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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우리나라에서 문화재라는 용어는 사어(死語)가 되어 가고 있다. 문화재(文化財)라는 호칭이 적절하지 않다는 지적이 있었는데, 2024년 5월 17일부터 공식적으로 ‘문화재’라는 용어 대신 ‘문화유산’, ‘국가유산’ 이라는 용어를 사용하게 되었다. 이에 따라 문화재청도 국가유산청으로 명칭이 변경되었다.
1962년 문화재보호법이 제정된 이래 통용되어 온 '문화재' 라는 용어를 '국가유산'을 바꾸고 행정 체계를 이에 맞추기 위한 국가유산기본법이 지난 1월 국회 본회의를 통과해 올해부터 시행된 데 따른 것이다.
문화재라는 용어가 문제가 된 것은 마지막 ‘재(財)’자가 원인이다. ‘재(財)’ 라는 글자는 재물, 재산, 돈을 의미하는데, 선조들이 남긴 유물과 유적 등을 돈의 가치로 평가하는 듯한 의미가 문화재라는 용어 속에 배어 있는 것이다.
우리가 잘 아는 TV 프로그램 중 ‘TV쇼 진품명품’이라는 코너가 있다. 개인이 보유한 골동품을 가지고 나와 가치를 평가하는데 실상 가격을 매기는 게 주 내용이다. 이 프로는 명과 암이 뚜렷하다. 전국민이 문화유산에 관심을 갖게 하였다는 선한 영향과 함께 전국민이 문화유산을 ‘돈’과 연결 시키게 한 어두운 면이 있다. 오랫동안 소유한 물건이 어느 정도 가치가 있는지를 궁금해 하는 것은 충분히 이해된다. 문제는 삼국시대 토기와 같은 유물이었다. 지금 골동품상에 있는 삼국시대 토기는 출처를 알기 힘들고 도굴품이 대부분이다. 불법으로 취득한 유물을 공영방송에서 값을 매기는 어처구니없는 일이 벌어진 것이다. 학계에서 여러 차례 문제를 제기하여 요즘은 삼국시대 유물은 다루지 않고 주로 중세 혹은 그 이후에 제작된 유물만 나오는 것으로 알고 있다.
문화유산이 돈과 직결되는 대우를 받는 것도 어이없는 일인데, 그 중에서도 가장 대접(?)을 못 받는 것이 매장유산이 아닐까 싶다. 매장유산이란 ①토지 또는 수중에 매장되거나 분포되어 있는 문화유산, ②건조물 등의 부지에 매장되어 있는 문화유산, ③지표ㆍ지중ㆍ수중(바다ㆍ호수ㆍ하천을 포함한다) 등에 생성ㆍ퇴적되어 있는 천연동굴ㆍ화석, 그 밖에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지질학적인 가치가 큰 것을 말한다.
매장유산은 발굴조사를 통해 세상에 알려지는데, 학사적으로 중요한 가치가 있는 것이 발견되면 뉴스나 신문에 기사가 나오기도 한다. 그런데 이때 당혹감을 느낄 때가 있다. 대체로 매장유산 조사는 공사 시행 전 유적의 훼손을 전제로 실시되는 구제발굴이 많기 때문이다. 우리 조상들의 흔적을 땅 밑에서 찾았는데 그 유산의 학술적인 가치 보다 ‘~~공사 암초를 만나다’ ‘~~공사 매장유산에 발목’ 이런 기사가 먼저 눈에 띄는 것이다. 물론 공사를 시행하는 입장에서 매장유산은 계획에 없던 것으로, 시간과 비용이 추가로 발생하기 때문에 암초나 발목 잡히는 상황이 맞긴 하지만 왠지 씁쓸한 기분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이제는 공사 시행 전 지하에 매장유산이 있을 가능성을 두고 계획을 수립해야 한다. 우리나라와 같이 오랜 역사를 가진 국토에 당연히 선조들의 흔적이 땅 밑에 있지 않겠는가. 물론 일반 시민들이 그러한 정보를 모두 알지는 못한다. 최신 매장유산 유존지역 정보 및 서비스 제공과 시민들의 토지 이용 부담 및 불편을 해소하고자 울산지역의 도시지역에 대한 고도화사업이 완료되었기 때문에 곧 시민들에게도 매장유산에 대한 정보가 제공될 것이다. 물론 비도시지역이 아직 남아 있긴 하다. 이런 점 또한 하나씩 해결해 나가야 한다.
한 가지 더 짚어 볼 문제는 매장유산 조사 비용을 행위를 유발한 자 즉 개인이 부담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1973년 문화재보호법이 개정될 때 신설된 항목인데, 이때의 주요 골자는 ‘건설공사로 부득이하게 발굴조사를 실시하는 경우 소요되는 경비를 건설공사의 시행자가 부담’ 하도록 하는 것이다. 사실 이 부분은 대부분의 나라에서도 이렇게 시행하고 있다. 하지만 관공서야 세금으로 조사 비용을 부담하지만, 개인에게는 큰 부담이 아닐 수 없다. 이런 문제점 때문에 전부는 아니지만 소규모 건축물(대지면적 792㎡ 이하)이나 농어촌 관련 시설(2천644㎡ 이하)은 국가가 전액 조사비용을 부담하고 있다. 이에 더해 최근에는 면적에 상관 없이 민간에서 시행하는 공사의 경우 유적의 분포여부를 확인하는 것은 국가가 조사비용을 전액 부담하고 있다. 민간이 시행하는 지표조사도 마찬가지이다. 이렇게 조사비용을 국가가 부담하는 범위가 점차 확대되는 실정이다. 물론 필자 입장에서는 모든 조사 비용을 전액 국가가 부담하면 좋겠지만 예산 문제 등 여러 가지 여건으로 한꺼번에 될 수는 없을 것이다. 점차 범위가 확대되기를 기대한다.
아무튼 어떤 상황에서든지 우리의 소중한 문화유산이 공사를 방해하는 ‘천덕꾸러기’ 신세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땅 속의 문화유산에게 무슨 잘못이 있겠는가? 울산은 전국에서 매장 문화유산이 특히 많이 분포하는 곳이다. 그만큼 옛날부터 사람이 살기 좋았다는 의미로 받아들였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