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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좋아하는 영화나 드라마는 여러 번 반복해서 보는 것을 좋아한다. <사운드 어브 뮤직>이나 <벤허>, 혹은 <최고의 사랑>과 같은 것들. 나는 <인생은 아름다워>라는 영화도 몇 번 보았다. 내가 고등학교 다닐 때에는 지금처럼 입시지옥 때문에 이렇게 시달리지 않았다. 나는 전주성심여고를 다녔는데 카톨릭 재단에서 설립한 사립학교였다. 다른 학교들과는 달리 인성교육과 예절교육을 중점적으로 지도했다.
인성교육의 한 방법으로 시험이 끝난 날 오후에는 수업을 제치고 좋은 영화를 감상하도록 했다. 나는 그 때부터 영화를 좋아하여 고등학교 재학 시절에 무려 80편이 넘는 좋은 영화들을 보았다. 학교에서 보여주는 것들 외에도 좋은 영화가 상영되면 오후 자율학습시간을 땡땡이치고 가서 본 적도 있다. 지금은 좋은 영화가 나오면 영화관이나 집에서 보곤 한다.
<인생은 아름다워>는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유대인 수용소의 참혹한 현실로부터 아들을 지키기 위해 눈물겨운 사투를 벌이는 아버지의 이야기이다. 러시아의 혁명가 트로츠키가 암살당하기 직전에 남긴 글인 ‘그래도 인생은 아름답다’라는 말이 이 영화의 모티브가 되었다는 말이 있다.
고등학생이었을 때에는 이 영화를 보고 ‘이토록 슬픈 인생이건만 왜 제목이 인생은 아름다워일까’라고 의아하게 여겼다. 그러다가 나도 나이가 들면서 인생에 대하여 어렴풋이나마 알게 될 즈음에 ‘사랑하는 가족을 지킨 인생이야말로 아름다운 인생이 아니겠는가’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주인공은 사랑하는 여인을 만나 결혼하고 아들을 낳고 산 세월이 5년밖에 안 된다. 가난하지만 서로 사랑하면서 산 그 짧은 삶도 아름답지만 유대인이라는 것 때문에 나치의 수용소에 갇힌 아버지와 아들, 참혹한 수용소 안에서도 사랑하는 아들에게 아름다운 인생을 맛보게 해주려는 아버지의 필사적인 몸부림이 더욱 아름답다.
2012년 5월 28일은 월요일이었다. 석가탄신일이라 공휴일이었다. 주일 예배 준비에 바쁜 토요일 아침에 내 친구, 자영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자영은 순천의 한 시골 마을에서 남편과 함께 닭을 키우며 살고 있다. 월요일인 다음 날 친정어머니의 팔순잔치를 남원에서 하는데 나의 친정 부모님을 모시고 오라는 것이었다. 벌써 세월이 그렇게 흘렀구나, 생각하며 감회가 새로웠다.
나의 어머니나 자영의 어머니나 지독하게 고생하며 살아온 인생이었다. 우리의 사춘기 시절인 1970년대에는 모두들 가난했다. 우리 집 보다도 자영이네 집은 매우 가난했다. 중학교 때 자영의 도시락에는 쌀은 한 톨도 없었다. 반찬은 강낭콩조림 한 가지뿐이었다. 왜 하필이면 강낭콩조림인가 하면 그 시절에는 강낭콩이 가장 흔하고 값싼 콩이었다. 아무 데나, 장독 가에나 마당 귀퉁이에 심어도 잘 자라서 열매를 맺는 그런 콩이었다.
자세한 내막은 모르지만 자영이네는 부안에서 살다가 사업이 실패하여 집도 땅도 잃고 빈손으로 우리 마을로 이사를 왔다는 얘기를 어른들의 쉬쉬하는 말을 통해 얼핏 들었다. 육남매나 되어 당장 입에 풀칠하기도 벅찬 형편이었다. 그 때가 자영이가 초등학교 6학년 때였다. 초등학생 때에는 막 전학을 온 때라 서로 서먹해 하다가 중학생이 되면서부터 친한 친구가 되었다. 식구는 많고 집은 좁은 자영이는 시험 기간에 우리 집에 와서 함께 시험공부를 하곤 했다.
자영의 부모님이 몸이 부서지도록 일을 해도 한 번 엎어진 살림을 다시 일으키기는 그리 쉽지 않았다. 아니, 자영의 아버지는 한약방을 운영했으니 어머니 홀로 땅 한 평 없는 시골 살림을 꾸려나가느라 힘에 겨웠다. 자영이네 아버지는 그 당시 동네에 흔히 하나씩 있는 허가 안 난 한약방을 운영하는 한의사인 셈이었다. 그러나 자영이네는 그 일로는 오히려 빚만 더 졌다. 자영의 아버지는 마음이 너무 좋아서 가난한 사람이 찾아오면 돈을 받지 못했다. 그런 소문이 널리 났으니 그 집 손님은 주로 가난한 자들이었다. 그래서 어머니가 남의 일을 하러 다녔다.
설상가상으로 자영이가 고등학교 1학년 때 자영의 아버지가 위암 말기 판정을 받았다. 다른 사람들의 병은 잘도 고쳐준다던 사람이 정작 자기의 병이 깊어진 것은 몰랐던가. 아니, 알았어도 자포자기했을지도 모른다. 어찌 의사가 자기의 병이 깊어진 것을 전혀 몰랐겠는가. 돈이 없으니 암을 초기에 발견한들 병원에 입원할 처지가 못 되었을 것이다.
어머니는 식구들 굶기지 않으려고 일을 해야 했으니 자영이는 아버지를 간호해야 하므로 학교를 중퇴했다. 그리도 강한 자영이가 지금도 가끔 그런 얘기를 할라치면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해진다. 가난했던 것? 배고팠던 것? 고생했던 것? 그런 것들 다 괜찮았는데, 그토록 하고 싶었던 공부를 하지 못했던 것을 그녀는 가슴아파했다. 그러나 몇 달 후 투병하던 아버지는 집에서 돌아가셨다.
본인이 극구 병원에 가는 것을 반대했다. 어린 딸의 간호를 받으며 고통 속에서 살다가 돌아가셨다. 그 때 동네에서 유일하게 주사를 놓을 줄 아는 나의 아버지가 진통제 주사를 놓아주었다고 자영의 어머니는 늘 고마워했다. 그래서 팔순잔치 때 나의 부모님을 뵈었으면 해서 특별히 초청을 하노라고 했다. 나의 부모님도 이제는 늙고 병들어 먼 길을 갈 수 없어 가지 못했다. 그래서 우리 부부만 그 곳에 갔다.
자영의 남동생은 C고등학교 전기과를 졸업한 후 남의 밑에서 일을 하다가 독립하여 지금은 에어컨 설비업체를 운영하고 있다. 사업이 번창하여 돈을 좀 벌었다고 했다. 남원의 시골 마을에 이전에 공장을 하던 건물을 사서 수리하였다. 이층인데 실내가 널찍하여 수련회나 세미나 장소로 이용할 수 있도록 시설을 갖추었다. 지금은 여동생 내외가 관리하며 살고 있다. 건물 바로 옆에는 남원의 젖줄기인 강물이 흐르고 있다. 이층에서 시원한 강물이 흘러가는 광경과 좀 멀리 산자락이 병풍처럼 휘둘러 있는 경치가 아름다웠다. 남동생 교회 성도들은 전날 오후에 와서 하룻밤 거기서 놀다가 잠을 자고 아침식사를 하고 일찍 떠났다고 했다.
자영이네 식구들을 오랜만에 다시 만나게 되었다. 35년이 훌쩍 지났다. 어린 시절의 모습들이 남아 있었다. 특히, 자영의 오빠는 장로님이 되었다고 했다. 장로님이라서인지 어제부터 목사님과 사모가 된 우리 부부를 보고 싶어 기다렸다고 했다. 옛날에는 길에서 마주쳐도 서로 부끄러워서 고개를 외면하던 사이였는데, 이제는 서로 중년이 넘어 노년의 길로 접어드는 마당인지라 가까운 지기를 만난 듯이 반가웠다. 장로님과 목사님이 만나니 첫 상면인데도 전혀 어색하지 않았다.
대화는 역시 교회이야기, 신앙이야기 등이었다. 그리하여 오빠의 입을 통해 자영이네 가족들이 모두 그리스도인이 된 배경을 듣게 되었다.맨 처음 오빠의 아내가 될 여자가 어려서부터 신앙생활을 했는데 처음 사귈 때부터 10여 년 동안은 그 일로 많이 다투고 갈등이 있었다고 했다. 그러다가 어느새 오빠도 예수를 알게 되었고 온 가족이 신앙생활을 하게 된 후에 어머니, 동생들까지 모두 성도가 되었다고 했다.
“그러니까 내가 우리 집의 첫 열매인 셈이지”라고 말하며 웃었다. 오빠가 장로장립을 받는 날에 어머니는 권사취임을 했다고 했다. 이제는 오빠는 장로, 어머니와 자영이는 권사, 남동생 한 명은 안수집사, 그리고 나머지 동생들은 집사들이라고 했다. 놀라운 일이었다. 누룩 한 덩이가 온 가루를 부풀게 하는 역사가 자영이네 집에도 일어났구나, 싶어 더욱 감격했다.
자영이가 고생한 이야기는 언제나 나의 눈시울을 붉히게 한다. 자영이는 <인생은 아름다워>의 주인공 귀도처럼 자신의 가족을 매우 사랑하여 자신을 희생시킨 사람이었다. 자영의 아버지가 돌아가시자, 병원치료를 안했음에도 불구하고 진통제며 약이며 아버지에게 공궤한 영양가 있는 음식 등으로 인한 경비만으로도 큰 빚을 지게 되었다. 그 전에도 진 빚을 다 해결하지 못한 상태에서 여기저기서 조금씩 얻은 빚이 눈덩이처럼 커졌다.
장례를 마친 가족들은 슬퍼하고만 있을 수 없이 부닥친 현실이 각박했다. 자영을 제외하고도 고등학생, 중학생, 초등학생이 5명이었다. 그 때는 지금처럼 국가에서 가난한 가정에 지급되는 학비며, 밥값이며 수업용품 등이 전혀 없었다. 등록금, 준비물비 등이 가난한 집에는 무거운 부담이었다. 가족회의를 한 결과, 어머니와 자영이가 가족의 부양을 책임지기로 했다. 어떻게? 단 한 가지 방법밖에 없었다. 온 식구들이 굶어죽지 않고 살아날 방법으로는 먹는장사를 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가장 쉬운 먹는장사로 중화요리집을 하기로 했다.
그런데 그것이 자영의 인생을 깊은 수렁으로 빠뜨리는 것이 되었다. 먼저 시골장터에 집을 세내었다. 가장 중요한 것이 솜씨 좋은 주방장을 구하는 일이었다. 다행히도 맛있게 중화요리를 만들 줄 아는 총각을 구했다. 그 당시에는 사람들이 짜장, 짬뽕, 우동 등을 많이 먹었다. 장사는 잘 되어 자영이네 형제자매들은 학교를 다녔고 수년 동안 굶지 않고 살아냈다. 다 고등학교까지는 마치게 되었다.
장사가 잘 되어 번창할 즈음, 주방장이 예쁜 자영에게 반하여 날마다 자영이와 어머니에게 엄포를 놓았다. 자영과 살게 해주지 않으면 당장 나가겠노라고. 자영이와 어머니는 굶고 살아야 하는 가난한 삶을 두려워했다. 다른 방법을 모색할 겨를이 없었다. 지금처럼 장사만 되면 형제자매들이 자라서 독립을 하기까지는 살아갈 수 있겠다 싶었다. 그렇게 망설이고 주저하는 사이 어느새 자영이는 그에게 몸과 마음을 뺏기고 말았다. 동거를 시작했고 아들 하나와 딸 하나를 낳았다. 오빠와 동생들은 자라서 다 도시로 가 독립을 했다.
자영이네 부부도 시골을 떠나 도시에 가서 독립하여 중화요리집을 했다. 돈도 꽤 벌었다. 자영은 손발이 부릍도록 손님을 받고, 배달을 하고, 카운터를 지켰다. 그런데 그녀의 남편이 의처증을 가지고 있었다. 예쁜 자영이가 낮에 손님에게 미소를 지은 날 밤이면 남편에게 얻어맞아야 했다. 처음에는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그것도 사랑의 한 모습이겠거니 했다. 그러나 갈수록 증상이 악화되었다. 몇 년 후에는 밤마다 남편에게 맞았다. 매 맞고 사는 여자가 있다더니 내가 그 여자로구나, 생각했을 때 그녀는 죽고 싶었다. 그러나 두 명의 아이들이 눈에 밟혔다. 어느 날 밤에 남편이 그녀를 때리며 머리를 한 움큼 쥐어뜯었을 때, 그녀의 아들이 말했다.
“엄마, 도망가세요. 가서 차라리 혼자 사세요. 제가 아빠와 여동생 데리고 살게요. 우리 때문에 참고 산다고 말하지 마세요. 엄마가 불행하고 아픈데 우린들 행복하겠어요? 엄마가 맞는 것을 볼 때마다 난 아빠를 죽이고 싶어요. 아들을 살인자 만들지 않으려면 지금 당장 여길 떠나세요. 아빠는 엄마와 살 자격이 없어요.” “넌? 어린 영실이는 어떻게 하라고?” “엄마, 난 나의 아빠니까 같이 살아야지요. 아빠는 환자예요. 제가 동생 영실이 잘 돌보며 살게요. 엄마는 아빠를 떠나 다른 데 가서 행복하게 산다는 소식만 전해주세요.”
그 아들이 그 때 초등학교 4학년이었다던가, 5학년이었다던가, 했다. 아니나 다를까, 그 애는 아버지와 동생을 돌보며 잘 자랐다. 몇 년 전에 결혼해서 잘 살고 있다. 그 남편은 자영과 이혼한 후 몇 년 후에 뇌졸중으로 쓰러져 아들이 병간호하며 고등학교, 대학교를 다녔다고 한다. 자영은 이혼한 후에 혼자 살 때나 새로운 남편을 만났을 때에나 늘 아들과 딸의 등록금을 마련하느라 노심초사했다.
그렇게 마음 졸이며 살던 세월도 다 지나고 이제는 아들 내외가 일만 하는 자영이네 부부에게 때때로 패키지여행을 예약해주어 여행을 하게 해준다. ‘이것 또한 지나가리라’는 말처럼 아무리 각박한 삶도 세월과 함께 지나고 나면 그리도 힘들었다는 생각은 사라지는 모양이다. 지금 자영의 표정은 편안하고 행복해보였다.
“젊어서 고생만 한 우리 어머니 마순심 권사님의 팔순을 축하드립니다” 라면서 자녀들이 부부끼리 큰 절을 올리니 어머니는 쑥스러워하시며 “웬 절을 그렇게 한다냐? 이제 그만 좀 하여라” 했다. ‘고진감래‘라는 말이 떠올랐다. 인생이란 그런 것이지. 고생할 때가 있으면 즐거울 때가 있고, 슬플 때가 있으면 기쁠 때가 있는 법이다. 항상 고생만 하겠는가. 항상 즐겁기만 하겠는가.
“범사에 기한이 있고 천하만사가 다 때가 있나니 날 때가 있고 죽을 때가 있으며 심을 때가 있고 심은 것을 뽑을 때가 있으며 죽일 때가 있고 치료할 때가 있으며 헐 때가 있고 세울 때가 있으며 울 때가 있고 웃을 때가 있으며 슬퍼할 때가 있고 춤출 때가 있으며 돌을 던져버릴 때가 있고 돌을 거둘 때가 있으며 안을 때가 있고 안는 일을 멀리 할 때가 있으며 찾을 때가 있고 잃을 때가 있으며 지킬 때가 있고 버릴 때가 있으며 찢을 대가 있고 꿰맬 때가 있으며 잠잠할 때가 있고 말할 때가 있으며 사랑할 때가 있고 미워할 때가 있으며 전쟁할 때가 있고 평화할 때가 있느니라(전3장1~8)”출처/창골산 봉서방 카페 (출처 및 필자 삭제시 복제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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