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https://www.youtube.com/live/xWLEmCm8R6s?si=BI50nzJ6gJ-VnzDt
사르밧 과부 아들의 죽음 17:17~20
17 이 일 후에 그 집 주인 되는 여인의 아들이 병들어 증세가 심히 위중하다가 숨이 끊어진지라
18 여인이 엘리야에게 이르되 하나님의 사람이여 당신이 나와 더불어 무슨 상관이 있기로 내 죄를 생각나게 하고 또 내 아들을 죽게 하려고 내게 오셨나이까
19 엘리야가 그에게 그의 아들을 달라 하여 그를 그 여인의 품에서 받아 안고 자기가 거처하는 다락에 올라가서 자기 침상에 누이고
20 여호와께 부르짖어 이르되 내 하나님 여호와여 주께서 또 내가 우거하는 집 과부에게 재앙을 내리사 그 아들이 죽게 하셨나이까 하고
다시 살아난 아들 17:21~24
21 그 아이 위에 몸을 세 번 펴서 엎드리고 여호와께 부르짖어 이르되 내 하나님 여호와여 원하건대 이 아이의 혼으로 그의 몸에 돌아오게 하옵소서 하니
22 여호와께서 엘리야의 소리를 들으시므로 그 아이의 혼이 몸으로 돌아오고 살아난지라
23 엘리야가 그 아이를 안고 다락에서 방으로 내려가서 그의 어머니에게 주며 이르되 보라 네 아들이 살아났느니라
24 여인이 엘리야에게 이르되 내가 이제야 당신은 하나님의 사람이시요 당신의 입에 있는 여호와의 말씀이 진실한 줄 아노라 하니라
----------
[오늘의 말씀 요약]
사르밧 과부의 아들이 병들어 죽자 과부는 자기 죄를 생각나게 하고 아들을 죽게 하려 왔느냐고 엘리야에게 항변합니다. 엘리야가 죽은 아이를 침상에 눕힌 후 그 위에 몸을 세 번 엎드리고 하나님께 부르짖어 기도하자 아이가 살아납니다. 이에 여인은 엘리야가 하나님의 사람임을 인정합니다.
------------
사르밧 과부 아들의 죽음 17:17~20
고난과 슬픔의 때는 하나님을 깊이 만나는 기회입니다. 기근 중에도 풍족하게 지내던 사르밧 과부에게 큰 슬픔이 닥칩니다. 갑자기 아이가 심한 병에 걸려 죽은 것입니다. 황망한 일을 겪은 사르밧 과부는 모든 원망을 엘리야에게 돌립니다. 그리고 “내 죄를 생각나게 하고 또 내 아들을 죽게 하려고 내게 오셨나이까”(18절)라며 아들의 죽음과 자신의 죄를 연결시킵니다. 엘리야의 하나님이 과부 자신의 죄에 대한 보응으로 아이를 죽이셨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모든 재앙이 죄 때문에 임하는 것은 아닙니다. 북 이스라엘에 임한 기근은 죄에 대한 심판이지만, 아이의 죽음은 다른 차원의 일입니다. 엘리야는 하나님을 향해 부르짖어 기도합니다. 하나님만이 생명의 주권자시기 때문입니다.
● 더 깊은 묵상
사르밧 과부는 아이의 죽음과 자신의 죄를 어떻게 연결 지었나요?
은혜의 때에 갑작스럽게 일어난 불행을 나는 어떤 의미로 받아들이나요?
-----------
다시 살아난 아들 17:21~24
하나님을 향해 부르짖어 기도할 때, 은혜가 우리에게 임합니다. 엘리야는 아이의 몸 위에 자신의 몸을 세 번 포개면서 아이의 혼이 돌아오게 해 달라고 부르짖어 간구합니다. 이는 ‘그의 생명 없는 몸이 나의 생명력 있는 몸처럼 되게 하소서!’라는 상징적 행동입니다. 하나님은 참선지자인 엘리야의 부르짖음에 응답하시고, 아이를 살려 주십니다. 놀라운 기적을 본 과부는 엘리야에 대한 원망을 그치고 그를 칭송합니다. 그녀는 엘리야가 참된 하나님의 사람이라는 것과 그를 통해 주신 하나님 말씀이 진실하다는 것을 확신합니다. 도망자 신세에 놓인 엘리야가 시돈의 한 이방 여인의 입을 통해 진정한 하나님의 사람이라는 인정과 칭송을 받습니다.
● 더 깊은 묵상
아이가 살아난 놀라운 기적에 과부는 어떤 고백을 했나요?
최근에 하나님이 기도에 응답해 주신 일은 무엇이며, 나는 어떤 고백을 했나요?
===============
사랑으로 치료하다
2015년 겨울 한 사역자 모임에서 엘레슨이라는 여성을 만났다. 12년 동안 중국에서 자폐 아동들과 부모들을 위해 사역하는 치료사였던 그녀는 언제부터인가 북한의 자폐 아동들을 품고 기도해 왔다고 했다. 석 달 뒤 엘레슨은 내가 일하고 있는 평양의 병원으로 찾아와, 치료실 바닥에 앉아 천천히 자폐 아동들과 눈을 맞추기 시작했다. 엘레슨은 긴 시간 끝에 우리가 진행하는 자폐스펙트럼장애 프로그램의 첫 환자인 룡성이와 기적처럼 눈을 맞추게 되었다. 타인의 존재를 인식하지 못하고 혼자만의 세계에 갇혀 있던 룡성이가 학교에서 점심시간에 도시락을 싸 오지 못한 친구에게 다가가 자신의 밥을 나누어 주었다는 소식도 들렸다. 자폐증이라는 신경학적 질환에 갇혀 주위 사람들과 관계 맺지 못하던 룡성이에게 일어난 놀라운 변화였다.
사랑은 나의 시간표에 맞추어 상대방에게 변화를 요구하는 것이 아니다. 상대방의 시간에 나를 던지는 것이다. 상대방은 평생 내가 생각하는 속도에 맞추어 변화되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나 예수님은 우리가 죄인이었을 때 우리의 자리로 내려오셔서 우리를 만나 주셨다. 예수님이 누구인지 알아보지도, 이해하지도 못하는 우리를 위해 그분이 이 땅에 오신 것이다. 사랑은 어떤 장애물이나 다름이 있어도 다가가게 한다. 그저 같은 자리에 계시는 예수님의 사랑이 있기에, 오늘도 우리의 사랑은 흘러가며 확장된다.
사랑으로 길을 내다 / 윤상혁_ 두란노
=============
열왕기상 17장 21, 22절
엘리야 선지자가 사르밧 과부의 죽은 아들을 살리기 위해 간절히 기도하는 장면입니다. 엘리야는 단순히 아이를 살려달라고 간청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몸을 굽히며 세 번 엎드려 기도합니다. 엘리야의 진심이 담긴 모습입니다. 엘리야는 아이의 죽음과 자신의 목숨을 맞바꾸어라도 그를 살리고 싶었던 것입니다. 이 모습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위해 십자가에 오르시어 자신의 목숨을 바쳐 우리에게 구원을 선물하신 사랑과 희생을 생각나게 합니다. 엘리야의 기적을 통해 죄와 죽음을 다스리시고 사망의 권세로부터 해방되어 귀한 생명을 누리는 소망을 전해줍니다.
하나님, 삶을 무너뜨리는 절망 중에도 제 간구를 들으시는 하나님을 끝까지 신뢰하길 원합니다. 간절한 부르짖음을 외면하지 않으시고 놀랍게 응답하시는 하나님을 기억하며 다시 일어서게 하소서. 하나님의 일하심에 동참하고 그것을 전하는 하나님의 사람이 되게 하소서.
주님은 진실한 믿음을 가진 이에게 그분의 뜻을 보이시기 위해 모든 최선의 방법을 동원하신다. - 맥스 루케이도
오늘의 기도
하나님, 삶을 무너뜨리는 절망 중에도 제 간구를 들으시는 하나님을 끝까지 신뢰하길 원합니다. 간절한 부르짖음을 외면하지 않으시고 놀랍게 응답하시는 하나님을 기억하며 다시 일어서게 하소서. 하나님의 일하심에 동참하고 그것을 전하는 하나님의 사람이 되게 하소서.
오늘의 찬송(새 365 마음속에 근심 있는 사람)
하나님은 우리의 부르짖는 소리를 들으시고, 우리의 기도에 응답해 주시는 하나님입니다.
나’에게 말씀하신 것을 적용함
날마다 주님의 세밀한 음성에 귀를 기울이고, 그분의 인도하심을 따라 나아가기 위해 노력하도록 하자
주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말씀과 약속들이 반드시 이루어질 것임을 굳게 믿고, 주님만을 의지하며 담대하게 나아가도록 하자
늘 주님께 기도로 아뢰고, 주님만을 의뢰하고, 주님만을 의지하면서, 주님의 도우심을 구하며 나아가도록 하자
‘이 일 후에 그 집 주인 되는 여인의 아들이 병들어 증세가 심히 위중하다가 숨이 끊어진지라’ - 밀가루와 기름이 끊이지 않는 이적 뒤에 일어난 일로, 과부의 아들이 죽었다는 것입니다. 엘리야는 무척 난처했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람’이라는 사람이 왔는데, 그 집에 잠시 복이 오고서는 곧장 사망이 왔기 때문입니다. 행운이 찾아 온 것이 아니라 불행이 찾아 온 것이지요. 하나님께서 많은 사람들 중에 유독 그 가정을 택해서 보내셨는지 어쩌면 엘리야는 원망스러웠을지도 모릅니다. 그가 할 일은 오직 하나, 기도하는 것입니다. 그는 부르짖습니다. 그 집에 죽음이 닥쳤는데 공교롭게도 자기가 온 이후에 왔기 때문이지요.
그 기도는 실은 무모하기 짝이 없습니다. 이미 숨이 멎은 아이를 살리기 위한 기도라 그렇습니다. 엘리야는 기도해서 그 아이가 살아난다는 확신이 있었을까요? 아마 없었을 것 같습니다. 그전에 한 번도 그런 일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도 이삭, 야곱, 그리고 요셉은 물론 모세도 죽은 아이를 살린 적이 없기 때문입니다. 지금 성경 역사상 처음 있는 일을 그는 시도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의 기도는 구체적이고 명확합니다. 아이의 혼이 다시 몸에 돌아오게 해달라는 것입니다. 그가 믿고 있는 유일한 것이 있으니, 자신에게 말씀을 하신 분은 살아계신 하나님이라는 사실입니다. 그 하나님이 자신을 그곳으로 보냈다는 것이지요.
그러자 아이의 혼이 돌아옵니다. 사람이 죽었다가 살아난 기적이 구약 역사상 최초로 일어난 것입니다. 곧 부활의 그림자입니다. 기도를 응답 하시는 분은 여호와 하나님입니다. 기도하는 사람은 응답여부를 강요할 수도 재촉할 수도 없습니다. 응답 여부의 권한은 오직 그분께 있기 때문이지요. 엘리야의 경우는 매우 럭키한 케이스입니다. 그 시대에 그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세워져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초대교회 교인들의 기도는 응답되지 않습니다. 로마 원형 경기장에의 절규는 침묵 속에 묻히니, 그 시대에 영광스러운 순교자로 세워져야 하기 때문입니다. 우리 예수님도 마찬가지입니다. 평생을 하나님의 영광으로 같이 했는데 십자가에서는 외면됩니다. 인류의 구원자로 세워져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래도 우리는 응답 받고 싶습니다. 바라는 것이 너무 크고, 결핍을 채우고 싶은 소망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 응답에 대한 확신의 정도는 경험한 하나님만큼 일 것입니다. 체험한 하나님 이상을 우리는 알 수 없기 때문입니다. 후에 엘리야가 갈멜산에서 바알과 아세라 선지자들과 대결할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을 그만큼 경험했기 때문입니다. 제단을 아예 물로 채울 수 있었던 것은 그 만큼 하나님에 대한 확신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응답되어도 좋고, 안 되어도 좋습니다. 응답은 응답, 무응답은 무응답 나름대로의 하나님을 경험하기 때문이지요. 만약 응답 받지 못해도 우리를 향한 그분의 뜻은 최선일 것입니다. 오르지 우리는 기도할 뿐입니다. 하나님은 응답을 하실 수도 있고, 하시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혹은 보류를 하시더라도 모두 다 그분의 주권에 있습니다.
5/15 전도지 열심히 읽으시며 ~~~~`
하나님은 어떤 분입니까?
19~24절 아이를 살려 달라는 엘리야의 간절한 기도에 응답하십니다. 이를 통해 죽은 아이가 살아나고, 하나님을 향한 여인의 원망은 흔들림 없는 믿음으로 바뀝니다. 하나님은 가장 절망적일 때도 생명의 소망을 남겨 두십니다. 그러므로 아무리 힘들어도 믿음의 기도를 붙들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믿음의 기도를 통해 그분의 생명의 능력을 세상에 드러내십니다.
내게주시는교훈은무엇입니까?
17,18,24절 겨우 기근을 피한 사르밧 과부에게 아들의 죽음이라는 뜻하지 않은 비극이 찾아옵니다. 여인은 자책도 원망도 해보았지만 “슬픔의 무게”는 줄어들지 않습니다. 인생은 얼기설기 짜인 융단처럼, 예기치 않은 은혜로 기뻐할 때도, 예기치 못한 사고로 슬퍼할 때도 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절망의 때를,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하고 믿음이 더해지는 기회가 되게 하실 것입니다. 행복의 그림자와 불행의 후광을 보면서, 참 소망을 오로지 하나님께만 두십시오.
17-24절 아들의 죽음을 엘리야의 방문과 자신의 죄와 연관시키는 것은, 사르밧 과부가 이 모든 일이 하나님의 통제 안에 있음을 인식한다는 뜻입니다. 엘리야는 한 걸음 더 나아가 그 하나님이 아들을 살리실 수 있음을 믿고, 세 번이나 아이와 몸을 포개어 간절히 기도하여, 삶과 죽음을 통제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의 통로가 됩니다. 상황을 하나님의 일로 해석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합니다. 기도로 하나님의 일에 동참해야 합니다.
기도
하나님의 공급에 의지하여 생명을 전하는 자가 되게 하소서.
제 살길은 오직 생명의 하나님을 신뢰하는 것뿐임을 언제나 기억하게 하소서.
5/15일 전도지 열심히 읽고 걷는 모습
➲ 절망과 탄식을 넘어서 말씀을 신뢰하며 살아야 합니다(17~18절).
인생을 살아가면서 어려움과 고난을 당하고 그 상황들에 대한 하나님의 섭리를 알 수 없을 때 절망하게 되고, 그런 상황에서 비탄과 탄식으로 원망의 말을 늘어놓게 됩니다. 평소에는 믿음이 강해 보이던 사람도 예상하지 못한 슬픔과 아픔을 직면하게 되면서 연약한 인간의 모습을 드러내게 됩니다.
그러나 진정 믿음의 사람이라면 그러한 연약함은 하나님 앞에서의 겸손한 호소와 기도로 이어져야 합니다. 나아가 극심한 불행을 당했을 때 내 자신을 원망하며 절망에 빠져서는 안 될 것이며, 피할 길을 주사 능히 감당하게 하시는 하나님을 절대적으로 신뢰하며 나아가야 하겠습니다. 절망과 탄식을 넘어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온전히 신뢰하며 살아가는 삶이어야 하겠습니다.
➲ 시련과 고통을 넘어서 능력을 소망하며 살아야 합니다(19~24절).
절망적 상황에서 비통해하며 원망하던 여인은 하나님의 능력과 기적을 통해 생명과 죽음을 다스리시는 하나님에 대한 굳건한 믿음을 고백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생명과 죽음을 다스리시는 유일하신 분이십니다. 영생의 주인이신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나에게 영생을 주기를 원하십니다. 내 자신을 대신하신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을 믿음으로 영생을 얻은 자답게 하나님을 향한 온전한 믿음을 고백하는 삶이어야 하겠습니다.
온전히 이해살 수 없는 상황에서도 완전하신 하나님을 바라볼 수 있어야 하겠고, 모든 상황을 주관하시는 하나님을 의지하고 하나님이 뜻하신 바가 있음을 믿고 나의 삶의 주권자가 하나님이심을 확신하는 삶이어야 하겠습니다.
그러므로 모든 시련과 고통을 넘어서 능력과 기적을 행하시는 하나님 그리고 영생의 삶으로 인도해 가시는 하나님을 소망하며 살아가는 삶이어야 하겠습니다,.
오늘도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는 것이 쉽지 않은 상황에서도 말씀을 믿고 행하므로 하나님의 손길을 체험하며 살아갈 뿐만 아니라 이해할 수 없는 힘든 상황에서도 그 고통을 통해 하나님의 섭리를 깨닫고, 이겨내는 지혜를 얻는 삶을 살아갈 수 있기를(왕상 17:8~24절)...
오직 말씀만이 진실하며, 진실하시기 때문에 사람을 외모로 취하시지 않습니다 사실 이 사건은 예언적 사건으로, 먼저된 자가 나중 되고 나중된 자가 먼저 될 것을 보이신 것입니다
즉, 먼저된 이스라엘이 여호와를 버림으로 여호와께서도 그들을 버리시고,
나중 된 자라도 진실한 자는 다 받으실 것을 미리 보이신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당신을 배척하는 그들을 향해 말씀하셨습니다
"큰 흉년이 들었을 때에 이스라엘에 많은 과부가 있었으되 그 중 한 사람에게도 보내심을 받지 않고
오직 시돈 땅에 있는 사렙다의 한 과부에게 뿐이었으며
또 선지자 엘리사 때에 이스라엘에 많은 나병환자가 있었으되
그 중의 한 사람도 깨끗함을 얻지 못하고 오직 수리아 사람 나아만뿐이었느니라"(눅4:25~27)
참으로 하나님은 진실하셔서 외모를 보지 않으시고,
잘 난 자나 못 난 자나 하나님을 경외하며 의를 행하는 사람은 다 받으십니다
"하나님은 사람의 외모를 보지 아니하시고 각 나라 중 하나님을 경외하며 의를 행하는 사람은 다 받으시는 줄 깨달았도다"(행10:34~35)
반면에 세상은 외모로 차별합니다
"너희는 외모만 보는도다"(고후10:7)
그러나 하나님은 왕이나 부자나 외모로 차별하지 않으십니다
"왕에게라도 무용지물이라 하시며 /지도자들에게라도 악하다 하시며 /고관을 외모로 대하지 아니하시며 /가난한 자들 앞에서 부자의 낯을 세워주지 아니하시나니 /이는 그들이 다 그의 손으로 지으신 바가 됨이라"(욥34:18~19)
그러므로 우리도 외모로 사람을 차별하지 않기 원합니다
"주는 사람을 외모로 취하심이 없느니라"(골3:25)
그러므로 외모가 아닌, 마음을 보시는 하나님 앞에 하나님의 뜻대로 진실하게 기도하여 들으심을 받는 복된 성도 되기 원합니다
"그를 향하여 우리가 가진 바 담대함이 이것이니 그의 뜻대로 무엇을 구하면 들으심이라 우리가 무엇이든지 구하는 바를 들으시는 줄을 안즉 우리가 그에게 구한 그것을 얻은 줄을 또한 아느니라"(요일5:14~15)
말씀이 없는 시대, 말씀을 찾지도 않고 그 말씀의 능력을 체험하지도 못한 세대 가운데 하나님께서는 엘리야라는 한 사람을 선택하여 패역한 북 이스라엘 땅과 우상 숭배의 나라 시돈에까지 보내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친히 죄 가운데 임재하셨다면 노아의 홍수와 같이 아무도 살아남을 수 없었을 것이므로, 그 한 사람의 입술을 통해 하나님을 거역하고 죄악 가운데 어둠이 덮인 곳에서도 역사하셔서 그 한없는 은혜를 베푸시고 하나님의 생명의 양식을 공급하시는 분이신 줄 알게 하려 하시는 것입니다.
엘리야를 통해 일어나 기적을 통해 죽음 앞에 직면했던 한 과부와 그 아들에게 하나님의 양식이 공급되기 시작했고 엘리야는 하나님의 음성이 있을 때까지 3년간 그 집의 위층에 거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이내 그 과부의 아들이 병들어 죽게 되었고, 과부는 엘리야에게 자신들을 살려준 것에 대해 도리어 원망을 드러내고 맙니다. 엘리야는 하나님께 기도하며 그 아이의 몸에 세 번 자신의 몸을 겹쳐 그 죽음 가운데 하나님의 부활의 생명력을 불어넣습니다.
그가 지낸 3년, 그리고 그 죽음 위에 세 번 겹쳐 죽음과 하나 되어 생명으로 옮김으로, 말씀이 사라지고 하나님의 통치를 잃어버린 시대에 상상을 초월한 표적을 나타냅니다. 우리의 입술에서 나오는 여호와 말씀이 진실이 되고, 우리의 삶을 통로로 삼아,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의 은혜와 부활의 능력이 드러날 때, 사망의 권세 가운데 있는 영혼들이 구함을 받고, 하나님의 영광이 이 땅 가운데 펼쳐지게 됩니다. 그 놀라운 하나님 나라의 비밀을 더 알고 누리는 복된 하루의 시간 되길 간절히 소망합니다.
사랑하는 은혜가 풍성하신 하나님 아버지,
우리 가운데 있는 그 십자가에서 함께 못박히심으로 죽음을 몰아내시고,
그리스도의 영원한 생명으로 새로운 피조물이 되게 해 주시니 감사드립니다.
죄악과 어둠으로 가득한 세상 한 가운데를 뚫고
하나님의 말씀이 육신이 되어 오셔서,
우리를 죽음의 구렁텅이에서 강한 팔로 건져내신 그 은혜를 깨달아
그에 합당한 제자의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성령으로 충만케 하여 주시옵소서.
지금 이 시간에도 열방 가운데 주님의 복된 소식 전하신
선교사님들의 가정과 사역 위에 기름 부어주시고,
그 모든 필요에 넘치도록 아버지께서 채워 공급하여 주시옵소서.
질병과 전쟁, 기근과 핍박, 모든 자연재해로부터 고통받고
신음하는 이들을 불쌍히 여기시고,
회복과 치유의 은혜로 덮어 주시옵소서.
저북한 땅에 백성들에게도 하나님의 기쁜 소식을 아는
새로운 길을 열어 주시고,
이 나라와 백성이 하나님을 경외하고,
오직 아버지의 구원의 능력에 의지하는 거룩한 제사장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감사와 찬양을 아버지께 올려드리며,
우리의 길과 진리와 생명 되신 예수님의 거룩하신 이름으로 간절히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