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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5월 19일 부활 제5주간 월요일 교육주간
한국천주교주교회의는 2006년 춘계 정기 총회에서 해마다 ‘청소년 주일’(5월 마지막 주일)을 포함하여 그 전 주간을 ‘교육 주간’으로 정하였다. 교회의 사명을 수행하는 데 무엇보다도 교육이 중요하고 시급한 과제이기에 가톨릭 교육에 대한 의식을 높이고 이를 위한 구체적인 실천 방안을 마련하는 기회로 삼고자 한 것이다.
<아버지께서 보내실 보호자께서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쳐 주실 것이다.>
✠ 요한이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4,21-26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21 “내 계명을 받아 지키는 이야말로 나를 사랑하는 사람이다. 나를 사랑하는 사람은 내 아버지께 사랑을 받을 것이다.
그리고 나도 그를 사랑하고 그에게 나 자신을 드러내 보일 것이다.”
22 이스카리옷이 아닌 다른 유다가 예수님께, “주님, 저희에게는 주님 자신을 드러내시고
세상에는 드러내지 않으시겠다니 무슨 까닭입니까?” 하자,
23 예수님께서 그에게 대답하셨다. “누구든지 나를 사랑하면 내 말을 지킬 것이다.
그러면 내 아버지께서 그를 사랑하시고, 우리가 그에게 가서 그와 함께 살 것이다.
24 그러나 나를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내 말을 지키지 않는다.
너희가 듣는 말은 내 말이 아니라 나를 보내신 아버지의 말씀이다.
25 나는 너희와 함께 있는 동안에 이것들을 이야기하였다.
26 보호자,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께서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시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기억하게 해 주실 것이다.”
제20회 교육 주간(2025년 5월 19-25일) 담화
‘희망의 교육, 생명의 교육’으로 하느님을 닮은 품위를 회복합시다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성모님과 함께하는 아름다운 계절 5월에 제20회 교육 주간을 맞이하였습니다. 정기 희년인 올해는 희년의 정신을 담아 희망과 생명의 교육으로 하느님을 닮은 우리 모습을 되찾는 데에 여러분 모두를 초대합니다.
지금 인류는 극복해야 하는 여러 위기와 도전의 한가운데에 놓여 있습니다. 더 많이 소유하고, 더 편리하게 살고자 하는 인류의 욕망과 생명에 대한 무관심은 유래 없는 위기를 불러왔고, 수많은 사람과 생명의 울부짖음이 하늘까지 닿고 있습니다. 또한 인류에게 도전하는 인공지능과 중독 경제는 우리의 삶에 깊이 파고들어 어느덧 삶의 방식이 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러한 상황이 미래에 어떠한 영향을 미칠지 깊이 숙고하거나 성찰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는 대학 입시를 위한 사교육 과열로 ‘7세 고시’라는 말까지 등장하는 현실을 마주하고 있습니다. 또한 적지 않은 아동과 청소년들이 취약한 교육적 돌봄과 과도한 경쟁의 파고 속에 희망을 꿈꾸기 어려운 현실에서 자라고 있습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불안 장애와 우울감에 시달리는 아동들과 청소년들이 갈수록 늘어나고, 이는 극단적 선택으로까지 이어져 생명을 포기하는 청소년들마저 늘고 있습니다.
얼마 전에 돌아가신 프란치스코 교황님(2025년 4월 21일 선종)께서는 지난해에 희년의 문을 여시며 지금 고통을 겪고 있는 온 세상을 위하여, 인류를 구원으로 이끄시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요한 14,6)이신 하느님의 아드님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을 가지고, ‘희망의 순례자’의 여정을 걸어가자고 초대하셨습니다. ‘희망의 순례자’란 인류가 겪는 악의 비극과 고통을 외면하지 않으면서, 어둠 속에 갇히지 않고, 현재에 안주하지 않으며, 주님의 도우심을 믿고 내일을 밝게 바라볼 줄 아는 마음의 힘을 가진 사람을 말합니다(프란치스코 교황 자서전 『희망』 참조). 하느님의 사랑받는 자녀로서 우리의 아이들을 바라보고, 그들의 선함과 무한 잠재력을 믿으면서, 그들을 사회 공동선에 이바지하는 활력 넘치는 전인적 인간으로 성장시키려는 지향을 가진 ‘희망의 교육, 생명의 교육’은 올 희년을 희망의 순례자로 살아가기를 바라시는 교황님의 초대에 대한 훌륭한 응답이 될 것입니다.
참스승이신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가르치신 교육 방식에 따른 ‘희망의 교육, 생명의 교육’은 우리 아이들이 이 세상 안에서 꿈을 키워 가고 세상의 행복을 추구하면서도 영원한 것을 희망하고 보이지 않는 것을 바라보도록(2코린 4,18 참조) 마음의 지평을 열어 줍니다. 또한 우리 아이들이 하느님을 닮은 무한한 가능성을 지닌 자기 존재의 바다에서 자유롭게 헤엄치면서 자기가 누구이고, 더 나은 세상을 이루기 위하여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깨닫고 실천하는 존재로 성장하도록 도와줍니다. 가톨릭 교육 기관에서, 그리고 가정에서 ‘희망의 교육, 생명의 교육’이 이루어질 때 우리 아이들은 세상의 어둠과 시련 속에서도 좌절하지 않고 희망을 품으며, 현재에 충실하고 미래를 긍정적으로 바라보면서, 자신의 이익이 아닌 공동선을 생각하는 생명력이 충만한 하느님의 사람으로 자라나게 될 것입니다.
이제 우리의 밝은 미래인 아동들과 청소년들이 ‘희망의 교육, 생명의 교육’ 안에서 세상의 빛과 소금으로 성장하고, 하느님을 닮은 품위를 되찾도록 마음 안에 품기를 바라는 세 가지 희망을 나누고자 합니다.
첫째, 자기 자신에 대한 희망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인간을 창조하실 때 당신을 닮은 모습으로 지으시고 당신의 영을 불어넣어 주셨습니다. 그러기에 우리 인간은 “하느님의 작품”(에페 2,10)이고, 영적인 존재이며, 인간의 생명은 고귀하고 소중합니다. 자신이 하느님의 걸작임을 인식하는 사람은 어떠한 어려움에도 당당히 하느님께 받은 소명에 충실할 수 있습니다. 우리 아이들이 하느님께 받은 생명에 대한 품위와 고귀함을 깨닫고, 자신의 생명에 책임감을 가지고 하느님의 사람으로 자라나도록 동반합시다.
둘째, 하느님의 한 가족에 대한 희망입니다.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사람과 생명체는 같은 하느님에게서 시작되었기에 우리는 “하느님의 한 가족”(에페 2,19)이며 “모두 한 형제”(마태 23,8)입니다. 자신의 생명에 대하여 희망하는 사람은 이웃과 모든 피조물의 생명에 대하여서도 희망하고, 저마다의 이름 안에서 소명과 고귀함을 바라볼 수 있습니다. 우리 아이들이 가족의 울타리를 넓혀 이웃과 기쁨과 고통을 나누고 연대하면서, 우리 공동의 집인 지구의 모든 생명을 돌보고 하느님의 창조 사업에 협력하도록 동반합시다.
셋째, 구원에 대한 희망입니다. 믿는 이의 희망은 공허한 낙관주의가 아니라 “약속의 공동 수혜자”(에페 3,6)로서 가지는 영원한 생명에 대한 희망입니다. “우리의 이 지상 천막집이 허물어지면 …… 영원한 집을 하늘에서 얻는다는 사실을 우리는 압니다”(2코린 5,1). ‘희망의 교육, 생명의 교육’은 한 처음과 지금 그리고 영원을 잇는 다리입니다. 우리 아이들이 세상의 유혹을 거슬러 하느님을 닮은 모습을 되찾고, 구원에 대한 확신으로 모든 이와 함께 영원한 생명을 향한 여정을 기쁘게 걸어갈 수 있도록 동반합시다.
별은 어둠이 짙어진 밤하늘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인생의 하늘에 어둠이 드리울 때 우리를 부끄럽게 하지 않는 희망의 별이신 하느님을 찾아낸다면 교육은 예술이 됩니다.
2025년 5월 교육 주간에
한국천주교주교회의 교육위원회
위원장 조 환 길 대주교
[내용출처 - https://cbck.or.kr/Notice/20250210?page=2&gb=K1200 ]
<우리는 복음을 전하여 여러분이 헛된 것들을 버리고 살아 계신 하느님께로 돌아서게 하려는 것입니다.>
▥ 사도행전의 말씀입니다. 14,5-18
그 무렵 이코니온에서는 5 다른 민족 사람들과 유다인들이 저희 지도자들과 더불어 바오로와 바르나바를 괴롭히고
또 돌을 던져 죽이려고 하였다.
6 바오로와 바르나바는 그 일을 알아채고 리카오니아 지방의 도시 리스트라와 데르베와 그 근방으로 피해 갔다.
7 그들은 거기에서도 복음을 전하였다.
8 리스트라에는 두 발을 쓰지 못하는 사람이 하나 있었는데, 그는 앉은뱅이로 태어나 한 번도 걸어 본 적이 없었다.
9 그가 바오로의 설교를 듣고 있었는데, 그를 유심히 바라본 바오로가 그에게 구원받을 만한 믿음이 있음을 알고,
10 “두 발로 똑바로 일어서시오.” 하고 큰 소리로 말하였다. 그러자 그가 벌떡 일어나 걷기 시작하였다.
11 군중은 바오로가 한 일을 보고 리카오니아 말로 목소리를 높여,
“신들이 사람 모습을 하고 우리에게 내려오셨다.” 하고 말하였다.
12 그들은 바르나바를 제우스라 부르고 바오로를 헤르메스라 불렀는데, 바오로가 주로 말하였기 때문이다.
13 도시 앞에 있는 제우스 신전의 사제는 황소 몇 마리와 화환을 문으로 가지고 와서,
군중과 함께 제물을 바치려고 하였다.
14 바르나바와 바오로 두 사도는 그 말을 듣고서 자기들의 옷을 찢고 군중 속으로 뛰어들어 소리를 지르며 15 말하였다.
“여러분, 왜 이런 짓을 하십니까? 우리도 여러분과 똑같은 사람입니다. 우리는 다만 여러분에게 복음을 전할 따름입니다.
여러분이 이런 헛된 것들을 버리고 하늘과 땅과 바다와 또 그 안에 있는 모든 것을 만드신
살아 계신 하느님께로 돌아서게 하려는 것입니다.
16 지난날에는 하느님께서 다른 모든 민족들이 제 길을 가도록 내버려두셨습니다.
17 그러면서도 좋은 일을 해 주셨으니, 당신 자신을 드러내 보이지 않으신 것은 아닙니다.
곧 하늘에서 비와 열매 맺는 절기를 내려 주시고 여러분을 양식으로,
여러분의 마음을 기쁨으로 채워 주셨습니다.”
18 그들은 이렇게 말하면서 군중이 자기들에게 제물을 바치지 못하도록 겨우 말렸다.
축일5월 19일 성 첼레스티노 5세 (Celestine V)
신분 : 교황
활동 연도 : 1209/10-1296년경
같은 이름 : 셀레스틴, 첼레스띠노, 첼레스띠누스, 첼레스티누스, 켈레스티노, 켈레스티누스, 코일레스티노, 코일레스티누스
교황 성 코일레스티누스 5세(Coelestinus V, 또는 첼레스티노)는 이탈리아 중부 몰리세(Molise)의 산탄젤로 리모사노(Sant’Angelo Limosano)라는 마을에서 소작농인 안젤로 안젤레리오(Angelo Angelerio)와 마리아 레오네(Maria Leone)의 아들로 태어나 피에트로 델 모로네(Pietro del Morrone)라는 이름을 얻었다. 아버지가 사망한 후 그는 들에서 일했지만, 그의 영성 생활에 큰 영향을 끼친 어머니는 그가 단지 농부나 양치기가 되는 것을 원하지 않았다. 그는 17살 때 몬타가노(Montagano) 인근 파이폴리(Faifoli)에서 베네딕토회 수도원에 입회해 수도승이 되었다.
그는 더욱 고적한 생활을 동경해 1231년경 아브루치(Abruzzi) 광야에서 은수 생활을 시작했다가, 사제가 되려고 자신의 움막을 떠나 1234년경 로마(Roma)에서 사제품을 받았다. 그는 몇 년 동안 술모나(Sulmona)의 모로네(Morrone) 산에 있는 한 동굴에 머물면서 은수 생활을 원하는 이들과 공동체를 이뤄 지도하다가, 몰려드는 군중들을 피해 1245년경 제자들과 함께 접근이 더 어려운 마이엘라(Maiella) 산 깊은 곳으로 가서 생활했다. 하지만 제자들이 늘어남에 따라 그는 처음에 만들었던 모로네 산의 공동체, 이미 당시에는 수도원을 발전한 곳으로 되돌아와야만 했다. 그는 매우 엄격한 규칙을 적용했음에도 불구하고 원장으로 선출되었다. 그가 설립하고 훗날 그의 이름을 따서 첼레스티누스회로 불리는 은수자 공동체는 1264년 교황 우르바누스 4세(Urbanus IV)에 의해 인가되었고, 교황 그레고리우스 10세(Gregorius X) 때 성 베네딕투스의 규칙을 따르는 수도원으로 설립 인가를 받았다.
교황 니콜라우스 4세(Nicolaus IV, 1288-1292년 재위)의 선종 후 정치적 알력 때문에 2년간의 교황직 공백 기간이 발생했을 때, 이미 80에 가까운 고령의 은수자인 그는 교황 선출을 위해 페루자(Perugia)에 모인 추기경들에게 위협적인 언사로 새 교황을 즉각 선출하지 못하면 하느님의 진노를 피하지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 어찌 된 영문인지 추기경들은 당시 고령에다 병든 그를 새 교황으로 선출했다. 더 오래 교황직을 공석으로 둘 수 없어서 그는 선거 결과를 받아들였고, 주교품을 받고 이틀 후인 1294년 8월 29일 아브루초(Abruzzo) 지방 아퀼라(Aquila)의 산타 마리아 디 콜레마지오(Santa Maria di Collemaggio) 성당에서 코일레스티누스 5세라는 이름으로 교황좌에 올라 혼란하던 교회의 방향을 바로 잡고자 노력했다.
그러나 행정 실무 경험이 전혀 없던 성 코일레스티누스 5세는 주어진 직무를 수행하기에 자신이 너무나 부족하다는 것을 느꼈다. 자신의 무능함과 건강상의 이유로 그는 더는 교황직을 수행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닫고 나서, 교황에게 스스로 물러날 권리가 있다는 마지막 교령을 발표하고 재임 5개월여만인 1294년 12월 13일 교황직을 사임했다. 그는 스스로 교황직을 사임하고 자신의 수도원을 되돌아간 최초의 교황이 되었다. 베네데토 카에타니(Benedetto Caetani) 추기경이 그를 승계해서 보니파티우스 8세(Bonifatius VIII)라는 이름으로 교황좌에 올랐으나, 선임자의 높은 인기가 수많은 지지자를 만들어 그를 복위시키려는 운동으로 번졌다. 그러자 후임 교황은 성 코일레스티누스 5세를 아나니(Anagni) 근교의 푸모네 성(城)에 감금했다. 예전의 은수 생활로 돌아가고자 했던 성 코일레스티누스 5세는 결국 그 뜻을 이루지 못하고, 푸모네 성에서 외부와의 접촉이 차단된 채 첼레스티누스회의 두 수사와 함께 생활하다가 1296년 5월 19일 종기로 인한 감염으로 선종했다. 그의 시신은 우선 페렌티노(Ferentino)에 묻혔다가, 1317년에 그가 교황으로 즉위했던 산타 마리아 디 콜레마지오 성당으로 이장되었다. 그는 1313년 5월 5일 교황 클레멘스 5세(Clemens V)에 의해 증거자로 시성되었다.
오늘 축일을 맞은 첼레스티노 5세 (Celestine V) 형제들에게 주님의 축복이 가득하시길 기도드립니다.
야고보 아저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