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설교요약> 하나님의 나라: 사람 위에 돈 없는 세상, 사람 위해 돈 있는 세상/
누가복음 16:8-16
누가복음은 재물 혹은 돈에 관심이 많은 성경입니다. 동시에 사람 혹은 이웃에게도 관심이 많은 성경입니다. 그래서 하나님 또는 신앙의 시각에서 이 둘을 어떻게 정의하고 바라보며 대하는지에 대한 묘사와 언급이 많습니다. 아울러 이 둘의 관계가 어때야 하는지, 하나님께서는 어떻기를 원하시는지에 대해서 관심이 많습니다. 그래서 현재 이 땅과 사회에서 이 둘의 관계가 어떤지, 바르게 놓여있는지를 자세히 관찰하는 성경입니다. 그리고 만약 그 관계가 바르지 않다면, 무엇이 문제이며 왜곡됐는지 낱낱이 밝히는 데에 많은 부분을 할애합니다. 바꾸어 말하면, 하나님 앞에서 바른 재물관과 바른 이웃관(인류관, 형제관)은 무엇이며, 지금 우리의 모습은 어떤지, 어떻게 해야 바른 견해를 견지할 수 있고, 그때 이 땅과 우리에게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관심을 많이 쏟은 성경입니다.
본문이 그중 한 부분입니다. 본문의 비유를 청지기에 집중하여 읽으면 다소 난해합니다. 주인에게 빚진 자들의 빚을 자기가 멋대로 깎아주는 모습 때문입니다. 요즘으로 따지면, 사문서 위조 또는 변조에 해당될 수 있는 행동으로, 이에 우리는 이 청지기에게 주인이 위해를 가하거나 적어도 고소 또는 손해배상을 청구할 것으로 예상합니다. 우리의 상식으로요. 그런데 예수의 이 비유에서 주인은 오히려 이 집사를 칭찬합니다. 그리고 이것은 ‘하나님과 재물을 함께 섬길 수 없다.’(13절)는 예수의 가르침으로 이어집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재물에 대한 예수의 시각>을 증언하는 성서의 묘사를 만납니다. 기본적으로 재물은 하나님께서 주신 하나님의 것입니다. 그리고 그 재물은 자기 자신은 물론이고, 다른 사람들을 위해서도 사용돼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께선 이 비유를 통해 주인이 이 청지기를 칭찬한다고 말합니다. 주인이신 하나님의 취지대로 주인의 것을 다른 사람들을 위해 사용했기 때문에요. 비록 주인의 재물로 다른 이들의 빚을 탕감해준 동기가, 그들을 생각해서가 아닌 자기 자신의 미래를 위해서일지라도요.
이만큼이나 예수께선 우리의 재물은 사실 우리 것이 아닌 주인이신 하나님의 것이며, 그 재물은 다른 사람을 위해서도 사용되어야 함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예수께선 많은 경우에서 재물이 본래의 목적을 벗어나 자기 자신만을 위해 축적되고 사용되고 있다고 여겼습니다. 그리고 예수께 그것은 재물을 주신 하나님의 본뜻과 하나님을 따르는 것이 아닌, 재물에게 종이 되는 것이었고, 그렇기에 하나님과 재물을 함께 섬길 수 없다고 선포하고 가르쳤습니다.
그런데 본문에 바리새인들은 그 선포와 가르침을 비웃습니다. 재물을 좇는 것과 하나님께 순종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라는 가르침을요. 그들은 재물을 구하는 것과 하나님의 뜻을 구하는 것은 양립 가능하다고 여긴 듯합니다. 정확히는 재물을 다른 사람을 위해 사용하기보다는 자신 곁에 축적하는 삶과 하나님을 따르는 삶이 위배 되거나 모순되지 않으며 공존 가능하다고 여긴 듯합니다. 예수의 가르침을 비웃은 것을 보면요.
이에 대한 예수의 대응이 백미입니다. 율법과 예언자들의 기한은 다 됐고, 하나님의 나라(왕국, 통치)가 기쁜 소식으로 전파되고 있음을 말합니다.(16절) 이는, 바리새인들의 견해는 이제 기한이 다 됐고, 예수 자신의 견해가 새로운 하나님 나라의 알맞은 새 관점, 새 기준, 새 방식으로 선포되고 있다는 의미입니다.
우리는 어느 이해에 서 있습니까? 바리새인들의 이해입니까? 아니면 예수의 이해입니까? 기한이 끝난 옛 시각입니까? 아니면 이미 우리 안에 역사하고 있는 하나님 통치의 시각입니까?
19세기 프랑스의 유명한 시인·소설가·극작가인 빅토르 위고(Victor-Marie Hugo, 1802-1885)가 쓴 <웃는 남자>(L’Homme qui rit)라는 소설이 있습니다. 그는 자신의 작품 중 이것을 최고로 여겼다고 합니다. 기형 인간을 만들어서라도 팔던 단체에 의해 어릴 때 입이 찢겨 기괴하게 웃는 모양으로 평생 살게 된 ‘그웬플렌’이 있습니다. 그는 유랑극단으로 밑바닥 생활을 철저히 겪었고 보았습니다. 그런데 출생의 비밀이 밝혀져 귀족이 되어 의회에 의원으로 참석하게 됐습니다. 그때 논의할 법안 중 하나는 영국 여왕의 남편이자 공작인 자를 위해 원래 책정한 세비에서 10만 파운드를 인상하는 것이었습니다. 그웬플렌은 이에 반대하며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지체가 높으신 경들에겐 이미 많은 재산이 있다. 그것은 그 세비를 감당하다가 죽어간 민초들의 죽음 위에 쌓여진 것들이다. 제발 땅과 사회 도처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봐라. 먹을 것이 없어 풀을 뜯거나 석탄을 씹어먹는 사람들, 집이며 마구간이며 세금으로 다 뺏겨 길거리에 나앉은 사람들, 곳곳에서 하염없이 죽어가는 사람들을! 세비를 인상할 것이 아니라 오히려 경들이 가진 것들을 나눠 그들을 돌보는 데에 사용해야 한다.” 이에 귀족들의 반응은 어땠을까요? 비웃습니다. 본문에서와 마찬가지로요.
누가복음은 하나님의 나라에 대해 우리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사람 위에 돈이 없는 세상이다. 하나님의 통치는 사람 위해 돈이 있는 세상이다.”
그러한 하나님의 통치가 실현되는 세상에 나와 우리, 평화목교회와 이 땅이 포함되기를 소망합니다. 이러한 소망과 통치, 나라 안에서 살아가는 우리의 삶이 되기를 하나님께서 바라고 기대하시며 성서를 통해 말씀하신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2024년 11월 10일 김소리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