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8월, 경북 영주시 조원동 영주농협 3층 소강당은 수업의 열기로 가득 차 있다. 대구·경북연구원 경제교육센터의 주최로 열린 ‘영주시 다문화가족 경제교실’의 열기였다.
경북 영주시 관내 100여 가구의 다문화가족, 즉 이주여성이 거주하고 있는 가정을 대상으로 진행된 이 교육에는 시부모·남편은 물론 엄마를 따라온 아기들까지 연인원 200여 명이 참석하여 성황을 이루었다.
생활경제교육을 표방한 이번 교육에서는 이주여성들에게 통장을 만들어 주는 것을 필두로 가계부 쓰기, 영수증 읽기, 시장 보기 계획 세우기, 그리고 실제적으로 시장 체험하기까지의 교육으로 이론적이고 탁상공론적인 교육이 아니라 실생활에 필요한 교육에서 경제를 느끼게 하는 데 그 의의가 있다고 하겠다.
이 교육을 기획한 대구·경북연구원 김현경 연구원은 “그동안 여러 가지의 교육이 있었던 것은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많은 교육들이 수요자 중심이 아니라 공급자 중심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안타까워 이런 교육을 기획하게 되었습니다.”라고 말했다.
이 기획 의도는 그대로 수강생들에게 전해졌다. 이제 결혼한 지 1개월 된 신부와 함께 이 교육에 참가했던 금경동(36·영주시 조원동) 씨는 “집사람이 처음 우리나라에 와 모든 것이 서툴 것이라고 느껴 이 교육에 참가했는데, 당장 내일부터 집에서 쓸 수 있는 여러 가지 교육을 받는 것을 보니 마음 든든합니다.”라면서 부인을 쳐다보았다.
금 씨의 부인인 더응 티베 하이(26·영주시 조원동·베트남 출신) 씨도 “처음에는 남편을 따라 오기만 했는데, 여러 선생님들의 말씀을 듣다보니 한국 생활에 잘 적응할 수 있을 것 같고, 나도 한 가정의 주부로써 경제생활을 잘 할 수 있을 것 같은 생각이 듭니다.”라면서 수줍게 웃었다.
금 씨 부부와는 달리 시어머니의 손을 잡고 이번 교육에 참가했던 양상(29·영주시 안정면·중국 출신) 씨는 “시장에 반찬거리 하나를 사러가더라도 꼼꼼히 살펴보고, 계획을 세워야 한다는 것을 느꼈습니다”며 앞으로는 신문에 끼어 들어오는 전단지 하나라도 버리지 않고 비교해 보는 습관을 기르겠다고 대답했다.
누앤티홈마이 씨의 시어머니인 강종숙(58·영주시 안정면) 씨는 “오일장과 재래시장, 그리고 마트의 물건값이 차이가 나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왜 그렇게 차이가 나는 것인지는 나도 오늘 처음으로 알았다”면서, “앞으로는 나도 며느리와 함께 계획을 세워 꼼꼼히 챙겨야 겠다”면서 며느리를 대견한 듯이 쳐다보았다.
일본 출신으로 한국생활 8년차인 유미꼬(38·봉화군 삼계리) 씨는 “오늘 영주에 왔다가 이 교육에 우연히 참가했다”면서 “영수증 하나라도 허투루 버리면 나중에 큰 곤란을 겪게 된다는 것을 느꼈다”고 말했다.
역시 일본 출신인 이노세 요시미(38·봉화군 봉화읍) 씨는 “가계부를 적어야겠다는 생각은 늘 하고 있으면서도 실행에 옮기지 못했었는데, 이번에 가계부를 선물로 받은 김에 앞으로는 반드시 가계부를 쓰는 알뜰주부로 거듭나겠다.”면서 웃었다.
그러나 이 교육의 가장 압권이자 하이라이트는 역시 통장 만들기였다. 본국에서부터 농촌 출신이었고, 우리나라만큼 IT산업이 발전하지 않은 동남아시아 출신들이 많다보니 온라인이나 CD기 등이 낯설었고, 자기 이름으로 통장을 만들 수 있다는 것조차 몰랐던 터라 통장과 카드를 받아드는 이들의 얼굴에는 함빡 미소가 지어질 수밖에 없었다.
“남편이 늘 돈을 찾아다 주었기 때문에 내 이름으로 된 통장은 생각도 하지 못했어요. 더구나 이렇게 통장개설 축하금까지 받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습니다.” 베트남 출신 주부 웬티 딤(23·영주시 풍기읍) 씨는 자기 이름이 찍혀있는 통장과 카드를 들고 신기한 듯 옆 친구에게 연신 자랑을 했다.
대구·경북연구원은 이번 교육 참가자들 중 자기의 이름으로 된 통장이 없어 통장을 신규개설하는 사람들에게는 10,000원의 개설 축하금을 제공하였으며, 기존에 통장을 가지고 있어 신규개설이 필요 없는 사람들에게는 10,000원 짜리 농협 상품권을 주어 시장보기에 활용하도록 했다.
이번 교육을 주관하고 있는 초등경제교육연구소의 최선규 소장은 이들에게 전달되는 축하금 10,000원의 의미를 이렇게 말했다. “여러분들에게 드린 축하금 10,000원은 크다면 크고, 적다면 적은 돈입니다. 하지만 현재 대한민국에서 발행되어 사용되고 있는 화폐 중 가장 큰 액면가인 10,000원짜리를 여러분의 통장에 넣어드린다는 것은 우리 대한민국 국민들이 곧 대한민국 국민이 될 여러분들을 환영하는 마음이라고 생각해 주시기 바라며, 오늘 만든 통장에 차곡차곡 돈이 쌓이는 기쁨을 느끼시기 바랍니다.”
참가자들은 “여러분 가정이 돈을 버는 것이 바로 영주시를 살찌우는 일이고, 영주시의 발전이 경상북도, 대한민국의 경제력을 높이는 일이다”라는 설명에 고개를 끄덕였고, “각 가정에 들어오는 돈을 잘 모으고, 잘 계획을 세워, 잘 쓰는 것이 바로 여러분들이 우리나라의 경제를 발전시키는 가장 큰 일이다”라는 말에 새로운 각오를 느꼈다고 한다.
중국 출신으로 한국 생활 6년차인 강연화(28·영주시 안정면) 씨는 “돈을 버는 것은 남편만이 하는 일인 줄만 알았었는데, 오늘 강의를 듣고 나서 내가 하는 가정생활도 돈을 버는 것이라는 것을 느꼈습니다.”라고 말했다. 그녀의 설명에 의하면 “내가 집에서 밥을 해주기 때문에 남편이 밖에서 밥을 사먹지 않고, 내가 해주는 빨래가 바로 세탁소로 가야할 돈을 집에서 모을 수 있는 것이기 때문에 내가 하고 있는 이 가정생활이 바로 우리 가정의 부(富)를 축적하는 일이다”라는 것이다.
또 이들이 느낀 것은 저축의 중요성이었다. 손 크리스티(24·영주시 풍기읍·필리핀) 씨는 “선생님이 앞으로 1,000년 동안 매일 1만 원 씩 주는 것과 한번에 1억 원을 주는 것 중 어떤 것이 더 좋겠느냐는 질문에 저는 처음에는 1만 원 씩 매일 받는 것이 좋은 줄 알았어요. 그런데 1억 원을 은행에 저금해 놓으면 1년에 5백만 원의 이자가 나온다는 것을 오늘 처음 알았습니다. 매일 1만 원씩이면 1년에 겨우 3백6십5만 원이지만 은행에 저금을 해 놓으면 1년에 5백만 원이 나오고도 원래 1억 원은 그대로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는 이름을 밝힐 수는 없지만 자기 친구 중에는 집안 어른들이 주는 용돈 등을 자기 방 장판지 아래 차곡차곡 모으는 친구도 있다면서 얼른 가서 그 친구에게도 이번 교육 내용을 가르쳐주어야겠다며 웃었다.
또 친정 부모의 생일 등에 용돈을 보내기 위해 돈이 생기면 수수료를 주면서 달러로 바꾸어 모아두었었다는 한 참가자는 “이제는 우리나라 돈으로 그냥 은행에 저금했다가 필요할 때 그 돈으로 송금해야겠다는 것을 느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환율이 있다는 것은 알았지만 언제 돈을 바꾸는 것이 나에게 더 유리하다는 것을 배웠고, 이제 우리나라의 돈을 굳이 달러로 바꾸지 않고도 친정 부모님들이 그곳에서 찾아 쓸 수 있다는 것도 배워서 알게 되었다”면서 뿌듯해 했다.
며느리와 함께 교육에 참가했던 한 시어머니는 “며느리에게 용돈을 주고 싶어도 그냥 돈으로 가지고 있다가 헤피 쓸까봐 못주었는데 이제 자기 이름으로 된 통장도 생겼으니 자주 용돈을 주어야 겠다”고 말해 참석자들인 다른 며느리들로부터 박수를 받았다.
같이 참석했던 남편들도 “외국인 등록증만으로는 통장개설이 안 되는 줄 않아 지금까지 통장을 만들지 않았었다”면서 “앞으로는 우리나라의 경제와 함께하는 주부를 만들기 위해서라도 이 통장을 잘 활용해야겠다”고 이구동성으로 말했다.
“사실 어떻게 보면 당연히 알고 있어야 할 일이고 당연히 알고 있다고 생각했던 일들인데 막상 이렇게 교육을 하면서 피교육자들이 실제로 필요로 하는 것은 도외시하고 우리가 교육하고자 하는 것만을 교육했다는 생각이 들어 좀 미안하기도 했습니다.” 김현경 연구원의 이 말은 익명을 요구한 한 참가자 남편의 말과도 일맥상통했다.
“꽃꽂이 교육이나 다도(茶道) 교육이 나쁘다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우선 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김치 담그는 법, 숭늉 만드는 법이지, 우아하게 앉아 꽃꽂이를 하고 차를 마시는 것은 아닙니다. 또 우리나라의 관광지를 돌아보고, 명승지를 찾아보는 것은 나중에 각 가정에서도 다 할 수 있는 일입니다. 하지만 지금까지 각 단체에서 했던 교육들은 이주여성들이 먼저 알아야 할 부분들은 빼고, 자기들이 가르칠 수 있는 부분만 가르쳤다고 보입니다. 실제 이주여성들이 필요로 하는 부분이 어떤 것이지를 알고 그 부분을 먼저 가르치는 것이 우리 국민들의 혈세를 낭비하지 않는 길이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교육이라는 것이 받는 사람 개개인에게 모두 만족을 줄 수는 없는 것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참가자의 대다수가 만족했다면 그 교육은 성공한 교육으로 받아들일 수 있을 것이다.
그런 면에서 대구·경북연구원 경제교육센터에서 시작한 이‘영주시 다문화가족 경제교실’은 앞으로 우리가 우리나라를 찾아오고 우리와 함께 생활해야 할 이주여성들과 그 가족들을 위한 교육의 하나의 표준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고, 앞으로 좀더 연구하고 다듬어야 할 우리의 과제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첫댓글 교육이 너무 좋았답니다
이런 교육이 앞으로 계속 다른 지역으로 퍼져나갈 것으로 봅니다.. 꼭필요한교육을 열심히 하고 오신 소장님..고생많이 하셨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