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문지회 회원 제위분이 꼭 알아야 할 사람. 澗松 全鎣弼 그는 과연 어떤 인물인가?
1) 간송 전형필은 대한민국의 교육자이자 문화재 수집가로, 일제강점기 당시 조선의 중요한 문화재를 수집하고 보존한 인물 입니다.
2) 전형필은 1906년 서울 한성부(현 종로구)에서 태어났으며, 부유한 가정에서 자랐습니다. 그의 집안은 종로 일대의 상권을 장악한 대부호 가문이었고, 그는 와세다 대학에서 법학을 전공했습니다. 학업을 마친 후, 그는 조선의 중요한 문화재를 수집하기 시작했으며, 이는 당시 그가 생각한 독립운동의 일환이었습니다.
3) 그는 1932년 서울 관훈동의 한남서림을 인수하여 문화재들이 외부로 유출되는 것을 막기 위해 문화재들을 구입했습니다. 1938년에는 자신의 소장품으로 한국 최초의 사립 박물관인 보화각을 세웠으며, 이곳은 현재 간송미술관으로 개칭
되었습니다. 전형필의 가장 큰 업적 중 하나는 훈민정음 해례본을 보존한 것 으로, 이 문서는 국보 70호로 지정되었고 1997년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록되었습니다.
4) 또한, 그는 보성고보를 인수하여 교육 사업에도 힘썼으며, 1960년에는 고고미술동인회를 결성하여 미술사 연구에 기여했습니다. 전형필의 업적은 그가 문화재 보존과 민족의 전통을 지키기 위해 헌신한 인물임을 보여줍니다.
♧ 국보를 되찾다, 문화유산지킴이 간송 전형필
https://youtu.be/Mg7okMiMrUQ
1. 序言
간송 전형필(1906~1962)은 일제강점기와 해방 직후, 우리 민족의 문화유산을 지키고 계몽하는 데 헌신한 대표적 애국지사이자 문화운동가입니다. 그의 생애는 ‘문화 독립운동’의 표본이라 할 수 있으며, 민족혼을 일깨운 그의 주요 업적과 작품을 아래와 같이 정리할 수 있습니다.
2. 전형필 생애 개요
1) 출생: 1906년 서울 부유한 집안에서 출생
2) 학력: 보성고보 졸업 후 일본 와세다대학 유학
3) 전환점: 유학 시절 한국 문화재의 해외 유출을 목격하고 문화재 수호 결심
4) 업적: 수많은 국보·보물을 구입·수집해 간송미술관 설립, 조선미술전람회 후원, 문화인재 양성
5) 별명: ‘문화독립운동가’, ‘최초의 민간 박물관장’
3. 민족혼을 일깨운 대표적 문화재 수호 업적
1) 훈민정음 해례본 (국보 제70호)
* 1935년 구입
* 고서점에서 1만 원(당시 서울 집10채 값)에 구입
* 세종대왕의 창제 정신과 우리 글의 위대함을 되살린 상징적인 보물
* 현재까지 세계 유일의 해례본 원본
2) 청자 상감 운학문 매병 (국보 제68호)
* 고려청자의 극치를 보여주는 작품
* 당시 일본인이 사가에 팔려는 것을 거금 2만 원에 사들임
* “이게 일본으로 넘어가면 100년 후 우리는 땅을 치고 통곡할 것이다”라는 유명한 발언
3) 혜원 신윤복 <미인도> 외 풍속화 수집
* 민족의 일상과 감성을 담은 풍속화를 적극 수집
* 정선, 김홍도, 신윤복, 장승업 등의 작품들을 보존
* 식민지 시기의 왜색문화에 대항해 우리 정서와 미의식을 일깨움
4) 간송미술관 설립 (1938년)
* 일제의 감시 속에서도 조선의 얼을 담은 미술품 공개
* 조선민족 미술연구소로 시작, 해방 후에도 꾸준히 활동
* 민간 최초의 사립미술관
4. 전형필의 신념과 철학
1) “나는 문화재 수집가가 아니다. 나는 (민족혼을) 지키는 사람이다.”
2) 문화재를 사적으로 소유하기보다는, 민족 전체의 유산으로 간주
3) 문화주권 회복과 정체성 수호를 통한 독립운동의 새로운 형태를 제시
5. 간송이 길러낸 인물들
1) 고미술 사학자 최순우, 서지학자 정병욱 등 문화재 관련 인재 양성
2) 해방 후 대한민국 문화재청 설립과 정책 기틀에 기여
6. 민족혼의 상징–간송미술관
1) 현재도 서울 성북동에 있으며, 그의 수집품은 한국 문화 정체성의 상징
2) 시대를 초월해 문화독립운동의 결정체
7. 結語
전형필은 총칼이 아닌 문화와 예술로 나라를 지키고자 한 인물입니다. 그가 수호한 문화재는 단순한 유물이 아닌 민족의 얼과 정신 그 자체입니다.
첫댓글 감사히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