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매년 2월 셋째주 월요일은 미국 의회가 제정한 대통령의 날(Presidents’ Day)로 미국은 2월21일이 공휴일이다. 의회에서 대통령의 날로 제정 되기전에는 각주별로 2월 12일 링컨대통령의 탄생일과 2월 22일 워싱톤 대통령 탄생일을 각각 축일로 지냈다.
링컨과 워싱톤의 평가는 역사학자들에 의해 좀처럼 미국 역대 대통령 중에서 1등과 2등의 서열를 벗어난 적이 없다. 1979년 미국 케이블 텔레비전 산업에서 설립한 C-Span이라는 기관이 조사한 미국 역대대통령 2021 평가성적에 의하면 링컨 대통령이 1위이고 워싱톤 대통령이 2위이다. 바락 오바마 대통령은 10위에 랭크되어 있고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44명중 41위로 하위 그룹에 속해 있다.
우리나라는 3월9일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있지만 전례 없는 비호감 대선으로 후보들은 네편 내편 할 것 없이 그 나물에 그 밥 수준이다. 이런 와중에서 눈을 돌려 대통령제도의 본산인 미국에서 가장 추앙을 받고 있는 링컨 대통령이야기를 해보려고 한다.
링컨은 1809년 2월12일 캔터키주의 외딴 오두막집에서 태여 났다. 가난한 농부의 아들로 정규교육은 거의 받지 못했으나 성장하면서 읽고 쓰고 외우는 일은 부지런히 했다.
청년이 된 후 링컨은 그가 한때 점원으로 일했던 잡화가게를 인수해 친구와 동업을 했지만 빚만 남기고 파산하고 말았다. 당시 파산한 사업자는 다른 지역으로 떠나기만 해도 채무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그러나 링컨은 그곳에서 우체부로 일하며 빚을 갚아 나갔다. 이때부터 링컨은 ‘정직한 에이브(Abe)’라는 별명을 얻었다.
25세되는 해에 일리노이주의원에 당선 했고, 독학으로 1837년에 변호사 시험에 합격하여 변호사가 되었다. 1860년 대통령선거에서 공화당 대통령 후보로 지명 받았다. 라이벌 정당인 민주당이 노예제에 대한 리버럴한 입장을 취한 더글라스후보(북부민주당)와 강력한 노예제 주창자 존브레킨리지후보(남부민주당)로 분열 되여 링컨은 어부지리(漁父之利)의 행운을 누렸다. 남부로부터 경원 당한 링컨은 득표율 39.8%로 당선되었다. 당시 더글라스후보(북부민주당)가 확보한 득표율은 29.5%이었고 브레킨리지후보(남부민주당)가 확보한 득표율 18.1%였다. 득표율의 합계로 따지만 공화당 39.8% 대 민주당(북부민주당 + 남부민주당) 47.6%으로 열세였다. 노예제를 둘러싼 민주당의 내분으로 노예제 폐지를 주장한공화당의 링컨이 하늘의 도움을 받았다는 표현을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링컨이 대통령에 당선되자 남부의 주들이 합중국을 이탈하여 남부연합국을 형성하여 남북전쟁이 시작되었다. 링컨은 전쟁의 목적이 단순히 승리하는 것에 만족하지 않고 나라의 분열을 극복하고 합중국을 유지하는 것을 중요하게 여겼다. 링컨은 연방의 분열과 갈등 해소 차원에서 노예제를 반대하기만 하면 민주당 출신이라도 과감하게 기용하는 인사정책을 펼쳐 재임기간중 연방유지와 분열된 미국의 통합에 혼신의 힘을 쏟아 부었다.
링컨은 1863년 11월 게티즈버그 국립묘지에서 행한 연설에서 “국민에 의한, 국민을 위한, 국민의 정부는 지상에서 영원히 사라지지 않을 것입니다.”라는 유명한 말을 남겼다..
1864년 대통령선거에서 북군이 계속 승리함에 따라 재선에 성공하였다. 1865년 4월 9일 남군 사령관 리장군이 북군 총사령관 그랜트에게 항복함으로 서 남북전쟁은 북군의 승리로 막을 내렸다.
링컨은 남군이 항복한후 1865년 4월14일 저녁 워싱턴의 포드극장에서 존 윌크스 부스의 총에 맞아 사경을 헤매다 다음날 아침 유명을 달리했다.
2017년 5월9일 대한민국 제19대 대통령 선거에서 문재인 대통령은 41.1%의 득표율로 당선됐다. 당시 홍준표 후보가 24% 그리고 안철수 후보가 21.4를 득표했다. 문재인 대통령도 홍준표와 안철수 후보 득표율 합계에 못 미치는 소수자 대통령이다.
문재인 대통령이나 링컨 대통령이나 유권자 10명 중 4명 내외의 지지를 받고 대통령에 당선되었는 점에서 출발점에서 입장이 비슷했다. 그러나 미국은 링컨이 당선되고 내전이 시작되었고 한국은 박근혜 전대통령 탄핵으로 보수세력이 자멸하며 대통령직을 문재인 당시 야당 후보에게 헌납했다. 문재인 정부는 촛불항쟁의 시대 상황에 편승하여 적폐청산을 명분으로 내세우며 야당의 존립기반을 파괴하고 의회 권력마저 장악하며 지금까지 국정 운영에 견제와 균형 장치 없이 무소불위의 독점권력을 행사해 왔다.
한국갤럽이 발표한 2월 셋째 주 여론 조사 결과에 의하면 문재인 정부의 국정 지지율은 40%로 5년 전 대통령 선거당시 득표율을 거의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혹자는 임기말에 유례없이 높은 지지율이라고 하지만 또다른 해석은 문재인 대통령이 임기 내내 지지 자를 의식해서 분열의 정치를 획책했다는 증거라고 혹평하고 있다. 다시 말해서 문재인 대통령은 정치적으로 반대 편에 있는 국민과의 갈등해소를 위해 다리를 잇는 일을 외면하여 대통령 취임시의 지지율의 한계선상에서 맴돌다 대통령 직을 퇴임하는 모양으로 말년을 맞게 되었다는 지적이다. 2월셋째주 갤럽의 여론 조사에 나타난 문대통령 국정 수행 평가에 부정적인 견해를 표명한 53%가 정권 교체론의 주축을 이루고 있다고 보는 것이 정설이다.
윤석열 후보가 기자 회견에서 전정권에 대한 적폐수사 여부에 대한 기자 질문에 원론적인 대답을 하자 문재인 대통령이 발끈 한 것을 두고 임기중 국민 통합 노력이 전무하거나 부실했다는 콤플랙스의 일단이 표출됐다고 보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정신과 전문의는 복수를 분노작용에서 찾고 있다. 복수의 심리학(Revenge, Stephen Fineman저) 번역본에 추천 글을 쓴 정신과 전문의 신동근에 의하면 분노를 일으키는 사람의 감정을 다음과 같이 일곱가지로 꼽고 있다.
첫째는 박탈감이다.
둘째는 불평등, 불공평, 불 공정한 느낌이다.
셋째는 배신감이다.
넷째는 착취당한 느낌과 이용당한 느낌이다.
다섯째는 좌절감이다.
여섯째는 수치심이다.
일곱째는 시기와 질투이다.
결국 분노를 유발하는 상황들은 그 분노를 유발한 대상에게 전가되고 복수하고 싶은 충동을 불러 일으킨다고 한다.
위에 분노를 일으키는 감정 중 배신감을 예로 들어 보자. 필자는 박근혜 전 대통령재임기간 중 지지자로서 많은 기대를 걸고 있었다. 믿고 성원했던 박 전대통령이 대통령답지 않게 개인적 인연에 얽힌 일탈행위와 당내 불화로 탄핵 당했을 때 이루 말 할 수 없는 배신감을 느꼈다. 그 사건을 계기로 대한민국의 보수는 몰락의 길을 걸었기 때문에 박 전대통령에 대한 나의 원망과 배신감은 시간에 비례하여 더욱 증폭되었음을 솔직히 시인하지 않을 수 없다. 현직에 있는 국가 최고권력자가 요청하는데 어느 기업가가 정경유착을 이유로 금전적인 청탁을 거절 할 수 있겠나. 삼성의 이재용 부회장도 박 전대통령 때문에 억울하게 옥살이를 했다고 본다. 마찬가지 논리로 문재인 대통령에 많은 기대를 걸었던 촛불항쟁 세력들도 임기 5년전과 후를 비교 분석해 보면 고작 이것 때문에 촛불을 들었던가 하고 실망하고 분노를 표출하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라고 상상해 본다.
링컨 대통령과 문재인 정권은 소수 정권이라는 출발점은 같았지만 링컨은 미국 국민들로부터 역대 최고의 대통령으로 존경받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은 아직 임기를 마치지 않았지만 지금 이 시점에서 확실히 말 할 수 있는 것은 시종 일관 자기 사람위주로 국정을 편협하게 운영하여 국민통합에 대한 의지를 전혀 보이지 않았다는 점이다. 최재형 전 감사 원장 과 윤석열 전 검찰 총장에 대해 더불어 민주당에서는 문대 통령의 어두운 유산 즉 인재(人災) 라고 애써 평가절하하고 있다. 이두 사람 중 한사람은 3월9일 실시되는 서울의 상징적 자치구인 종로구 국회의원 보궐선거 야당 후보로 다른 한 분은 야당의 대통령 후보로 출마하여 국민의 심판을 기다리고 있다. 이분들이 인재(人材)인지 아니면 인재(人災)인지 이번 선거에서 유권자들이 엄중하게 판단하리라고 믿는다.
이번 대통령 선거에서 후보 뿐만 아니라 후보 부인들에 대한 비호감도 전례 없이 높은 것 같다. 공사구분이 불분명한 김혜경씨와 무속논란을 일으키는 김건희씨 두 분다 국민들의 논높이에 훨씬 미치지 못하는 것 같다. 왜 우리나라 정치인들과 내조자들은 무속인들을 가까이하고 미신을 끊어 버리지 못하는 지 모르겠다.
사기 골계열전에 위나라 명관 서문표에 관한 이야기가 실려 있다. 업(鄴) 고을 태수로 부임한 서문표는 관개사업을 실시하고 백성을 괴롭히는 미신을 타파하며 선정을 베풀었던 위나라의 명관이다. .그 시절에 사화 통념을 깨고 미신을 타파한 서문표의 용기는 높이사야 마땅하다고 생각한다.
서문표가 미신이라는 사회적인 인습을 어떻게 발본색원했는지 역사의 기록물을 재 조명해보자.
서문표는 업(鄴)에 도착하자 고을 어른들을 모시고 어려운 점을 물었다. 그러자 장로들이 이렇게 대답했다.
“하백(河伯. 황하의 신)을 장가보내는 일 때문에 괴롭습니다.”
업(鄴)에는 황하의 지류인 장수(漳水)가 흐른다. 왜 그렇게 힘들었을까? 장로들이 대답했다.
“우리 업(鄴)의 삼로(백성의 교화를 담당한 향관)와 속리들이 해마다 이삼십만전을 들여서 하백을 장가 보내고 나머지 는 푸닥거리를 하는 무당들과 나눠서 가집니다. 하백을 장가보내는 날이 되면 여염으로 찾아다니며 참한 처녀를 고릅니다. 맞춤한 처녀를 찾으면 목욕재계 시키고 잘 꾸며서 강가의 임시 처소에 두고 잘 먹이지요. 하백을 장가보낼 날이 오면 그 처녀를 신방처럼 꾸민 탈것에 실어서 물에 떠내려 보냅니다. 얼마 지나면 가라 앉겠지요.
그래서 어린 딸을 가진 집들은 무당이 여식을 데려 갈까 집을 버리고 도망가서 마을이 비고. 이렇게 돈을 쓰니 사람들이 자꾸 가난해집니다. 사람들 말로는 하백이 장가를 보내지 않으면 하백이 홍수를 보내 사람을 죽인다고 합니다.”
가만히 듣고 있던 서문표가 대답했다.
“내 좋습니다. 하백을 장가보내는 날이 되면 제 게 알려 주십시오. 저도 수령이 된 몸이니 함께 그 여식을 전송하고 심습니다.”
하백을 장가보내는 날이 왔고 서문표 또한 그 장소에 갔다. 삼로니 속관이니 하는 이들이 몰려 나오고 고을의 이름깨나 있는 토호들이 앞에 자리를 잡고 뒤에는 구경 하는 백성들이 몇 천은 있었다. 서문표도 자리를 잡았다. 이 푸닥거리를 집행하는 늙은 무당도 여자 제자 열명 남짓을 데리고 등장했다. 지방관으로서 서문표가 한마디 했다. “오늘 시집갈 처녀를 데려와 보시오. 어디 용모가 괜찮은 지 봅시다.”
서문표는 장막밖으로 나온 처녀를 한번 보더니 이렇게 선포했다.
이 처녀는 용모가 빠지는 구려, 여보게, 큰 무당, 자네가 일단 물에 들어가서 하백에게 다른 날 더 나은 처녀를 보내준다고 말해 주게.”
그러고는 관졸을 시켜 할머니 무당을 물에 던져 버렸다. 좌중은 창촐간에 사색이 되었다. 할멈이 무슨 힘으로 물밖으로 나오겠는가? 얼마 있다 서문표가 또 명했다.
“할멈은 왜 이리 안 나오나? 제자가 들어가 데리고 오너라.”
할멈 무당의 제자 하나를 잡아서 물에 던졌다. 물론 그녀도 나오지 못했다. 서문표는 다른 제자를 또 던져 넣었다. 물론 그녀도 나오지 못했다. 그러자 서문표는 짐짓 짜증을 내며 말했다.
“여자들이라 제대로 말을 못했나 보군. 삼로가 들어가서 하백에게 좀 설명 해 주시오.”
이번에는 삼로를 강에 던져 넣었다. 서문표는 딴청을 부리며 강을 바라보는데 이 푸닥거리에 연루된 사람들은 좌불안석이었다. 그때 서문표가 몸을 돌리더니 그들을 둘러보며 말했다.
“이런 삼로마저 안 돌아오니 이를 어쩌오?”
그리고는 속리와 토호 하나를 지목한 다음 강으로 들어가 재촉하라고 시키니 그들은 급기야 땅에다 머리를 찧으며 살려 달라고 애원했다. 서문표는 그들을 외면하고 조금 더 시간을 끌다가 말했다.
“오늘 하백이 손님들을 오래 붙들고 있구먼. 그대들은 다 일어나 집으로 돌아가라. 오늘 행사는 끝이다.”
물론 하백에게 바쳐질 예쁜 처녀는 무사히 집으로 돌아 갔다. 이 일이 있은 후 누구 하나 하백에게 처녀를 시집보내야 한다는 말을 꺼내지 못했다. 까마득하게 오래된 악습이 이런 극단적인 조치로 끝장 난 것이다. 여기에 소개된 서문표 이야기는 공원국의 “옛 거울에 나를 비추다” 중 ‘제물로 태어난 사람은 없다’에서 가져왔습니다.
필자도 어린시절 한 작명가가 부모님에게 접근하여 이름을 바꿔야 아이가 오래 산다고 속여 본래 이름 외에 또 하나의 이름을 지어서 받은 경험이 았다. 그러나 성인이 되어 부모님 곁을 떠난 뒤로는 이름 두개를 관리하기가 거추장스러워 출생시부터 써왔던 본명으로 나의 정체성을 단일하게 유지 해오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필자는 건강을 잘 유지하며 지금까지 한국인 남자의 평균 수명수준은 채우고 있다.
최근 지하철을 기다리다 우연히 지하철 프랫폼 벽에 걸린 액자 속에서 풍경소리 대표이사 목종 스님이 쓴 글을 읽었다.
“여러분 부처님이 여러분에게 사랑을 주거나 행복을 주는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 본래 바탕이 부처이기 때문에 여러분이 사랑으로 세상을 비춰야만
여러분도 사랑을 받습니다.”
풍문대로 김건희씨가 무속 프렌드리가 아니기를 바란다. 아무튼 무속에 중독된 사람들은 “자신들의 존재 이유”를 축약하면 결국 “자유”가 된다는 보편적인 진리를 생활속에서 실천하기를 바란다. 특히 이 세상에서 뜻을 크게 펼칠 사람은 자기 주도적이고 자신의 존재 이유를 아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지도자와 그를 내조하는 사람의 그릇은 끌려 다니는 사람의 심성이 아니라 끌고 나갈 역량이 있는 사람이어야 한다고 믿는다.
외신 보도에 의하면 지난 17일 뉴욕주 법원의 아셔 잉그런 판사는 뉴욕주 법무장관의 증언조서 작성에 출석하지 않게 해달라고 트럼프 전 대통령이 한 신청을 기각했다고 한다. 뉴욕주 법무장관은 트럼프 일가의 기업이 자산 가치를 부풀려 금융기관과 보험사 등을 속이는 사기적 행위를 한 혐의와 관련해 트럼프 전대통령의 증언 조서 작성을 주친해 왔다. 증언 조서는 법정 밖에서 차후 재판에 사용하려고 작성하는 것이다.
자신에 대한 직접 조사는 불가하다고 버텨온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이 결국 조사실에 앉아야 할 것으로 보인다.
비록 전 직 대통령이라고 하더라도 누구도 법 위에 군림할 수 없다는 사실을 개별사안의 유불리를 떠나 받아들여야 이나라의 법치주의가 유지된다. 박근혜 전 대통령과 이명박 전대통령이 실정법 위반으로 구속되고 징역형을 받아 옥살이를 한 것은 그들을 지도자로서 뽑은 국민의 입장에서 보면 매우 부끄럽고 자존심 상하는 일이다. 그러나 전직 대통령들이 재판을 통해 형벌을 받음으로서 누구도 법 위에 군림 할 수 없다는 상식이 한층 자명하게 된 것은 불행 중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누구도 법위에 군림 할 수 없다는 원칙은 문재인 대통령과 3월9일 선거를 통하여 뽑힐 차기 대통령에게도 예외 없이 일관되게 적용되어야 할 원칙이다. 없는 죄를 만들어 내는 정치적 보복과 실정법 위반에 대한 사법적 재단은 엄연히 구분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문재인 정부는 촛불항쟁이라는 시민운동의 결과로 세워진 정부라는 자부심을 갖고 출발했다. 그렇다고 문재인 정부가 한 모든 일이 결코 면죄부를 받은 것은 아니다.
미국의 철학자 에머슨은 비난의 소리가 높을수록 성공을 예감한다고 했다. 비난이 상대방을 일깨우는 반작용을 일으키기 때문이다. 이재명후보와 윤석열후보의 유례없는 네거티브 선거전에서 실패를 예방하는 반면교사의 교훈이 담겨 있다고 스스로 위로해 본다. 선거일은 다가오고 덜 나쁜 후보를 뽑는 비 호감 선거이지만 선택은 피할 수 없을 것 같다. 참으로 달갑지 않은 대선을 앞두고 있어 마음이 무겁고 착잡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