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굴제국의 창시자(로 여겨지는) 바부르는 잘 알려져있듯이 티무르의 후손이었습니다.
정확하게는 티무르-미란샤-술탄 모함마드-아부 사이드 미르자-우마르 샤이흐 미르자-바부르라는 계보죠.
그리고 어머니는 차가타이의 후예였습니다.
정확히는 모굴리스탄의 유누스칸의 외손자였는데, 모굴리스탄은 차가타이칸국의 12대인 두아의 아들(로 여겨지는) 투그루그 티무르가 건국한 나라였죠.
하여간, 바부르는 티무르의 후예이자, 몽골인의 피가 흐르는 사람이었는데, 이 바부르, 몽골인을 싫어했습니다.
자신에게 몽골의 피가 흐르고 있을 뿐만 아니라 부하 중에 몽골인들도 꽤 있었는데, 그 몽골인들을 경멸했고, 또 몽골이라고 불리는 것을 아주 싫어했습니다.
대신에 티무르의 후예라는 점을 늘 강조했었죠.
하지만 몽골이라고 불리는 것을 싫어했던 바부르에게는 안타깝게도, 그가 세운 나라를 우리는 무굴이라고 부릅니다.
무굴이라는 이름은 몰라도 대충 감 잡으셨겠지만 몽골이라는 단어에서 온 것이죠.
정확하게는 몽골을 의미하는 페르시아어 모굴의 변형.
다만 이 무굴이라는 이름은 어디까지나 타칭으로, 오스만제국이 그러했듯이 무굴도 자칭은 따로 있었습니다.
무굴제국의 자칭은 구르카니얀으로, 구르칸이라는 말의 복수형.
이 구르칸이라는 말은 무슨 뜻이냐하니, 몽골어로 사위를 뜻하는 '귀르겐'의 페르시아어 변형입니다.
참고로 사위를 일컫는 페르시아어는 '다마드'(그래서 오스만제국의 재상중에 다마드라는 명칭이 들어간 사람들이 많습니다. 다마드 이브라힘 파샤라던지).
여하튼, 그럼 왜 무굴제국은 스스로를 '사위들'이라는 괴이한 단어로 불렀는가.
그건 바부르가 존경하던 티무르가 '아미르 티무르 구르칸'이라고 불렸기 때문이죠.
그리고 티무르의 이름에 들어간 구르칸이 의미하는 바는, '몽골 황금씨족의 사위'였죠.
...결국 바부르는 몽골인도 싫어하고 몽골이라 불리는 것도 싫어했지만, 남들은 다 몽골이라 불렀고, 실은 자기들도 몽골인의 사위를 의미하는 몽골어로 자신들을 칭하고 있었다는, 슬픈(?) 이야기.
p.s
바부르는 차가타이어(중앙아시아에서 쓰이던 튀르크어)가 모어였고, 차가타이어 문학작품 중 최고로 꼽히는 회상록 《바부르나마(바부르의 책) 》를 남겼습니다.
일본 중앙아시아연구의 대표적 학자인 마노 에이지 교토대명예교수가 이 책을 일본어로 번역해서 읽어본 적이 있는데 꽤나 재미있습니다.
경건한 무슬림으로서의 바부르, 와인을 좋아하는 바부르, 맥주를 싫어하는 바부르, 소년에게 반해서는 길거리를 싸돌아다니는 바부르 등, 입체적인 인물로서의 바부르를 볼 수 있죠.
가장 재미있는 부분은 무함마드 샤이바니 칸 욕하는 부분. (...) 물론 농담입니다.
첫댓글 바부르가 왜 그리 몽골을 싫어했나요?
왜 바부르가 몽골을 혐오했는지, 그 정확한 이유는 저도 모르겠네요.
다만 바부르에 따르면 자신을 도우러 온 몽골군이 적과 싸우지는 않고 오히려 바부르의 백성들을 약탈했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이에 대해 바부르가 이런건 예외적인게 아니라 이 비열한 놈들의 일상이며, 이놈들은 적에게 이기면 적을 약탈하고 적에게 지면 아군을 약탈한다고 깝니다.
그리고는 몽골족이 천사의 일족이라해도 사악한 종자요, 설령 몽골이란 이름을 금으로 써도 혐오스럽다고 적고 있죠.
압바스조의 멸망 때문에 무슬림이 몽골을 싫어한다는 썰도 있는데 티무르를 보면 그런 것 같진 않고, 그냥 바부르의 개인적 경험 때문일 듯 하네요.
14세기 중반 차가타이 울루스가 두 세력으로 분열되어 이때 천산 산맥 이북의 모굴리스탄(지금의 중가리아)에 유목하던 세력과 트란스옥시아나에 정착한 두 개의 세력이 성립합니다. 전자를 대개 모굴리스탄 칸국이라 하고 후자를 울루스 차가타이라 합니다(당대의 표현은 아니고 현대 학계의 통칭). 근데 전자는 후자에 대해 전통적인 생활 방식을 버린 겁쟁이란 식으로 비난하고, 후자는 전자에 대해 초원의 도적떼들이라고 비난했는데, 아마 바부르 역시 이 영향을 받은 듯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