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차를 태안읍에 주차해놓고 이원면 '꾸지나무골'까지는 시내버스를 이용하기로 했다.
중고등학교 때나 볼 수 있었던 안내양이 있어 이채롭고 신기했는데
이 지역에 서는 물론 티브이 공중파를 탄 유명인사라는데 그 친절함에 저절로 눈물겹다.
이원면으로 들어가는 승객은 거의 연로하신 할머니 할아버지들이셨는데 평균 연령이 70을 훨씬 넘길 듯하다.
친절한 안내양은 내게 어디서 왔느냐며 말도 걸어주고 목적지에서 볼만한 것과 여행안내 지도를 주며 막차 늦지 말라는 당부의 말도 아끼지 않는다. 초로의 노인들이 힘들어할까 봐 무거운 장감이나 짐을 일일이 들어 올려주기도 하고 내려주기도 하며, 교통카드 결제나 돈통에 돈을손수 넣어주는 친절함에 내 가슴이뜨거워졌다. 타인의 친절에 내 가슴이 뜨거워지다니.
이윽고 꾸지나무골에 도착했다. 꾸지나무골 해수욕장은 W 자처럼 두 개로 나누어져 있다.
실로 오랜만에 보는 바다에 탄식이 절로 난다. 눈이 시리다.
나는 왜 예 서 있는가. 계획도 일정도 없이 무턱대고 찾아온 손님을 파도는 찰싹찰싹 소리내 인사한다.
사실 우리나라는 소나무가 전국에 걸쳐 지천이지만,
안면도와 태안반도의 소나무는 세계적인 연구와 학술지라는 걸 모르는 사람이 많다.
꾸지나무골에서 한숨 돌리고 버스 안내양이 가르쳐 준 올레길을 따라나선 지 5분도 안 돼 제 1코스에서 가장 높을 성싶은 산꼭대기에 도착했다. 발아래 펼쳐지는 바다.
점점이 놓인 섬들은 모두 제 발을 담그고 몸을 잔뜩 웅크리고 있었다.
마음만 먹으면 금세라도 벌떡 일어날 것만 같다.
코스를 따라 느긋한 걸음으로 걸었다. 혼자 떠난 여행은 어서 가자는 재촉도 쉬엄쉬엄 가자는 푸념이 없어 좋다. 한참 후, 빈 의자가 오롯하게 나를 기다리는 듯 했다.
'네 몸에 얼마나 많은 사람이 쉬고 갔으며 얼마나 많은 사연을 토해놓고 갔느냐' 묻고 싶었다.
외로운 의자는 일 년 내내 붉은 노을하고만 대면할 것이다.
민속촌에서나 볼 수 있는 자그마한 초가 두 채를 발견했는데 그 반가움에 난 저절로 환호성을 질렀다.
초가집의 나이가 적어도 70살 이상은 되지 않았을까? 지금이야 허드레 농사 기구와 잘 쓰지 않는 집기 따위를 보관하는 창고로 변했지만, 수십 년 전엔 가난한 한 가족이 밤마다 새우잠을 자고 가난한 밥상을 나누었으리라.
어린 계집의딸들과 아들들의 울음과 시끄러운 장난 소리가 되살아나는 듯하다.
두 대의 낡은 티브이는 도란스가 필요했던 시절의 것이 아니겠나 유추해 본다.
가늠컨데 저 두 녀석의 나이도 서른 줄은 다 되지 않았을까.
초가집의 감동이 사라지기도 전에 뜻하지 않은 염전을 만났다. 서해안의 천일염은 '갯벌이 만들어 낸 보석이다.' 라 할 만큼 그 품질의 우수성이 세계적이다. 이른바, 소금에도 명품이 있는데 그것은 바로 프랑스의 '게랑드 소금'이다. 게랑드 소금은 1Kg에 5만 원이 넘는 명품 소금이다.
세계 5대 갯벌 안에 드는 우리나라의 갯벌에서 생산되는 천일염은 모든 성분에서 게랑드 소금을 뛰어넘는다.
국가 지명도나 자체 상표의 파워가 약해 그 대접을 제대로 못 받는 것이 안타깝기만 하다.
두 부부가 기울어가는 해를 등에 이고 소금을 거두고 있었다. 나도 좀 해보겠다고 하니 흔쾌히 허락하신다.
바닷물을 잔뜩 머금은 소금은 생각보다 무겁다. 외발 수레를끄는 건 쉽지 않다.
혹시나 애써 거둔 소금을 다시 쏟을까 봐 조금 끌어보다 자신이 없어 그만두고 아주머니께 사진을 찍어 달라고 부탁을 했다.
디지털카메라를 처음 본다는 아주머니는 난처해 하면서도 일러준 대로 내 모습을 잘 담아냈다.
한 시간 남짓 염전에서 소소한 일을 거두어주고 난 막걸리 한 잔을 얻어 마셨다.
꼭 다시 놀러 오라는 아주머니께서 근처 도자기를 굽는 곳을 알려줘 넙죽 인사하고 잰걸음으로 그곳을 향했다.
도착하자 마자 제일 먼저 눈에 띈것은 두 개의 가마였다.
천 년 왕국 신라의 능 속을 들여다보는 듯한 이곳은 가마의 내부. 천 년의 보화들이 쏟아져 나올 듯하다.
처음 안 사실이지만 도예가 양승호 교수님은 트임 기법의 창시자이며, 세계 유수의 전시관에 전시 된 작품만 해도 상당하다.
일각에서는 자랑스런 한국의 도예가로 소개가 되곤 한다.
그런 분을 우연히 만나 한참이나 대화를 하고 차를 마시다니 뜻하지 않은 행운이다.
양승호 교수님 작품의 특징 중 또 다른점은 도자기를 직접 바닷속이나 갯벌에 두어 조개나 굴 조개류 따위가 달라붙어 제집을 삼을 때면 일정한 시기에 꺼내어, 있는 그대로를 담아내는 도자기의 기법이 정말 기발하다.
앞터엔 차나무 밭도 있으니 차나무 잎이 필 무렵 다시 놀러 오란다.
양승호 교수님 작업실에서 내내 나를 따라다니며 애교를 부린 백구. 생후 백일이나 됐을까. 사진기를 들이대니 저를 담아내는 것을 알기라도 한 양 눈빛이 더 빛난다.
낯선 남자를 줄기차게 쫒아 다니고 배를 들어내며 꼬리를 흔든 백구가 보여준 나에 대한 믿음.
쥐방울만한 것이 대체 어디서 그런 용기와 배짱이 나온 게냐.
백구를 보니 서울 쥐 시골 쥐의 동화가 생각난다. 다음에 놀러 가게 되면 네가 좋아할 성싶은 간식거리를 꼭 사다 주마.
아마 그때쯤 넌 몸집이 제법 커졌을 것이고 나를 경계하며 컹컹 짖어대겠지.
양승호 교수님의 집을 돌아 나오니 바로 앞에 누렁이 황소가 있다. 겨우내 칼처럼 휘둘러대는 구제역을 용케도 피해 간 네가 자랑스럽다. 사진보다는 훨씬 몸집이 크고건장했으며 털도 무척 건강한 색깔이었는데 움머~ 움머~울어댈 때마다 입에서는 연기가 모락모락 피어오른다. 짚 한 줌을 주니 마치 두꺼비의 혀가 파리를 감아 낚아채듯 짚을 낚아채는 모습이 신기하다. 난생처음 소에게 여물을 주고 또 머리를 쓰다듬으며 만졌다. 소에 대한 속담이나 비유가 많은 우리나라.
허리 펼 날 없이 일만 죽어라 하는 사람을 '소같이 일한다' 하고 말이 없고 좀처럼 제 속내를 드러내지 않는 사람을 '소 같다' 한다. 또 많이 먹는 사람을 '소 먹듯 한다' 라고 한다.
침묵은 금이다.
말, 말, 말, 말과 잡초처럼 무성한 소문에 치여 사는 현대인들에겐 본보기가 되는 말이다. 우리 인간들의 족속이 누렁이 네 족속 같았으면 한다. 다음에 가면 여전히 니가 그 자리를 우뚝 지키고 서 있길 빈다.
저 순한 친구들이 제 천수를 채 누리지 못하고 식탁 위에 오를것을 생각하니 가슴이 먹먹하다.
만대항 포구까지 걸어갔다. 물이 저만치 빠져 있었고 배도 한숨 돌리며 쉬고 있었다.
만대항까지 가서 노을을 볼 수 없음에 탄식을 토해내는데, 편의점과 식당을 운영하는 30살의 훈남 총각이 기꺼이 꾸지나무골 해수욕장까지 차로 데려다 줬다. 3월에 결혼한단다. 게까지 가서 축의금을 내야 하나.
신세는 졌고 갚을 일이 남았는데 봄이 성큼 오거든 꼭 다시 가서 회 한 접시 팔아줘야겠다.
짙은 구름이 장막을 쳐 노을을 볼 순 없었으나 태양은 여전히 구름을 태우며 활활 타오르고 있었다.
그리움이 밀려왔다. 이름 한 자 쓰고 지웠다. 좋아하는 낱말 서너 개를 다시 썼다.
그리곤 막차를 타기 위해 정류장으로 갔다. 버스 안에는 기사 양반과 나 둘 뿐.
버스는 마치 레이싱을 하는 스포츠카같이 곱창처럼 꼬불꼬불한 밤길을 잘도 헤쳐나갔다.
그 빠른 버스를 반쯤 차오른 달은 놓치지 않고 용케도 끝까지 따라왔다.
첫댓글 혼자만의 여행길..재촉하는 사람없기에 발길닿는대로 느껴지는 여행.
그속에서 만나는 좋은사람들..
값진 선물을 맘속에 가득담아오셨군요.
정성스런 기행기가 이 아침에 잔잔하게 어떤 그림움을 주는군요.
훌쩍 배낭하나 달랑메고 떠나고픈마음..
언제나 즐건여행길에 행복이 가득하시길 바랍니다.
정말 생각 없이 회사에 멍하니 있다 바다가 보고 싶어 오후 4 시경 카메라만 가지고 무작정 떠난 여행이었습니다만,
참으로 좋은 여행이었습니다.
고향 인근지역에 이런 좋은곳이 있는줄도 몰랐네요.
호젓하게 즐기신 여행기 잘 보았습니다.
충청도가 고향인가보네요. 꾸지나무골은 잘 알려지지 않은 곳이지요. 감사합니다.
여행의맛.....정체인님의 글맛또한......가까운 뒷산이라도 훌쩍.....
철저한 계획의 여행도 좋지만 무터대고 훌쩍 떠나는 여행 또한 백미더군요. ^^*
조용히 다녀오신 여행길
정겨운 고향의 맛 느껴봅니다
해외 여행이나 국내 여행을 상품으로 다니다보면 무척 정형화 됐는데 그게 이제는 싫더라구요.
한식집 백반이나 레스트랑 코스 요리처럼 획일화 된 여행... 이젠 좀 지양하고 싶습니다. ^^*
언젠가 마음의 상상속에 있던 여행~~
덕분에 잠시 회상에 젖어 봅니다
일상을 탈출한다는 게 무척 어려운 일이지요. 이래서 안 되고 저래서 안 되고...
우리네 현실이 항상 그런 굴레에 갖혀 벗어나기 힘들지요.
더 좋은 여행 실천하길 바라요 ^^*
즐거운 표정의 사진과 멋진 해설이
내가 마치 함께 하는양 .....
혼자만의 멋진여행...........
좋은 평가를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설봉산 님도 좋은 여행 후,멋진 후기를 남길 수 있는 여유와 기회를 갖으시길 바랍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