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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아아아! 크하하하하하!!!”
밤이 깊다 못해 새벽을 목전에 두고 있는, 인적이 끊기고 짙은 안
개마저 깔린 회하촌의 북쪽 강변에서 크지는 않았지만 또렷하게
각인(刻印)될 고함소리가 들리고 있었다. 워낙 깊은 밤에만 들리
는 소리인지라 벌써 한 달째 계속되는 저 거친 고함소리를 알고
있는 사람은 단지 강변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바위에 앉아 염
려의 눈빛으로 바라보고 있는 환야와 청하뿐이었다.
약 일각 정도 더 지속된 고함소리가 멈추자 한숨을 내쉰 환야가
말을 했다.
“후, 이제 끝난 것 같구나.”
“흑! 매일같이 불쌍해 죽겠어요.”
눈시울을 붉히며 말을 하는 청하의 시선은 소리가 들려온 곳에서
잠시도 떠나지 않았다.
“어쩔 수 없지. 소문이 우리 앞에서 아무리 태연한 척해도 그런
몸에 절망을 하지 않을 수 는 없겠지. 어쩌면 저렇게 소리를 지
르며 자신을 채찍질 하는 지도 모르겠다. 그만큼 망가진 손을 회
복시키는 것이 어렵다는 말이 아닐까?”
벌써 한달을 보아왔지만 저 고함성은 들으면 들을수록 마음을 아
프게 했다. 그들이 이런 소문의 볼 수 있었던 것은 한 달 전 어느
날 밤이었다.
부목을 제거하고 붕대를 푼 소문이 가장 먼저 한 것은 늘어질 대
로 늘어지고 힘이 들어가지 않는 팔의 근력을 회복하는 것이었다.
소문은 주병진의 염려대로 결코 서두르거나 무모한 시도는 하
지 않았다. 비록 느리기는 했지만 조금씩 그리고 차근차근 근력(
筋力)을 키워 나갔다. 혹시나 팔에 무리를 줄 것 같아서 부담이
덜하면서도 효과는 큰 물속에 들어가 매일 같이 팔을 움직이며
굳은 근육을 풀었고, 꾸준한 수련을 통해 힘을 키워나갔다. 그렇
게 하기를 두 달, 상처를 입었던 팔이라고는 보기가 힘들 정도로
정상으로 돌아온 팔을 보며 소문은 물론이고 환야와 청하 또한 크
게 기뻐했다. 허나 그런 기쁨도 잠시, 여전히 주먹조차 쥐지 못
하는 손을 보며 한순간 느꼈던 기쁨은 금방 사그라졌다.
팔의 힘을 키우면서 제대로 움직이지 않는 손을 회복시키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지만 나날이 회복해 가는 팔과는 달리 손의
회복은 더디기만 했다. 그렇게 노력을 하고 신경을 썼지만 겨우
손가락의 절반이 굽혀지는데 만족해야만 했다. 그래선 무공은 고사
하고 정상적인 생활조차 힘들 지경이었다. 환야와 청하는 걱정이
되어 어쩔 줄을 몰라 했지만 소문은 전혀 동요하지 않았다. 그저
담담한 미소를 지으며 오히려 걱정하는 이들을 달래줄 정도였
는데… 한 달 전 새벽, 아무도 몰래 강변을 찾은 소문을 보기 전
까지는 정말 그런 줄만 알았다.
“아함~”
잠결에 목이 말라 눈도 제대로 뜨지 못하고 자리에서 일어난 환
야는 물을 마시기 위해 윗목에 놓여진 대접을 찾았다.
“카~ 아! 시원하다. 응?”
대접에 담긴 물을 단숨에 들이 킨 환야는 문득 허전한 느낌에 주
위를 살펴보았다. 어디를 나갔는지 한참 피곤하게 잠을 자고 있
어야할 소문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청하의 집에는 방이 두개가 있었는데 이전에 잡동사니를 쌓아 두
던 그중 작은 방은 청하가 쓰고 다른 하나는 환야와 소문이 함께
썼다. 물론 소문이 부목을 제거하기 전에는 환야 대신 소문의
상세를 돌봐야 하는 청하가 같이 썼지만, 소문의 상세가 나아진 요
즘은 소문의 주장으로 청하와 환야가 자리를 바꿨다. 그러나 주
변에 누가 있으면 잠을 자지 못한다고 부득불 우긴 환야의 억지
에 기가 막히면서도 어쩔 수 없었던 소문은 환야에게서 멀리 떨어
져 방 한 구석에서 자야만 했다. 그런데 지금, 하루 종일 수련
을 하느라 지친 소문이 세상을 모르게 자고 있어야 하는데 방안
그 어디에도 소문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이 밤중에 어딜 갔지. 자연이 그를 부른 것인가? 헤헤, 이제는
혼자서 해결을 할 수 있으니 알아서 조용히 나가는군.”
환야는 소문이 잠시 생리적(生理的) 현상을 해결하러 간줄 알며
키득거렸다. 그러나 환야의 예상과는 달리 꽤 오랜 시간이 지나도
밖으로 나간 소문은 돌아오지 않았다.
“흠, 꽤 늦는데 무슨 일이라도… 혹시….”
갑자기 무슨 생각이 들었는지 환야는 재빨리 방문을 나섰다. 그리
곤 작은 방에서 자고 있는 청하를 깨웠다. 몇 번의 부름이 있고
인기척이 나더니 급히 옷을 챙겨 입은 청하가 방문을 나섰다.
“무슨 일이세요?”
“험, 혹시 여기 소문이 들어왔나 해서….”
졸린 눈으로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 자신을 바라보는 청하에게 조
심스레 말을 건네는 환야의 안색이 붉게 물들었다.
“아, 아니요. 소문오라버니가 왜 제방에 와요? 큰 오라버니도
참….”
청하의 말에 약간은 안도하는 모습을 보이던 환야가 갑자기 안색
을 굳혔다.
“이런, 이쪽 방에도 없고 그 방에도 없다면 어딜 간 것이지?”
잠자다 말고 무슨 장난이냐는 듯 환야를 바라보던 청하가 소문이
없어졌다는 환야의 말에 두 눈을 동그랗게 뜨고 깜짝 놀랐다.
“호, 혹시!”
“설마! 쓸데없는 생각은 하지 말고 나랑 찾아보자꾸나. 이 근처에
있겠지.”
환야는 불길한 생각을 하고 있는 청하를 잡아끌고 집 주변을 돌
아다녔다. 허나 한참을 돌아다녀 봐도 소문은 찾을 수 없었다.
“무슨 일이 있나 봐요. 아니면 이 밤중에 없어질 이유가 없잖아
요.”
“설마 무슨 일이야 있겠어. 그 몸을 해 가지고도 살아난 소문이
야. 잠시 어디 다녀올 데가 있나보지.”
청하는 연신 울먹이며 말을 했다. 그런 청하를 달래는 환야의 목
소리 또한 은근히 떨리고 있었다.
“가만!”
혹시나 하는 마음에 발걸음을 강변으로 돌리던 환야가 발걸음을
멈췄다.
“왜 그러세요.”
“가만. 조용히 해봐!”
자신을 부르는 청하에게 조용히 하라는 신호를 한 환야는 귀를
기울였다. 약하긴 했지만 어디선가 고함소리가 들리고 있었다.
“청하야, 저 소리 들려?”
“소리요? 글쎄요.”
환야의 말에 잠시 귀를 기울이던 청하는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자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니야. 강 쪽에서 분명히 고함 소리가 들려. 청하에겐 거리가
멀어서 안 들리는 것뿐이야. 혹시 모르니 가보도록 하자.”
계속해서 들려오는 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그들이 도착한 곳은 맨
처음 사경(死境)을 헤매던 소문을 발견한 곳이자 소문이 매일 같이
찾아와 몸을 회복시키려는 노력을 하는 곳이었다.
“누, 누굴까요?”
그제 서야 고함소리가 들은 청하가 두려운지 환야의 팔소매를 꼭
잡으며 말을 했다.
“글쎄, 아직은 어두워서 잘 보이지가 않아. 조금 더 가까이 가보
자.”
강을 향해 가까이 가면 갈수록 고함소리는 더 커졌다.
“사람, 사람 이예요!”
그랬다. 비록 밤이기는 했지만 희미한 불빛을 내뿜고 있는 달빛은
강에서 움직이고 있는 물체가 사람임을 알아볼 수 있게 해 주었다.
“소문이다….”
무공을 익혔기에 청하보다 월등히 밝은 시력을 지닌 환야가 강에
서 미친 듯이 소리를 지르고 있는 사람이 소문임을 알아볼 수
있었다.
“예? 소문 오라버니라구요! 그런데 저기서 무엇을 하는 것이지
요?”
환야의 중얼거림에 깜짝 놀란 청하가 재빨리 반문했지만 환야는
아무런 대답도 없이 소문의 행동만을 응시하고 있었다.
“아아아아! 으아아아!”
이제는 귓가에 또렷하게 고함소리가 들렸는데 소문은 고개를 강
에 처박고 있었다.
‘후, 그랬구나! 그랬어….’
“도대체 저게 무엇 하는 것이지요?”
환야는 고개를 들어 하늘을 바라보며 크게 한숨을 쉬었다. 그리곤
입을 열었다.
“너나 나나 참 바보다. 참, 바보야.”
“예?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이 자신을 바라보는 청하에게 시선을 던진
환야의 눈에는 눈물이 고여 있었다.
“소문이는 무인이야. 그것도 실로 막강한 무공을 지니고 있는, 그
런데 하루아침에 그 무공을 사용하지 못한다고 하니 실로 미칠
노릇이겠지.”
“하지만 몸은 점점 회복하고 있잖아요. 그리고 항상 염려하지 말
라고 입버릇처럼 말했는데….”
“크큭, 말이야 그렇게 했지만 그의 내심은 어떨까? 과연 그가 말
한대로 태연할까? 천만에 아마 속이 타들어가다 못해 재가 되었을
것이야. 그런 그의 내심도 모르고 그저 웃고 떠들어댄 내가 한심
할 지경이야. 소문이 저리 힘들어 할 줄은 꿈에도 생각을 하지
못하고….”
환야가 스스로를 자책하는 동안에도 소문의 고함은 계속 됐다.
“그랬군요… 그래서… 우리를 안심시키려고 저렇게 밤에 몰래 나
와 운동을 하고 있었군요.”
“아니, 운동하는 게 아니야. 저건 운동을 하는 것과는 달라. 소리
들리지? 소문이 지르는 고함소리! 소리가 들릴 때 소문이 하는
행동을 살펴봐. 고개를 강에 처박고 있어. 저건 운동이 아니라 말
그대로 고통에 몸부림치는 거야. 자신의 의지와는 다르게 회복이
안 되는 것에 답답함! 그로인해 점점 절망에 빠지는 자신의 모
습을 견딜 수 없어서 지르는 고통의 몸부림이야. 저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도저히 견딜 수 없는… 그 마저도 누가 들을까 강에
머리를 처박고 지르는… 바보 같이!”
“흑!”
청하는 더 이상 참을 수 없었는지 울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청하
를 다독거리는 환야의 눈에서도 눈물이 흐르고 있었다.
그날 밤 이후, 밤에 소문이 사라지면 환야와 청하 또한 항상 이
자리에 나와 그가 지르는 소리를 들으며 마음으로나마 고통을
나누었다. 그렇게 한달이 지나고 오늘도 어김없이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그런데 이상하지 않아요? 요즘은 고함소리가 평소와 조금 다른
듯한 느낌이 들어요.”
“응? 뭐가? 난 그다지 느끼지 못하겠는데.”
“아니요. 뭔가 이상해요. 평소와는 다른….”
계속되는 청하의 중얼거림에 고개를 갸웃거리며 주의 깊게 고함
소리를 듣던 환야도 말을 그리 들어서 그런지 평소와는 무언가
다른 느낌을 받을 수 있었다.
“그러고 보니 조금 다른 것 같기도 한데….”
하지만 그것이 무엇인지는 아직 정확하게 알 수 없었다. 그런데
둘이 대화를 나누는 동안 어느새 강에서 빠져나와 대충 물기를
제거한 소문이 그들이 있는 곳으로 다가왔다. 재빨리 고개를 숙여
몸을 숨긴 이들을 보며 소문은 큰 소리로 부르기 시작했다.
“그렇게 숨을 것, 뭣 하러 나온 게요? 어서 나오시구려. 청하도
나오고.”
소문이 그들이 숨은 바위를 보며 큰 소리로 말을 했지만 그들은
조금도 움직이지 못했다.
“쯧쯧, 어서 나오시오. 이 겨울에 그러고 있다가 몸 상하기 일쑤
요. 어서요!”
소문이 몇 번을 재촉을 하고나서야 환야와 청하가 쭈뼛거리며 걸
어 나왔다.
“어, 어떻게 알았나?”
환야가 무안한 웃음을 지으며 물었다.
“그럼, 내가 모를 줄 알았소. 내 이놈의 빌어먹을 팔과 손이 문제
긴 하지만 이미 예전의 내공을 되찾은 지 오래요. 이 정도 거리에
누가 있는지도 모를 내가 아니외다.”
“허, 그런 줄도 모르고 나와 청하는 매일 같이 덜덜 떨며 자네를
지켜보았으니. 진작 말을 했으면 이러고 있지도 않았을 것을….”
“누가 그러라고 했습니까?”
“우린 오라버니가 무안해 할까봐 그랬지요.”
청하가 약간은 화난 듯한 말투로 쏘아 붙이자 활짝 웃음지은 소
문이 재빨리 대답을 했다.
“하하, 나도 청하나 형님이 무안해 할까봐 그런 것이지. 일부런
그런 것은 아니야.”
“그런데 지금에야 일부러 말을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여태까지
모른 척 하다가.”
“이제는 밤에 나와 이럴 필요가 없어져서 그랬습니다.”
“……?”
환야가 일순 이해를 못하고 아무런 말을 못하자 청하가 재빨리
질문을 했다.
“그게 무슨 소리예요? 그럴 필요가 없다니?”
“…….”
“그럴 필요가 없다니요? 답답해요!”
청하의 재촉에 소문은 대답대신 양팔을 들어 올렸다. 소문의 행동
에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이 바라보는 두 사람의 앞에서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지금껏 겨우 움직이고 약간 움직이는 것이 전부인
, 제대로 쥘 수조차 없었던 소문의 손가락들이 점점 안으로
모아지더니 마침내 바위 같이 강건(剛健)한 주먹을 이루어 낸 것이었다.
“그, 그게…!”
“오라버니!”
“하하! 아직은 별다른 힘이 들어가진 않지만 이제는 마음먹은 대
로 주먹을 쥘 수도 있을 것 같다.”
소문이 이마에 흐르는 땀을 닦으며 활짝 웃었다.
“도대체 언제부터 주먹을 쥘 수 있게 되었는가?”
“얼마 안됐어요. 사흘 전부터 겨우 쥘 수 있었는데 처음에 그렇게
힘들던 것이 하루가 지나고 이틀이 지나자 점점 자연스럽게 쥐
어지고 있는 거지요. 물론 아직도 이렇게 땀이 나지만 말입니다.
하하!”
“잘됐네. 잘됐어. 정말 다행이야.”
“축하해요. 너무….”
“하하! 너무 그러지들 말아요. 이제 겨우 시작인데. 그리고… 청
하야 여자라고 친다지만 형님은 그 눈물이나 닦으쇼. 남자가 되
가지고는 쯧쯧!”
“흥, 원래 남자가 흘린 눈물이 얼마나 가치가 있는 것인지 모르는
구만. 여자에게 눈물은 흔하디흔한 것이지만 대장부의 눈물은 그게
아니지!”
“알았소이다. 내참!”
소문이 약간은 겸연쩍은 미소를 지으며 말을 했다.
“그나저나 그럼 그동안 자네가 이곳에 온 것이 괴로워서 그런 것
만은 아니란 말인가?”
“처음엔 가슴이 답답하고 울화통이 치밀어 소리나 마음껏 지르자
는 심산으로 왔는데 그렇게 소리를 지르며 손가락을 움직이니
그냥 움직이는 것보다 조금씩 더 움직이고 한결 수월해 지는 것
이 아닙니까? 그래서 대낮에 고래고래 소리를 지를 수도 없고
해서 형님도 알다시피 밤마다 이곳에 나와 소리를 지른 겁니다.
그리고 이렇게 주먹도 쥘 수 있게 되었고… 참 황당한 일이지
만 말입니다.”
“에휴! 우린 그것도 모르고….”
그 동안 추위에 떨며 소문을 지켜본 것이 억울한지 환야가 땅이
꺼져라 한숨을 쉬었다.
“전 그렇게 생각 안 해요. 한번도 고생한다는 생각을 하지 않았어
요. 우리가 그렇게 마음 졸이며 지켜본 것이 도움이 되었을 거
예요.”
청하가 여전히 눈물을 흘리며 말을 했다.
“그럼, 청하와 형님이 항상 지켜보고 있어서 내가 힘을 내 수 있
었던 것이지. 어쩌면 포기 했을 수도 있었는데… 사실 너무 힘들
었거든.”
“하하, 이러면 어떻고 저러면 어떤가? 이렇게 자네의 몸이 회복되
었다는 것이 중요한 것이지. 이런 날 술이 빠질 수는 없지. 자
이제 집에 가세나. 가서 한잔 하세나.”
“술이요? 좋지요. 그럼 오랜만에 한번 마셔 볼까요? 하하!”
소문과 환야는 서로를 마주보며 박장대소를 했다.
‘그랬군요. 제가 조금이나마 힘이 될 수 있었다는 것이 얼마나 기
쁜지 모른답니다.’
앞서 걸어가는 이들을 보는 청하의 입에는 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신이여! 감사합니다. 보잘 것 없는 계집의 간절한 기도를 들어주
셔서….’
마침내 주먹을 쥘 수 있게 된 소문은 물속에 들어가 운동을 하는
것에 더해 한 가지 수련을 더 하기 시작했다. 회하촌의 북쪽을 끼고
흐르는 강의 주변에는 절로 탄성을 자아내게 하는 아름다운 경치
가 펼쳐져 있었다. 특히 깎아지른 듯한 절벽들이 그중 장관이었는
데 보기만 해도 위압감이 들고 움츠리게 되는 절벽들이 소문의 또
다른 수련지(修練地)가 되었다.
오전 내내 물속에 들어가 간단한 무공 등을 시전하며 팔의 유연성
과 근력을 키우다가 오후가 되면 맨손으로 절벽을 오르기 시작했다.
정상적인 사람은 물론이고 무공을 익힌 자라도 쉽게 오르지 못
할 험할 절벽을 오르는 소문은 그야말로 필사적이었다. 혹시나 몸
의 상태가 악화될 것을 염려한 환야와 청하가 염려하여 거듭 말
리고 걱정을 했지만 미친 듯이 절벽을 오르는 소문을 막을 수는 없었다.
망가졌던 팔을 회복시키는데 두 달, 그리고 단지 주먹을 쥐는 데
허비한 시간이 또 한달이었다. 물론 시간이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한달이 아니라 1년이 걸려도 완벽하게 회복만 된다면 그다지
신경이 쓰이지 않을 것이었다. 하지만 소문에게는 이대로 시간만
보내기엔 생각만으로도 화가 치밀어 오르는, 지금 당장이라도 달려
가 해결해야 할 일이 있었다.
당가, 특히 자신을 이리 만들고 철면피를 죽인 당소희라는 계집에
게 돌려줘야 할 빚이 있건만 몸이 정상이 아닌 지금은 아무런 일도
할 수 없어 답답하기만 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소문의 마음을
급박하게 만드는 것은 시간이라는 마수에 걸린 자신의 마음이었다.
시간이 지나고 이제 면피를 생각하는 시간보다 그렇지 않은 시
간이 많아지면서 당소희를 찢어 죽여 자신과 면피의 복수를 해야
한다는 의지가 점점 약해지는 것이었다.
그 당시 당가의 입장에서 보면 아무것도 준비하지 못한 자신을 첩
자로 오인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고, 그런 점을 생각하지
못하고 단순하게 행동한 자신의 실수가 더 컸을 수 도 있다는 생각
이 들기도 했다. 하지만 그럴 때마다 날개가 찢기는 고통에 울부짖
으며 결국은 처참하게 목숨을 잃은 철면피를 생각하며 약해지는
자신의 마음을 다잡았다. 그러나 과연 그것이 언제까지 이어질지는
소문도 장담을 하지 못했다. 이러다가는 당소희를 눈앞에 두고도
몇 마디 말로써 용서를 할지도 모른다는 위기감도 들었다. 절대로
그럴 수는 없는 문제기에 혹시라도 그런 마음이 자리를 잡을까
두려워한 소문이 하루라도 빨리 몸을 회복하여 당소희를 찾아가
고자 하는 강박관념(强迫觀念)에 사로잡히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자신의 발아래 유유히 흐르는 강물을 바라보며 수천 년을 한 자리
에서 버티고 있던 대자연은 한 인간의 도전을 쉽사리 허락하지
않았다. 더구나 그 인간이 정상적인 몸도 아니고 손아귀에 한줌 힘
도 지니지 못한 인간이라면 두말할 나위가 없었다. 하루에 두시진
씩, 온몸을 땀으로 목욕을 해가며 몸에 남아 있는 모든 힘을 끌
어다가 노력을 해 보았지만 일주일 동안 소문이 올라간 거리는
겨우 삼장에 불과했다. 그나마도 다리의 힘이 받쳐 주었기에 망정이
지 그렇지 않았다면 채 일장도 전진하는 것이 힘들었을 것이다.
“아아아아아아!!!”
힘이 없어 도저히 버티지 못하고 강물로 떨어져 힘겹게 강가로 기
어 나온 소문은 자신이 지를 수 있는 최대한의 목소리로 고함을
질렀다. 밤마다 강물에 고개를 처박고 지르던 고함과는 그 차원이
다른 함성에 주변의 공기가 거대한 울림을 보였다.
‘아! 불쌍한 분! 차라리 내 손이 저리 되었다면 좋으련만….’
모래사장에 누워 소리를 지르던 소문은 얼굴하나 가득 염려의 표
정을 지으며 자신에게 다가오는 청하를 발견하곤 누였던 상체를
일으켜 세웠다. 다가온 청하가 그 옆에 조용히 앉았다.
“추운데 또 뭣 하러 왔어. 매일 같이 이렇게 찬바람을 쐬니 감기에
걸리지.”
“춥기는요. 오라버니는 한 겨울에도 아침마다 강물에 들어가 수련
을 하잖아요. 이 정도는 추위도 아니지요. 콜록!”
웃으며 말을 하던 청하가 말미에 기침을 했다.
“이구! 청하하고 나하고는 상황이 다르잖아. 나야 몸 안의 내공이
추위를 막아 주니 이 정도 추위야 아무렇지도 않고, 물속은 오히려
따듯해. 봐! 벌써 옷이 다 말랐잖아.”
과연 소문이 말대로 강물에서 나올 때만해도 물이 줄줄 흘러내리
던 옷엔 물기한점 남아 있지 않았다.
“하지만 청하는 그렇지 못하잖아! 벌써 며칠째 그렇게 기침을 하고
있으면서….”
“괜찮아요. 약을 먹고 있으니 곧 괜찮아 지겠지요. 그렇지 않아도
큰 오라버니가 약을 지으러 인술원에 갔어요.”
“응? 형님이? 어제도 약을 지어오지 않았었나, 그런데 또 갔단 말
이야?”
어제 분명히 손에 약 꾸러미를 들고 있던 환야의 모습을 기억하기
에 소문이 약간은 의아하다는 듯이 말을 하자 연신 기침을 하던
청하가 손으로 입을 가리고 웃음을 지었다.
“호호호, 점심때가 지나도 제가 기침을 하자 효과 없는 약을 지어
주었다고 노발대발(怒發大發)하며 뛰어 가셨어요.”
“흐이구! 그러다 의원하나 잡겠다. 약을 먹었다고 금방 쾌차를 하
는 사람이 몇이나 된다고… 조금 두고 볼 것이지. 애들도 아닌데
그리 보채기는… 쯧쯧쯧,”
“콜록! 콜록!”
소문의 못 마땅한 얼굴을 보며 웃고 있던 청하가 갑자기 가슴을
잡고 심하게 기침을 하기 시작했다.
“이런, 괜찮은 거야!”
“예. 괜찮아요. 콜록!”
대답을 하면서도 계속해서 기침을 하는 청하의 모습을 본 소문이
벌떡 일어났다.
“안되겠다. 일어나서 집에 가도록 하자. 이러단 내가 아니라 네가
큰일 나겠다.”
“아, 아니예요. 괘, 괜찮… 콜록! 괜찮아요….”
“괜찮긴 뭐가 괜찮아! 어서 일어나. 이런, 열도!”
억지로 청하를 일으켜 세우던 소문은 청하의 손에서 느껴지는 열
기(熱氣)에 깜짝 놀라 재빨리 이마에 손을 가져갔다. 마치 화로(
火爐) 속에서 뿜어내는 열기처럼 청하의 이마에서도 뜨거운 열기가
느껴졌다.
“이래도 고집을 피우려고 하는 것이냐! 빨리 업혀라.”
“아니예요.”
“아니긴! 시키는 대로 해!”
소리를 질러 청하를 나무란 소문은 기운이 없어 휘청거리는 청하
를 들쳐 없고 집으로 뛰기 시작했다.
‘제길, 나 같은 놈 때문에 매일 같이 신경을 쓰고, 걱정을 하다가
결국 병을 얻고 말았구나!’
짐짓 소리를 지르며 청하를 나무라긴 했지만 청하를 업고 뛰는 소
문의 눈가에 어느새 물기가 어렸다. 어려서 부모님을 잃고 할아버
지와 지내온 소문은 할아버지가 나름대로 신경을 쓰긴 했지만(?)
이렇다할 사랑과 정성을 받아보지 못했다. 중원에 와서도 사귀게
된 것이 대부분이 남자이고 보면 남자와의 우정과는 또 다른 무
언가를 은연중 갈망하게 되었다. 물론 제갈세가에서 잠시 머무를
때에는 남궁혜가 자신에게 많은 정성을 기울인다는 것을 알고는
있었지만 그때는 자신에게 정혼녀라는 존재가 있었다. 오히려 그런
정성이 부담으로 다가왔는데 정혼녀라는 제약이 사라진 지금 정에
굶주려 있는 소문에게 가장 근접한 사람은 청하였다. 심한 부상
을 입은 자신을 위해 며칠 밤을 꼬박세우며 병구완을 하고 부모
가 병이 걸려 누워도 웬만한 효자들이 아니면 꺼려 한다는 대소
변을 청하는 불평한마디 없이 다 처리해 주는 등 제대로 알지도
못하는 자신을 위해 온갖 정성을 다 기울였다. 그런 청하의 모습
에 당연히 고마워하고 내색은 하지 않고 있었지만 은근한 사랑을 느
끼고 있었다. 다만 아직 그 쪽으로는 경험이 일천(日淺)한 소문
이지라 그것이 사랑인지 단순히 고마워하는 마음인지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을 뿐이었다. 그에 반해 청하는 이미 자신의 마음을 확실하게
알고 있었다.
‘따뜻하다. 참, 따뜻해! 오라버니의 마음도 이처럼 따뜻할까…?’
전신에 느껴지는 포근한 열기가 자신에게서 나는 열인지 소문에게
서 느껴지는 것인지 구별하지 못한 청하는 소문이 미처 집에 도
착하기 전에 정신을 잃고 말았다.
억울하게 쳐다보는 주병진에게서 또 다시 새로운 약을 얻어낸 환
야가 콧노래를 부르며 집에 왔지만 그를 반기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소문은 둘째 치고 몸이 안 좋은 청하라면 틀림없이 집에 있
을 줄 알았지만 집은 비어 있었다.
“흠, 또 소문이에게 간 것인가?”
조용히 중얼거리는 환야의 안색은 과히 좋지 않았다.
“그 몸을 해가지고서는… 응?”
새로 지어온 약을 막 내려놓으며 안색을 찌푸리던 환야는 저 멀리
서 집으로 급히 다가오는 신형 하나를 볼 수 있었다.
“빠, 빠르다!”
엄청난 속도와 함께 가공할 기운이 밀려오고 긴장한 환야의 손에
는 어느새 빼어들었는지 검 하나가 들려 있었다.
“뭐야! 소문이잖아!”
순식간에 자신과 거리를 좁히는 신형의 주인공이 소문임을 알아본
환야는 긴장이 탁 풀리며 들고 있던 검을 집어넣으며 어처구니없는
표정을 지었다.
“뭐 저런 황당한 경공이 있어!”
수많은 무공을 접해보고 익혔다고 자부하던 환야도 절로 감탄을
금치 못하는 경공, 출행랑을 펼쳐 순식간에 집에 도착한 소문은
마당에 서 있는 환야를 보며 몹시 반가와 했다.
“약을 지으러 가신다면서 벌써 도착을 했군요. 암튼 잘됐습니다.
청하가 몸이 많이 아픈 듯 합니다.”
“저런, 내 이럴 줄 알았다. 병이 났으면 방안에서 몸조리나 할 것
이지 그러기에 누가 돌아다니라더냐!”
많이 아프다는 소문의 소리에 불쑥 화가 난 환야가 대뜸 소리를
질렀지만 이미 기절한 청하가 그 소리를 들을 리가 만무했고 대답
또한 할 수 없었다.
“허, 정신까지 잃어버렸구나! 일났네. 일났어. 암튼 자네는 청하를
방에 누이고 살펴보고 있게. 난 의원을 데려 오겠네.”
“알겠습니다.”
소문이 대답을 하기도 전에 환야의 몸은 벌써 움직이고 있었다. 집
을 나서 인술원이 있는 남쪽으로 뛰어가는 환야는 소문에 비해
그다지 손색이 없는 실로 빠른 움직임을 보이며 사라졌다.
“흠, 역시… 예상은 하고 있었지만 일신에 지닌 무공이 실로 범상
치 않구나!”
비록 형제의 예는 맺었다지만 소문과 환야는 서로에 대해 아는 게
거의 없었다. 지금 의형제가 되었으면 그만이지 과거에 그가 어떤
사람이고 어찌 지냈다는 것을 안다는 것은 별로 쓸모가 없다고
생각하며 그다지 중요하게 여기지 않는 둘만의 성격도 작용하기
는 하였지만 특히 당가에서 당한 일은 웬만하면 거론하고 싶지
않은 소문의 의지가 강해 서로의 과거에 대해선 은연중 모른 척
하게 되었다. 그리고 그건 청하 역시 마찬가지였다.
“아참, 내가 지금 무슨 생각을…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지.”
순식간에 사라진 환야를 보며 잠시 딴 생각을 하던 소문은 여전히
자신의 등에 업혀 있는 청하에게 생각이 미치자 허겁지겁 방으로
들어갔다.
“흠….”
“어떻습니까? 별다른 이상은 없겠지요?”
소문은 고개를 갸웃거리는 주병진을 보며 답답하다는 듯이 질문을
했다. 그러나 주병진은 계속해서 청하를 살필 뿐이었다.
“후, 쯧쯧, 어쩌다 이리 되었습니까? 환자가 이 지경이 될 때까지
나두시다니….”
한참이 지난 후에 주병진의 입에서 나온 말은 환자를 방치(放置)한
환야와 소문에 대한 질책이었다.
“많이 좋지 않은 것입니까?”
“좋지 않지요. 좋지 않은 정도가 아니라 아주 심각합니다.”
“…….”
소문이 입을 다물고 멍하니 청하만 바라보자 환야가 나섰다.
“치료는 할 수는 있겠지요? 있으리라 믿습니다.”
“그, 그게….”
“그 토록 심한 상처를 입은 소문이도 살리지 않았습니까? 이정도
감기야 당연히 치유할 수 있겠지요.”
주병진에게 건네는 환야의 말 한마디 한마디엔 그가 도저히 거스
를 수 없는 힘이 실려 있었다.
“고, 고쳐야지요. 고칠 수 있을 겁니다.”
서늘한 기운이 등줄기를 타고 흐르는 느낌을 받으며 얼떨결에 대
답을 한 주병진은 울상이 되었다.
“환자의 상태가 몹시 좋지 않습니다. 겉으로 보기엔 그저 단순함
감기로 보이나 실상은 그렇지 않습니다.”
“그렇지 않다니요? 무슨 다른 병이라도 얻은 것입니까?”
“다른 병을 얻었다기 보다는 환자의 몸에 이상이 있다는 겁니다.”
“제길, 그게 그 말이지 뭐란 말이오! 몸에 이상이 있으니 이리 사
경을 해매는 것 아니겠소? 그래서 살릴 수 있다는 것이오. 살리지
못하겠다는 것이오!”
갑자기 변한 소문의 태도에 환야도 놀라고 덩달아 주병진도 깜짝
놀랐다. 지금껏 예의로써 주병진을 대하던 소문의 몸에선 어느새
살기가 피어오르고 그 기운은 환야가 주병진을 협박했을 때 조금
씩 보여준 기운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였다. “사, 살릴
수 있습니다. 살리겠습니다.”
자신에게 쏘아져 오는 엄청난 살기를 피부로 느낀 주병진은 제정
신이 아니었다. 그저 살리겠다고 고개만 끄덕이고 있었다.
“자자, 진정하시고 환자를 보도록 하십시오. 자네도 그 기운을 걷
게. 의원님이 힘들어하시네.”
이쯤에서 되었다고 생각한 환야가 나서 주병진을 달래고 소문을
진정시켰다. 그제야 살기를 걷고 한발 뒤로 물러선 소문은 마지막
한마디를 하는 것을 잊지는 않았다.
“제가 너무 흥분을 했군요. 하지만 꼭! 살려야 하는 사!람!이라서
말입니다!!”
“…….”
뭐라 대답을 하지 못한 주병진은 다시 청하를 살펴보기 시작했다.
좀 전과는 비교조차 할 수 없이 신중한 모습이었다. 잠시의 시간이
지나고 한결 마음의 안정을 찾은 주병진이 입을 열었다.
“우선 청하가 앓고 있는 병은 감기입니다. 하지만 아까 제가 말씀
드렸다시피 청하가 앓는 것은 단순한 감기가 아닙니다.”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원래 감기라는 놈은 건강한 사람이 걸리면 그저 무리란 일을 피
하고 휴식을 취하면 저절로 치유가 됩니다만 몸이 약한 사람에겐
더 없이 무서운 병이 될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지금 청하는 몸
이 약한 정도가 아니라 아주 형편없는 지경입니다. 그러니 처음엔
평범했던 감기가 무서운 병으로 돌변해 버린 것이지요.”
“답답합니다. 그래서 고칠 수 없다는 말씀입니까?”
“만약 조금만 더 늦게 발견하여 폐(肺)에까지 그 기운이 번져 이상
이 생겼다면 고치지 못했겠지만 다행이 그 정도는 아닌 듯싶습니다.
확신은 못하겠지만 치유의 가능성이 높다는 것은 말씀드릴 수
있겠습니다.”
이제 완벽하게 자신을 추스린 주병진이 의원 본연의 자세로 돌아
가 담담하게 말을 했다.
“우선은 감기보다 약해진 몸을 보호하는 처방을 써야겠습니다. 몸
이 말을 할 수 없을 정도로 약해져 있으니 이대론 다른 처방을
해도 소용이 없습니다.”
“그 정도로 약해져 있습니까?”
소문이 안타까워하며 반문을 했다.
“예. 겉으로 보기엔 그저 약간 야윈 듯이 보이겠지만 몸에 흐르는
맥(脈)을 살펴보면 지금 당장 목숨을 잃는다 해도 별 이상이 없을
정도로 미약하기만 합니다. 영양상태도 그다지 좋지 않아 보입니다
. 이거야 원, 잠도 안자고 일만 한 사람 같으니….”
‘잠도 안자고 일만 한 사람’ 이라는 말에 가슴을 저린 소문이 고개
를 돌려 죽은 듯이 누워 있는 청하를 바라보았다. 끓어오르는 열에
얼굴은 벌겋게 달아올랐고 기절한 와중에도 기침은 그녀를 편
안하게 놔주질 않았다.
‘허허, 나란 놈은 도대체 어떻게 생겨먹은 놈인가? 주위의 사람이
어떤 고통을 받고 있는지 모른 체 내 일에만 신경을 쓰고 있었구나!
저 가녀린 몸으로 그토록 애를 쓰는 것을 알지도 못하다니…
을지소문! 너란 놈은….’
청하를 바라보는 환야의 안색 또한 소문과 다름이 없었다. 그 또한
자신의 무심함을 자책하는 듯 했다.
“우선 체력을 회복시키고 다음에 본격적인 처방을 쓰겠습니다. 물
론 병이 더 이상 악화되지 않게 적절한 수준까지는 처방을 하겠
습니다만 문제는 기침이 아니라 저 열입니다. 이렇게 몸이 약한
상황에선 열은 잘 다스려지지 않는데다가 환자에게는 치명적입니다.
두 분께서는 더 이상 열이 오르지 않도록 노력을 해 주셔야 할
것입니다.”
“어떻게 하면 열이 더 오르지 않게 할 수 있습니까?”
소문이 다급하게 물었다.
“방법은 간단합니다. 열이라는 것은 몸 안에 화기(火氣)가 넘쳐흐
르는 것을 말함이니 이 화기를 적절히 다스리면 되는 것이지요. 두
분께서는 계속해서 물을 적신 수건으로 청하의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열을 잠재우십시오. 물론 열의 발산을 막는 옷가지는 다
제거해야 할 것입니다. 두 분이 그렇게 열을 다스리는 동안 저는
몸을 보(補)하고 본격적으로 치료에 들어가겠습니다. 그럼 우선 급
한 대로 당장 필요한 약을 지어 보내겠습니다.”
말을 마친 주병진은 자리에서 일어나 서둘러 방을 나섰다.
“제가 하겠습니다.”
“꼭 그래야겠나? 청하는 여자일세. 차라리 마을에서 아낙을 구해오
는 것이 좋지 않겠나?”
“…….”
소문이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바라만 보자 환야가 다시 말을 이었
다.
“자네의 마음이야 이해가 가네. 할 수만 있다면 내가 하겠지만 사정
이 그걸 허락하지 않지 않나. 우리가 남자이고 청하가 여자임은 부
정할 수 없는 사실 아닌가? 자네나 나나 아무리 청하와 허물없이
지낸다지만 가릴 건 가려야 한다고 보네. 어쩌면 청하가 그걸 더
원할지도 모르고….”
“그래도 상관없습니다. 내가 남자이면 어떻고 여자이면 어떻단 말입
니까? 그런 건 문제가 되지 않아요. 그저 청하만 나을 수 있다면
무엇을 가리겠습니까? 청하가 여자라서? 내가 몸이 아플 땐 청하가
나의 수발을 들어주며 볼 것, 못 볼 것 다 보았는데 이제 와서 그런
걸 따져 무엇 하겠습니까? 남녀가 유별하다는 것은 문제가 되지 않
지요. 혹 문제가 된다면 내가 책임을 지면됩니다.”
“책임을 지다니? 그녀가 원하면 혼인(婚姻)이라도 하겠다는 말인
가?”
환야가 깜짝 놀라 되물었다.
“아직 그 정도까지 생각해 보진 않았지만 만약 우리가 혼인을 한다
면 그건 그녀가 원하기 보다는 제가 원해서 하는 것이 될 겁니다.
언제부터인가 제 마음속에 청하가 여자로 자리 잡기 시작했지요. 난
그게 그저 단순한 고마움에서 비롯된 것인 줄 알았는데 오늘 이렇
게 청하가 아픈 것을 보니 참을 수 없는 고통이 저에게도 밀려옵니
다. 이걸 어떻게 설명해야 합니까? 단순한 정이라고 보기엔 무리
가 따르지요. 결국 전 청하를 사랑하고 있었던 겁니다.”
“…….”
“그러니 절 말리지 마십시오. 사랑하는 사람입니다. 제가 그 고통을
함께 나누겠습니다.”
말을 마친 소문은 여전히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는 청하를 바라보
았다. 묘한 아픔이 있는 그런 눈빛이었다. 그런 소문의 모습에 나직이
한숨을 내쉰 환야는 결국 뒤로 물러섰다.
“알았네. 그럼 나는 나가서 약이나 달이고 있겠네. 자네가 수고가많
겠군….”
“그동안 청하가 나에게 해오던 것을 생각하면 수고랄 것도없지요.”
“후, 암튼 수고하게.”
환야는 다시 한번 한숨을 내쉬더니 방을 나섰다. 환야가 방을 나가
자 소문은 하던 일을 계속 했다. 비록 추운 겨울이지만 온 몸에서
열이 나고 있는 청하는 옷을 입을 수 없었다. 소문은 주병진의 말대
로 청하의 몸을 감싸고 있는 옷을 하나씩 벗겨갔다.
“알고 있겠지만 형님은 방을 나갔고 이방에는 나와 너 둘 뿐이다.
내가 조금 전에 한 말은 들었겠지? 너무 갑작스럽게 밀려온 감정이라
말은 그리 했지만 나 또한 아직은 정리가 안 된다. 하지만 이런
감정들이 단순히 머리에 느껴지고 생각되는 것이 아니라 가슴속에서
울려나는 것을 보니 청하 너를 좋아하고 있다는 나의 판단이 제대
로 된 것이 틀림없는 것 같구나! 지금부터 나는 치료라는 이유로
네 옷을 벗기게 된다. 네가 싫다면 환야 형님의 말대로 다른 아낙을
불러주마. 이제 결정은 네게 달려있다. 가능하면 내가 나의 마음을
알아줬으면 좋겠는데….”
과연 소문의 말대로 청하는 깨어 있었다. 다만 일어날 힘이 없어 그
대로 누워 있을 뿐이었는데 환야와 소문이 나누는 말은 그런 그녀
에게 실로 엄청난 충격을 주었다. 게다가 환야가 나가고 소문이 한
말은 충격을 넘어 그녀를 감동시키게 충분한 말이었다. 청하는 아
무런 말도 행동도 할 수 없었다. 그저 소문에게 모든 것을 맡길뿐이었다.
‘흑! 고마워요. 나 같은 여자에게 그런 마음을 지니고 계신다니…저
도 당신을 사랑한답니다. 그래서 힘은 들었지만 너무도 즐거운 나
날이었습니다. 하지만, 하지만….’
소문의 말에 감동을 하는 청하의 마음 한 구석에는 뭔지 모를 서글
픔이 밀려왔다.
‘아름답다!’
비록 치료를 위해서 옷을 벗기는 것이지만 여자의 벗은 몸을 처음
보는 소문은 그 아름다운 자태에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겉으로
보기엔 그저 마른 모습에 평범한 여자의 모습이었지만 옷 안에
숨겨진 청하의 나신(裸身)은 눈이 부실 정도였다. 비단 소문이 생각
만이 아닌 그 누가 보아도 입이 절로 감탄할 만큼 청하의 나신은 독
보적인 미(美)를 지니고 있었다. 마치 빙기옥골(氷肌玉骨)이라는 말
이 그저 빈말이 아닌 청하와 같은 여인을 위해 존재하는 것처럼여겨졌다.
청하가 그다지 아름다운 얼굴도 지니지 못했고 뛰어난 기예(技藝)를
지녀 청루(靑樓)에서 기예를 파는 것도 아닌 그저 단순히 몸을 파는
홍루(紅樓)의 창기(娼妓)에 불과 했지만 그 누구도 따라오지 못할
아름다운 몸을 지니고 있어 회하촌 제일의 기녀로 불리는 것은 어
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몰랐다. 그러니 가뜩이나 벗은 여인의 몸을 본
적이 없는 소문이 자신이 지금 무엇을 위해 청하의 옷을 벗겼는지
도 모른 체 두 눈이 붉게 충혈 되고 정신이 혼미해져 정신을 못 차
리고 있는 것을 나무라기만 할 일은 아니었다.
“콜록! 콜록!”
혼이 빠진 소문을 제정신으로 돌아오게 한 것은 소문의 의지가 아니
라 병석에 누운 청하의 기침소리였다. 기침소리에 화들짝 놀란 소
문은 자신의 행동에 대해서 심한 부끄러움을 느꼈다.
‘미친놈이구나! 미친놈이야! 그녀를 좋아한다면서, 그녀를 사랑한다
면서, 그래서 다른 누구도 아닌 내 손으로 그녀를 위해 정성을 다
하겠다고 한 놈이 벗은 몸에 얼을 뺏겨 엉뚱한 짓이나 하고 있다니
… 그래서야….’
너무나 부끄러운 마음에 스스로를 심하게 나무란 소문은 정신을 가
다듬고 심한 열로 전신이 붉게 달아오른 청하의 나신위에 물기를
흠뻑 머금은 수건을 올려놓았다. 그리곤 아주 천천히 열로 고생하
는 그녀의 몸을 달래주기 시작했다. 얼굴에서 시작된 손이 목을 지
나 가슴으로 이어지고 허리를 따라 아래로 내려갔다.
‘비, 빌어먹을!’
아무리 자신을 책망하고 다그쳐도 본능을, 현실을 외면만 할 수는
없었다. 그러기엔 소문은 너무 젊고 혈기가 넘쳤다. 그러지 않으려
해도 자꾸만 시선이 청하의 가슴으로 아랫배로 모아지고 젖은 수건
을 잡고 있는 손끝이 덜덜 떨렸다.
‘제기랄! 결국 나라는 놈도 어쩔 수 없는 놈이었군! 그래, 보이지않
으면 좀 낫겠지….’
결국 소문이 할 수 있는 선택이란 두 눈을 감는 것뿐이었다. 허나
그 또한 쉽지 않은 일이었다. 하지 말라고 하면 더욱 더 해보고 싶은
것이 인간의 마음인지라 때때로 수건을 잡고 있는 손에서 느껴지
는 부드러운 청하의 피부에 감았던 눈을 몇 번이나 뜨고 싶은 유혹
이 소문을 시험했고 그 시험에 넘어가지 않기 위해 소문은 필사적
으로 참고 또 참았다. 도무지 정신을 차릴 수 없었던 소문은 이런
종류의 싸움이야 말로 그 어떤 험한 싸움이나 고통보다 힘든 것임을
절실히 깨달을 수 있었다. ‘차라리 절벽을 기어오르는 게 훨씬
더 수월 하겠구나…!’
소문이 자신과의 싸움에 필사적으로 힘을 쏟고 있는 것과 별반 다름
없이 누워있는 청하 또한 부끄러움에 몸 둘 바를 몰랐다.
처음이었다. 자신이 마음을 준 사내에게 자신의 몸을 보이는 것은
난생처음이었다. 물론 자신의 몸을 본, 아니 가진 사내가 한 둘이
아니었다. 널리 이름이 알려진 만큼 많은 사내들이 그녀를 찾았고
소문을 간호하고자 잠시 일을 멈추기 전까지만 해도 하루에도 보통
서너 명의 사내와 잠자리를 함께 했다. 그나마 그녀기에 손님을 제한
할 수 있었지 계속 그녀를 원하는 사내와 잠자리를 할라치면 하루
종일 사내에게 안겨도 모자랄 판이었다. 그런 청하가, 그 어떤 여인
보다 많은 사내를 알고 있는 그녀가 지금 소문의 눈앞에서 사시나무
떨 듯 떨고 있는 것이었다.
수 없이 많은 사내들과 밤을 보낸 청하지만 그녀가 원해서 잠자리를
같이 한 사내는 아무도 없었다. 개중엔 나름대로 청하에게 잘해주고
첩실(妾室)로 앉히겠다는 사람도 있었지만 그들 모두는 청하에겐 단
지 손님일 뿐이었다. 삼년 전 어느 날부터인가 청하에겐 사내란 없었
다. 그저 모두다 손님일 뿐이었다.
삼년 전 장강 이남을 휩쓴 가뭄은 사상 최악의 식량난을 초래했다.
일찍이 강북에서 많은 가뭄과 기근(饑饉)이 있었지만 장강 이남의
곡창지대에서 나는 많은 곡식들이 있어 최악의 결과는 면할 수 있었다
. 하지만 장강 이남의 드넓은 곡창지대를 뒤덮은 가뭄엔 그 누구
도 손을 쓰지 못하고 속수무책이었다. 관에서도 백성들도 그저 하
늘만 쳐다볼 뿐이었다. 먹을 것을 구하지 못한 수많은 사람들이 굶
주림에 쓰러졌고, 먹을 것을 구해 유랑(流浪)을 하기 시작했으며 때로
는 집단을 이뤄 산적이 되기도 민란(民亂)을 일으키기도 했다.
청하의 집도 예외일 수는 없었다. 별다른 토지 없이 남의 농지를 빌
려 근근이 끼니를 때우던 그녀의 집은 그나마 가뭄에 수확도 못해
당장 한 끼의 해결에 목을 맬 수밖에 없었다. 설상가상(雪上加霜)으
로 먹을 것을 구해보겠다고 나선 아버지가 민란에 휩쓸려 목숨을 잃
고, 그 충격에 어머니마저 병으로 자리에 눕자 어쩔 수 없이 장녀
인 청하가 병든 어머니와 두 동생들을 떠맡아야 했다. 하지만 건장한
사내도 버티기 힘든 어려운 환경을 연약한 여자의 몸으로 헤쳐
나가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결국 그녀가 선택한 길은 주변
의 여인들이 그러한 것처럼 기녀가 되는 것이었다. 아무리 사상 유래
없는 가뭄이 중원 전역을 휩쓸었어도 술과 여자를 찾는 사내들의
수는 좀처럼 줄지 않았다. 그 말은 기녀가 되면 부자는 못 될 지
라도 최소한 굶어죽지는 않는 다는 것을 의미했다.
그해 막 열일곱 살이 된 청하는 집안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기로 결
정을 했다. 하지만 대 기근에 워낙 많은 여인들이 기녀가 되기를
희망했기에 기녀가 되는 길 또한 말처럼 쉽지는 않았다. 농사를 짓
는 부모님을 도와 평범하게 살아온 어린 계집아이에 불과 했던 청
하였기에 특별히 배운 기예가 있을 리가 없었고 얼굴도 눈에 확 띨
만큼 아름답지도 않아서 웬만한 기루에선 그녀를 받아주지 않았다.
결국 사정사정하여 들어간 기방은 미아루(美娥樓)라는 인근에서 가
장 수준이 떨어지는 홍루였다. 마침내 집안을 위해 기녀가 되기로
결정한 청하는 단순히 몸만 파는 홍루의 창기로 기녀생활의 첫발을
들여놓았다.
거친 사내의 아래서 고통에 몸부림치며 그녀가 처음 몸을 팔아 번
돈은 그저 동전 일문에 불과 했다. 하지만 그건 시작에 불과 했다.
나이는 어렸지만 다른 누구보다도 아름다운 몸을 지니고 있는 청하
이기에 비록 짧은 시간에도 불구하고 그녀의 이름은 기방에 출입하
는 세인들의 입에 오르내리게 되었다. 자연 많은 사람들이 그녀를 찾
았다. 낯선 환경, 낯선 일에 두렵고 힘이 들었지만 청하는 집에
있는 가족들을 생각하며 몸을 아끼지 않고 악착같이 돈을 모았다.
그러게 이년여가 지나고 언제 그랬냐는 듯 대 기근이 지나가자 고향
을 등진 사람들도 하나둘 모여 들기 시작하고 혼란스러웠던 세상도
차츰 안정을 찾아갔다.
청하 나이 열아홉이 되고 두 동생들도 제법 장성하여 어머니를 도와
농사를 지을 수 있는 나이가 되자 청하는 중대한 결심을 하게 됐다.
그동안 미아루에서 몸을 판 대가로 청하의 가족들은 굶주림을 면
할 수 있었고 얼마간의 농지(農地)도 마련할 수 있었다. 이제 집안
형편도 많이 나아졌고 청하 자신도 기녀의 일을 하지 않아도 됐지
만 기녀였다는 그녀의 전적(前績)이 바뀌는 것은 아니었다. 비록 그
것이 집안을 위해서 어쩔 수 없이 선택한 길이었다지만 청하는 그
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이미 어린 동생들도 자신이 무슨 일은 하는
지 아는 나이가 되었고 그런 동생들을 차마 볼 수가 없었다. 결국
청하는 자신이 모은 모든 돈과 편지만을 집안에 남겨두고 약간의 여
비만 몸에 지닌 체 무작정 길을 떠났다. 돈이 떨어지면 잠시 기루
에 몸을 의탁하여 몸을 팔고 돈이 모이면 다시 길을 떠나는 식으로
유랑을 하다 어느새 사천까지 흘러들어온 청하는 경치가 좋고 풍경
이 고향과 비슷한 회하촌에 정착을 했다. 그리고 오 개월, 부상을 당
한 소문을 만나게 되고 이제야 비로소 사랑이라는 것을 하게 된 것이다.
‘하지만, 하지만… 내가 이분을 사랑할 수 있을까? 수 없이 많은 사
내와 잠자리를 한 기녀에 불과한 내가….’
자신의 처지로는 도저히 사랑을 할 수 없는 사람이거늘 그의 손이
자신의 몸을 스칠 때마다 이렇게 떨리는 감정은 뭐란 말인가? 어차피
이루어지지 못할 사랑이었다. 그러면서도 거절하지 못하는, 그의 손
을 뿌리치지 못하는 이 마음은 뭐란 말인가? 어느새 청하는 자신
도 모르게 눈물을 흘리고 말았다. 그리고 잠시 돌아왔던 의식의 끈
을 놓치고 말았다.
“후, 진땀이 나는구나!”
한 시진 동안이나 수건으로 청하의 몸을 닦아내자 그간의 노력이 효
력을 보였는지 펄펄 끓어오르던 청하의 몸에서 열이 약간은 떨어지고
계속 자리를 지키고 있던 소문은 겨우 한시름을 놓았다. 그리곤 잠
시 숨을 돌리기 위해 방을 나섰다. 방문이 열리는 소리에 약을 달
이고 있던 환야가 한걸음에 달려왔다.
“수고했네. 그래, 청하는 어떤가?”
“열은 약간 수그러들었습니다. 하지만 언제 다시 열이 오를 줄 모르
니 안심을 할 수는 없지요.”
“흠, 그래도 조금이나마 떨어졌다니 다행이네. 그런데 자넨 웬 땀을
그리 흘리는가?”
한겨울임에도 전신을 땀으로 목욕을 한 소문의 모습을 본 환야가 물
어왔다.
“후~ 그게… 그런 게 있습니다. 청하의 몸에 나는 열기가 제게 왔나
보지요.”
“싱겁기는….”
“벌써 오는군요. 어떻게 하였기에 저렇게 겁을 먹는지 원….”
무안한 웃음을 짓던 소문은 환야의 뒤로 시선을 던졌다. 저 멀리서
누군가 허겁지겁 달려오는 사람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약을 지어
오겠다면 인술원으로 돌아간 주병진이었다. 달려오고 있는 사람이
주병진임을 알아본 소문은 반색을 하면서도 은근히 환야를 책망했다
. 환야도 그런 소문의 시선을 따라 고개를 돌렸다. 과연 소문의
말대로 급히 달려오는 사람은 주병진이 틀림없었다. 한손에 들린
것은 청하를 위해 준비해 오는 약인 듯싶었다.
“훗, 겁을 먹긴 먹은 모양인데, 나 보다는 자네한테 겁을 내는 것같
네. 아까 자네의 모습은 영락없는 저승사자의 모습이었어. 하하하!”
환야는 그럴 리 없다는 듯 변명을 했다.
“설마요! 하하하!”
소문과 환야가 자신의 말을 하는지 모르는지 열심히 뛰어오는 주병
진의 모습의 뒤에서 아름다운 저녁노을이 지고 있었다.
“아직 이렇게 찬바람을 쐬면 안 된다.”
막 낚시에서 돌아오던 환야는 마당을 거닐고 있는 청하를 발견
하곤 깜짝 놀라 소리쳤다.
“괜찮아요. 이젠 아무렇지도 않아요. 위원님도 조금씩 움직이
는 것이 방안에 가만히 앉아 있는 것 보다는 건강에 좋다고
말씀하셨어요. 그리고 생각할 것도 있고….” 주병진이 처방
한 약이 효과가 있었는지 며칠동안 청하를 괴롭혔던 열과 기
침이 수그러들고 잠잠해 지기 까진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
았다. 주병진이 처방한 탕약과 더불어 틈틈이 환야가 나서서
자신의 기로써 청하의 약한 기운을 북돋아 주었고 소문 또한
온갖 정성으로 청하를 보살폈다. 결국 살고 싶은 의지가 강
한 주병진과 소문, 환야의 정성으로 목숨마저 위험했던 청하는
열흘이 되지 않아 자리를 털고 일어날 수 있었다. 그리고 이
제는 밖에 나와 산책을 할 수 있을 정도로 건강을 회복한 것이었다.
“흠, 그래? 하긴 너무 방안에만 있는 것도 과히 좋지는 않겠
지. 그래, 어떠냐? 오랜만에 방을 나와 보니?”
“좋아요. 너무나… 그저 아무런 생각 없이 스쳐지나간 것들이
이렇게 아름다울 줄은 꿈에도 몰랐어요.”
살며시 웃으며 대답을 하는 청하였지만 왠지 힘이 없어 보였
다.
“하하! 한번 크게 앓고 나더니 청하가 도인이 다 되었구나! 그
런데 왜 그렇게 힘이 없는 것이냐?”
“생각을 할 것이 있어서… 훗, 저 까짓게 무슨… 하지만 아프
기 전과 세상이 많이 달라 보이긴 하네요.”
눈을 들어 잿빛을 띠고 있는 하늘을 멍하니 바라보며 대답을
하던 청하의 시선이 환야의 손끝으로 향했다.
“그런데 그건 뭐지요?”
“아! 이것 말이냐? 너를 위해서 내가 강에 나가 잡아온 것이
다. 소문이하고 누가 큰 물고기를 잡는지 내기를 했는데 내가
이겼다. 소문인 아직도 겨우 손바닥만한 물고기 몇 마리 잡았
을 뿐 여전히 이렇다할 대어를 낚지 못하고 있지. 하지만 낚
시에 일가견이 있는 내가 소문과 같을 수는 없지. 자 보거라!”
환야가 의기양양하게 손을 들어 청하 앞으로 내민 것은 거의
한자에 이르는 큰 물고기였다. 아가미 근처에 줄을 감고 있던
그 물고기는 힘을 잃지 않고 힘차게 펄떡이고 있었다.
“어머! 정말 크네요. 어쩜 이렇게 큰 것을….”
청하가 연신 펄떡이는 물고기를 보며 감탄을 금치 못하자 은
근히 거드름을 피운 환야가 다시 입을 열었다.
“뭐, 이 정도를 가지고… 이 정도 크기의 물고기야 잠깐 주의
만 하면 언제든지 잡을 수 있는 거지. 크험!”
그때였다. 거드름을 피우고 있는 환야의 태도에 찬물을 끼얹는
소리가 집밖에서 들려왔는데 그 음성의 주인공은 소문이었다.
환야와 마찬가지로 물고기를 들고서 막 대문을 들어서던 소문
의 기도 안찬다는 듯한 표정으로 말을 했다.
“나참! 그런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다니… 어째 서둘러서 간
다고 할 때부터 수상하더니만…”
“험, 뭐가 말인가?”
털썩!
잡아온 물고기를 부엌 입구에 내려놓은 소문이 고개를 돌려 환
야를 바라보았다.
“흥! 손바닥만한 물고기도 잡히지 않는다고 투덜투덜 거리다가
결국은 강물에다 마구잡이로 장력을 퍼부어 잘 놀고 있는 물
고기를 떼로 기절시키더니만 그중 큰 것을 들고 온 것 아니오?”
말을 하던 소문의 시선이 펄떡이는 물고기로 향했다.
“어라! 움직이는 것을 보니 이제 정신이 드는 모양이군만.”
다시 환야를 바라본 소문이 황당한 표정으로 쳐다보았다.
“그게 낚시요? 내참, 아침부터 낚시가자고 졸라댈 때부터 알았
어야 하는 건데….”
“흠흠, 낚시가 별건가? 앞으로 가든 뒤로 가든 목적지만 제대
로 가면 되는 것 아닌가? 물고기만 잡으면 그게 낚시지.”
“어이구! 말이나 못하면… 내가 말을 말아야지.”
너무나 태연스레 대꾸하는 환야를 보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
던 소문이 자신들을 바라보며 살며시 웃음 짓고 있는 청하를
바라보았다.
“흠흠, 괜찮은 거야? 이렇게 찬바람을 맞아도?”
“괘, 괜찮아요. 이제 다 나았는걸요.”
말을 하는 소문이나 대답을 하는 청하나 왠지 어색한 기운이
맴돌았다.
‘어째 이상하네. 처음 보는 사람들처럼 어색해 하는 것이….’
환야가 이상한 마음에 고개를 갸웃거리며 그들을 바라 볼 때
소문이 조심스레 입을 떼었다.
“오늘은 대답을 해 줄 수 있겠지?”
소문의 질문에 어두운 안색을 한 청하가 힘없이 고개를 끄덕였
다. 그 모양을 보던 환야가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 끼어들었다.
“대답? 어떤 질문이기에 그리 힘이 없는 것이더냐?”
환야의 질문에 그저 고개를 숙일 뿐 청하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그러자 소문에게 말을 걸었다.
“쯧쯧, 자네는 또 어떤 요상한 걸 물어서 청하의 기분을 상하
게 했나? 그래 어떤 질문인가?”
“청혼(請婚)을 했습니다.”
“아, 청혼! 그러니까 그렇지… 처, 청혼? 자네 뭐라고 했나?
지금 청혼이라고 했나?”
너무나 갑작스런 말에 화급히 되묻는 환야의 목소리가 심하게
떨리고 있었다.
“예. 어제 청하에게 청혼을 했습니다.”
“아, 아니 왜 그렇게 갑작스럽게? 내가 이리 놀랬으니 청하가
얼마나 놀랐을 지는 상상이 안 가는 구만.”
“생각은 벌써 며칠 전부터 하고 있었습니다. 다만 청하의 몸이
회복되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지요.”
“그, 그래도….”
“제가 청하를 사랑하는 것을 알게 되었고, 청하 또한 저를 사
랑하는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것이면 된 것이지요. 다른
무엇이 더 필요하겠습니까?
“…….”
거듭되는 대답을 하는 소문의 얼굴은 시종 진진했다. 소문의
눈길이 다시 청하에게 향해지고 대답을 재촉하는 눈빛이 반짝
거렸다. 환야 또한 긴장된 눈빛으로 청하를 바라보았다. 한참
동안 말이 없이 고개를 숙이고 있던 청하가 고개를 들어 소
문을 응시했다. 그리고 천천히 입을 열었다.
“저 같은 계집에게 청혼을 해 주셔서 너무 고마워요. 하지만
허락을 할 수가 없답니다. 죄…송…해…요…”
“아!”
대답을 한 청하는 다시 고개를 숙이고 소문은 어떤 반응도 없
이 그저 담담히 청하를 바라보았다. 오히려 제삼자인 환야의
반응이 가장 격렬했다. 우려인지 안도인지 모를 한숨을 내쉰 그
는 곧 자신의 실수를 깨닫고 재빨리 입을 닫았다. 하지만 청
하도 소문도 그런 환야를 신경 쓰진 않았다.
“왜지? 무슨 이유로 나를 거부하는 것이지?”
“…….”
“나를 사랑하지 않는 것이니?”
“아, 아니에요. 그런 것은 아니에요.”
발작적으로 고개를 들어 소문의 말을 부정한 청하의 고개가 다
시 숙여졌다.
“그럼 무엇 때문에 그러는 것이지? 나는 도저히 이해를 못하
겠다. 내가 너를 사랑하는 것보다 네가 나를 사랑하는 마음이
더 크다고 생각했는데… 그래서 항상 고마워하고 미안해
했는데… 어째서 나의 마음을 받아들이지 못한다는 것인지….”
안타까운 음성으로 말을 잇는 소문의 눈동자가 격하게 흔들렸
다. 청하 또한 두 눈에서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오, 오라버니를 사랑하지 않는 것은 아니에요. 하지만 혼인이
라는 것이 사랑만으로 하는 것은 아니잖아요. 저는 오라버니의
부인이 될 자격이 없어요.”
흐르는 눈물을 닦으며 대답을 하는 청하의 눈은 붉게 물들어
있었다.
“자격이라니? 도대체 무슨 자격을 말하는 것이더냐? 너와 내
가 사랑을 한다는데 다른 무엇이 더 필요 있을까? 돈? 명예(
名譽)? 그런 건 아무런 가치도 필요도 없는 것이다. 청하의 집
이 가난해서? 청하의 아버님이 돌아가셔서? 우리 집도 가난해
. 더구나 난 아버지뿐만 아니라 어머니도 없지. 그런 게 중
요한 중요한 것일까?”
소문의 음성이 점점 높아지고 충혈 된 두 눈은 이글거리는 열
기로 인해 금방 불타오를 듯 싶었다.
“하지만… 전… 기녀…에요. 흑!”
결국 자신이 하는 일을 밝힌 청하는 또 다시 울음을 터뜨렸다.
그 모양을 안타깝게 지켜보던 환야가 청하에게 다가갔다.
“흑! 흑!”
자신이 소문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결정적인 이유, 자신이 깨끗
하지 못한 기녀의 신분이라는 것을 밝힌 청하는 환야의 품에
안겨 서글프게 울고 말았다. 하지만 스스로 기녀라고 말한 청하
를 바라보는 소문은 그다지 놀라지도 당황하지도 않는 표정이었
다. 그저 담담한 표정으로 청하를 바라볼 뿐이었다.
“그래서? 그게 어떻다는 것이지? 난 바보가 아니야. 청하와 지
낸지도 벌써 넉달이 넘었어. 아무리 말을 하지 않았다고 해서
그것을 모를 내가 아니야. 나도 귀가 있고 눈이 있거든. 하지
만 그때뿐이었어. 처음 그 말을 들었을 땐 잠시 놀라기도 했
지만 그건 일순간의 당황일 뿐이었지. 내가 알기론 기녀가 되
는 사람들은 나름대로 사정을 지닌, 물론 그렇지 않은 사람들
도 있겠지만 대부분이 안타까운 사연을 지닌 사람들로 알고 있
어. 내가 청하가 기녀란 사실을 듣고 어땠을 것 같아? 비난과
욕을 했을 것 같아? 천만에 오히려 청하의 지난날을 생각
하고 가슴이 아플 뿐이었어. 얼마나 힘들었으면, 얼마나 큰 시
련에 시달렸기에 기녀가 되었을까? 그런 속에서 얼마나 많은
고통을 느꼈을까? 기녀가 되어선 또 얼마나 마음에 상처를 입
었을까? 내 마음을 지배한 것은 온통 이런 아픔뿐이었어. 지
금 생각해 보면 이미 그때부터 난 청하를 가슴깊이 사랑하고
있었나봐. 그러면서도 하늘에 감사를 드렸지. 그렇게 힘든
상황에서도 절망하지 않고 이렇게 밝고 아름다운 영혼을 간직
하게 해 주셔서 감사하다고 말이지. 기녀였다는 것은 죄가 아
니야. 그리고 그것이 나와 혼인을 하지 못할 아무런 이유도
되지 못하지. 그러니 나의 사랑을 뿌리치지 말고 나의 부인이….”
“난!”
부드럽게 말하며 청하의 손을 잡아가던 소문의 말과 행동은 더
이상 이어지지 못했다. 어느새 눈물을 멈춘 청하가 말을 끊었기
때문이었다.
“난, 기녀에요. 그래요. 오라버니의 말대로 집안 사정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기녀가 되었어요. 하지만 그랬다고 해도 제가
기녀였다는 사실이 달라질 것은 아무것도 없어요. 기녀는 기녀
일 뿐이지요.”
잠시 말을 멈춘 청하가 한층 냉정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오라버니가 생각하는 기녀는 어떤 것이죠? 아마 술 따르고,
손님들 앞에서 춤이나 추고 때로는 마음에 맞는 사내와 잠자
리를 할 수 있는, 그런 기녀들이 일하는 곳을 청루라고 하지요
. 그런 기녀를 말하겠지요? 하지만 전 그런 고상한 기녀가
아니랍니다. 애초에 그런 능력이 없었답니다. 제가 믿을 수
있는 것은 그저 썩은 몸뚱이 하나랍니다. 그저 하룻밤 사내의
쾌락을 위해 애쓰는 홍루의 기녀일 뿐이에요. 동전일문에 몸
을 파는 그런 계집애 불과 하단 말이에요. 그런 생활이 삼년입
니다. 저와 잠자리를 같이 한 사내가 얼마나 될 것 같아요?
하룻밤에도 서너 명은 대수롭지 않고 처음엔 그 배도 넘는 사
내들과 잠자리를 같이 했어요. 그 수를 헤아릴 수도 없지요.
어쩌면 오라버니와 친분이 있는 사람이 저의 손님일 수도 있었
겠지요. 그럼 어쩌시겠어요? 그래도 저와 혼인하고 싶으신가요?”
어느새 청하의 눈에선 눈물이 흐르고 북받치는 감정을 다스리
지 못하고 있었다.
“저도 오라버니를 사랑해요. 오라버니와 혼인을 해서 남들처럼
행복하게 살고 싶어요. 오라버니를 닮은 애기도 낳고 싶고 그런
아이를 키우며 사랑받는 아내도 엄마도 되고 싶어요. 하지만
그럴 수가 없어요. 저와 혼인을 하면 틀림없이 오라버니에겐
많은 고통이 따를 거예요. 어쩌면 저를 미워할 수도 있겠지요.
저는 그것이 너무나 두려워요. 그래서 차마 혼인을 하지 못
하는 것이에요. 이제 알았나요? 오라버니의 마음을 받아들이고
싶은 마음은 너무나 간절하지만 오라버니를 사랑하니까, 너
무나 사랑하기에 사랑하는 사람이 고통 받을 것이 뻔한 길을 갈
수 없는 저의 마음을요. 청하의 말은 어느새 절규로 바뀌어 있었다.
‘불쌍한 여자….’
소문은 울부짖는 청하를 바라보며 자신의 가슴에 비수처럼 박
히는 슬픔에 눈물을 흘렸다. 내색은 하지 않았지만 청하가 단
순히 몸을 파는 기녀, 창기라는 것은 이미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 주병진으로부터 청하가 회하촌에 들어와 어떤 생활을 하고
있는지 듣게 된 소문은 잠시 갈등을 할 수 밖에 없었다. 어느
정도 예상은 하고 있었지만 막상 기녀라는, 그것도 주로 몸
을 파는 창기라는 소리를 듣고 태연할 수 있을 수는 없었다.
더구나 엄격한 예의를 강조하는 조선에서 자라온 소문이기에
처음 그 말을 들었을 땐 상당한 충격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때 잠시 뿐이었다. 이미 가슴속 깊이 청하를 사랑하
게 된 소문에게 청하가 몸을 파는 창기라는 것은 그다지 중요한
일이 아니었다. 물론 중원에서나 자신이 살고 있는 조선에
서나 절대로 고운 시선으로 바라보진 않겠지만 그 또한 문제가
아니었다. 게다가 자신들이 살게 될 곳은 중원도 아니고
조선에서도 외진 장백산이었다. 자신과 청하가 입만 다물면 창
기였다는 청하의 과거가 밝혀질 염려는 없었다. 혹시 밝혀지더
라도 이미 자신에게 엄청난 약점(?)이 잡혀 있는 할아버지를
설득하는 것은 문제도 아니었다. 그렇기에 자신 있게 청하에게
청혼을 한 것이었다. 그런데 소문의 속을 알리 없는 청하
인지라 자신의 처지를 한탄하며 저리 서글프게 울고 있는 것이
었다. 소문은 천천히 청하에게 다가갔다. 환야 또한 조용히
자리를 비켜주었다. 소문은 여전히 울고 있는 청하의 여린 몸을
가만히 안았다. 그리곤 그녀의 귀에 조용하게 속삭였다.
“사랑 앞에선 그 따위 것은 문제가 아니야. 과거가 어찌 됐던
그것에 얽매여서는 아무것도 할 수가 없어. 현재가, 그리고
앞으로 다가올 우리의 미래가 중요한 것이지. 어쩌면 많은 문제
가 있겠지. 없다고는 나도 장담을 하지 못해. 약간은 골치 아
픈 영감탱이도 있고… 하지만 나를 믿고 나에게 모든 것을 맡
겨봐. 청하의 마음을 아프게 하는 일은 없을 테니… 절대로
우리의 사랑을 실망시키는 일은 없을 테니….”
“…….”
소문은 감격에 겨워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하고 있는 청하를 향
해 고개를 숙였다. 그리고 태어나서 처음으로 여자의 입술을
느낄 수 있었다.
첫댓글 감사해요~~~~^~
잼납니다
즐감하고갑니다.
ㅎㅎㅎ
즐감 ~!
즐감합니다.
즐감
감사합니다.
즐겁게 보고갑니다!
청하
갑자기 소주 생각이 나네
ㅈㄷㄱ~~~~~~`````````````````
ㅈㄷㄳ
즐감하고 갑니다
감사합니다
즐감~
잘읽었습니다
즐독했습니다~~감사합니다.
즐감
좋아좋아
즐독 감사합니다^^^
재미있게 읽고 갑니다
감사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