行試 1년6개월 공부해 합격 골프도 한달 만에 싱글 '집중의 달인'
KAI에 '칼' 대신 '시스템 경영' 이식 외형보단 '딴딴한 회사' 만들 것
면서기 꿈꾸던 시골 소년
5살부터 꼴 베다 고3때 공무원 합격
하루 13시간 공부 매달려 행시까지
'공부나 운동이나 몸이 기억할 정도로 집중적으로 파고들어야 목표 달성'
후배들에게 글쓰기 강조
고교때 도서관 책 3천권 대부분 읽어 '아이디어도 글로 써봐야 업무에 도움'
자기생각 정리하고 신문 읽도록 권유
2017년 KAL 구원투수로 등판
취임하자마자 징계보단 시스템 개선
외부인사에 혁신 맡겨...사장 권한도 축소
'2030년 년 매출 20조 회사로 키울 것'
손은 그 사람의 과거다.
김조원 한국항공우주산업(KAI) 사장(61)의 손은 험했다.
손등과 손가락마다 상처 자국이 있었고, 손톱도 뭉개진 모습이었다.
대학 3학년 때 행정고시(22회)에 합격하고, 총와대(공직기강비서관)와 감사원(사무총장)을 거쳐
대학총장(경남과학기술대)까지 지낸 앨리트 이미지와는 거리가 멀었다.
'맛에 베여 생긴 흉터입니다.
경남 진양군(현 진주시) 미천면 시골집에서 다섯 살 무렵부터 소가 먹을 꼴(풀)을 베러 지녔거든요.
여물(볏집)을 작두로 썰다가 손톱도 많이 뭉개졌죠'
지난 6일 서울 삼성동의 '홍영재 장수 청국장'에서 만난 김 사장은 '초등학교 5학년 때
처음 버스를 탔을 정도로 깡촌에서 자랐다'며
'하루 두끼를 먹던 집의 유일한 반찬이 청국장이었다'고 했다.
소박한 청국장집을 떠올렸지만 예상은 빗나갔다.
청국장의 원료인 발효 된장을 넣어 만든 '보쌈'과 '전복찜' 등은 고급 한정식에 더 어울릴 법했다.
래스토랑을 연상케 하는 실내도 고릿한 청국장 냄새가 풍기는 시골집과는 달랐다.
'반전의 연속'이라고 농을 던지자 그는 '내가 걸어온 길이 그렇다'고 맞받았다.
우연히 찾아온 고시의 꿈
김 사장은 고구마를 넓게 얹은 쌀밥부터 한 숟가락 떴다.
'배를 곯아야 했던 시절, 구황작물로 쓰였던 고구마를 보니 고향 생각이 나네요.
300여 가구가 살던 마을인데 중학교를 다닌 사람은 없었어요.
초등학교 6학년 때 담임 선생님이 '중학교에 진학할 거냐'고 물어서 중학교란 존재를 처음 알았습니다'
'우리 형편에 공부는 해서 뭐하냐'는 가족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우여곡절 끝에 중학교를 간신히 마쳤다.
그리고 학업은 중단했다.
중학교를 졸업하고 마을 뒷산에 올라 떌감용 나무나 베던 그에게 우연히 만난 옆동네 선배가 귀가 번쩍 띄는는
말을 해줬다.
진주고에 진학하면 면서기(9급공무원)는 따논 당상이라는 것. 농사짓는 것 말고 다른 일을 할 수 있다는 생각에
그길로 짐을 꾸려 진주로 갔다.
'기초가 부족했지만 딱 한달간 교과서를 통째로 외웠더니 다행히 합격하더라구요'
김 사장은 면서기를 목표로 진주고 3학년 때 응시한 경상남도 9급 공무원 시험에서도 붙었다.
시골 청년의 동화는 그렇게 해피엔딩으로 끝나는 듯했다.
그런데 하필 발령이 미뤄졌다.
꿈꾸던 면서기가 되려면 1~2년은 꼬박 기다려야 했다.
'고등학교 3학년 담임 선생님이 대학(영남대 행정학과) 원서를 주더군요.
임용도 기다릴 겸 대학에 가서 행정고시 (5급 사무관) 준비를 해보라고 ' 또 다른 시작이었다.
단기간에 끝낸 수험 생활
청국장으로 맛을 낸 향긋한 꿀토마토를 한입 베어 물어 그가 말을 이어갔다.
'공부는 목적(행시 합격) 달성을 위한 수단인 만큼 최대한 빨리 끝내겠다고 마음을 다잡았습니다'
그는 하루에 13시간씩 수험공부에 매달렸다.
400페이지 분량의 경제학원론을 시간당 8페이지씩 읽어 내려갔다.
나흘 만에 일독을 끝냈다.
2차 시험을 앞둔 마지막 한 달 동안은 18시간 이상 책과 씨름했다.
행시 1,2차를 1년6개월 만에 합격한 비결이다.
김 사장은 '진주고 입학시험 공부 때 몸에 밴 집중적인 공부법이 효과를 봤다'고 했다.
싱글 플레이어(핸디캡이 한 자릿수) 수준인 김 사장의 골프 실력도 단기간에 집중한 결과물이다.
'1994년 미국 연수 시절 골프채를 처음 잡았습니다.
새벽 4시부터 하루에 4라운드 72홀씩 돌았어요,'한 달 만에 싱글을 했습니다.'
그의 집중력 강의'는 한동안 계속 이어졌다.
'미국 프로농구의 전설적 3점 슈터인 레지 밀러는 이미지 트레이닝을 포함해 10만 번씩 슛 연습을 했다잖아요.
공부나 운동이나 몸이 먼저 기억할 정도로 집중적으로 파고들어야 목표를 달성할 수 있습니다.
단순 비리적발 대신 정책감사
김 사장이 막걸리 잔을 들었다.
ㅅ구수하면서도 깔끔한 청국장 한 숟가락에 막걸리의 탄산감이 더해졌다.
얘기는 25년간 근무한 감사원 시절로 거슬러 올라갔다.
그가 공장에 입문한 19800년대만 해도 한국 행정은 주먹국구식으로 운영됐다고 했다.
'감사를 나가면 피감기관에서 서류를 보여주며
'어차피 제대로 된 게 없으니 아무거나 지적할 사항을 고르세요'라고 할 정도였어요.
누구 한 사람의 잘못이 아니라 업무 시스템이 없었던 거죠'
1985년 한국전력 감사를 대표적인 예로 들었다.
한전은 당시 '전력이 부족하다'며 3조원대 화력발전소 건설을 추진했다.
그런데 어디에서 얼마큼 전기가 부족한지에 대한 근거가 없었다.
질문을 하면 본부장은 실장에게, 실장은 과장에게 떠넘길 궁리만 했다.
'나중에 따져보니 1950년대 비국이 원조해준 노후 화력발전소 생산 전력을 근거로 전기가 부족하다고 했더라고요.
1년 에 60일은 고장으로 쉬는 발전소인데' 감사 이후 발전소 건설 계획은 백지화됐다.
한전도 발전소 건설비용 대출 이자 3000억원을 아낄 수 있었다.
노무현 정부 시절인 2005년 청와대 공직기강비서관으로 일할 때도 인사검증 메뉴엘을 마련해
'시스템 인사'를 하기 위해 노력했다.
'당시 노 대통령이 인사 문제와 관련해 '김 비서관 생각은 어때'라고 물으면 보고한 서류에 답이 있다고 말했어요.
그럼 더 이상 묻지 않았습니다.
개인의 감정이 들어가면 시스템 인사가 돌아가질 않죠'
공직 시절부터 김 사자의 후배들에게 강조해온 것은 글쓰기 능력이다.
보고 들은 것을 명호가하고 간결하게 글로 쓸 수 있어야 자신의 생각을 정리할 수 있고,
조직의 시스템도 작동할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책, 신문과 같은 활자 매체를 꾸준히 읽을 것을 권유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그는 진주고 시절 학교 도서관에 있던 3000여권의 장서 중 사전에 제외하고 빠짐없이 읽었다고 했다.
'많은 지식과 좋은 아이디어가 있어도 표현을 제대로 못하면 호라용항 수 없어요.
감사원 시절 후배들에게 '하고 싶은 말을 다섯 줄로 요약해 글로 써보라'는 숙제를 내주곤 했습니다.
'사장이 간섭하면 업무 효율 떨어져'
김 사장이 KAI 대표이사에 취임한 2017년 10월은 방산비리와 분식회계 사건 등으로 회사가 어수선할 때였다.
감사원 출신답게 징계의 칼을 휘두를 것이란 전망이 많았다.
하지만 그가 가장 먼저 한 일은 외부 전문가와 직원들이 참여하는 '경영혁신위우너회' 출범이었다.
위원장도 외부 인사(김호중 건국대 경영대학원 교수)에게 맡겼다.
혁신위는 1446건에 달하는 내부 의견을 수렴해 조직을 개편하고 채용, 승진 등 인사제도를 개선했다.
김 사장은 '매출이 3조원에 달하는 KAI 사장이 A부터 Z까지 일일이 간섭하면 핵심 분야에 집중할 수 없다'며
'사장의 권한을 줄이고 시스템으로 움직이는 회사가 돼야 한다'고 했다.
대신 고시 공부 때처럼 핵심(수주)에 집중하기로 했다.
작년 말 조직개편을 통해 김 사장을 위원장으로 한 전사수주위원회를 신설한 이유다.
'영업 쪽은 수주를 위해 입찰 가격을 낮추려 하고, 생산 쭉은 수주를 위해 입찰 가격을 올리려 하니
사장이 직접 나서서 교통정리를 할 수밖에 없더군요.
식사를 마칠 때쯤 후식으로 팥빙수가 나왔다.
달달한 팥이 청국장의 텁텁함을 씻어냈다.
KAI는 2030년까지 연매출 20조 원을 달성한다는 목표를 세웠다.
'KAI 사장을 맡은 지 벌쎄 16개월이 흘렸습니다.
임기가 3년(36개월)이니 20개월쯤 남았네요.
개발부터 양산까지 10년 이상 걸리는 항공 우주사업 특성상 임기 안에 눈에 보이는 성과를 내기보다
'떈땐한(딴딴하다의 경상도 사투리)' 회사를 만드는 데 주력하겠습니다. 김보형 기자
한국항공우주산업은?
한국항공우주산업(KAI)은 1999년 삼성항공과 대우중공업, 혀낻중공업 등 세 회사의 항공 부문이 합병해
출범한 국내 유일의 항공기 제작업체다.
기본훈련기(KT-1)를 시작으로 고등훈련기(T-50)와 경공격기(FA-50), 한국형기동헬기(KUH-1) 등을 개발해 생산하고 있다.
지난해 매출 2조7894억원, 영업이익 1444억원을 기록했다.
창립 초기엔 군수 비중이 86%에 달했으나 2107년 취임한 김조원 사장이 민항기 부품 공급 확대에 나선 결과
작년엔 민수 60%, 군수 40%로 균형 잡힌 사업구도를 갖췄다.
KAI는 앞으로 한국과 아시아 시장에 적합한 50~70석 규모의 민항기를 개발해
보잉, 에어버스와 어깨를 나란히 하는 글로벌 항공우주업체로 도약한다는 목표다.
김조원
1957년 경남 진양군(현 진주) 출생
1976년 진주고 졸업
1978년 행정고시 합격(22회)
1980년 영남대 행정학과 졸업
1981년 육군학사장교 1기 전역
1992년 성균관대 경영대학원 졸업
1995년 미국 인디애나대 행정대학원 졸업
2000년 건국대 경영학 박사 학위 취득
2003년 감사원 국가전략사업평가단장
2005년 대통령 비서실 공직기강시서관
2006년 감사원 사무총장
2008년 영남대 행정대학원 석좌교수
2008년 경남대학기술대 총장
2013년 건국대 경영대학원 석좌교수
2015년 더불엄니주당 당무감사원 원장
2017년 한국항공우주산업(KAI) 사장
한국항공우주산업진흥협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