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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계종 원로의원 혜명당 무진장 스님(조계사 회주)이 9월9일 오전 4시30분 동국대 일산병원에서 입적했다. 법납 58세, 세납 82세.
무진장 스님의 분향소는 회주로 소임을 지내신 서울 조계사와 출가본사인 금정총림 범어사에 마련됐다. 스님의 영결식과 다비식은 9월13일 오후 4시 조계종 원로회의장으로 금정총림 범어사에서 엄수된다.
1932년 제주에서 태어난 무진장 스님은 1956년 3월 부산 범어사에서 동산 스님을 은사로 득도했다. 1960년 범어사 금강계단에서 동산 스님을 계사로 구족계를 수지했으며 범어사 불교전문강원과 동국대 불교대학을 졸업하고 동국대 대학원을 수료했다. 1968년 태국으로 건너가 1968년 방콕 왓 벤타마보핏 사원에서 남방불교를 연구하고, 일본 경도불교대학 대학원에서 천태교학을 연구한 후 귀국해 동국대 불교대학에서 학생들을 지도하기도 했다.
스님은 1970년대부터 조계사에 주석하며 청빈한 삶을 실천하며 불교발전과 대중포교를 위해 노력했다. 조계종 제2·4대 포교원장을 역임하고 2007년 원로의원으로 추대된 뒤 대종사로 품수됐으며 2010년 조계사 회주로 추대됐다. 평생 대중교화와 교육에 매진해 조계종 포교대상, 제3회 대원상 대상 등을 수상했으며, 1987년에는 정부로부터 국민훈장 동백장을 수훈했다.
스님은 평생 무소유의 청빈한 삶을 산 것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실제 스님은 평생 주지 소임을 맡지 않았고 자신의 이름으로 된 어떠한 재산도 갖지 않았다. 이유 없는 보시를 결코 받지 않았으며 평생을 조계사 근처에 머물렀지만 그 흔한 찻집 한 번 출입하지 않았다. 어떤 이들은 이런 스님의 고집을 어려워하고 간혹 불만을 털어놓는 이들도 적지 않았지만 오히려 쓸데없는 짓을 했다가는 호통을 듣기 일쑤기였다.
스님의 이 같은 소신은 30여년간 법주로 지내온 동산반야회라고 예외가 아니었다. 무진장 스님은 1982년 ‘평생 부처님 공부를 하겠다’고 발원한 고(故) 김재일 회장을 비롯한 재가불자들의 요청을 받아들여 동산반야회 법주가 됐다. 이후 4년 뒤인 1986년 김 회장이 압구정동에 ‘반야포교원’을 개원하고 무진장 스님을 원장으로 모시려하자 무진장 스님의 불호령이 떨어졌다. “쓸데없는 짓을 했다”는 이유다.
당시 동산반야회 회원들 사이에서도 스님의 이런 행동을 이해 못하는 이들이 많았다. 때문에 법주인 무진장 스님과 무진장 스님을 법주로 모신 김 회장 사이의 불화설이 나돌기도 했다. 하지만 개원식이 끝난 얼마 후 김 회장은 천연덕스럽게 스님을 찾아가 유마경 강의를 부탁했고 스님도 별 말씀 없이 강의를 수락해 꼬박 1년을 이어갔다. 이에 대해 김 회장은 “혹시라도 스님이 뒤로 돈을 모아 포교당을 열었다는 말이 나올까봐 애초부터 싹을 잘라버리신 것”이라고 설명했고, 동산반야회 회원들이 무진장 스님을 스승으로서 더욱 존경하게 된 계기가 됐다.
스님은 또 언제나 회색이 아닌 괘색으로 된 승복을 착용한 것으로도 유명했다. 이에 대한 물음에 스님은 “율장을 보면 승가의 옷은 괘색 ‘카사야’ 하나 뿐이야. 분명히 가르침이 나와 있는데 왜 회색 옷을 입나? 그리고 출가했다는 표시로 머리를 깎았으면서 모자를 쓰는 것이 말이 돼나”고 반문했다.
무진장 스님은 “공부하는 불자, 실천하는 불자가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불자들이 공부를 해야 합니다. 부처님한테 복달라고 빌어도 부처님이 절대 복 안주십니다. 부처님 가르침대로 살겠다고 다짐하고 부처님의 가르침이 무엇인가를 알기 위해 공부하면서 실천하는 것이 불자들의 진짜 기복입니다. 부처님 가르침대로 살면 반드시 행복해질 수 있다는 믿음, 그 믿음이 진정한 복 아닙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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