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원선자에게(贈性源禪子)-소요태능(逍遙太能)
無聲無臭又無名(무성무취우무명) 소리도 없고 냄새도 없고 이름마저 없음이여
到處相從不可明(도처상종불가명) 가는 곳마다 서로 따르지만 밝혀내긴 어렵나니
欲識空王眞面目(욕식공왕진면목) 그대의 본래 모습 알고 싶은가
雁拖秋色過江城(안타추색과강성) 기러기 가을빛 길게 끌며 강성(江城)을 지나가네
*위 시는 ‘석지현’(釋智賢)님의 편저 “선시감상사전”에 실려 있는데, 참고로 석지현님은 1969년 중앙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되고, 1973년 동국대학교 불교학과를 졸업하였으며, 이후 인도, 네팔, 티베트, 미국, 이스라엘 등지를 수년간 방랑하였고, 편.저.역서로는 “선시”, “법구경”, “숫타니파타”, “불교를 찾아서”, “선으로 가는 길”, “벽암록”, “왕초보 불교 박사 되다”, “제일로 아파하는 마음에-관음경 강의”, “행복한 마음 휴식”, “종용록” 등 다수가 있습니다.
*소요태능(逍遙太能, 1562~1649, 전남 담양사람)은 어머님이 꿈에 신승을 보고 그를 잉태하였고, 13세에 백양사에 입산하여 부휴대사(浮休大師)에게 경을 배우고 묘향산에 들어가 서산대사를 친견하였으며, 공안참구(公案參究) 20년만에 깨달았고, 인조 27년 11월 21일 담담히 앉아 입적하였으며, 서산(西山), 경허(鏡虛), 청매인오(靑梅印悟)와 더불어 한국 선시의 국보적 존재이고, 저서로는 소요당집(逍遙堂集)이 있습니다.
*위 시의 형식은 ‘칠언절구이고, 출전은 “소요당집(逍遙堂集)”입니다.
*禪子(선자) : 참선을 하는 중(禪僧)
相從(상종) : 서로가 서로를 따르다(그림자가 물체를 따르듯)
欲識(욕식) : ~알고자 하다
空王眞面目(공왕진면목) : 태어나기 이전의 본래 모습, 시공을 초월한 자아의 본래 모습
拖(타) : 끌어당기다
*위 시에는 “성원이라는 이름을 가진 중에게 주는 시로서 일종의 공안형식을 취하고 있다. 마음이란 냄새도, 소리도, 이름도 없지만 그러나 언제나 이 육체를 운전하고 있다. 마음과 육체는 마치 물체와 그림자가 서로 따르듯(엄밀하게 말하자면 ’그림자가 물체를 따른다고 해야 맞는다. 그러나 한 차원 높이 보면 물체인 자기나 그림자인 대상은 결국 같은 것이므로 서로 따른다고 해도 맞는 것이다) 서로 붙어 다니지만 그러나 ‘이것이 마음이다’라고 내보일 수는 없다.
순수의식인 마음(空王眞面目)이 어떤 것인지 알려면 어찌해야 하는는가, 어떻게 하면 냄새도, 모습도, 소리도, 이름도 없는 ‘마음’을 알 수 있단 말인가.
여기 소요태능의 대답이 있다. 인생을 유유자적하게 살다가 사라진 선사, 소요태능을 대답이 있다.
‘기러기 가을빛 길게 끌며 강성을 지나가네’
아, 이 얼마나 멋진 대답인다, 무슨 말인지 알 수 없다고?
그대여, 가을 강가에 나가 보라, 기러기 행렬이 길게 지나는 것을 볼 것이다. 그 행렬을 보는 순간 아, 가을도 이젠 깊었다는 것을 느끼며 새삼 세월의 덧없음을 실감하게 될 것이다.
……그렇다면 이 마음이 우주의 본질에 닿아 있다면 계절이 가는 것도, 기러기가 우는 것도 마음이라는 이 거대한 생명의 바다에서 이는 한 개의 파도 현상이 아니겠는가.
아차, 내가 실언을 했구나, 개구즉착(開口卽着) 입 벌리는 순간 이미 빗나가 버렸나니……”라는 주석이 달려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