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좀 조용히 해 주시기 바랍니다. 지금부터 인터뷰를 시작하겠습니다.”
차범근과 포마스키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엄청난 인파였다. 그냥 인터뷰일 뿐이었는데 일간지, 뉴스, 그냥 평범한 경제 신문에서까지 인터뷰 하려고 난리였다. 이 정도라면 국민들의 기대가 얼마나 큰 지 충분히 짐작이 가능하다. 차범근은 곁눈질로 선수들을 쳐다봤다. 별로 긴장하는 기색이 아니었다. 다행히도 큰 부담을 가지지는 않는 것 같았다.
“자, 그럼 시작하죠. 네, 저기. 저기. 네, 시작하시죠.”
“일간스포츠 배인철입니다. 우선 강호 미국을 상대로 훌륭한 플레이를 펼쳐 주셨는데, 이기신 소감이라도 짤막하게 말씀해 주십시오.”
“음. 리틀 월드컵이라는 큰 대회를 앞두고 선수들이 긴장하지 않고 여유 있는 플레이를 펼쳐 줘 이겼다는 것에 이의를 두고 싶습니다. 도노반이나 스튜어트, 레이나는 이미 세계적인 선수들입니다. 이런 선수들에게 주눅들지 않고 자신있게 경기를 주도한 게 승인이라고 봅니다.”
“그렇다면 앞으로 리틀 월드컵에서의 성적은 어느 정도나 예상하십니까?”
한 기자가 급했던지 이름도 밝히지 않고 물었다. 차범근이 딱 보기에도 기자들이 급한 것 같았다. 이대로라면 허위 보도가 나올 수 있었다. 언론이란 달궈지면 걷잡을 수 없게 되버리기 때문에, 조심해야 했다.
“음…….좀 침착하시고. 하하. 리틀 월드컵에서 우린 일단 기초적인 목표를 16강 진출에 두고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의 전력을 평가해 볼 때 8강이나 4강도 가능하리라 봅니다. 우리의 진짜 전력을 테스트해 볼 수 있는 기회는 다음 평가전인 아르헨티나 전이 될 거라 생각합니다.”
“다음 상대인 아르헨티나와의 대비는 어떻게 하실 겁니까?”
“오늘 포메이션대로 가려고 생각중입니다.”
“아르헨티나에서 경계할 선수를 뽑으신다면요?”
“공격진이겠죠. 테베즈(Tevez)나 카베나기(Cavenaghi)는 위협적인 투톱이 될 겁니다.”
“오늘 제일 훌륭한 플레이를 펼친 선수는요?”
“글쎄요. 고루 좋은 플레이를 보여 줬습니다. 따로 집어내기가 뭐할 정도로 좋은 활약들을 골고루 펼쳐 줬습니다.”
“미국의 패인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공격 루트가 다양하지 못했다고 할까요. 오른쪽, 그러니까 우리 이영표 선수 쪽으로 공격이 거의 없었기에 미국의 공격이 왼쪽과 중앙으로 집중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우린 그 점을 노려서 수비하면 충분했습니다.”
“선수들에 대해 외국에서 온 러브콜은 없습니까?”
“글쎄요. 아직 자세한 건 나도 잘 모르겠군요. 하지만 부탁드리고 싶은 건, 아직 때가 아니라는 겁니다. 지금은 리틀 월드컵에 집중할 때지 하찮은 외국 진출 루머 기사로 선수들의 마음을 흐트려 놓지 않기를 바랍니다.”
침착하게 인터뷰에 임하던 차범근은 외국 진출 문제에 대해 거론하자 얼굴빛을 바꾸며 엄하게 대답했다. 기자들은 움찔한 듯 했다. 그 다음부터는 대체적으로 순탄한 기자회견이 이어졌다. 박지성과 조재진, 정조국은 골에 대한 기쁨과 앞으로의 각오에 대해만 짧게 말하고 인터뷰 하는 것을 삼가는 모습을 보였다. 포마스키도 마찬가지였다. 그렇게 기자들만 적극적인 인터뷰는 제한 시간인 30분이 되어 끝났다. 기자들은 못내 아쉬운 듯한 얼굴들이었지만 인터뷰에 응한 차범근과 포마스키, 선수들은 지친 모습이 역력했다. 90분 내내 초긴장 상태를 유지해온 뒤 바로 가진 인터뷰였던 터라 그럴 만도 했다.
“자, 빨리 가자구.”
차범근은 재촉했다. 빨리 쉬고픈 마음뿐이었다. 오늘 하루는 푹 쉬고 나서, 내일부터 다시 아르헨티나 전을 대비해야 하기 때문이다. 아르헨티나는 이번 대회 최강의 전력을 선보이는 우승후보 0순위였다. 기자회견에서 자신의 입으로 말했듯이 한국의 진짜 전력은 아르헨티나 전에서 밝혀질지도 몰랐다.
차범근과 포마스키, 그리고 세 선수는 지친 몸을 이끌고 차에 타자마자 잠들어 버렸다. 격동의 하루였다.
-한국, 3대2 멋진 승리!-
-한밤의 릴레이골! 미국 완파!-
-지장(智將) 차범근!-
-드높아라 대한민국!-
다음 날 일간지에는 하나같이 미국에게 승리한 한국의 기사가 실려 있었다. 역시 언론의 힘은 무섭다는 것을 새삼 느꼈다. 맨체스터에서도 ‘더 선’이나 ‘데일리 텔레그라프’같은 소식지들이 하루가 멀다 하고 기사를 써대는 통에 스카우터로서 속깨나 썩였던 한건이었다. 언제는 휴가를 가 있던 라이언 긱스가 퍼거슨 감독과 불화를 일으키기도 했으며, 병원에 입원해 있으면서 면회를 사절하고 있던 웨스 브라운에게 인터 밀란에서 오퍼를 넣는다는 얘기도 오갔다. 언론은 털끝만큼의 꼬투리라도 있으면 그것을 태산처럼 과장할 수 있는 능력이 있었다. 그래서 언제나 주의해야 했다. 한국에게 부정적인 영향을 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번엔 다행히 그다지 선수들을 동요시킬 만한 기사가 없는 듯 했다. 한건은 신문을 읽다 말고 고개를 들어 그라운드를 쳐다봤다. 선수들은 비록 바로 어제 게임이 있어 오늘은 본격적인 연습은 하지 못하고 가벼운 몸풀기 훈련과 패스 게임만 하고 있었지만, 비장함이 넘쳐흘렀다. 다음 상대가 최강 아르헨티나라서 그런 것일까.
한건은 가만히 훈련 모습을 쳐다보고 있다 일어났다. 사무실로 돌아가 다음 경기 예상 분석도 해야 되고, 선수들 하나하나에 대해서 조사할 필요도 있었다. 이젠 한국팀에 완전히 적응하고 있는 듯 했다. 한건은 기지개를 쭉 펴고 다시 마음을 다잡고는 사무실로 향했다.
“예. 지금 팩스로 좀 보내주세요. 예. 예~ 감사합니다.”
한건은 전화를 뚝 끊었다. 팩스로 아르헨티나의 자세한 정보가 들어오게 했다. 이제 받아 보고 오늘은 쉴 작정이었다. 벌써 네다섯시간 째 같은 비디오만 보고 있었다. 슬슬 졸음이 오기 시작했다. 그러던 차에 위잉 하고 팩스로 아르헨티나 선수 하나하나의 정보가 들어왔다. 몇 장 휙휙 넘겨보니 핵심 선수라고 별표 쳐져 있는 네 명의 선수가 눈에 들어왔다.
Gabriel Heinze(가브리엘 에인세).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소속. 수비수, 왼쪽/중앙, 왼발. Fernando Cavenaghi(페르난도 카베나기). 스파르타크 모스크바 소속. 공격수, 중앙. 양발.
Carlos Tevez(카를로스 테베즈). 보카 주니어스 소속. 공격수/미드필더. 왼쪽/중앙. 양발.
Javier Saviola(하비에르 사비올라). F.C. 바르셀로나 소속. 공격수. 중앙. 오른발.
"흠. 에인세, 카베나기, 테베즈라. 수비를 보강해야겠군. 카베나기와 테베즈 투톱은 쉽게 막을 수 있는 게 아니니까. 아, 맞아. 이번엔 사비올라도 포함됐잖아. 젠장.”
한건은 중얼거렸다. 카베나기와 테베즈는 맨체스터에서도 계속 러브콜을 보낸 ‘대어’들이었다. 비록 카베나기가 러시아행을 택하고, 테베즈가 꿋꿋이 보카에 남긴 했어도 세계 정상급 클럽들이 계속 눈독들인 무서운 신예들이었다. 에인세는 와일드카드로 대표팀에 합류한 파이팅 넘치는 수비수였다. 공교롭게도 자신이 맨체스터를 떠나게 되면서 가장 마지막으로 이적협상을 맡아 완료시킨 선수였다. 26살이고, 노련했다. 이번에 아르헨티나에 와일드카드로 뽑힌 P.Aimar(파블로 아이마르), W.Samuel(월테르 사무엘)과 함께 아르헨티나 대표팀에 합류한 수비수였다. 사무엘과 이룰 중앙 수비진을 어떻게 뚫을지 한참 고민이었다. 지금 한건이 보고 있는 아르헨티나의 비디오에는 와일드카드가 전혀 합류되어 있지 않았다. 그나마 수비진에 조금 구멍이 보이려나 했는데, 와일드카드를 생각해 보니 전혀 아니었다. 레알 마드리드로 이적하며 세계 최고의 수비수로 발돋움한 사무엘, 맨체스터에서 노리고 노려 사온 가브리엘 에인세. 만만히 볼 상대가 하나도 없었다. 그래서 아르헨티나가 역대 최강이라는 칭호를 듣고 있는 것이다.
“에휴.”
한건은 애꿎은 한숨만 자꾸 내쉬며 일어나 화장실로 향했다. 오늘은 이만하고 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너무 피곤했다. 오랫동안 비디오를 봐서인지 머리도 띵했다. 맨체스터에서도 겪어 본 적이 없었던 빡빡한 일정이었다. 한건은 대충 씻고 침대에 몸을 눕히자마자 잠들었다.
다음날부터는 훈련의 연속이었다. 엿새 뒤면 아르헨티나 전이었다. 선수들은 매일 훈련이 끝나고는 지쳐 쓰러졌다. 강도 높은 훈련이 계속되었다. 그리고 게임을 치르기 사흘 전날, 차범근은 선수들에게 하루 휴가를 주었다. 비록 집엘 가거나 하면 안되었지만, 훈련은 면제해 주었다. 체력 안배를 하려는 것이다. 차범근을 비롯해 코칭 스태프들은 조금 쉬면서 아르헨티나의 전력 분석을 계속했고, 선수들은 피곤에 지쳤는지 방에서 쉬는 선수들이 대부분이었다. 그러나 박지성과 이영표, 송종국은 같이 나섰다. 바람이라도 쐬려고 나선 것이다. 그들은 길거리를 돌아다니며 오랜만에 스트레스를 풀고 있었다. 그 때, 어디선가 낯선 목소리가 박지성을 불렀다.
“어이, 박지성!”
“어…….누구……?”
“뭐야, 날 벌써 잊은 거야? 네덜란드 간지 얼마나 됐다고.”
박지성을 부른 사나이는 박지성 또래로 보이는 외국인이었다. 하지만 한국어 구사가 능숙했다. 박지성은 어렴풋이 생각을 떠올려 보았다. 하지만 잘 기억이 나지 않았다.
“이거, 실망인데? 야, 박지성. 너 나 몰라? 나, 샌더!”
“샌더……?”
분명히 박지성이 아는 이름 중에 샌더란 이름은 없었다. 더구나 그런 특이한 이름은 있을 것 같지도 않았다. 그런데, 분명히 어디서 많이 들어본 것 같았다. 어디였더라?
“실망이다. 박지성, 나야. 필립.”
“필립……? 아!! 필립!! 야~ 너 근데 왜 이렇게 변했냐! 못 알아봤잖아.”
“지성아, 누구냐?”
이영표는 답답하다는 듯이 물었다. 박지성은 쾌활하게 대답했다. 오랜 친구를 찾은 것이다.
“필립. 내가 교토에 있을 때, 같이 임대 온 놈이야. 나랑 동갑이고, 스코틀랜드 사람. 야, 필립. 너 언제 한국에 왔냐?”
“그냥, 잠깐 들렀어. 나 이제 곧 영국으로 가야 돼. 대표팀으로 선발됐다.”
“어? 정말이야? 대영제국이지, 맞아. 대영제국 선수로 발탁된거야?”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됐다. 대영제국이 좀 선수 밸런스도 맞추고 할 겸해서 날 불렀나봐.”
“야~ 축하한다. 아직도 미드필더 하냐?”
“그렇지, 뭐. 내 자리엔 잉글랜드의 스콜스가 있어서 어디 출전이나 가능할는지 모르겠다. 에휴.”
“무슨 넉살은. 대표팀 뽑힌 게 어딘데. 하하, 안 그래?”
“너……. 그래, 뭐. 우린 어쨌든 유럽예선 통과 확정지었다. 리틀 월드컵에서 한국이랑 만났으면 좋겠네.”
“그래. 나도 너희랑 만났으면 좋겠다. 그래, 나중에 또 만날 수 있겠지.”
“그렇지. 잘 가라. 나도 좀 급해서. 오늘 저녁 비행기거든.”
“그래? 그럼 빨리 가야지. 그래. 잘 가라. 나중에 또 봐.”
“어. 잘 있어.”
필립이라 불린 사내는 박지성과 얘기를 나누더니 가 버렸다. 이영표와 송종국은 궁금하기 이를 데 없었다. 하지만 자신이 대영제국 대표로 뽑혔다고 말하는 걸로 보니 실력 하나는 좋은 듯 했다.
“지성아, 누구냐?”
“필립이라고, 공격형 미드필더야. 나랑 같이 퍼플 상가에 있을 때 뛰던 놈.”
“잘하냐? 대영제국 대표라는 걸 보니.”
“글쎄. 나랑 뛸 때 그렇게 잘하지는 않았었는데.”
“그럼 어떻게 된 거지?”
“글쎄, 아무래도 좀 스코틀랜드랑 잉글랜드랑 딴 나라들이랑 밸런스를 맞추려고 하는 거 아닐까?”
“그래…….그렇겠지, 뭐.”
“자, 빨리 플스방이나 가자. 플스방.”
“그래, 가, 가. 닌 나한테 계속 지면서 위닝하고 싶니? 훗.”
“내가 오늘은 이겨.”
“그래, 가, 가.”
이영표와 송종국, 박지성은 필립을 그냥 그런 선수로 받아들이고 다시 발걸음을 재촉한다. 근처 플스방으로 향해 위닝일레븐을 즐기려는 것이다.
한편 필립은 오랜만에 만난 박지성과의 해후를 즐거워하면서 공항으로 향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가 들고 있는 스포츠백 안에는 계약서가 들어 있었다.
‘레알 마드리드 입단서.’
필립은 그날로 영국으로 돌아갔다. 영국에서 반가운 얼굴들과 합류했다. 마이클 오웬, 데이비드 베컴, 스티븐 제라드, 리오 페르디난드. 그리고 스코틀랜드의 배리 퍼거슨, 웨일스의 라이언 긱스. 이들은 웬일인지 공항 근처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필립은 그들과의 만남도 역시 즐거워하며 그들에게 계약서를 내보였다.
“오~ 포스트 지단, 필립 케인스?”
“핫핫, 아니에요.”
“어쨌든 같은 팀에서 뛰게 되어서 다행이다. 너같은 놈은 적으로 두고 싶지 않거든.”
베컴은 필립을 기쁘게 맞이했다. 필립은 이미 잉글랜드에서 ‘신개념 판타지스타’로 자리잡고 있었다. 레알 마드리드에서는 이미 나이가 들은 지단의 후계자로 필립 케인스를 지목했다. 국내에는 이상하게 알려지지 않았지만, 외국에서는 이미 케인스 신드롬이 일고 있을 정도였다. 필립 케인스와 여러 선수들은 새로운 동료의 만남을 기뻐하면서 그렇게 만남을 즐겼다. 대영제국은 하나의 날카로운 창을 더 가지게 된 것이다.
한편 한국 선수들은 모처럼 찾아온 꿀맛 같은 휴가를 보내고 다음날 다시 맹훈련에 돌입했다. 닷새 전 입국해 현지 적응 훈련을 하고 있는 아르헨티나와의 경기가 코앞으로 다가온 것이다. 선수들은 세계 최강과 맞붙는다는 생각에 조금 긴장한 것 같았고, 그들과의 시합을 기다리고 있었다. 조금은 두려움도 있을 테고, 조금은 그들에게 위축되기도 하겠지. 차범근과 포마스키가 가진 생각이었다. 아직 차범근호는 아르헨티나 같은 세계 A+급 팀과 맞붙어본 적이 없었다. 미국은 B+급 정도 되는 팀이었다. 차범근도 막상 긴장되기 시작했다. 아르헨티나…….분명히 그들은 강할 것이다. 어쩌면 처음으로 쓰라린 패배를 경험하게 될 지도 몰랐다. 하지만 이것이 전력 상승에 분명 보탬이 되리라. 차범근은 굳게 마음을 다잡으며 선수들을 훈련시켜 나갔다.
이틀 뒤, 서울 상암 월드컵 경기장은 오랜만에 매진을 이루는 성과를 보였다. 아르헨티나의 세계적인 선수들을 보려고 관중들이 구름같이 몰렸고, 또 그 아르헨티나에 대항할 강한 한국의 모습을 보기 위해 관중들이 몰렸다.
[ 오늘 우리 관중들 상당히 많이 와 주셨죠? 3층까지 꽉 들어찬 모습이 지난 월드컵 때를 회상케 합니다. ]
[ 그렇죠. 오늘 매진이라고 들었는데요. 역시 아르헨티나라는 세계적인 축구강국이 한국과 친선 경기를 갖는다는 것에 관심이 많이 쏠린 것 같습니다. 거기다 요즘 한국축구가 상당한 페이스를 보여주면서 엄청나게 강력해지고 있다는 것도 하나의 요인으로 작용했겠죠. ]
[ 그렇습니다. 오늘도 한국, 강력한 모습을 보여주길 바랍니다. 자, 한국과 아르헨티나의 스타팅 멤버입니다. 먼저 한국입니다. 골키퍼 김영광, 수비수에 왼쪽부터 김치곤, 조병국, 박용호의 스리백이 그대로 가동됐어요. 미드필더에는 수비형에 김정우, 공격형에 김두현, 양 윙에 김동진과 송종국이 배치되었네요? 박지성과 이영표가 빠졌는데요. 글쎄요, 차범근 감독으로서는 이런 기회에 어린 선수들에게 리틀 월드컵에서 가져야 할 마음가짐이라던지 적응력을 키워주는 걸 생각하는 듯 합니다. 그리고 쓰리톱에 최태욱, 조재진, 최성국이 나섭니다. 오랜만에 부상에서 복귀한 최성국 선수가 스타팅으로 나왔군요? ]
[ 그렇죠. 최성국 선수가 아르헨티나의 수비진을 휩쓸어 주면 후반전에 빠른 박지성이라던가, 이천수를 투입해서 승부를 보겠다는 생각인 것 같습니다. ]
[ 자, 이제 아르헨티나의 선발 명단을 보시죠. 아르헨티나는 352 시스템을 사용하는군요. 골키퍼 코스탄조, 수비수에 왼쪽부터 에인세, 사무엘, 밀리토가 섰습니다. 이 밀리토 선수는 중앙 수비수임에도 불구하고 오늘 오른쪽 풀백을 맡아 보고 있군요. 미드필더에는 훌리오 아르카, 캄비아소, 아이마르, 테베즈, 디알레산드로가 나왔습니다. 그리고 투톱에 카베나기와 사비올라. 아~ 아르헨티나, 베스트 11을 총출동 시키는군요? ]
[ 그렇죠. 굳이 주전이 아니라면 코스탄조 골키퍼 뿐인데요, 이 코스탄조 선수도 지금까지 주전으로 뛰어 왔던 세바스티안 사하 선수와 비견해도 전혀 손색없는 골키퍼거든요. 그렇게 생각한다면 오늘 아르헨티나는 최강의 전력을 선보이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
[ 오늘 특별히 주의해야 할 선수를 뽑아 주신다면 누가 있겠습니까? ]
[ 글쎄요, 일단 표면적으로 드러난 아이마르, 디알레산드로, 테베즈, 카베나기, 사비올라. 이 5총사를 잘 막아줘야 겠습니다. 아~ 정말 이제 봐도 엄청난 공격력입니다. 그리고 수비진도 상당히 견고해요. 사무엘이라는 세계 최고의 수비수와, 양 측면의 풀백을 맡아보고 있는 에인세와 밀리토 모두 빅리그에서 뛰고 있는 선수들이거든요. 에인세는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로 이적했고, 밀리토는 레알 마드리드 이적이 임박했었습니다만 무릎에 이상이 있는 걸로 판명되어 레알 사라고사로 이적했지만요. 하여간 네 명의 수비진 모두 최강급입니다. 오늘 한국이 이런 수비진을 상대로 과연 어떤 공격력을 보여 줄지, 이게 오늘의 관전 포인트라고 봐도 될 것 같습니다. ]
한국의 응원단은 오늘도 기세를 올렸다. 그리고 오늘 붉은 악마들이 준비한 카드 섹션이 펼쳐지기 시작했다. 대한민국 소리에 맞추어 펴지는 그 카드 섹션엔 이렇게 적혀 있었다.
‘신화창조 대한민국’
여덟 글자의 짧은 어구였지만 신화창조 대한민국이라는 카드섹션은 대한민국 선수들에게 힘을 주기에 충분했다. 온 국민들은 2년 전 보여줬던 신화를 이번 리틀 월드컵에서 재창조하기를 바랐다. 그리고 그 바람은 평가전인 미국 전에서 더욱 강렬해졌고, 리틀 월드컵에서의 선전을 염원하게 되었다. 그리고 만들어진 카드섹션이었다.
이윽고 선수들이 입장했다. 붉은색 관중들과 초록색 잔디가 어우르는 광경이 가히 장관이었다. 한건은 다시 한 번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이런 응원 문화는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광경이기 때문이다.
곧 애국가가 울려 퍼졌다. 6만 4천명이 운집한 상암동 월드컵경기장은 떠나갈 것 같았다. 6만 4천명의 애국가는 승리에 대한 염원이 되어 하늘에 울렸다. 아르헨티나 선수들은 움찔한 것 같았다. 그들은 2년 전 한국의 응원을 경험하지 못하고 귀국한 선수들이었다. 빅리그에서 농익은 아이마르나 사무엘도 깜짝 놀란 모습이었다. 영상에서 본 응원과는 차원이 달랐다. 위압감과 중압감이 그들을 짓눌렀다. 하지만 그들은 최고의 선수들과 최고의 나라에서 최고의 기량으로 싸운 전사들이었다. 몇몇 어린 선수들을 제외하고는 얼마 안 가 냉정을 되찾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비록 부담감이 남아 있기는 했지만 어느 정도 제 상태로 돌아온 아르헨티나 선수들은 침착하게 경기에 임하게 되었다.
[ 오늘 주심은 쿠웨이트 사람입니다. 자, 하늘색 줄무늬 상의가 아르헨티나, 붉은색 상의가 한국! 아르헨티나의 선축으로 킥오프되면서 전반전 시작합니다. 시작하자마자 공을 뒤로 돌리면서 차분하게 경기를 조절하는 아르헨티나. 박문성 해설위원, 오늘 아르헨티나의 환상적인 허리진과 공격진을 막는 방법에는 뭐가 좋을까요? ]
[ 글쎄요. 너무나 강력한 공격진이기 때문에, 딱히 뭐라 말씀드릴 수가 없습니다만 일단 경기장에서 직접 맞부딪치는 선수들이 스스로 결정할 일입니다. 그 때 그 때마다 차분하게 대응해 줘야겠어요. ]
[ 갑자기 빠른 패스로 공격해 들어오는 아르헨티나! 아이마르, 살짝 뒤로 빼 주고 캄비아소 달려들며 스루~~패스! 공 잡는 디알레산드로! 디알레산드로 문전을 흘끗 보더니 김치곤을 앞에 두고 센터링!! 골키퍼 나와서 잡아냅니다!! ]
[ 음~ 지금은 김치곤 선수가 앞에 있었기에 망정이지 조금만 수비가 떨어져 있었으면 쇄도하던 카베나기 선수 쪽으로 향했을 센터링인데요. 김영광 골키퍼 먼저 예상하고 과감하게 뛰어나와 공을 잡아 냅니다. 다행이에요. ]
[ 시작하자마자 위력적인 공격을 선보이는 아르헨티나. 그 전에 테베즈, 아이마르, 캄비아소, 디알레산드로로 연결되는 패스 플레이가 상당히 유기적이지 않습니까? ]
[ 그렇죠. 성인 대표팀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없는 호흡이 맞아 떨어지고 있는 아르헨티나입니다. ]
[ 그에 비해 한국 선수들, 지난 미국전과는 달리 조금 위축된 모습을 보여주는군요. 아쉬운 상황이에요. ]
[ 그렇죠. 세계 최강이라는 아르헨티나의 역대최강 멤버라고 손꼽히는 이번 선수들이거든요? 그 네임벨류만으로도 충분히 위축될만한 상황입니다. ]
[ 하지만 너무 위축되면 안되죠. 침착하게 우리 페이스대로 경기를 이끌어야 하는데요. 김정우, 여의치 않다 싶으니 다시 뒤로 뺍니다. 아~ 아르헨티나의 수비도 참 대단해요. ]
[ 그렇죠. 미드필더 진영에서부터 선수들이 상당한 압박과 함께 공의 경로를 차단하는 그런 수비를 하고 있어요. 음~ 한국 선수들이 많이 움직여서 공간을 확보해 줘야 합니다. ]
[ 자, 김두현! 볼 잡고 왼쪽으로 뺍니다. 김동진, 김동진 달려듭니다만, 캄비아소가 몸싸움을 해주고 그 사이에 밀리토가 와서 공을 빼냅니다. 전반전 이제 막 3분 되었는데요, 아르헨티나 선수들이 가뿐한 몸놀림으로 한국을 조금 압도하고 있다고나 할까요, 그런 모습이 조금씩 보이는데요. ]
[ 그렇죠. 역시 한국 선수들이 위축된 탓인데요. 음~ 일단 좋지 않은 모습입니다. ]
[ 다시 뒤로 돌리는 아르헨티나…….사무엘, 안정적인 모습을 보여 주며 수비진을 잘 리드하고 있는 모습입니다. 자, 에인세, 앞으로 줍니다. 아르카 잡습니다. 이 훌리오 아르카 선수 상당히 빠른 선수라고 적혀있는데요. ]
[ 그렇죠, 선더랜드에서 활약하고 있는 선수죠. 윙백과 윙을 볼 수 있는 아주 유능한, 빠른 그런 선수입니다. ]
[ 아르카, 송종국이 따라 붙습니다만 악착같이 치고 나갑니다! 아르카, 터치라인을 타고 달리는 모습! 송종국이 일단 뒤에서 공만 툭 건드려 터치라인 아웃시킵니다. ]
“한건, 아르카는 별이 몇 개였지?”
차범근이 한건에게 물었다. 차범근이 한건에게 물은 ‘별’이란 한건이 아르헨티나 선수들의 실력을 별 다섯 개 만점으로 평가해 차범근에게 넘겨 준 자료에 있는 것이었다.
“네 개였습니다. 아르카를 만만히 봐서는 안 되는 선수입니다. 아르카의 빠른 돌파에 맨체스터의 웨스 브라운, 게리 네빌이 고생 깨나 했거든요.”
“그래……? 아르카가 복병이군.”
차범근은 아르카를 주시하고 있었다. 초반 몇 분간의 공격을 봐서 아르헨티나는 오른쪽의 디알레산드로에게 공격을 집중하고 있었다. 아이마르와 캄비아소는 오른쪽으로 공을 많이 돌리는 모습을 보여 주었다. 한국의 표면적으로도 월드컵 멤버였던 송종국이 막고 있는 왼쪽보다는 김동진이라는 처음 들어보는 선수가 막고 있는 오른쪽이 대하기 쉬웠다. 차범근은 왼쪽 수비보다 오른쪽 수비를 걱정했다. 아이마르는 오른쪽으로 공격을 집중하다 정작 결정적인 순간에는 왼쪽으로 볼을 투입할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 다시 캄비아소에게…….위력적인 전진 패스가 몇 번 나왔습니다만 일단 어느 정도는 잘 막아내고 있는 우리 한국 수비진! 그러나 볼 점유율 부분에서는 아르헨티나가 일단 월등하게 앞서 있습니다. 이제 전반 5분 막 지났습니다만, 볼 점유율이 8대2로군요. ]
[ 그렇죠. 일단 공을 거의 못잡고 있는 한국인데요. 조금 타이트한 수비가 필요할 것 같습니다. ]
[ 아, 말씀드리는 순간 돌파하는 디알레산드로! 김동진을 뚫고 나옵니다! 그대로 크로스!! 카베나기 헤딩!!!!! ]
안드레스 디알레산드로. 베론의 후계자라고 일컬어지지만 베론과는 스타일이 약간 다른 새로운 플레이메이커였다. 그의 원래 위치는 플레이메이커, 즉 중앙 미드필더였지만 그는 윙어로서도 훌륭한 활약을 보여주고 있었다. 그에겐 베론에게는 없는 훌륭한 드리블이 있었기 때문이다. 긱스의 드리블과는 무언가 다른 특색 있는 드리블이었다. 그는 그 드리블로 김동진을 뚫고 문전으로 쇄도하는 카베나기의 머리에 맞춰주는 센터링을 올렸다.
[ 골대를 살짝 비껴갑니다!! 아~ 아주 위험했던 순간!! ]
[ 지금까지 나왔던 순간들 중에 제일 위험했습니다! 순간적으로 카베나기 선수를 김치곤 선수가 놓쳐버렸죠? 카베나기 선수 파워 넘치는 헤딩을 선보입니다만 골대를 살짝 빗나가 버립니다! 위험한 상황이었어요. ]
[ 아~ 위험한 순간 간신히 넘기는 한국! 9번 카베나기 선수의 파워풀한 헤딩이 골대를 살짝 빗나가면서, 아주 다행입니다! ]
카베나기는 자신의 스텝에 맞춰 올려주는 디알레산드로의 습관을 잘 알고 있었다. 리베르 플라테에 있을 때부터 둘은 환상호흡을 맞춰오던 터였다. 비록 디알레산드로가 독일으로 이적해 나가고 카베나기도 러시아로 이적하면서 더 이상의 호흡을 맞출 수 없게 되었지만 둘은 여전히 상대방이 좋아하는 코스를 잘 알고 있었다.
카베나기는 크로스에 정확히 머리를 갖다댔고, 머리로 체중을 실었다. 파워 넘치는 헤딩슛이 제대로 맞았지만 공은 야속하게도 골대를 벗어났다. 하지만 카베나기를 비롯한 아르헨티나 선수들은 여유가 넘쳤다. 아직 한국이라면 우리 상대가 되지 않는다는 것을 느끼고 있는지도 몰랐다.
[ 한국이 이번에 공격해 봅니다만, 뭔가 부족해요. 패스 미스도 많은 편이고, 좀 긴장한 것 같아요. 이번엔 최성국이 잡습니다. 최성국 선수가 활로를 만들어 줬으면 좋겠는데요. 최성국 이리저리 드리블하면서 에인세와 맞붙습니다, 에인세를 제칩니다! 멋진 헛다리짚기로 에인세를 통과! 그대로 문전! 그러나 사무엘이 한 템포 빠르게 들어와서 공을 걷어냅니다. 한국의 코너킥! ]
에인세는 최성국의 빠른 발놀림에 순간 당황했다. 무기력하던 한국 공격진에서 이렇게 좋은 개인기를 가진 선수가 있었다는 것 자체에 약간 놀란 듯 하며 길을 터주고 말았다. 하지만 사무엘은 최성국이 크로스를 올리기도 전에 먼저 와서 공을 걷어내 버렸다. 역시 세계 최정상급의 수비수였다.
[ 오랜만에 공격이 되고 있습니다. 이번 코너킥을 잘 이용해야겠습니다. 한국으로선 제일 쉽게 골을 넣을 수 있는 방법이 바로 세트플레이죠. ]
[ 최성국이 찹니다. 최성국 코너킥~~~코스탄조 쳐냅니다! 떨어지는 공 다시 한 번 걷어내며 다시 코너킥 됩니다. ]
[ 이번엔 조금 골키퍼 쪽으로 치우쳤습니다만 조재진 선수의 움직임을 보고 코너킥 했죠? 조재진 선수의 머리를 겨냥했습니다만 조금 깊었어요. 다시 코너킥, 이번엔 잘 차야죠. ]
[ 최성국…….이번엔 약간 뒤로! 김동진 헤딩!! 높이 뜹니다. 골대를 넘어가는 헤딩슛. 김동진 선수가 공격에 가담해서 헤딩까지 이어봤습니다만 터무니없이 골대를 넘어가고 마는군요. 아쉽네요. ]
[ 그렇죠. 하지만 일단 저기서 공을 처리해 줬다는 건 의의를 둘 만 합니다. 아르헨티나 같이 순간적으로 빨라지는 팀에게 저기서 바로 역습을 준다는 건 위험하거든요. 일단 들어가던 들어가지 않던 결정을 지어줬다는 것은 좋은 모습입니다. ]
[ 자, 한국의 공격이 오랜만에 이어졌습니다만 무위로 끝납니다. 아르헨티나의 골킥. 코스탄조 길게 차주고, 헤딩싸움. 흐르는 볼 다시 뒤로 돌리는 아르헨티나입니다. 캄비아소, 오른쪽으로. 디알레산드로까지 이어지기 전에 도중차단 합니다만, 컨트롤이 조금 길군요. 터치라인 아웃. ]
[ 지금은 맥을 잘 끊어 줬죠, 김두현 선수. 오늘 여러모로 많이 뛰어주고 있습니다. ]
아르헨티나는 여유롭게 플레이했다. 조급해하는 것은 한국 쪽이었다. 홈에서 한국이 6만 4천명의 응원을 뒤에 업고서도 조급하게 플레이할 만큼 아르헨티나는 강했다. 해설자들이나 관중들이 보는 것과는 달랐다. 아르헨티나라는 거대한 태산이 짓누르는 위압감은 강력했다.
[ 아이마르, 여의치 않다 싶으니 직접 돌파! 에워싸는 한국 수비! 아이마르, 한 명 돌파할 때 슬라이딩 태클! 아~ 파울을 주네요. 좋은 위치에서 프리킥 허용하는 한국입니다. 조심해야겠어요. 아이마르나 디알레산드로처럼 확실한 프리키커들이 있거든요. 김영광 선수 바짝 긴장하는 모습입니다. ]
아르헨티나는 슬슬 골을 넣을 때가 된 것처럼 행동하고 있었다. 전반 15분. 공 앞에는 아이마르와 디알레산드로, 조금 떨어진 곳에 아르카가 서 있다.
[ 아이마르의 오른발, 혹은 디알레산드로의 왼발을 유의해야겠습니다. 주심 휘슬...달려들며 지나치는 아이마르! 디알레산드로 뒤로 살짝 내주고, 아르카 대포알 슈우우우우우우우우웃!!!! ]
아이마르가 찰 듯 하며 그냥 지나치고 디알레산드로도 찰 듯 하면서 왼발로 살짝 내주었다. 아르카는 달려오며 체중을 실은 발등으로 정확한 슈팅을 날렸고, 공은 약간 바깥쪽으로 휘어가며 골대를 위협했다.
[ 골대!! 골대 맞고 나온 볼 김영광 맞고 아!! 혼전 상황에서 걷어내는 한국!! 아~ 위험했어요!! ]
아르카의 대포알같은 슈팅이 김영광이 손을 쓸 수 없는 곳으로 날아갔다. 김영광의 손끝을 스치듯 지나간 공은 다행히도 골대를 강력히 맞추면서 튀어나왔다. 공은 골의 방향으로 다이빙한 김영광의 몸을 맞고 들어갈 뻔한 상황, 아르헨티나와 한국 선수들이 쇄도하며 순간적으로 위험한 상황이 연출된다. 하지만 김치곤이 넘어지면서 먼저 발을 뻗어 걷어내며 스로인으로 만들어 버린다. 한국 선수들의 간이 콩알만 해질 정도로 위험한 상황이었다. 아르카의 대포알 슛. 아르카는 아쉬워하면서도 곧 골을 넣어 주겠다는 자신만만한 표정으로 위치로 돌아간다. 김영광은 혀를 내밀고 고개를 설레설레 젓는다. 미국전에서 맛본 스튜어트의 중거리슛과는 차원이 다른 위력이었다. 스핀이 많이 걸려서 스튜어트의 프리킥은 속도가 줄었지만, 아르카의 프리킥은 속도가 대단하면서도 스핀이 어느 정도 걸려 정말 막기 힘들었다.
[ 아르헨티나의 스로인. 디알레산드로 주고 받고, 다시 뒤로 뺍니다. 간결한 패스가 참 보기 좋죠? 한국이 배워야 할 점입니다. ]
[ 그렇죠. 빠르고 간결하면서도 정확합니다. 저런 패스 플레이가 한국에게 필요한 점이죠. 지금 뒤로 돌아가는 선수 잡아 줘야합니다. ]
[ 밀리토가 한번에 길게 뒤로 내찹니다. 볼 잘 컨트롤하는 아이마르. 아이마르 볼 잡고, 드리블 하다 뒤로 살짝 빼고! 테베즈! 슛! 하는 척 하면서 접고 다시 슛!! 골키퍼 김영광!! 넘어지면서 잡아냅니다! 멋진 선방 보여주는 김영광!! ]
아르헨티나는 한번의 공격이더라도 반드시 효율적으로 연결했다. 밀리토에서부터 슛을 한 테베즈에 이르기까지 공을 놓친 적이 없었다.
[ 아~ 테베즈 선수, 마라도나가 부활했다는 소리를 들을 만큼 재능 있는 선수거든요! 저런 위치에서 노마크로 슛을 준다는 건 말이 안 되는 거예요! 한국 수비 집중을 해야 합니다. 사비올라가 지금도 앞에서 흔들어주지 않습니까? 저기서 선수들이 흔들려요. 그리고 정작 공은 뒤로 갑니다. ]
[ 그렇습니다. 지금 뒤에서 달려오던 테베즈의 발에 아이마르 선수가 절묘하게 맞춰주고, 테베즈 선수는 여유 있게 골대를 보고 슛합니다만 골키퍼 김영광이 선방해 내면서 위기를 모면합니다. ]
김영광은 부담감을 느끼기 시작한다. 한국 수비가 제대로 마킹할 수 있을 정도의 공격력이 아니었다. 이미 수준을 뛰어넘고 있는 것이 아르헨티나의 공격력이었다. 그렇다면 최후의 보루인 골키퍼만이 대량 실점을 막을 수 있었다. 김영광의 몸이 부르르 떨렸다. 부담감과 동시에 일종의 흥분이 찾아오는 것일까. 그들의 슛을 막는다는 것은 골키퍼로서 얼마나 즐거운 일인가.
[ 아르헨티나, 도중 차단! 역습해 들어옵니다! 디알레산드로, 빠르게 공간으로! 테베즈 달려가며 받습니다. 따라가는 박용호! 테베즈, 좁은 공간에서도 볼 잘 키핑하면서 끝까지 빼앗기지 않는데요! 테베즈, 뒤로 살짝 빼고 달려오며 아르카 논스톱 센터링~ 헤딩! 걷어내는 한국! 그러나 루즈 볼!! 막아야죠!! ]
아르카의 센터링을 높이 점프한 조병국이 불안한 자세에서 걷어냈지만, 공은 하필이면 중앙에서 노마크 상태였던 사비올라의 발에 떨어졌다. 그리고 사비올라의 지체없는 중거리포가 이어졌다.
[ 사비올라~~~!!!! 골입니다…….골. 하비에르 사비올라가 결국 해냅니다. 아~ 한국 수비, 아쉬운 상황을 보여 주네요. 지금 떨어지는 자리에 아무도 없었어요! ]
[ 그렇죠. 좋은 지적이신데요, 여기서 조병국 선수가 걷어냈을 때 가운데에서 볼을 받아주는 선수가 없었다는 거죠. 아르헨티나 선수들에게 두 번째 공격에서 자유로움을 내주고 만다는 겁니다. 아쉬운 순간이죠. 사비올라 선수, 세계적인 스트라이커답게 평상심을 잃지 않고 여유로운 슈팅으로 첫 골을 만들어냅니다. 문전 바로 바깥에서 침착하게 오른발로 구석으로 깔아차는 슈팅이죠. 김영광 선수 손도 쓸 수 없는 공이었습니다. ]
[ 아~ 아쉬워요. 아르헨티나에게 첫 골을 내주고 맙니다. 전반 21분. 바르셀로나의 스트라이커 사비올라의 첫 골이 터집니다. 조금 수세에 몰리는 경기를 하더니 결국 아르헨티나의 공격력에 무너지고 마는군요. 하지만 너무 개의치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우리 선수들. ]
[ 그렇죠. 아직 초반이라는 것을 염두에 두고, 지금처럼 플레이를 이어 나가야 합니다. 수비를 강화하다가 카운터 어택을 노리는 그런 공격이 필요해요. 한 골을 내줬다고 성급하게 나가다가는 그야말로 또 골을 내줄 수 있거든요. 우리 수비진들보다 테베즈, 카베나기, 사비올라 이런 선수들 훨씬 빠른 속도를 지니고 있거든요? 성급하게 나서기보다는 조금 침착하게, 템포 조절을 해 가면서 골을 침착하게, 침착하게 앞으로 운반해야겠습니다. ]
[ 아쉬운 첫 골을 내주고 마는 한국팀. 다시 시작해야죠. 첫 골은 잊어버리고, 다시 시작해야 합니다. 자, 조재진과 최성국이 다시 킥오프합니다. 킥오프. ]
아르헨티나는 한 골을 넣고도 계속 강한 압박을 전면에서부터 가한다. 한 골로는 만족할 수 없다는 기세다. 차범근은 조금 패스를 빨리할 것을 지시했다. 답답한 마음에 소리도 쳐보고 나갈 수 있는 제한선 까지 넘어가면서 선수들에게 일일이 지시했다. 심판의 주의를 받았지만 답답한 마음은 가시지 않는 게 미칠 지경이었다. 아르헨티나의 강한 플레이가 한국을 강하게 옭아매고 있었다.
[ 김두현, 이리저리 줄 듯 줄 듯 하면서 볼을 소유합니다. 재치 있게 볼을 소유하다 한번에 뒤로! 최성국이 이어받고, 한 번 접고 왼발 슛!!! 골대를 벗어납니다. 한국! 김두현 선수의 재치 있는 패스를 최성국 선수가 받아 놓으면서 방향을 꺾구요, 달려드는 수비를 개의치 않고 슛해봤습니다만 공에 제대로 맞질 않은 것 같아요. 아~ 아쉽습니다. 최성국! ]
[ 지금은 김두현 선수의 재치와 최성국 선수의 재치가 모두 빛난 순간이었는데요. 에인세보다는 최성국이 약간 빠르다는 것을 이용해서 뒷공간으로 찔러 넣어주고요, 최성국 선수가 왼발 아웃사이드로 볼을 받아 놓으면서 방향을 전환, 바로 슛을 해본 상황입니다만 좀 빗나가는 슈팅입니다. 하지만 일단 의도 자체는 좋았습니다. 한 골을 내준 다음에 조금 한국이 공격적으로 나가는 시발점이 될 슈팅입니다. ]
[ 아르헨티나의 골킥입니다. 코스탄조 길게 차주고, 떨어뜨려 놓는 카베나기. 공 받아 다이렉트로 연결하는 아르헨티나! 테베즈! 볼 잡고 직접 돌파합니다! 한 명 돌파하자마자 빠른 슈팅!! 몸으로 막아내는 한국!! ]
[ 음~ 몸을 던지는 수비가 상당히 좋았습니다. 조병국 선수의 수훈이죠. 몸을 던져서 슛의 경로를 막았습니다. 멋진 선방이죠. ]
테베즈의 오른발 슛은 조병국이 막아내었다. 김영광이 막기 어려운 코스로 향하는 슛이었지만 조병국이 막아내어 또 한번의 실점 위기를 넘길 수 있었다. 조병국의 선방이 어느 정도 선수들에게 자극제가 되었던 것일까. 한국의 수비는 조금 적극성을 띠기 시작했다. 디알레산드로의 돌파도 몸을 아끼지 않는 플레이로 걷어내고, 테베즈의 강력한 슈팅도 몸을 던져 막아내는 투혼을 보여준다. 한국 응원단은 끊임없이 이어지는 한국 수비의 육탄전에 열렬한 응원으로 사기를 북돋워줬다. 상암동 월드컵경기장은 온통 붉은 함성으로 뒤덮이고 있었다. 선수들은 귀를 찡하게 울리는 그 함성소리에 더 힘을 받았는지 계속되는 투혼을 보여줬다. 김정우의 슬라이딩 태클, 김치곤이 다 들어가는 볼을 골포스트에 머리를 받을 뻔한 위기를 넘겨가며 걷어낸 장면, 박용호가 아르헨티나의 두 명 사이에 끼었으면서도 끝까지 그들의 옷을 물고 늘어지는 장면은 경기를 시청하는 모든 사람들의 가슴을 뭉클하게 하기에 충분했다. 투혼……. 그들은 투혼을 발휘하고 있었다.
“야, 쟤네 축구를 무슨 이렇게 하냐.”
“그러게. 무섭다.”
“페르난도, 내가 올리는 거 헤딩할 수 있겠냐?”
“음, 좀 짧아요. 지금 나한테 붙는 놈이 좀 꺼림칙하긴 한데, 그냥 높게 올려줘요. 형 크로스야 뭐 내가 잘 아니까.”
“좋아. 크게 올린다. 파블로 형은 떨어지는 볼 중거리 때려줘요.”
“그래.”
테베즈와 카베나기가 한국 축구의 투혼에 감탄하고 있는 사이, 디알레산드로가 다가와서 카베나기에게 크게 올려주겠다고 말하고 간다. 이번 코너킥에서 한 골을 더 넣겠다는 각오였다. 디알레산드로의 코너킥을 카베나기가 놓친다면 뒤에서 아이마르가 주워 먹겠다는 제2슈팅까지 생각하고 난 뒤 디알레산드로가 코너 플랙으로 향했다. 카베나기는 조병국과 격렬한 몸싸움을 벌이며 한 차례 주의를 받을 정도로 자리 선정에 힘쓰고 있었다.
[ 디알레산드로의 코너킥. 디알레산드로, 코너킥~~~~헤딩!! 골키퍼 쳐냅니다! 길게 걷어내는 최성국!! 아~ 위험했어요!! ]
[ 지금 디알레산드로의 코너킥이 카베나기 쪽으로 향했죠? 조병국과 같이 떴는데요, 조병국 선수가 카베나기 선수의 파워에 약간 밀리는 모습을 보여주면서 자리를 내주고 말았어요. 아쉬운 상황이었지만 한국엔 김영광이 있었습니다! 카베나기의 강력한 헤딩슛을 김영광 선수가 그야말로 반사적인 감각으로 공을 쳐내고, 제일 근처에 있던 최성국이 공을 길게 걷어내면서 또 한 차례의 위기를 넘깁니다, 한국. ]
[ 아~ 카베나기 선수, 어린 선수입니다만 상당히 파워 있는 공격수에요! 파워가 있으면서도 재간도 좋습니다. 정말 대단하죠. ]
[ 테베즈, 사비올라 선수와 함께 아르헨티나의 삼각편대를 이루는 한 축입니다. 부상을 당해서 이번 대회에 나올 수 있을지 의문이었습니다만 빠른 회복속도를 보이면서요. 이번 대회에 참가하게 되었죠. 벤치에 있는 세자르 델가도 선수나 로살레스 선수도 상당히 위협적인 선수임에도 불구하고 그들을 바로 벤치로 몰아내고 주전을 꿰차는 카베나기 선수입니다. 헤딩뿐만 아니라 슈팅도 상당히 좋은 선수거든요. 한국으로서는 계속 끝까지 따라붙어야만 할 선수입니다. ]
한국은 좀처럼 강한 공격에 맥을 못 추고 있다. 공격의 빈도가 극히 낮은 것을 비롯해서 공의 점유율 자체도 3대7 정도로 뒤지고 있는 상황이다. 뭔가 공격의 물꼬를 틀 실마리가 필요했다. 포마스키가 이럴 때 점찍은 플레이메이커는…….
------------------------------------------------
와, 아르헨티나 정말 강하더군요. 고개를 설레설레 저으면서 봤습니다. 말로 할 것 없이
이 멤버 그대로 간다면 아르헨티나가 2006 2010 월드컵을 싹쓸이할지도..
첫댓글 역시,,
왠지 골장면이 그리스전 같다는 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