무섭습니다.
처음 그렇게 당당하던 실천문학사가 버티지 못하고 손을 든 걸 보면
세상이 많이 변했다는 것을 실감합니다.
고은시인이 뻔뻔하게 얼마전 시집발간했다는 뉴스를 전해듣고 참 두껍다는 생각을 했건만
차라리 처음 폭로했을 때 잘못을 바로 인정하고
사과문을 발표했다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랬다면 이번에 신간이 나왔을 때 환영까지는 아니더라고
시집 공급을 중단하는 일까지는 일어나지 않았을 듯하네요.
@유현덕 나일먹고 지성인이란 사람이 어찌 옛날사고방식에 빠져서. 성추행해도 어느누구 감히 대항하지 못할거란 차깍에 빠져 결국 노년의 꼴이 참 한심하네요
최시인이
오래전의
아줌마부대
어느여인처럼
투사가 되는 것도
바람직하지는
않습니다.
그냥
누구의 시이던
시는 시일것 같습니다.
혜전님의 의견을 존중합니다.
누구의 시든 시는 시일 뿐이라 생각하는 사람도 있지만
저는 작가의 삶도 작품의 일부라고 생각하네요.
@유현덕 옳은 말씀입니다. 어느분의 작품이던
작가의 삶이
녹아 들어가
있다고 봅니다.
고은시인의 시에는
고은시인의 삶이 녹아있고,
최영미시인의 작품에는
최시인의 삶이
녹아 있겠지요.
그남자 그연식에 갈비탕이나 좋아하시지 왠 ㅇㅇ탕?
용기있는 그녀에게 저번에 이어 이번에도 박수를 보냅니다
옛날 군산여행시 동국사에서 그남자의 흔적을 보았어요
암요. 용기 있는 자는 핍박보다 박수를 받아야 하지요.
고은 시인 입장에서 보면 자기 인생에 먹칠한 최영미가 불편하고 밉겠지만
저는 구석에 앉아 있는 사람과 상처 입은 약자 편에 서려고 노력합니다.
고은 시인이 군산이 고향이긴 하나 저는 군산 여행을 좋아하네요.ㅎ
서정주 시 중에 나 바람나지 말라고 새벽마다 정한수 떠다 놓고 비는 아내였던가 마누라 였던가 그리고 뭐 쫌 있는게 빨리 떠오르지 않네요 저도 좋아 하는 시인 서정주와 기형도 소월 그리고 그리고 많은데 시 라면
우리떼 시 가 입에 짝짝 달라 붙었지요 좋은 글 감사합니다.
운선님 다녀가셨군요.
언급하신 시는 미당의 <내 아내>란 시일 겁니다.
아내가 남편 바람나지 말라고 빈 덕분인지
바람 안 피고 잉꼬처럼 살았다 하데요.
한때 저와 아내가 좋아했던 그 시의 뒷부문에
그녀 먼저 숨을 거둬 떠날 때에는
그 숨결 달래서 내 피리에 담는다는 문구에서 무릎을 쳤더랬습니다.
우리 때 시가 입에만 착 붙었나요. 눈에도 붙고 귀에도 붙었지요.
시인이던 여류시인이던
읽으면
당췌 뜬구름 잡는 시어들 나부랭이 같아
시집 안 펼친게 얼마인지
그래서 내가 메마르고 푸석한 여자인지 모르지만 ....
암튼 예술계 사람들은 미치지 않음 안되는 정신세계가 필요한지(승화) 은근히 문제가 많다는것 잘 알아요
결국 그나물에 그밥 아닐지요
여자 남자가 어디 있습니까
역으로 남자 좋아해서 환장 하는 사람
없다고 못하겠지요
추하고 역겨워서리 퉤퉤
책 제목
*난 그 여자 불편해*
활자만 상상하며 적어보았어오
요즘 시가 뜬구름 잡는 시가 많은 건 인정하나
찾아 보면 입에 착 달라붙는 꿀구름 같은 시도 있답니다.^^
예술하는 사람이 아무래도 자기 내면과 싸우며 창작하는 사람들이라
우리같은 일반인들 눈에는 다소 괴짜로 보이기도 하지요.
사회이든 이곳 카페에서든 다 내 마음일 수 없듯이
다소 불편해도 더불어 살아야 하는 것이 인생 아닐런지요.
용기있는 한 사람으로 인해 흙탕물이자 구정물이 서서히 정화가 시작 되었고 처음부터 뜨거운 응원을 했었습니다.
외로운 투쟁이었지만 뜻은 같으나 말없는 응원군 들이 수천 아니 수만으로 많았을 것 입니다.
앞으로도 계속 응원 하겠습니다. ^^~
입으로는 할 수 있어도 행동으로 옮기는 것은 쉽지 않은 일입니다.
최영미 시인도 그저 좋은 게 좋은 거라고 눈 감고 살았으면
책도 많이 팔리고 더 편한 길을 걸었겠지요.
최시인 님이 수피아 님의 댓글을 읽는다면 더욱 용기가 생길 듯하네요. ㅎ
독자한명 추가요~
울카페에서 내가 좋아하는 분들이
유현덕님 출연에 엄청 좋아해서..
모지?...왜?..했더랬습니다.
틈나면 몇분의 글만 찾아서 읽거든요~~
오늘부터 읽겠습니다.
머리속에 쏙쏙...뭔가 스치던 내용이
머리속에 팍 박히는 느낌?..
알지 못하던 시의세계...
시를 담는 사람의 마음
표현과 행동의 일치등...
감사합니다.
이더님이 너무 과분한 댓글을,,
이왕 쓰는 김에 좀 진지하게 쓰자는 정도의 다짐입니다.
제 글을 읽으시겠다니 금방 지루해질 겁니다.^^
제 글이 많은 사람에게 읽히기보다 읽고 싶은 사람만 읽었으면 하지요.
저도 독자 한 분 추가요.ㅎ
고은이는 노회한 늙은 너구리예요,
아마 성추행도 무관치 않을거예요,
어제 오늘이 아니고 수없는 추문이 들렸어요,
수원시에서도 그를
대접하여 수원 광교에 그의 저택을 마련해주었다가 여론이 좋지않아
회수한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술만 마셨다 하면 젊은 여성 문인을 옆에 앉혀놓고
기생처럼 대했다는 것은 문단의 공공연한 비밀이었다 하더군요.
수원 집필실은 수원시 측에서 사정해서 고은을 모셔온 터라
차마 나가란 말을 꺼내지 못하고 있었는데
광교산 주민들이 당장 떠나라고 날마다 시위를 하는 통에
고은 스스로 나가겠다고 한 걸로 알고 있습니다.
@유현덕 맞아요
그의 문학활동에 도움을 줄려고 제공한것이 오히려. 주민 반발만 샀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