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를 보면 선조 초기의 정치적 상황은 상당히 희망적인 분위기로 가득차 있었습니다. 수십년간 정권을 독점해오던 수구 세력의 청산이 이루어졌던 시대가 바로 이 시대이기 때문입니다. 그 유명한 윤씨 가문의 조선 독식은 더 이상 유림들에게 묵과할 수 없는 대상이었죠.
그리고 명종 승하.
그 뒤 이어 선조가 즉위합니다. 이 때부터 정계는 심상치 않게 돌아갑니다. 율곡이나 퇴계, 화담, 남명 등의 거인들이 유림에서 배출된 지 오래. 결국 그들의 권력은 군주인 선조의 철저한 외면에 의해 땅에 떨어지고 상당 수의 보수 세력은 수십년간 핍박해오던 유림 세력들에 의해 자리를 내줍니다. 결국 세조 이래로 그릇되게 흘러가던 조선의 정치가 비틀거리기는 해도 어느정도 제 갈 길을 잡은 셈입니다.
그렇습니다. 선조의 즉위는 세조 즉위 이후의 크나큰 혼란에 마침표를 찍는 사건이었습니다. 누가 뭐라든 조선의 암적 존재들은 어느 정도 청산이 되었으니까요.
저는 이 것이 그동안 재야에서 힘을 키워오던 유림들뿐만 아니라 선조라고 하는 당시 그 어린 군주도 어느 정도 그 새로운 혁신에 동참했고 힘을 보탰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은 단순한 비약이 아니라 명종 승하 이후 정통성에 끊임없이 내쫓겨야 했던 한 군주가 내놓은 최고의 결단이었습니다.
그런 면에서 선조는 불쌍합니다. 가엾다는 생각도 듭니다. 그는 분명 영민한 군주였습니다. 비록 방계였어도 정치의 스승이라는 것이 없다는 상황에서 보면 그 정치적인 면에서 상당한 실력을 보였습니다.
사람들은 조선의 당쟁이 바로 이 선조 시대에 이루어진 것 때문에 선조를 몰아 세웁니다. 바로 당쟁 때문에 조선이 이 모양이 되었으니 선조가 잘못이라구요. 그건 우스운 일입니다. 그건 마치 호환을 당했다고 해서 호랑이가 사는 뒷산을 욕하는 것과 다름없는 일입니다.
어떤 분들은 선조가 당쟁을 이용하여 왕권을 유지하려 했다고 합니다. 저는 워낙 천학비재한 지라 과연 선조가 당쟁을 부추긴 결과로 무엇을 할 수 있었는지 모릅니다. 하지만 그것이 꼭 선조가 그렇게 시켜서 이루어진 당쟁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 당쟁이 초기에는 학문적인 토론의 장이었다는 것을 모르는 분은 별로 없을 거라 믿습니다. 거기서 점점 정치적인 분야로 넘어갔다고 할 수 있겠지요. 그렇다면 과연 선조가 그것을 통제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고 보십니까?
저는 한문 실력도 적고 역사에 대해 정확히 알고 있지는 않지만 적어도 선조라는 군주 하나가 당쟁을 부추기거나 또는 증폭시키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되지 않습니다. 물론 선조가 당쟁을 그저 지켜본 것도 사실일 것입니다. 하지만 다른 한 편 생각해보면 꼭 그렇지도 않습니다. 선조가 임란 때 피난을 가며 동서 당쟁을 비난하는 시를 지은 것 등을 보면 선조 역시 당쟁으로 인한 국가적인 소모 현상을 우려한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어찌 보면 선조는 그 이전에 없던 유림들간의 대결인 당쟁을 본격적으로 경험한 인물이었습니다. 그렇기에 그도 처음에는 당쟁이 수구 세력에 의해 피폐해진 조정을 깨끗이 하고 마치 학자들의 학당처럼 즐거운 토론의 장으로 만들ㄹ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그의 생각은 자신을 왕의 지위로 올려준 신하들에 의해 배신 당했습니다.
중도 세력 하나 없이 절반씩 나누어진 정치 상황에서 과연 그 젊은 선조는 무엇을 할 수 있었을까요? 아무리 수구세력을 물리치는데 가장 큰 역할을 한 인물이었지만 그에게는 조선이 당면한 이 최초의 복합적인 정치적인 암투에서 살아나갈 수나 있었을까요? 조회를 할 때나 단순히 자문을 구할 때도 온갖 고서와 논문을 인용하는 노털들의 잔소리를 그는 견딜 수 있었을까요? 세종같이 큰 학구열도 없었던 그는 정치의 냉혹함과 정권을 잡은 그들의 잔소리 가득한 암투를 지켜볼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에게는 자신을 도와줄 인물이 필요했습니다. 적어도 동서 양당에 필적하는 새로운 세력이 필요 했습니다. 적어도 자신과 터놓고 얘기할 수 있는 인물이 필요했습니다. 하지만 그에게는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저는 이러한 상황에서 이 인물이 왜 임란 때 이순신을 가두고 김덕령을 치죄하는 광인같은 짓을 했는지 이해가 갑니다. 물론 지금의 상황에서 보면 이순신은 당시 왜군에 승승장구하던 영웅이고 김덕령은 곽재우만큼이나 유명한 의병장이었지만 기축옥사의 정여립도 당시 정여립이 결성한 대동계로 서민들 사이에서는 유명했습니다.
그는 유학을 근본으로 하는 이 나라에서 정통성을 잃은 인물이었습니다. 세조처럼 자력으로 일어선 것도 아니고 그저 왕실의피가 조금 섞였다 하여 그리된 것 뿐입니다. 저는 선조가 전세가 역전되어 가는 상황 속에서도 그리 행복했다고 생각지 않습니다. 전후에 공을 세운 인물들이 언제 자신의 정통성 없음을 규탄하며 자리에서 끌어내릴 지 알 수 없는 노릇이었습니다. 이미 선조는 연산군의 이야기를 듣고 있었습니다.
선조. 그는 슬픈 군주였습니다. 만약 그에게 그를 따르는 충직한 신하가 여럿 있었고 또 당쟁이 초기의 이점을 그대로 살려 나갔다면 선조는 수십년간의 암흑기를 뚫고 새로운 학문의 조선을 만든 개혁군주가 되었을 것입니다. 어쩌면 영조와 정조보다 더 존경받았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선조가 처했던 그 비참한 정치적 현실과 태생적 한계, 그리고 조선 역사상 가장 처절한 전쟁은 그에게 그런 장밋빛 인생을 던져주지 못했고 결국 수백년이 지난 지금도 그는 조선 역사상 가장 처참한 패배자, 암군으로 남아 있습니다. 이제, 선조는 우리 영민한 후손들에게 다시 재평가되어야 할 것입니다.
첫댓글선조에게 충실하게 따르는 신하들은 많았습니다. 유성룡, 이율곡, 이덕형, 김성일, 이항복, 이원익 대감등 선조시대에는 뛰어난 신하들이 많았습니다. 어찌보면, 선조 시대의 정치가들이 조선시대의 다른 국왕보다도 인재들은 많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을 제대로 활용하지 못한 그 사람이 잘못이죠.
물론 그렇게 해석해도 무리는 없습니다. 하지만 당시 정치계에서 떠오르는 별로 인정받고 있던 정여립의 반역 사건 등은 그것의 실제 여부와는 관계없이 상당한 충격을 주었을 법합니다. 또한 따르는 신하가 많았다 하더라도 (moko님이 말씀하신대로) 그들이 이미 동서로 분리된 상황이라면 있으나 마나가 아닐까요?
첫댓글 선조에게 충실하게 따르는 신하들은 많았습니다. 유성룡, 이율곡, 이덕형, 김성일, 이항복, 이원익 대감등 선조시대에는 뛰어난 신하들이 많았습니다. 어찌보면, 선조 시대의 정치가들이 조선시대의 다른 국왕보다도 인재들은 많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을 제대로 활용하지 못한 그 사람이 잘못이죠.
흠냐.. 어려운 상황에서 선조가 능수능란하게 잘 대처했다고는 보기 힘들죠.. 그리고 아무리 선조가 어려운 상황이었다 해도 잘 싸우는 장수를 잡아다가 고문을 가하고 전공을 세운 의병장을 처형하는 것은 문제가 있는 처사라고밖에는 생각되지 않습니다.
물론 그렇게 해석해도 무리는 없습니다. 하지만 당시 정치계에서 떠오르는 별로 인정받고 있던 정여립의 반역 사건 등은 그것의 실제 여부와는 관계없이 상당한 충격을 주었을 법합니다. 또한 따르는 신하가 많았다 하더라도 (moko님이 말씀하신대로) 그들이 이미 동서로 분리된 상황이라면 있으나 마나가 아닐까요?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제가 무조건 선조는 성군이다라는 식의 주장을 펴는 것이 아니라 조선 역사에서 단지 조선 최대의 참혹한 전쟁 시대의 군왕이라는 이유만으로 함부로 쓰여지고 심지어 매도되기 까지 하는 상황을 조금이나마 개탄하고 우려하는 것입니다.
저도 선조가 최악의 임금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지만 국가적 위기 상황에서 현명한 대처를 하지 못한 것은 사실이라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