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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께 ‘엄지 척’
봄가을로 하는 집수리 봉사이지만, 늘 새로 배운다. 그만큼 사람살이가 형형색색 다르기 때문이다. 물론 공통점이 훨씬 많다. (사)사랑의 집수리가 선정한 대상자는 대체로 독거노인이거나, 장애인 가족, 이중문화권 가족이다. 촘촘히 짜인 공공기관의 안전복지망(網)에서 추천받아 연결된 가정들은 사각지대에서 드러난 의외의 발견이 아니라, 누구나 다 알만한 이웃들이다.
어제 방문한 안양예술공원 인근 골목길의 김할머니 집도 마찬가지다. 휴일이 많은 달이지만, 약속도 많은 달이어서 행여 봉사자가 부족하면 어쩌나 근심했는데, 기우였다. 가을비가 주루룩 내렸지만, 참여자 열두 명의 따듯한 의지로도 충분하였다. 너무나 작은 부엌 달린 단칸방인데다 비까지 내려 동선이 아주 비좁았다.
도배와 페인트칠, 청소, 뒷바라지 등 여러 역할이 있지만, 이미 할머니가 앞정리를 부지런히 해두셔서 일거리가 줄었다. 아흔이 넘은 어르신은 남의 일손을 빌리는 데 몹시 미안해하고, 고마워하셨다. 집 담장과 아스팔트 사이 비좁은 틈으로 씨앗을 끼워 넣어 꽃을 키워낸 할머니의 마음이나, 노랑길고양이를 위해 현관 앞에 잠자리를 마련하고 과한 비용의 사료를 차려 주는 마음도 남달랐다. 분신같은 맨드라미, 메리골드, 분꽃이 가을비에 촉촉히 젖어있었다.
누구나 살아온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책 한 권이 부족하다. 할머니 집을 수리하기에 휴일임에도 말벗 삼아 출근한 생활지원사는 곁에서 할머니의 일상을 거들며 대화에 참여하였다. “할머니는 제가 돌보는 열다섯 독거노인 중에서 가장 가난한데 마음은 제일 부자세요.” 박카스 일곱 병을 준비해 애써 나누려는 심정도, 점심때가 다가오자 중국집 전화번호를 들고 다니며 짜장면을 시키겠다고 봉사대를 당황케 한 일도 이해가 갔다. 지난 13년 동안 처음 겪는 일이었다.
만안복지관에는 생활지원사만 50명에 달한다고 했다. 무려 750명의 독거노인을 돌보는 셈이다. 10년 전부터 일을 시작했는데, 등급을 받지 못한 노인들이 안전하게 지내시는지 일주일에 한 번 찾아뵙고, 이틀에 한 번씩 전화를 드린다고 한다. 머무는 시간은 겨우 30분 남짓이지만 홀로 지내는 할머니에게는 천사의 방문일 것이다. 할머니가 칭찬을 아끼지 않으신다. “우리 엄마처럼 잘해줘서 내가 제비엄마라고 불러. 뭘 자꾸 물어다 줘.”
할머니 고향은 파주 장단이다. 왜정시절에 일본말로 시험 보고 국민학교를 다녔다고 했다. “파주 널문리인데, 거기 판문점이 생겨서 마을이 다 없어졌어. 한여름이면 물고기 잡아 널문리 다리 밑에서 끓여 먹었지.” 어린 시절 천렵이야기는 아득하고 꿈만 같다. 남편은 45세에 돌아가셨단다. 양력 명일에 두 손을 오바 속에 넣고 걷다가 미끄러졌는데, 그것도 팔자라고 했다.
세상에 불행만 있는 것은 아닐 것이다. 비록 딸 하나는 일찍 잃고 아들 하나 두었는데, 은근히 아들 자랑을 하신다. 할머니는 서울에서 47년 동안 살다가 아들이 불러 안양으로 내려왔는데, 지금은 아들네가 처가 식구들 따라 수원으로 이사 갔다. “수원에 사는 아들이 귀찮게 전화를 자주 해. 할 말이 있어야지. 내가 전화 자꾸 하지 말래서 그래서 요즘은 하루 걸러 만큼 연락해.” 동네 소문난 효자인 아들도 67세 노인이 되었다.
평소 할머니는 노인정에도 안 나가고, 혼자 지낸다고 한다. 아침에 뉴스 보고, 동네 한 바퀴 돌며 같은 처지의 할머니와 양지바른 곳에 한참 앉아있다가, 집에 돌아와 또 뉴스를 본다. 생활지원사 말에 언제나 YTN 채널을 켜두고 있단다. 그래서인지 세상 돌아가는 소식에 밝고, 판단이 현명하시다. 어디에서 전쟁이 나고, 선거에서 어디가 이기고, 대통령은 밤낮 어쩌구저쩌구 할머니는 결코 무시할 수 없는 매의 눈을 지닌 유권자였다.
누가 교회 다녀보자는 사람이 없으시더냐고 여쭈니, “없어. 며느리는 성당에 다녀”라고 하신다. 곁방 살던 할머니가 여러 달 전에 요양원에 갔다면서 “시간이 고대로 있어”라며 서운함을 털어놓는다. 요즘은 공공임대주택으로 가지, 이런 데 올 사람이 없다고 했다. 생활지원사는 “어르신들이 신세 한탄을 많이 하는데 김 할머니는 여건은 제일 안 좋아도 불평이 없으시다”며 엄지손가락을 ‘척’하고 들어 올렸다. 오늘 색동봉사대는 ‘어머니 같은’ 김할머니를 가운데 모시고 다같이 엄지척으로 마무리하였다. 삶은 은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