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림공동체
마태복음 6:1~4, 25:37~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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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9 연탄나눔 행사
지난 2월 14일(목), 중계동 백사마을에서 연탄나눔 행사가 있었습니다. 전에 저희 교회에 강연차 오셨던 김응교 시인이 주최하여 매년 진행하는 행사인데, 올해 저희를 포함해서 70여 명의 봉사자가 연탄 1,500장을 나누었습니다. 서민들에게 연탄은 겨울을 나는데 아주 소중한 것입니다. 제가 어렸을 적, 월동준비의 마침표는 광에 연탄을 가득 쟁여 놓는 것이었습니다. 김장을 마치고 광에 연탄을 200여 장들이고 나면 어머니도 “월동준비 끝났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다가 겨울이 끝날 무렵, 연탄 광이 비어갈 무렵이면 한숨 소리도 커갔지요. 보릿고개라는 것이 남아있던 시절이었기 때문에 꽃샘추위가 기승을 부리는 입춘 이후의 추위는 더 춥게 느껴졌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김응교 시인은 시인의 감수성으로 백사마을을 보았습니다. 그냥 보통의 봉사단체들처럼 월동준비를 하는 겨울에 연탄나눔 봉사를 하지 않고, 겨울이 끝나갈 무렵에 하는 이유는, 이 시기가 연탄이 떨어져 가는 시기요, 저소득층들에게는 연탄이 가장 필요한 시기가 요즘이라는 것입니다. 상상하기 어려울지 모르시겠지만, 입춘이 지나면 연탄 한 장 마음껏 뗄 수 없는 저소득층은 일인용 전기 매트에 의지하여, 그것도 전기세 때문에 잠잘 적에만 켜고 잔답니다. 그러니 입춘이 지난 후, 나누는 연탄은 겨울의 끝자락을 따스하게 날 수 있는 불씨가 되는 것입니다. 이 귀한 일에 여러분의 헌금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귀한 ‘생명 살림’의 운동에 동참하신 여러분을 하나님께서는 기뻐하실 것입니다.
■ 구제할 때에는 은밀하게
교회는 ‘살림공동체’입니다.
생명을 살리는 살림공동체요, 모든 죽음의 세력과 싸워 죽어가는 것들을 살려낸다는 의미에서 ‘살림 공동체’입니다. 이런 일은 잘 드러나지 않습니다. 여성들이 집에서 하는 살림의 중요성이 잘 드러나지 않는 것과도 같습니다. 그런 점에서 살림의 일을 하는 이들은 ‘은밀한 중에 오른손이 하는 일을 왼손이 모르게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의를 행할 때 나팔을 불면서 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구제할 때 오른손이 하는 것을 왼손이 모르게 하라고 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은밀한 중에 의로운 일을 하는 것을 좋아하시고, 갚아주시는 분이십니다.
제가 말하기 ‘연탄나눔’에 관한 이야기를 하기 전에 여러분이 동참하신 구제의 일을 여러분은 알지 못했으니, 오른손이 하는 일을 왼손이 모르게 하신 것입니다.
■ 한남교회의 헌금은?
여러분이 하나님께 정성껏 봉헌하신 헌금이 쓰이는 곳은 다양합니다. 농촌교회를 지키면서도 꿋꿋하게 목회사역을 감당하는 목사님을 위해서도 사용되고, 도시빈민을 위해 선교하시는 목사님께도 전달되고, 열악한 환경에서 외국에서 선교하시는 선교사에게도 전달됩니다. 평생 목사로 소명을 다했지만, 집 한 채 장만하지 못하여 어려운 삶을 살아가는 은퇴한 목사님들에게도 전달됩니다. 작년에 가정형편이 어려워 학업을 중단할 수밖에 없는 학생에게 장학금을 전달했는데 그 학생이 올해 대학에 입학했다는 기쁜 소식도 들었습니다. 그 외에도 노회와 총회에도 여러분의 헌금을 일정금액을 냄으로 우리가 다 알지 못하는 하나님의 일에 사용됩니다. 이 모두가 생명을 살리는 일입니다. 그리고 여러분이 아시는 바와 같이 교역자들의 사례비와 교회운영비와 신앙교육과 관련된 일들에도 사용됩니다. 한남교회는 조금이라도 여러분의 헌금이 허튼 곳에 사용되지 않게 하려고 힘쓰고 있습니다. 여러분 대부분은 여러분의 헌금이 이렇게 귀한 일에 사용되는 줄 알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러니 여러분은 예수님의 말씀대로 구제할 때에 은밀하게, 오른손이 하는 일을 왼손이 모르게 하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의 삶을 통하여 갚아주시는 은혜가 풍성하길 바랍니다.
■ 삶이 곧 신앙
‘오른손이 하는 일을 왼손이 모르게 하는 것’은 불가능한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신앙의 높은 경지에 다다르게 되면, 자신이 당연하게 여기며 살아가는 일상 자체가 의로운 일이 됩니다. “그것이 뭐 칭찬받을 일이냐?”고 본인은 생각하고 말하겠지만, 삶에 신앙이 녹아지면 자신도 알지 못하는 사이에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가는 경지에 다다르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삶 자체가 성숙한 신앙인의 삶이어서, 하나님께서 복 주시고 인도해 주시는 은혜를 풍성하게 누리시기 바랍니다.
■ 좁은 의미의 살림
오늘 저는 ‘살림’에 관한 구체적인 이야기를 하려고 합니다. ‘살림’은 ‘살리다’라는 동사의 명사형입니다. ‘죽이다’라는 명사형은 ‘죽임’입니다. 기독교가 생명의 종교라고 했을 때, 기독교는 ‘살림공동체’가 되겠습니다. 세상의 악한 세력으로부터 죽음의 길을 걸어가는 이들에게 생명살림의 길을 제시하는 공동체가 바로 살림공동체이겠습니다. 그런데 저는 오늘 이런 이야기들을 하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살림’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합니다.
저는 영의 양식과 육의 양식 모두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영과 육의 적절한 조화, 육체 없는 영의 세계는 죽음 이후에나 경험할 수 있는 것이며, 그런 경험을 우리에게 들려준 사람은 없습니다. 간혹, 사후세계를 경험했다는 이들의 증언이 있지만 비성서적일뿐만 아니라, 그들이 증언하는 천국과 지옥은 반성서적이기까지 합니다.
‘영과 육’의 적절한 조화는 중요합니다. 그래서 저는 교회가 주일에 ‘영의 양식’과 ‘육의 양식’을 잘 제공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영의 양식이 예배라고 한다면, 육의 양식은 예배 후에 나누는 친교의 식탁입니다. 제가 먹는 것도 중요하게 생각하는 이유는 여기에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살림’하면 여성이 하는 것으로 생각하고, 살림이 빨래하고 청소하고 밥 짓고 설거지하는 것 정도로 생각합니다. 그러나 ‘살림’은 그 이상의 중요한 의미가 있습니다. 살림은 여성의 전유물도 아니고, 남성들이 해서는 안 되는 일도 아닙니다. 살리는 일, 이것은 하나님의 자녀라면 누구나 해야 할 알입니다. 오늘 저는 넓은 의미의 살림이 아니라, 주일예배를 마치고 나누는 공동 식사에 관한 이야기를 하고자 합니다. 넓은 의미의 ‘살림’을 잘하려면, 좁은 의미의 ‘살림’을 잘해야 합니다.
■ 친교의 식탁 나누기 제안
현재 한남교회는 8구역으로 나뉘어 구역별로 두 달에 한 벌꼴로 식당봉사를 합니다. 두 달에 한 번꼴이니까, 구역별로 일 년에 6번 정도 식당봉사를 합니다. 많습니까, 적습니까? 많습니다. 그리고 식당 봉사하는 것을 보면 여성분들만 부엌일을 합니다. 물론, 토요일 준비할 때 장 보는 일들을 남성들이 도와주기도 하지만, 주일에는 밥하고 상 차리고 나르고 설거지하고 정리하는 모든 일을 여신도들만 합니다. 당연합니까? 저는 그렇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식당 봉사한다고, 주일예배 참석도 하지 못하고 매 주일 식당에 묶여있는 것도 바람직하지 않고, 몇몇 분들이 주축이 되어 식당봉사를 하는 것도 좋지 않다고 봅니다. 식당봉사는 귀한 일입니다. 그러니 이제 그 귀한 일을 여성분들만 독점하지 마시고, 남신도에게도 기회를 주십시오. 그래서 식당봉사구역에 속한 구역원이라면 남녀노소(물론, 거동이 불편하신 분들은 제외) 함께 봉사하는 시스템을 만들어갔으면 좋겠습니다. 그래서 앞치마를 두른 남신도를 보는 것이 한남교회에서는 어색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아이들도 식당봉사에 참여해서 상차림을 하고, 식사 서빙을 하면 아이들 인성교육에도 좋을 것으로 봅니다. 이렇게 구역원이 함께하다 보면 구역원들 간의 친교도 더 깊고 넓어질 것입니다. 일 년에 여섯 번, 식당봉사를 통해서 구역원들이 한마음으로 육의 양식을 준비한다면 의미 있는 식당봉사가 될 수 있을 것입니다. 서툴다고 답답하니까 ‘내가 하고 말지.’ 마시고, 서툴러도 하게 두십시오. 저희 구역에서 식당 봉사할 때에는 목사인 저도 설거지하고 서빙을 해도 이상하게 생각하지 마십시오. 서툴러도 해봐야 합니다. 교회 일이라는 것이 그렇습니다. 해봐야, 사랑하는 마음이 깊어집니다.
처음에는 쉽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이 잘 정착된다면, 한남교회는 모범적인 ‘살림공동체’를 만들어갈 수 있을 것입니다. 이것이 잘 자리 잡으면 다음 단계로 나아가려고 합니다. 이것은 꿈이지만, 함께 기도해 주십시오.
■ 꿈 나누기
지금은 구역별로 식당봉사를 하지만, 잘 정착이 되면 ‘가족단위’로 식당봉사를 하는 체제로 가는 것입니다. 구역이 아니라, 가족단위별로 식당봉사를 하는데 ‘일 년에 한 번’입니다. 몇 번을 하라고 하면 힘들겠지만, 일 년에 한 번 식당봉사를 하는 일은 가능합니다. 만일, 가족단위 수가 적으면 두어 가정이 함께하면 됩니다. 일 년 52주니까, 52개의 가족단위가 필요합니다. 한 가족단위를 최소한 5명으로 잡는다면 260명 교인이 되어야 합니다. 제가 늘 이야기하는 적정 교인 수가 160~200명인데 그보다 많지만, 60명 정도 넘어가는 것은 극복할 수 있습니다. 거기에는 아이들과 청소년이 포함된 숫자이므로 결국 성인 숫자는 160명 선일 것이기 때문입니다. 현재 우리 한남교회는 성인 기준으로 평균 85명이 주일예배를 드리고 있습니다. 될 듯 될 듯하면서 두 자리 수를 넘지 못하고 있습니다. 교차해서 빠지지 않는다면, 100명은 넘는데 그게 참 희한합니다. 교회가 힘있게 일하려면, 양적으로도 적정한 수가 필요하고, 재정적으로도 안정되어야 합니다. 그 일의 시작이 어떻게 가능할까 많은 고민을 합니다.
그러한 고민 끝에 모든 시작은 ‘살림’에 있다고 보았습니다.
가정의 행복도 식탁에서 시작되는 것처럼, 교회의 행복도 ‘식당’에서 이뤄진다고 생각합니다. 옛날에는 ‘빨래터’가 소통의 장이었습니다. 교회 소통의 장은 ‘식당’입니다. 우리는 식당이라고 하지 않고 ‘친교실’이라고 합니다. 맞습니다. 단순히 밥을 먹는 행위만 하는 것이 아니라, 그 일을 통해서 하나님의 사랑을 나누며 교우들 간의 친교를 나누니 ‘친교실’이 맞습니다. 친교실이 편안하면, 우리 교회도 편안할 것입니다.
■ 작은 변화로부터 혁명적인 변화가
오늘은 제가 성경풀이가 아니라 구체적인 행동지침을 담은 말씀을 드렸습니다. 이런 설교는 자주 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중요한 사안에 대해서는 모든 교인이 함께 공유하는 것이 필요하기에 이 시간에 말씀드릴 수밖에 없을 것 같습니다. 이번 주부터 당장 실천하기는 어려울 겁니다. 그러나 한번 잘 계획하셔서, 주일이면 남신도와 어린이들과 청년들도 친교실에서 봉사하는 모습을 보게 되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그것이 어색한 것이 아니라, 우리 한남교회의 자랑거리가 되길 바랍니다. 진리가 낯선 것이듯, 처음에도 낯설 것입니다. 그러나 그 낯섦에 적응하고 나면, 그것이 얼마나 큰 혁명적인 변화인지 깨닫게 될 것입니다. 구역에 속한 모든 분의 봉사를 넘어서, 한 가족 단위가 교인들의 육적인 양식을 채워주는 봉사를 함으로 하나님께서 가족마다 대접하고도 풍성하게 남도록 채워주시는 은혜도 풍성했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