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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봉주와 미래권력들(미권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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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권스 자유게시판 스크랩 "노무현은 이상주의자였다" `배우`에서 `운동가`로, 문성근 대표
순수나라 추천 6 조회 327 11.12.04 12:26 댓글 8
게시글 본문내용
- 문 대표가 보는 노무현 정신은 무엇인가?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지 않나? 한자 풀이를 하면 '시민이 주인으로서 더불어 어울려 사는 나라'라는 뜻이다. 노 대통령은 이런 민주공화국 체제에 맞게 국가를 변화시켜 나가겠다는 이상이 대단히 강했던 분이다. 그러니까 지방분권, 권위주의 타파, 지역구도 극복, 정경유착, 논란의 여지가 많은 4대 권력기관 중립화 등 시도하셨던 이런 것들이 한 마디로 민주공화국 체제에 맞게 바꿔보자는 이상의 표현이었다. 그러다 이제 결국 검찰한테 당하고 만 건데….

그래서 그 양반(노 대통령)이 마지막에 얘기하는 게 '결국은 시민이다'라는 것이었다. '시민이 깨어나서 조직화된 힘을 발휘하는 것 이외에 다른 방법은 없다. 그렇게 해야 이 나라가 발전한다'는 생각을 하셨던 이상주의자였다. 그러니까 나도 통합을 얘기할 때 공천이나 지도부 구성에 있어서 시민참여를 대폭 확대하는 것으로 구조개혁 하자, 정당혁신 하자고 하는 것이다.

 

 

"노무현은 이상주의자였다"
'배우'에서 '운동가'로, 문성근 대표

 


'혁신과통합'과 '국민의명령'을 이끌고 있는 문성근 대표는

 

지난 29일 저녁 <스포츠서울닷컴>과 진행한 인텨뷰에서 배우에서 운동가로 변신해 제2의 인생을 살고 있는 것과 아버지 문익환 목사에 대해 회고했다.

 

혁신과통합 상임대표이자 국민의명령 대표인 문성근(58)은 이제 배우보다 사회운동가라는 타이틀이 더 어울린다는 평을 듣고 있다. 그 만큼 정치권에서 영향력을 갖춘 인물로 자리를 굳히고 있다. 선 굵은 연기로 대중에 깊은 인상을 각인시켜 온 그는 지난 2002년 대뜸 운동가로 변신했다. 당시 노무현 대선후보의 지지자를 자임하며 대중 앞에 섰다.

갑작스러운 듯 했지만 사실 문 대표는 전부터 정치권의 수많은 러브콜을 받아왔다. 배우로서 살아가기 위해 모든 제안을 뿌리쳤을 뿐이다. 그런 그가 정치인 노무현의 곁을 택한 것은 고인이 된 아버지 문익환 목사의 존재 때문이었다. 아버지가 재야민주화운동권의 지도자였음에도 87년 양김(김영삼·김대중)의 분열을 막지 못했던 빚을 대신 갚고 사죄하기 위해서였다.

이 때문에 문 대표는 지역구도를 타파하겠다고 나온 정치인 노무현의 뒤를 따라야 했다. 물론 노 대통령의 매력도 한몫 했다. 노 대통령을 '이상주의자'로 기억한다는 문 대표는 참여정부를 이끈 대통령을 회고하면서 목소리에 더 힘을 싣기도 했다. 특히 지방분권, 권위주의 타파, 지역구도 극복 등의 노력이 대표적인 사례라고 들었다.

인터뷰 도중 담배를 한 대 피워 문 그는 이렇게 제2의 인생을 시작한 자신의 삶을 '운명'이라고 표현했다. 그것도 '괴로운 운명'이라고 했다. 연기를 하며 행복을 느끼게 된 것이 얼마 되지 않았는데 그 일을 하지 못하는 것이 괴로울 수밖에 없다며 고개를 숙였다. 그렇지만 노 전 대통령 서거의 충격은 문 대표가 제2의 인생을 걸어가게끔 만들었다. 생업이자 기쁨이었던 연기를 포기하더라도 가야만 하는 길이라는 확신을 갖게 했다. 이후 문 대표는 지난해 8월 야권단일정당을 만들어 내자는 취지의 시민운동 '백만송이 국민의 명령'을 시작했다.

그 길의 연장선에서 현재는 진보진영의 통합이라는 목표 실현을 앞두고 있다. 물론 단역일지라도 틈틈이 영화 촬영도 하며 배우로서의 길도 걷고 있다. 문 대표는 <스포츠서울닷컴>과의 인터뷰에서 연기와 정치 이야기에 더해 부모님에 대한 기억도 허심탄회하게 털어놓았다. 인터뷰는 29일 오후 늦게 여의도 국회의사당 인근의 '혁신과통합' 사무실에서 한 시간가량 진행됐다. 다음은 일문일답이다.

 


문 대표는 "연기가 행복해진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 하지 못하고 있다.

그래서 '괴로운 운명'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연기자'에서 '운동가'로…"괴로운 운명으로 받아들인다"

- 배우 생활을 하다 운동가로 제2의 인생을 살고 있다. 어떤가?

뭐 운명이다. 굉장히 괴로운 운명이다. 좋은 연기자가 되려고 20여년을 참 노력을 했는데, 사실 연기가 행복해진 게 얼마 되지 않은 일이다. 그 전엔 굉장한 의무감 같은 것도 있었고, 연기 자체가 굉장히 힘들었다. 그런데 지금 (연기를) 못 하고 있는 게 괴로울 수밖에 없다. 하지만 운명이려니 생각한다.

노무현 대통령 서거를 당하고 '어떻게 이런 일이 벌어질 수 있나' 생각했다. 어느 순간 70~80년대에 이 나라 민주화를 위해서 희생한 많은 분들께 견딜 수가 없이 죄송하더라. 도대체 그분들의 노력이, 흔적이 어디에 남아있나…. 그래서 연기가 내 생업이고 행복한 일이고 중요한데, '접어도 어쩔 수 없다. 이 일을 해야 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어떻게 하면 참여정부나 국민의정부 같이 약체 정부로서 고통당하지 않고 강력한 민주진보정부를 세울 수 있을지 1년 간 고민했다. 그 끝에 작년 6월에 ('백만송이 국민의 명령' 운동을 위한) 제안서를 써서 8월에 시작을 했다. 작년 봄부터 굉장히 두통에 시달렸는데 초안이지만 제안서를 쓰고 나니까 어느 순간부터 두통이 없어지더라(웃음).

- 마지막 영화는 2010년 '작은 연못'인가?

아니다. '부러진 화살'이라고 내년 설날에 개봉하는 영화가 있다. 정지영 감독이 만든 영화인데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상영해서 반응이 아주 좋았다. 국민의명령 운동을 하면서 3일간 휴가를 받아서 단역으로 짧게 출연했다. 그리고 홍상수 감독하고도 3일간 휴가 받아서 (영화를) 찍었는데 그건 영화제목을 모른다. '낯선 나라'라던가? 3일 찍었으니까 거기서도 짧은 역이다. 근데 그건 언제 개봉하는 지 모르겠다. 아무튼 내년에 (내가 나오는 영화가) 두 편 있다(웃음).

- 여균동 감독하고는 '절친'이라고 해야 하나? 어떻게 인연을 맺었나?

(여 감독이) '국민의명령' 운동에 처음부터 동의하고 같이 했으니까 친하다. 내가 89년에 박광수 감독의 '그들도 우리처럼'이라는 영화로 데뷔를 했는데, 그 때 여 감독이 연출부로 들어와 있어서 인연을 맺었다. 그 친구는 그 전에 연우무대 활동 때부터 문화운동을 주로 했으니까 그때 이미 알고 지내기는 했다. 여 감독 데뷔작인 '세상 밖으로'같은 건 거의 나랑 공동제작에 가까운 거다. 오래된 관계다.

- 그럼 직접 여 감독을 '국민의명령'으로 끌어당긴 건가?

제안서를 처음 뿌렸을 때, 여 감독은 해야 된다고 얘기를 했고 적극 참여했다. 이창동은 좋다, 됐으면 좋겠다, 다만 실패해도 의미있는 일을 해라, 이런 생각이었다.

 


아버지인 문 목사가 민주화운동 지도자로서

87년 양김 분열을 막지 못한 데 대해 책임과 아픔을 갖고 있다는 문 대표

 

"87년 양김 분열에 대한 아픔이 현재의 나를 만들었다"

- 최근 '노무현 서거 효과에 기대하지 마라'는 발언을 했다. 추가 설명이 필요할 것 같다.

지난 10·26 재보선은 왜 야권통합을 해야 하는지를 정확히 보여준 선거였다. 강원 인제는 분열해서 졌고, 충남 서산은 투표 4~5일 전에 막판 단일화가 됐기 때문에 졌다. 투표용지에 참여당 후보가 찍혀 있었는데, 그 참여당 후보가 받은 표만 단일 후보로 갔으면 이기는 선거였으니까. 그런데 부산 동구는 단일후보인데도 졌다. 이건 한나라당에서 (부산시민의) 마음이 떠났는데도 민주당까지는 못 온다는 얘기다.

지난 6·2 지방선거에 김두관 후보를 (경남도지사에) 당선시킨 것이나 (부산에서) 민주당 김정길 시장 후보에게 45%씩 준 것은, 지역구도를 넘어가겠다는 노무현 대통령의 평생의 노력에 대한 응답이었다. 그런데 서거의 충격은 시간이 가면 줄어든다. 그러니까 세월이 가면 잊혀진다는 사실을 잊지 말라는 거다. 지금 지역구도를 넘어가야 한다는 것을 강조하는 과정에서 잊혀져간다…. 그런 얘기를 한 거다.

- 노 대통령때문에 정치에 관심을 갖게 된 건가?

아니다. 김대중 대통령이 총재 시절 여러 번 권유를 하셨는데, 그냥 배우로 사는 게 제일 좋겠다 싶어서 늘 사양했었다. 2002년 때는 노무현이라는 분에 대한 개인적 매력도 있었지만, (아버지와 관련된) 87년 양김 분열에 대한 아픔이 있어서였다.

문 목사(아버지)는 평생 시비거리가 거의 없는 분이었다. 유일한 시비거리가 87년 양김의 분열이었다. 내가 책임이 없다고 할 수는 없다. 그 양반(아버지)은 세상을 떠나셨지만 이제 노무현이라는 정치인이 지역구도를 극복하겠다고 나서는데, 내가 대신해서 국민께 한 번 더 사죄드리고 싶어서였다. 그게 이제 참여 이유에서 가장 컸다.

- 문 대표가 보는 노무현 정신은 무엇인가?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지 않나? 한자 풀이를 하면 '시민이 주인으로서 더불어 어울려 사는 나라'라는 뜻이다. 노 대통령은 이런 민주공화국 체제에 맞게 국가를 변화시켜 나가겠다는 이상이 대단히 강했던 분이다. 그러니까 지방분권, 권위주의 타파, 지역구도 극복, 정경유착, 논란의 여지가 많은 4대 권력기관 중립화 등 시도하셨던 이런 것들이 한 마디로 민주공화국 체제에 맞게 바꿔보자는 이상의 표현이었다. 그러다 이제 결국 검찰한테 당하고 만 건데….

그래서 그 양반(노 대통령)이 마지막에 얘기하는 게 '결국은 시민이다'라는 것이었다. '시민이 깨어나서 조직화된 힘을 발휘하는 것 이외에 다른 방법은 없다. 그렇게 해야 이 나라가 발전한다'는 생각을 하셨던 이상주의자였다. 그러니까 나도 통합을 얘기할 때 공천이나 지도부 구성에 있어서 시민참여를 대폭 확대하는 것으로 구조개혁 하자, 정당혁신 하자고 하는 것이다.

- 노무현 정부 때 특히 러브콜을 많이 받았을 것 같은데?

(노 대통령이) 두 번 입각을 하란 말씀을 하셨고, 한 번 출마하라는 말씀을 하셨다. 그런데 세 번을 다 고사했다. 말했다시피 정치에 참여하게 된 동기 중에 가장 큰 부분이 사죄였다. 그런데 노무현 후보가 당선됐다고 해서 그 분에게서 어떤 덕을 보면 사죄가 성립이 되지 않으니까.

 


문 대표와 아버지 문익환 목사(오른쪽). 문 대표가 "아버지와 단 둘이 찍은 유일한 사진"이라며

모바일 어플리케이션 '카카오톡'을 통해 직접 사진을 보내왔다.

 

 

민주화운동 전 문익환 목사 모습 "허리 36인치에 체중 90Kg 얼굴 하얀 돼지"

- 고인이 되신 문익환 목사가 아버지, 박영길 장로님이 어머니시다. 두 분은 어떤 분이셨나?

어머님은 상당히 정서적이면서 무언가를 믿으면 요지부동 추진하셨다. 문 목사 경우는, 다들 노인이 돼서 한복 입고 머리랑 수염을 기른 사진을 기억을 하시는데 원래는 그런 분이 아니셨다. 75년에 처음 감옥에 가시기 전까지는 굉장히 얼굴 하얗고 허리가 한 36인치에, 체중은 90kg이 넘어가는 돼지에 가까우셨다. 감옥에 가시면서부터 살이 그렇게 빠지셨다. 성격도 원래는 굉장히 고집도 세고 섬세하고 신경질적인 분이었다. 그런데 민주화운동 과정에서 감방을 가시면서 스스로 성격을 운동권 지도자에 맞게 개조하신 분이었다.

- 17년간 6차례 투옥, 12년 감옥 생활. 아버지에 대한 불만도 있었을 것 같은데?

아니다. 불만이 아니고, 76년에 처음 (아버지가) 감옥에 들어가고 3년 좀 못 미쳐서 예순 넘은 나이로 나오셨을 때 내가 그랬다. "이젠 좀 자서전도 쓰면서 좀 쉬시죠." 그랬더니 대답도 안하시고 그냥 어처구니 없다는 듯이 나를 보시더라. 그러니까 그 후의 삶을 보면 내 말이 오죽 웃겼겠나. 인간으로서 살 수 없는 삶을 사셨고, 워낙에 차원이 다른 양반이었으니까 나는 도망다녔다. 근처에 안 가려고(웃음).

- 어머님은 아버지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셨나?

정서적인 섬세함이나 이런 게 두 분이 워낙 잘 맞았다. 또 함께 오래 사시면 점점 더 가까워지시고 그랬을 거다. 끔찍할 정도로 사이가 좋으셨다. 어머니가 많이 응원을 해주셨다.

- 2040 대표매체다. 무엇보다 고달픈 20대에게 한 말씀 해 달라.

정말 젊은 세대 보면 미안하다. 우리 때는 뭐 정말 대학 졸업하면 직장 5, 6개씩 합격해서 골라가던 땐데…. 참 가슴이 아프다. 그런데 이것은 젊은이들의 잘못이 아니다. 우리 경제구조가 이렇게 변해갔고, 젊은 세대들에게 양질의 직장을 만들어내는 데 기성세대가 소홀히 한 측면이 많다. 그러니까 자책하지 말고 이 공화국이 더불어 살 수 있는 세상이 되도록 같이 노력하자. 그런 얘기밖에 못하겠다. 무책임하게 입 발린 소리 못하겠다.
'디시인사이드'에서 놀듯이, 놀면서 세상을 바꿀 수 있다. 선거할 때 꼭 투표를 해 달라. '배우가 뭐하는 짓이야' 할지 모르겠지만, 이 나라를 바로잡자고 하는 것이다. 그러니까 관심을 갖고 지켜보고 응원해달라.

2011.12.1 ⓒ 스포츠서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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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작성자 11.12.04 12:26

    첫댓글 '디시인사이드'에서 놀듯이, 놀면서 세상을 바꿀 수 있다. 선거할 때 꼭 투표를 해 달라. '배우가 뭐하는 짓이야' 할지 모르겠지만, 이 나라를 바로잡자고 하는 것이다. 그러니까 관심을 갖고 지켜보고 응원해달라.

  • 11.12.04 12:33

    타고난 혈통은 어쩔수없는법
    아버지의 삶이 이젠 아들의 삶이 되네..
    환경과 방법이 다를뿐 아버지의 길을 똑같이 걷고 있네요..

  • 11.12.04 12:39

    문성근님이 대표 되셨으면 좋겠음..파이터기질도 있으시고 20~30대랑 대화가 가장 될거 같음.. 혁신적으로 민주당 협상파도 제거하시고 통합하는 진보당이랑 총선때 가장 말이 잘 통할거 같은 분이 이분인거 같음...

  • 11.12.04 12:37

    저도 그 이상을 믿는 사람입니다,,,,,,,,,

  • 11.12.04 12:54

    뜬금없는 애기지만, 야5당 대통합후 문성근이 당대표하면 진짜 그림은 끝내줄것 같습니다.

  • 11.12.04 13:09

    세상을 바꾸는 것은 깨어있는 국민하는 것입니다...
    선거 잘못하면 국민의 생활은 지금과 같이 됩니다.. 앞으로의 선거는 적극적으로 참여해야 합니다..

  • 11.12.04 13:13

    문성근을 알려면 변상욱 기자수첩에서 문익환목사 집안에 대하여 말하는 방송분과 뉴욕타임즈에서 게스트로 나온 방송분만 어느 정도는 알 수 있을 것입니다다. 문성근 집안은 3대에 걸친 독립운동가 집안이고 기독교(절대 개독아닙니다.) 집안이죠.....외갓집도 마찬가지구요 ...........그리고 문성근은 군사정권하에서 김대중 사형집행 선고가 내렸던 재판 기록을 전부 수기로 기록해서 외국 언론에 보내서 사형집행을 막게 돼죠... 그 일화는 뉴욕타임즈에서 확인 하실수 있습니다. 김대중 전 대통령도 문성근 씨의 지켜보던 중에 정치를 해보기를 권하여 국회의원자리를 권하였지만 전부 거절하게 됩니다. 문성근 집안을 보면 직접

  • 11.12.04 13:14

    정치에 뛰어들기보다는 모든 기득권을 포기하고 대한민국의 민주주의 서포트 하는 역할을 하게 됩니다. 대한 민국의 민주주의사에서 빠질수없는 가족사를 가진신 분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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