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 살롱은 누구든 자유롭게 이야기할 수 있는 토론장이자 새로운 정보의 유통 공간이었습니다. 칼럼을 통해 조금이나마 여러분의 궁금증을 해소하고, 다양한 토론거리를 제시하고 싶습니다. 트윈스 살롱이 열정적인 LG 팬들과의 소통 공간이 되길 바랍니다.
아직 4월이 다 지나가기 전 잠실구장 LG 트윈스의 덕아웃에서 양상문 감독에게 한 가지 질문이 던져졌다. 2군에서 성적이 좋던 '적토마' 이병규에 대한 활용법이었다. 양상문 감독은 "여기(1군)에 있는 선수들 얘기만 해달라"며 답변을 회피했다.
양상문 감독의 올 시즌 구상에 이병규는 이미 없었다. 그로부터 두 달 정도가 지난 지난달 21일 인천 SK 행복드림구장. 이병규의 1군 콜업 문제가 뜨거운 화두로 떠오르자 양상문 감독은 '선언'과도 같은 말을 남겼다.
"내 머릿속에는 유광점퍼를 입고 야구장에 오는 6살 어린이가 어른이 됐을 때 우승하는 모습을 보여줄 수 있는 팀을 만들겠다는 생각 뿐이다."
우승 위한 기반을 다지려 하는 양상문 감독
◆ '엘린이'에게 보여줄 LG의 미래
KBO리그에서는 어린이 팬들을 흔히 '~린이'라고 부른다. 구단의 이름이나 별명이 앞글자로 붙는다. 엘지(LG)와 어린이를 합쳐 '엘린이'가 된다. 양상문 감독이 사실상 이병규를 전력 외로 분류하면서 설명한 '유광점퍼를 입고 야구장에 오는 6살 어린이'가 바로 엘린이다.
6살 어린이가 성인이 되려면 14년이 걸린다. 양상문 감독이 왜 '6살'을 기준으로 삼았는지는 알 수 없다. 확실한 것은 장기적인 관점에서 우승에 도전할 수 있도록 팀을 이끌어나가겠다는 그의 의지다. 분명 LG는 당장의 성적보다 젊은 선수들을 키워나가는 리빌딩에 방점이 찍혀 있는 팀이다.
현재 30~40대인 LG 팬들은 1990년, 1994년 두 차례의 한국시리즈 우승을 직접 지켜봤다. 반대로 20대 LG 팬들은 긴 암흑기를 목격하며 LG의 전성기 시절은 역사로만 접했을 가능성이 높다. 10대 이하 엘린이들에게는 팀의 성장 과정과 함께 우승까지도 보여주고 싶은 것이 양상문 감독의 바람이다.
사실 LG의 목표는 더 이상 포스트시즌 진출이 아니다. 지난 2013년 LG는 정규시즌을 2위로 마치며 11년만의 감격적인 가을야구를 경험했다. 2014년에는 최하위에서 4강까지 오르는 KBO리그 역사에 남을 반전 드라마를 썼다. 가을야구는 그 자체로 의미가 있지만, 예전만큼 LG 팬들에게 커다란 감동을 안겨주기는 어렵다.
LG의 프랜차이즈 스타 출신 한 야구인은 "LG가 당장 4위, 5위를 한 번 더 하는 것에는 큰 의미가 없다고 본다"며 "그보다 우승을 위한 토대를 쌓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꾸준히 가을야구에 초대를 받으면서 팀을 우승권에 근접시키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겠지만, 그게 어렵다면 중점을 둬야 할 부분은 팀의 미래라는 뜻이다.
◆ 감독의 책임은 무엇인가
양상문 감독의 계약기간은 2017년까지다. 그러나 프로야구 감독에게 계약기간이란 반드시 지켜지는 약속같은 것이 아니다. 상황에 따라서는 언제든 계약기간을 남겨두고 팀을 떠날 수 있다. 그것이 자의든 타의든 말이다.
감독이 계약기간을 채우고 재계약까지 맺기 위해서는 당장 좋은 성적을 내야 한다. 아무리 구단에서 장기적인 안목으로 팀 운영을 맡겼다 해도 성적이 나쁘면 지휘봉을 계속 잡고 있기 어렵다. 어쩔 수 없이 감독들은 눈앞의 성적에 급급해진다. 리빌딩이 쉽지 않은 이유다.
양상문 감독이라고 이런 사실을 모를리 없다. 지난 시즌을 9위로 마쳤기 때문에 더욱 올 시즌 성적이 중요하다. 그런 점에서 가능성만 가득한 신예보다 검증된 베테랑을 기용하는 것이 양상문 감독의 입지에는 유리할 수 있다.
그럼에도 양 감독은 리빌딩을 자신이 책임져야 할 숙명이라 여기는듯 하다. 이병규에 대해 언급하며 "우리 LG도 우승을 할 수 있는 팀이 돼야 한다. 그렇게 만드는 것이 감독의 책임"이라고 말한 것에는 양상문 감독의 확고한 신념이 담겨 있다.
방향 설정도 감독의 책임이다. 양상문 감독은 부임 이후 꾸준히 LG의 팀컬러를 잠실구장에 어울리도록 개편하고 있다. 잠실구장은 국내 최대 규모를 자랑한다. 그에 맞춰 거포형 타자보다는 중장거리 타자를 육성하고, 뛰는 야구의 비중을 높인 것이 양 감독의 방향 설정이다.
양상문 감독은 투수 전문가로도 잘 알려져 있다.
홈 구장에 맞춰 선수단을 구성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팀 성적과 직결되는 작업이다. 지금은 NC 다이노스의 사령탑을 맡고 있는 김경문 감독이 두산 베어스 시절 잠실구장에 최적화된 '발야구'를 선보였던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
염경엽 넥센 히어로즈 감독도 "김경문 감독님께 구장 특성을 활용하는 법을 배웠다"고 말했다. 염 감독은 목동구장을 홈으로 쓰는 지난 시즌과 고척스카이돔에 새둥지를 튼 올 시즌 크게 다른 팀컬러를 선보이고 있다.
◆ LG 떠나 맹활약? 감수해야 할 부분
경기 운영과 관련된 비난과는 별개의 문제다. 양상문 감독의 방향 설정은 틀렸다고 할 수 없다. 설정한 방향을 얼마나 인내심을 갖고 효과적으로 끌고 나갈지가 중요할 뿐이다. 최근 LG를 떠난 선수들의 활약이 두드러지고 있지만, 이 또한 LG가 감수해야 할 부분이다.
잠실에서는 홈런이 나오기 쉽지 않다. 역대 잠실구장을 홈으로 사용하며 한 시즌 30홈런 이상을 때려낸 선수는 두산의 심정수(1999년 31홈런)와 김동주(2000년 31홈런), LG의 이병규(1999년 30홈런) 등 3명이 전부다. 그마저도 타고투저가 극심하던 시절 나온 기록이다.
넥센에서 홈런왕으로 성장한 뒤 메이저리거가 된 박병호를 시작으로 SK 와이번스에서 연일 홈런포를 가동하고 있는 정의윤과 최승준, kt 위즈에서 '만년 유망주'의 가능성을 꽃피운 박경수가 이른바 '탈 LG 효과'의 대표적인 경우다.
그러나 이들이 LG에 계속 남아 있었었다면 지금의 활약을 펼칠 수 있었을까. 그렇지 않다고 보는 시각이 우세하다. 현 시점에서 LG로 돌아온다고 해도 마찬가지다. LG에서 팀을 옮긴 선수들이 새로운 홈 구장의 특성에 맞춰 자신의 장점을 발휘하고 있는 것이라고 해석해야 한다.
LG 구단과 양상문 감독도 '떠난 자들의 성장'을 예상하지 못했던 바는 아니다. 다만 아쉬운 것은 반대급부로 LG가 영입한 선수들의 활약이 아직까지 크게 눈에 띄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 현재가 있어야 미래도 있다
6살 어린이에게는 어른이 돼 LG의 우승을 지켜보는 것만큼 유광점퍼를 입고 야구장을 찾는 현재도 중요하다. 현재의 LG 야구를 즐기는 것도 팬들의 권리인 것. 반대로 LG 선수들에게는 팬들에게 최대한 많은 승리를 보여줘야 할 의무가 있다.
너무 리빌딩에 치우친 선수 운영도 바람직하지 않다. 주전을 가르는 기준이 '나이'가 돼서는 안된다. 양상문 감독은 2014년 취임 당시 "나는 야구를 잘하는 선수를 좋아한다"며 "신인이든 마흔이 넘든 야구 잘하는 선수를 기용해야 팬들이 납득한다"고 말한 바 있다.
물론 감독 취임 후 2년이 지난 현재는 상황이 많이 달라졌다. 시간이 지난만큼 베테랑들은 더욱 나이가 많아졌고, 신체 능력도 하락했다. 2013년 정규시즌 2위에 올랐던 전력을 안고 시작했던 2014년과는 달리, 올 시즌은 지난해 9위였던 전력에서 큰 보강이 없었다.
2015년 스프링캠프. 선수들과 함께 활짝 웃고 있는 양상문 감독
현역 지도자들은 승리와 함께하는 것이 가장 좋은 리빌딩이라고 입을 모아 말한다. 젊은 선수들은 승리와 함께 성장한다. 지는 경기에 자주 나간다고 기량이 쑥쑥 늘지 않는다. 언제, 어디서든 모든 스포츠의 기본적인 목표는 승리에 있다.
엘린이들은 오늘도 LG가 이기길 기대하며 부모님의 손을 잡고 야구장을 찾는다. 2-9로 뒤지다 10-9로 뒤집으며 승리하는 경기는 우승만큼이나 강렬한 기억을 남긴다. 미래는 현재가 쌓이고 쌓여 만들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