싸늘한 `윗목` 경기, 카드로 카드 빚 갚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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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가 어려운 상황에서 가계에 부채의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우고 있다.
특히 이자가 연 20~29%로 높은 신용카드 현금서비스가 지난해 한 해 동안 16조3천억원이나 급증, 전셋값과 구조조정.실업의 여파 속에서 서민 계층의 삶이 고단함을 보여주었다.
전문가들은 경기 침체가 장기화해 가계 소득이 줄어들 경우 연체 증가에 이어 개인 파산이 속출하면서 경기회복에도 나쁜 영향을 미칠 것으로 우려한다.
◇ 가계 빚 왜 늘었나〓전셋값이 크게 올라 가계의 자금 수요가 늘어난 데다 은행 등 금융기관들이 위험이 큰 기업 대출보다 가계 대출에 주력했기 때문이다.
전셋값은 지난해 4분기에 전년 동기보다 평균 44.4% 올랐다. 이를 반영해 지난해 금융기관과 국민주택기금의 가계에 대한 주택자금 대출은 7조6천억원 증가했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은행마다 경쟁적으로 주택담보 대출 금리를 연 7%대 초반까지 내리는 등 과열 현상을 빚고 있다" 며 "은행들이 기업 대출을 꺼리는 한 가계 대출은 계속 불어날 것" 이라고 말했다.
일부 가계의 소비 행태도 빚을 늘리는 원인으로 작용했다. 경기가 급락한 지난해 4분기에도 신용카드 할부와 할부 금융사를 통해 물건을 사서 진 빚이 3분기보다 1조7천억원이나 늘어났다.
◇ 연체.개인 파산 급증 우려〓가계 빚이 불어나면서 연체되는 가계 대출의 비중이 커지고 있다.
지난해 2분기 경기가 좋았을 때 1.72%까지 떨어졌던 은행의 가계 대출 연체 비율은 지난해 4분기 2.04%로 높아지더니 올 1월 말에는 2.9%에 이르렀다.
신용카드 이용대금 연체율도 지난해 3분기 4.88%에서 4분기에 5.2%로 높아졌다.
한국은행 최영엽 조사역은 "우리나라 가계의 가처분소득 대비 금융부채 비율은 미국.일본 등 선진국에 비해 아직 높은 수준은 아니다" 며 "하지만 경기침체가 지속되는 상황에서 연체율이 높아지면 개인 파산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고 말했다.
◇ 개인 파산 대책 미비〓과다 부채 가계의 탈출구인 소비자 파산 제도가 너무 엄격하게 운영되는 등 대책이 미흡하다는 지적이 많다.
한국의 소비자 파산 제도는 보증 채무에 국한돼 있어 본인이 직접 돈을 빌려 갚지 못할 경우에는 법원에서 파산.면책 판결을 받기란 거의 불가능하다.
법원에 따르면 1997년 이후 4년 동안 소비자 파산 신청을 한 5백74건 가운데 파산 선고를 받은 경우는 2백78건이고, 면책.복권 판결을 받은 경우는 파산 신청자의 15%인 89명에 그쳤다. 이에 비해 미국은 99년 한 해 동안 1백40만명이 소비자 파산 판결을 받았고, 일본도 10만3천건을 기록했다.
미국은 `법원이 소비자 파산에 지나치게 너그럽다` 며 99년 하원에서 소비자 파산을 억제하는 법률안을 통과시켰다. 일본 법무성은 `개인 법정관리 제도` 의 도입을 추진 중이다. 길게 보아 빚을 갚을 능력이 있다면 파산.면책보다 채무 조정을 통해 상환하도록 하는 제도다.
심병연 변호사는 "소비자 파산은 선의의 채무자에게 새출발의 기회를 준다는 취지" 라며 "지급 불능에 빠진 개인은 파산을 통해 자연스럽게 퇴출시켜야 한다" 고 말했다.
◇ 소비자 파산의 걸림돌〓법원은 ▶도박을 했거나▶3만원 이상의 호텔.콘도.골프장.음식점을 이용한 경우▶최근 5년 동안 30만원 이상의 국내외 여행을 했거나▶신용카드 발급이 많은 사람은 면책에서 제외하고 있다.
특히 법원이 신용카드 할인(일명 카드깡)을 면책 대상에서 제외해 소비자 파산 신청을 막고 있다.
외환위기 당시 주택대출금을 갚기 위해 카드깡을 하다 채무 초과 상황에 빠진 윤모(58)씨는 "법원이 불법 금융 거래라며 카드깡을 면책 대상에서 제외하는 것은 현실을 도외시하는 것" 이라며 "궁지에 몰린 채무자는 막판에 누구라도 카드깡이나 사채업자에 기댈 수밖에 없다" 고 주장했다.
지난해 개정 파산법이 시행되면서 소송 비용이 껑충 뛴 것도 상황이 절박한 지급 불능자에게는 큰 부담이다. 개정 파산법은 면책 판결까지 1백62만5천6백원의 신문 공고료를 부담하도록 하고 있다. 그 전에는 법원이 소비자 파산의 내용을 무료로 관보에 게재했다.
또 일본은 파산자에게 5개 직종의 취업만 제한하지만 한국은 공무원에서 보험모집원.청원경찰에 이르기까지 1백50여개 직종에 취업을 금지하는 등 너무 까다롭게 운영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