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월초파일 석가탄신일에 백락사를 가다
나는 사월초파일 석가탄신일에 절을 찾은 적이 없다. 대학교에 다닐 때 공부보다는 저렴한 기숙을 이유로 절에 있었을 때, 나에게 사월초파일은 많은 사람들로 야단법석이고 반찬이 여느 때보다 풍성한 날 정도로 기억한다. 그런데 얼마 전 봉축 법요식 안내장을 받았고 초파일 석가탄신일에 우리집 앞산 너머에 있는 백락사를 찾았다.
* 백락사에서의 석가탄신일 행사

대웅전 앞에서 봉축법요식 식전 행사로 성악가와 민요가수가 노래하는 장면
봉축 법요식 다음에 지역 어르신 초청 경로잔치가 있어서인지, 종교는 이제 갈 날이 머지않은 사람일수록 친근하게 느껴서인지는 모르겠지만, 참석한 사람들은 대체로 나이 지긋한 분들이 많은 편이었다. 봉축법요식 자체가 낯설었지만 식전 행사로 성악가와 민요가수가 나와 분위기를 띄우는 것도 낯설었다. 하지만 '무게로 제압하려는' 듯한 종교적인 권위가 느껴지지 않아서인지 친근하게 느껴졌다.

성민 주지스님의 봉축 법어
내심 듣고싶어 기다렸던 주지스님의 봉축법어는 어제 있었던 일 회상하듯 하는 어조로 서울 한 사거리에서의 운전 실수, 부처님이 탄생한 룸비니 방문 소감, 김국환의 노래 타타타 등에 관한 짧고 쉬운 에피소드였다. 들을 땐 쉬웠는데 무슨 의미일까 생각할수록 쉽지않은 법어라는 생각이 들었다.
법어도 '밀당'인가? 한아름 던져주는 귀한 말씀들은 어렵지만 이해하기는 쉽다. 하지만 금새 망각 속으로 흩어지기 쉽다. 하지만 툭 던져주는 평범한 법어는 겉 뜻은 쉽지만 속 뜻은 이해하기 어렵다. 자기 그릇 크기대로 담을 수 밖에 없다. 종발만한 내 것으로 이해하자니 머리에 쥐가 날 지경이다. 진정 귀한 것은 스스로 생각해서 얻은 것이다. "너의 이웃을 사랑하라!"는 말씀과 "너의 이웃과 파전 나눠먹고 난 후 어떤 느낌이더냐?" 하는 질문. 적절한 예시인지는 모르겠지만 주지스님의 봉축법어는 후자와 같은 느낌이었다.
"베엠베 고급승용차가 속도를 줄이며 노려보듯 하며 가는데 내 잘못이니 어쩌겠는가". "룸비니는 평화로워 보였다. 여기서 죽으면 정말 좋겠다", "봉축일 전에, 다른 일 할 생각을 한다", "타타타는 산스크리트어로 '그래 그거야' 라는 뜻이다"
모르고 한 실수로 인해 되받은 걸 생각하고, 탄생의 장소에서 죽음을 평화로움 속에서 일(전쟁?)을 생각하면서. 일체유심조이니 눈 앞에 있는 그대로의 진실을 수용할 줄 알아야 한다는 말씀으로 받아들였다.

초록손이와 홈스쿨러 형원이가 주지스님과 함께
주지스님과 한 컷. 데이비드 호킨스의 <의식혁명>에 따르면 평범한 사람은 의식수준이 높은 사람 옆에만 있어도 의식수준이 고양된다고 한다. 평범한 사람들이 교황이나 달라이라마 같은 사람의 손길 아니면 눈길이라도 받고자 하는 이유다. 가까운 곳에 있는 덕이 높은 분들의 기운을 받으려고 노력해야 할 일이다. 백락사는 우리집에서 가깝다.

지역 어르신 초청 경로잔치에서 주지스님도 한 곡

작은스님은 하모니카를 부시면서 기타 연주까지!

모든 행사가 끝나갈 무렵, 한산해진 대웅전 앞을 지나다보니 아직 연단이 그 자리에 놓여져 있는데 연단 앞면에 글귀가 눈에 들어온다. '돌이 시가 되고 나무가 노래를 하는 고운 절, 백락사'
맞다. 작년에 처음 이 곳에 백락사가 있다는 걸 안 것도 내가 지나다니는 큰 길에 서있던 '강원환경미술대전' 개최안내 깃발 때문이었다. 그 때 깃발이 마법사처럼 나를 이 절로 이끌었다. 그리고 이 절에서 나무와 돌을 보았다.
* 백락사와의 인연

작년에 이 깃발을 보고 골짜기 길로 들어가서야 백락사를 알게 됐다.

작년 강원환경설치미술대전 출품작 중 하나.

백락사 경내에 돌 또는 돌 조각이 많다. 돌부처상이 담쟁이덩굴에 가려져 잘 보이지 않는다. 작년 사진인데 올해에는 조금 더 가려졌다. 얼굴만 가리지 않도록 한 것 같다.

이 돌부처는 마당 쪽을 향하고 있지 않다. 약간 옆으로 돌아앉아 회향목에 취해있는 모양새다.

큰 돌 위에 다람쥐보다 작은 동자승 인형 한 점이 어께에 앉아있다.

우는지 하품하는지 모르겠지만 여튼 고단한 동자승임에 틀림없다. 신도인지 지역 이웃인지 모르지만 한 분께 들으니 백락사는 주지스님이 20년여 동안 맨 땅에서 일군 절이라고 한다. 특히 인상적인 건 20년간 꾸준히 나무 심기를 하셨다고 한다. 게다가 돌 작업도 직접 하신 모양이다. 돌이 시가 되고 나무가 노래하는 고운 절, 맞다.
백락사가 내 맘에 드는 이유는 예술이 가미된 종교가 아니라 종교가 가미된 예술을 표현하고 있기 때문이다. 나는 평소 절, 교회, 성당, (내 다니는) 교당엔 별로 관심이 없지만 스님, 목사님, 신부님, 교무님에게는 관심이 많다. 이제는 절에도 관심이 생겼다. 불기 2560년 석가탄신일에 나는 큰 선물을 받았다. 크리스마스 때도 못 받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