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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 선지자란? 하나님의 말씀에 붙잡힌 사람
사도행전 18장 5절에서 8절까지의 말씀입니다.
5 실라와 디모데가 마게도냐로부터 내려오매 바울이 하나님의 말씀에 붙잡혀 유대인들에게 예수는 그리스도라 밝히 증언하니 6 그들이 대적하여 비방하거늘 바울이 옷을 털면서 이르되 너희 피가 너희 머리로 돌아갈 것이요 나는 깨끗하니라 이 후에는 이방인에게로 가리라 하고
7 거기서 옮겨 하나님을 경외하는 디도 유스도라 하는 사람의 집에 들어가니 그 집은 회당 옆이라 8 또 회당장 그리스보가 온 집안과 더불어 주를 믿으며 수많은 고린도 사람도 듣고 믿어 세례를 받더라 아멘!
선지자는 누구인가? 오늘은 열다섯째 시간입니다.
오늘 말씀 5절에 있는 대로 “하나님의 말씀에 붙잡힌 사람”입니다. 사도행전에 보면 사도 바울은 말씀에, 성령에, 사랑에 붙잡힌 사람이 되고 사명에 붙잡힌 사람이 됐다는 이야기가 많이 나오는데 정말 사도 바울은 하나님께 온전히 붙잡혀가지고 거룩한 일에 쓰임 받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우리도 이렇게 하나님께 붙잡힌 사람이 되어야 하는데
제일 먼저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말씀에 붙잡혔다고 창세기 12장 4절 말씀에 5절 말씀에 설명을 하고 있죠. 그래서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나타나셔서 <너는 네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서 내가 너에게 지시할 땅으로 가라> 하고 명령을 하셨어요. 그럴 때에 아브라함이 이 하나님의 말씀에 붙잡혀서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서 갔다 이렇게 설명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말씀에 붙잡혔다는 말의 첫째 의미는 순종한다는 말이죠.
하나님 말씀에 붙잡힌 선지자들, 불러내시는 방법이 공통적으로 특징이 있어요.
바로 입에다가 말씀을 주시는 것입니다. 이사야 6장에 하나님이 이사야를 불러내시는 말씀을 보면 하나님의 전, 거기에 이사야가 하나님 앞에 이렇게 끌려 올라가면서요. 그의 입에 하나님의 말씀을 넣어 주셨다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 말씀 받는 사람의 첫째 특징이에요. 먼저 성결하게 만드시고 말씀을 주신다 하는 거죠.
둘째는 예레미야의 경우를 우리가 볼 수가 있는데요. 예레미야는 어떻게 하나님께서 선지자로 불러내셨는가, 1장 9절에 그렇게 말씀합니다. 하나님께서 손을 내밀어서 그의 입에 대시며 “보라 내가 내 말을 네 입에 두었노라” 이렇게 말씀을 하시죠. 그러니까 하나님이 손을 입에다 대서 안수하셨습니다. 이렇게 해서 하나님의 말씀을 주셨다. 에스겔에게는 어떻게 하셨느냐. 에스겔서 3장 1절에서 3절 보면 입으로 입에 두루마리 책을 먹여주시는 이런 역사를 하십니다. 다니엘은 환상을 통해서 장차 일어날 일을 하나님이 친히 가르쳐 주시는 것입니다.
오늘날 말세가 되니까 세상이 하나님의 말씀이 희귀해진다고 그랬죠. “보라 내가 이 땅에 기근을 보내리니 양식이 없어 주림이 아니오 물이 없어 갈함이 아니라” 아모스 8장 11절에 이렇게 말씀하지 않습니까? 그러면 무엇이 없는 기근이냐 여호와의 말씀을 듣지 못한 기갈이라 이렇게 말씀하시잖아요. 그러니까 이게 마지막 때에 성경책은 지천으로 깔렸는데 하나님 말씀은 없는 세상이 되었습니다. 외치는 자는 많이 있는데 생명수는 말랐어라. 그러므로 우리가 이런 때에 정말 몇몇 사람이라도 깨어서 하나님의 말씀에 붙잡히는 사람이 되어야지 하겠습니다. 하나님은 오늘도 이렇게 말씀에 붙잡힌 사람을 찾고 계신다고 하는 것을 마음에 새기면서 정말 하나님의 말씀에 붙잡힌 사람 되기를 원합니다. 주여 나를 말씀에 붙잡아 주시옵소서 이렇게 기도해야지 하겠습니다.
예수님은 요한복음 15장 7절에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있으면” 이렇게 말씀하셨어요. 그러면 무엇이든지 구해라 다 이루어진다 하시지 않습니까? 하나님은 오늘도 당신의 종들을 불러내시고 하나님의 말씀을 입에다 담아주시고 이 하나님의 말씀을 전할 수 있게끔 하시는 놀라운 역사를 이루시는 것입니다.
이번에는 베드로를 한번 보죠. 누가복음 5장이죠. 예수님께서 밤새도록 고기잡이에 허탕치고 허탈해하고 낙심하고 피곤하여 지쳐 있는 베드로에게 나타나셔서 말씀을 전하시고 “그물을 저 깊은 데 가서 던져라” 하고 명령하셨습니다. 베드로는 인간의 생각으로는 절대로 순종할 수 없는 그런 명령이었고 화가 나고 약이 오르고 그런 명령이었지만 그러나 “내가 당신의 말씀에 순종해서 한번 해 보겠습니다”하고 순종했는데 어마어마하게 고기를 많이 잡았습니다. 그래서 자기 배뿐만이 아니라 친구 요한의 배까지에도 두 배에 가득하게 고기를 잡았다고 말씀을 했습니다. 어마어마한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그때 베드로는 예수님 앞에 폭 꼬꾸라졌습니다. 그래서 “주여 나를 떠나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라고 고백을 합니다. 고기를 많이 잡았는데 이게 무슨 뚱딴지같은 고백을 이렇게 합니까?
그런데 실제로 보면 베드로는 고기를 잡은 게 아니고요, 고기가 베드로를 잡은 게 되는 거죠. 하나님의 말씀에 붙잡혔더니 이렇게 어마어마한 기적을 체험하게 되었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다른 사람들도 기적을 다 체험합니다. 병자들 고치잖아요. 소경도 눈을 뜨고 앉은뱅이도 일어나고 문둥병자도 깨끗해지고 이렇게 별별 병자들이 와서 다 고침을 받고 살아가지 이렇게 돌아가게 되지만, 그러나 그 사람들은 기적을 체험한 거기에서 끝나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뭐라고 하셨어요?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나를 찾는 것은 표적을 본 까닭이 아니요 떡을 먹고 배부른 까닭이로다” 요한복음 6장 26절에 이렇게 설명을 하셨어요.
그러니까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께 찾아와 가지고 기적만 체험하고 그것으로 끝이고 그러고 돌아가고 맙니다. 그 병을 고쳐줬다, 그때뿐이에요. 그들은 무엇을 보지 못합니까? 표적을 보지 못해요. 그런데 베드로가 위대한 거는 이렇게 고기잡이 이적을 통해서 그는 표적을 보았다고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만나본 것입니다. 예수님이 누구신가가 보였습니다. 자기가 누군가가 보였습니다. 그래서 폭 꼬꾸라진 것입니다. 나는 죄인입니다. 고백합니다. 당신은 너무도 거룩하신 분이 되어서 내가 당신과 함께 있을 수가 없습니다. 이렇게 고백을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말씀에 붙잡혔다고 하는 뜻입니다. 말씀에 붙잡히지 않은 사람은 기적만 보고요. 그것만 따라가는 사람이 되고, 그것도 자기 마음에 안 들면 나중에는 시드러져가지고 다 배반하고 떨어져 나가고야 마는 것입니다.
우리가 말씀에 붙잡힌 자의 복이 무엇인가 말씀에 붙잡혀 사는 삶 은
첫째로 하나님을 알게 된다. 둘째로는 말씀을 깨닫게 된다. 말씀이 나를 인도하실 뿐 아니라 나를 지켜줍니다. 모든 위험에서 지켜줍니다. 그 말씀이 나에게 어마어마한 평안과 행복을 줍니다. 그 말씀이 나를 능력으로 강하게 만들어줍니다. 이 놀라운 복을 우리에게 계속해서 내려주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하나님 말씀에 붙잡혀서 사는 사람이 되어야 하는 것. 넷째로는 하나님의 말씀에 붙잡혀야 하나님의 뜻을 행할 수 있는 사람이 된다고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마태복음 산상수훈 7장 20절 21절에 이렇게 말씀합니다. “나더러 주여주여 하는 자마다 다 천국에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라고 하십니다.
마지막으로 우리가 어떻게 해야 하나님의 말씀에 붙잡힌 사람이 될 것인가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 말씀에 붙잡힌 사람이 되려면 우리는 먼저 하나님의 말씀을 사랑하는 사람이 돼야 하겠죠. 하나님 말씀을 사랑하지 않으면 하나님 말씀에 붙잡히지 않습니다.
하나님 말씀을 열심히 읽고 듣고 전하고 이런 일을 해야 된다.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되 하나님 말씀대로 전해야지 내 생각을 집어넣으면 절대로 안 된다.
사람들에게 인기를 얻기 위해서 하나님 말씀에 적당히 자기 생각을 넣어가지고 그거는 하나님의 말씀이 아니고 인간의 생각이 들어간 독약입니다. 그런 걸 먹으면 사람의 영혼은 죽습니다. 이 마지막 때에 오늘날도 하나님의 말씀에 붙잡힌 사람을 찾으시는 우리 하나님 앞에 주여 내가 여기 있습니다. 나를 써주시옵소서 진실한 마음으로 주님 앞에 달려 나가서 다 주님께 쓰임 받는 이런 귀한 일꾼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아멘.
18 번제 할 어린양은 어디에 있나이까?
[창 22:1-2]
1 그 일 후에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시험하시려고 그를 부르시되 아브라함아 하시니 그가 이르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2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네 아들 네 사랑하는 독자 이삭을 데리고 모리아 땅으로 가서 내가 네게 일러 준 한 산 거기서 그를 번제로 드리라
오늘 말씀의 제목은 번제할 어린 양은 어디 있나이까? 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의 믿음을 시험해 보실 때에 독자 이삭을 번제로 드리라고 하셨습니다.
번제는 글자대로 하면 다 태워서 드리는 거죠. 노아가 홍수가 끝나고 방주에서 나와서 처음 드린 제사가 번제였습니다. 그런데 아브라함에게도 하나님께서는 번제로 드리라고 말씀을 하세요. 그런데 누구를 번제로 드리라고 하느냐? 양을 잡아서 드려라, 소를 잡아서 드려라 그렇게 말씀하시지 않고 너의 외아들 이삭을 드려라.
그런데 아브라함은 그 말씀에 무조건 순종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이 진심으로 하나님을 사랑하고 섬기는가 거짓으로 섬기는가 하는 것을 시험해 보시려고 이삭을 번제로 드리라고 명령하셨어요. 그러니까 이삭을 번제로 드리느냐 안 드리느냐가 아브라함의 믿음을 테스트에 보는 리트머스 시험지가 된다 말이죠. 드리면은 아브라함의 믿음은 합격 안 드리면은 아브라함의 믿음은 불합격 이렇다는 얘기예요.
그런데 왜 하필이면은 이삭을 번제로 드리라고 하셨을까?
아브라함에게 말씀하실 때 너의 독자 이삭을 나에게 번제로 드려라 그렇게 명령하실 때에는 하나님은 더 큰 계획을 가지고 계셨다고 하는 거죠. 계획이 뭡니까? 나도 나의 독자 예수를 너희에게 번제로 내려주겠다. 그런 말씀이시잖아요. 그런데 우리는 그런 깊은 의미를 깨닫지 못하고 그냥 이렇게 지나가요 오늘이 1월 14일입니다. 유대 달력으로 보면은 정월 14일은 이게 무슨 날이죠? 정월 14일은 유월절 날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명령하셔서 드디어 이제 출애굽을 할 날을 놓고서 명령하시기를 이달로 너희는 새해에 첫 달을 삼아라 이렇게 하시고 14일이 유월절인데 10일 날 어린 양을 택해서 나흘 동안 두고 흠이 있는지 없는지 이거 다 조사하고 시험해 본 후에 14일 날 저녁에 날이 시작될 때죠 저녁에 양을 잡아서 피를 문설주와 인방에 발라 놔라 그렇게 하면 재앙을 내리는 천사가 왔다가 피가 있는 집은 껑충 건너뛰고 피가 없는 집에 들어가서 때리는데 누구를 때립니까? 맏아들은 다 쳐 죽인다 심지어 짐승의 맏 새끼까지도 다 죽인다 이것이 애굽 땅에는 이런 무서운 재앙으로 임하였는데 반대로 피가 발라져 있는 이스라엘 집에는 재앙을 내리는 천사가 왔다가 피를 보고는 껑충 뛰어넘는다 그래서 집에는 재앙이 들어가지 않는다 이렇게 가르쳐 주셨어요. 실제로 그런 사건이 그대로 이루어졌습니다. 그래서 오늘이 1월 둘째 주일이기도 하고 14일이기도 하고 그러니까는 유대 사람들로 치면 오늘이 바로 유월절이나 마찬가지인 건데 이 유월절 날에 하나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유월절 어린 양으로만 보내신 것이 아니고 또 무엇으로도 보내셨다? 우리를 우리 모두를 위한 번제물로 이 땅에 보내주셨다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번제라고 하는 거를 우리가 좀 더 깊이 생각해야 되지 않겠어요.
입다가 전쟁에 나가게 됐습니다. 이 모압이 쳐들어왔어요.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은 아니다. 평화가 계속되고 있으니까 전쟁 준비를 하나도 하지도 않았고 이스라엘의 청년들은 군사 훈련을 받지도 않았고 이것이 그때 당시에 이스라엘의 모습이었잖아요.
하나님은 이번에는 입다에게도 똑같은 역사를 하십니다. 이번에는 하나님이 명령하신 거 아니에요. 입다가 워낙 지금 다급해지니까 날만 새면 전쟁에서 자기가 질 거는 틀림없는 사실이고 100% 확실한 사실이고 자기가 전쟁에 지면 자기는 죽을 거고, 그렇지 않으면 포로로 끌려가서 말로 다 할 수 없는 수모를 당하게 될 것이고. 거기에 더해서 자기의 아내와 딸은 어떻게 될 것인가? 다 종으로 끌려가지 않겠습니까? 그래 가지고 적국에게 끌려가서 종 노릇하고 팔려다니고 이렇게 하면서 살 수밖에 없는 것이 그의 운명인데 이거를 생각하면 앞이 캄캄한 거죠. 그러니까 하나님 제발 좀 살려주세요. 제발 우리나라 살려주세요. 우리나라 이기게 해주세요. 이 적군을 물리치게 해주세요. 얼마나 안타깝게 애절하게 간절하게 하나님 앞에 호소했을까? 그런데 이렇게 기도하다 보면은 사람이 염치라는 게 있잖아요. 하나님께서 마음의 감동을 주셨겠지요. 그러면은 너 내가 너를 이기게 해주면 너는 나에게 뭐 해주겠느냐 근데 우리 인간들은 보통 그래요. 하나님 뭘 바랍니까? 날 이기게만 해주면 되는 거지 하나님 앞에 무언가를 갚아야 된다고 하는 생각을 하지를 않아요. 근데 하나님은 반드시 우리에게 대가를 받으십니다. 왜? 이걸 알아야 감사할 줄을 알아요. 이걸 알아야 인간 세상에서도 서로서로 도우며 살 수 있어요.
하나님이 번제로 드리라고 하는 거는 제사 중에서도 최고의 일등 제사예요. 태워서 바치는 거예요. 내 온몸을 다 태워 주님께 드립니다. 그런 제사인 것입니다. 그러니까 입다가 이렇게 기도할 때에 하나님께서 마음의 감동을 주셨겠지요. 너는 그러면 무엇을 나에게 주겠느냐? 우리 같으면 뭐라고 하겠어요. 내가 입다의 입장에 있어서 지금 날만 새면 전쟁에 나가야 되고 전쟁에 나가면 틀림없이 질 수 밖에 없는 형편에 놓였고 그런데 하나님께서 내가 너에게 승리를 준다면 너는 나에게 무엇을 주겠느냐 내 재산 다 드리겠습니다. 재산 그까짓 거 얼만데 입다가 재산 가졌으면 얼마나 가졌겠습니까? 내 명예와 권세를 다 드리겠습니다. 니가 무슨 명예가 있고 무슨 권세가 있는데, 아무것도 없잖아요. 그러니까 입다가 하나님 앞에 할 수 있었던 말은 전쟁에 이기고 우리 집에 돌아갈 때에 누구든지 제일 먼저 우리 집에서 뛰쳐나와서 나를 환영하는 그 사람을 하나님께 번제로 드리겠습니다.
입다를 환영해야 될 사람은 그의 아내나 그의 딸이나 식구가 첫째 아니겠어요? 그리고 종들은 둘째지 먼저 아내나 딸이 나간 다음에 자기들은 뒤를 졸졸 이렇게 따라 나가서 주인을 환영하고 축하해 줄 일이지 자기들이 앞서 나가 가지고서 주인을 축하할 건 아니란 말이에요.
근데 입다도 그런 거를 아마 생각을 못 했을지도 몰라요. 그렇지만 우리 집에서 쫓아 나와서 나를 영접한다고 내 아내하고 무남독녀 외딸 둘밖에 없는데 둘 중에서 누가 뛰쳐나와서 나를 환영할 것인가? 할 수 있으면 아무도 집에서 뛰쳐나오지 않고 집안에 그냥 가만히 처박혀 있고 내가 먼저 들어 가면은 좋겠다. 그러면은 바 칠 일도 없을 거 아니에요.
그러기도 하겠지만, 입다의 생각은 그거 아니죠. 하나님 내가 내 몸을 불살라 하나님께 드리겠습니다. 모세도 뭐라 그래요? 하나님 차라리 내 이름을 생명책에서 지어주시옵소서. 그러나 우리 백성들은 하나님이 약속하신 대로 젖과 꿀이 흐르는 땅에 들어가게 해 주시옵소서. 사도 바울은 뭐라고 말합니까? 하나님이여 차라리 나를 생명책에서 지워주시고 나는 구원을 못 받게 돼도 좋습니다. 우리 백성들 내 동포들 이 사람들을 구원시켜 주시옵소서 이것이 자기를 번제로 드리는 사람의 자세잖아요. 하나님은 이 번제를 받으신단 말이에요.
그런데 예수님께서 먼저 자신을 번제로 드리셨어요. 그래서 예수님의 십자가는 속죄제도 되고 화목제도 되고 속건제도 되고 다 되지만 더 중요한 것은 첫째가 번제로 하나님 앞에 드려지신 것이다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이렇게 솔선수범하셨어요. 요한복음 15장 13절 사람이 친구를 위해서 자기 위하여 자기 목숨을 버리면 이에서 더 큰 사랑이 없나니. 예수님이 자기 생명을 먼저 친구를 위해서 주셨습니다. 그러니까 예수님이 나를 위해서 죽으셨다 정말 이거를 깊이 깨닫는 사람은 예수님의 친구예요. 그러나 이거를 깨닫지 못하고 건성으로만 왔다 갔다 다니는 사람들은 예수님의 친구가 아직 안 된 거지요. 그러나 예수님의 친구가 되면 이 놀라운 주님의 사랑을 깨달아 알게 되는 것입니다. 그 사랑이 뭐예요? 자신을 번제물로 하나님 앞에 드렸다 하는 거죠.
그래서 사도 바울은 사랑을 얘기하면서 고린도전서 13장 사랑장에서 이렇게 얘기를 해요. 3절에 내가 내 몸을 불사르는데 내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가 아무 유익이 없느니라 그래서 내가 말씀을 이렇게 보면서 뭐가 어째? 내 몸을 불사르는 데 내준다고 그게 무슨 소리지? 불사르는데 내주는 게 뭡니까? 남이 나를 붙잡아서 불사르는 데는 내줄 수 있어도 내가 내 몸을 불사르는 데 내준다. 이거는 사실 말이 안 되는 얘기인데 자기를 번제로 드린다는 얘기죠. 자기 몸을 불태워 번제로 드립니다. 아브라함이 이삭을 드리듯이 이삭의 입장에서 보면은 날 죽이세요. 나를 불태워 죽이세요. 하고 자기를 맡기고 있잖아요. 이런 멍청한 사람이 어디가 있습니까? 바울이 하나님이여 나를 주님 앞에 번제로 드립니다. 자기를 드리는 거예요. 입다도 자기의 딸을 하나님 앞에 번제로 이렇게 드립니다.
하나님은 예나 이제나 우리에게 이 번제를 요구하십니다. 나를 위해서 자신을 불태워 하나님 앞에 드릴 수 있는 사람이 있느냐? 예수님의 열두 제자가 다 순교했습니다. 번제로 드려지는 방법은 가지각색이에요. 목배임을 당해서 죽을 수도 있고 불에 타서 죽을 수도 있고 이렇게 칼에 맞아서 죽고 창으로 찔려서 죽고 짐승들 죽이듯이 악한 극형을 받아 가지고 죽을 수도 있고 죽는 방법은 여러 가지이지만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 사도들을 제물로 받으시고 어리석은 백성들을 살려내시는 일을 행하셨다 하는 것입니다.
우리나라에는 도마가 왔었대요 열두 제자 중의 하나인 도마가 맨 끝에까지 동쪽 끝에까지 찾아와서 우리나라에까지 왔다고 그러잖아요. 신라에 왔었다고 그러잖아요. 신라에 왔었다고 그래요. 그런데 어떻게 죽었는지는 잘 모르겠어요. 그렇지만 그가 뿌린 피가 한국 땅에 이렇게 2천 년이 넘게 지나 가지고 한국이 이렇게 복음으로 꽃 피어나게 되고 세계 제일 가는 나라로 발전해 나가게 되고 세계 만민을 구원해 낼 수 있는 새 나라가 되게 만드시고 이 엄청난 역사가 일어나게 해 주셨다 이거 얼마나 감사합니까?
그래서 오늘 우리들도 하나님이 부르시는데 잘 먹고 잘 살아라 그래서 부르신 게 아니고 세상에서 영광 많이 누리고 살다가 와라 이렇게 물으신 게 아니라 너희들도 하나님 앞에 제물이 될 수가 있겠느냐 물으시는 거잖아요. 하나님 나를 하나님 앞에 번제로 드리겠습니다. 바울이 말한 대로 내가 내 몸을 불사르는데 내줄지라도 우리도 우리 몸을 불사르는데 내주어 큰 능력의 역사가 나타나야 하겠습니다. 나라를 구원해내고 세상을 구원해내는 이 거룩한 역사에 하나님이 써주시기를 축원합니다.
■ 말씀 묵상 글 : 하나님의 자녀로 산다는 것은 입술로만 하는 고백이 아니라 진정으로 사랑하여 고백되는 삶 그 자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세상과 하나님 사이에 양다리를 걸치고 눈치보는 삶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셔서 독생자 아들을 십자가에 내어 주셨듯이 우리도 하나님을 진정으로 사랑하여서 삶 그 자체를 그대로 드리는 것이 아브라함시대에 번제에 해당되는 것이고 예수님의 열두 제자들이 모두 예수님의 십자가의 길을 따랐던 그 길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물질만능주의 시대를 살면서 예수를 믿는다고 순교하는 시대를 살지는 않지만 사랑하는 마음으로 진정으로 고백하며 드려지는 삶의 고백이 오늘날 우리에게도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주님 내가 주를 사랑합니다~~
■ 말씀묵상 : 오늘날 그리스도로 살아가는 모든 사람은 세상에 빛과 소금으로 부르심을 입은 선지자 사명이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런데 그 사명을 잘 감당하기 위해서는 성결해야하는데, 그 또한 주님께서 은혜로 주신다는 것을 생각해보게 되었습니다. 무심코 지나쳤던 베드로의 고백이 남들은 보지도 깨닫지도 못하는 표적을 통해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놀라운 사실을 깨달은 놀라운 장면에.... 어쩌면 우리도 육신의 안위를 구하면서 부르신 소명대로 잘 살고 있는가? 라는 생각을 해보게 되었습니다. 누구나 손에 성경책을 들고 펼칠수 있는 은혜의 시대를 살아가지만 생명수인 말씀이 말라져 가는 이때에
온전히 말씀에 붙들린 자가 되어 주님께 사용 받는 귀한 그릇이 되길 간절히 소망해보는 시간입니다. 감사합니다.
19. 선지자란/하나님의 비밀을 맡은 사람
[고전4:1-2]
1 사람이 마땅히 우리를 그리스도의 일꾼이요 하나님의 비밀을 맡은 자로 여길지어다
2 그리고 맡은 자들에게 구할 것은 충성이니라 아멘!!!
오늘의 말씀은 1절보다 2절의 말씀이 더 유명해, 맡은 자들에게 구할 것을 충성이다. 이 제목으로 설교가 많이 있습니다. 특별히 언제 이런 설교를 하느냐? 헌신예배 새해 신년 재직헌신 예배, 찬양대의 헌신 예배, 주일하고 교사 헌신 예배, 이럴 때 맡은 자들에게 구할 것은 충성이다. 그럽니다. 그러면 그때에 맡은 자들이라고 하는 것은 무슨 의미냐?
교회의 재직들, 장로들로 마찬가지이다. 이것은 직분을 맡은 것을 말하죠,
오늘 본문 말씀을 보면 직분을 맡은 것을 이야기하는 것은 아닙니다.
물론 직분을 맡은 사람이 충성해야 되는 거는 두말할 필요가 없습니다. 1절 말씀을 조금 더 우리가 잘 살펴봐야 돼요. 그래서 1절에 뭐라고 했습니까? 사람이 마땅히 우리를 그리스도의 일꾼이요 하나님의 비밀을 맡은 자로 여길 지어다
첫째는 사람들이 마땅히 우리를 그리스도의 일꾼으로 여려라. 둘째는 하나님의 비밀을 밭은 자로 여겨라, 이렇게 말씀하시고 그 다음에 2절에 맡은 자들에게 구할 것은 충성이라고 했으니까, 뭘 맡았느냐 물론 직분 맡은 것도 중요하지만 본문에서 이야기하는 것은 하나님의 비밀을 맡은 자들에게 충성을 요구하신다 하는 것입니다.
왜 우리가 하나님의 비밀을 맡아야 하는지 아는가? 마태복음 13장에 예수님께서 일곱 가지 천국 비유가 나오는데 그런데 이 비유를 제자들을 알아듣지 못했어요. 이 말씀을 듣고 깨닫는 사람이 있고 들어도 무슨 소리인지 깨닫지 못하는 사람이 있다는 이야기죠. 그것은 예수님이 하신 말씀만이 아니라 우리 성경 전체가 마찬가지로 아무리 성경을 읽긴 읽어도 무슨 소린지 깨닫지 못하는 사람이 있고 또 말씀을 읽으면 한마디 깨달아져서 마음에서 감격이 일어나고 감탄이 나오고, 그래서 하나님 앞에서 감격의 눈물을 흘리고 기도하는 삶이 되고 몸을 바치겠다는 사람이 되고 죽기까지 충성하는 사람이 되는 변화들이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비밀을 맞는 사람은 이렇게 중요한 이야기라는 것입니다.
첫째가 이 성경이 다 하나님의 비밀 이야기인데 깨닫는 사람이 있고 못 깨닫는 사람이 있다는 거예요. 오늘 본문 말씀을 다시 살펴보면 맡은 자들에게 구할 것은 충성이라고 하셨으니까 충성하는 방향을 모르기 때문에 안 된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하나님의 일을 하되 하나님의 비밀을 맡아 가지고 하자 우리가 구제한다고 해도 돈을 쓸 때 정말 꼭 필요한 사람에게 주어야 되는데 이것이 잘못된 사람에게 가게 되면 사람은 오히려 더 타락할 수가 있습니다. 구제만이 아니라 자식들이 하는 일도 없이 공으로 큰 재산 물려받아 때로는 망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롬10:2-3]
2 내가 증언하노니 그들이 하나님께 열심이 있으나 올바른 지식을 따른 것이 아니니라
3 하나님의 의를 모르고 자기 의를 세우려고 힘써 하나님의 의에 복종하지 아니하였느니라
사도바울이 저희가 하나님께 대하여 열심히 있으나 저희라고 하는 것은 유태인들을 말하는 것입니다. 유태인들이 하나님께 열심은 대단한 사람들인데 바울이 그들의 열심을 보고 탄식하는 것은 “저들이 지식이 없구나” 라고 말을 합니다. 그러면 열심히 누구를 위한 열심입니까?
하나님을 향한 열심이 되지 못하고 마귀를 향한 열심이 되어 오히려 하나님의 일을 그르쳐 놓는 것입니다. 이런 열심히 선지자들을 참 선지자들을 다 죽였고 이런 열심히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이고야 말았습니다. 오늘날에도 또 똑같다고 하는 사실을 우리가 마음에 기억하면서 이 비밀을 가진 사람들이 돼야지 하겠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이 비밀을 갖지 못하면 정말 방향을 알지 못해 가지고 엉뚱한 짓을 하다가 오히려 하나님과 원수가 되는 일이 얼마나 많은가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누구에게 하나님이 비밀을 맡겨주시는가
첫째는 하나님께 부르짖는 자에게 하나님이 비밀을 주신다고 합니다.
우리가 잘 아는 예레미야 33장 3절이죠.
너는 내게 부르짖어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비밀한 일을 너에게 보이리라 그러셨고요. 29장 11절에도 너희가 말하기를 이것은 우리에게 환난이다. 재난이다. 이렇게 말하지만 그것이 환난이나 재난이 아니고 너희의 장래에 소망을 주려고 하는 것이다. 이렇게 말씀하시면서 12절에 너는 내게 부르짖어라 하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면 내가 알지 못하는 크고 비밀한 일을 보여주시는데요. 이렇게 부르짖는 자에게 응답하시고 하나님의 뜻을 보여주셔서 놀라운 세계를 나타내 주신다고 하는 것입니다.
둘째는 참 선지자들에게 하나님께서 이 비밀을 주십니다.
[암3:7] 주 여호와께서는 자기의 비밀을 그 종 선지자들에게 보이지 아니하시고는 결코 행하심이 없으시리라 하나님은 무슨 큰일을 행하실 때에는 당신의 종 선지자들에게 내가 지금 어떤 일을 하고 있는 지를 알려주십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에게도 어떻게 하셨습니까?
소돔과 고모라성 멸망시키기 전에 아브라함에게 나타나셔서 성을 멸하려고 하신다고 하는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니까 아브라함이 하나님 앞에 간절히 기도하지 않았습니까? 아브라함의 기도를 들으시고 하나님의 사자들이 롯을 땅에 사는 롯을 찾아가서 롯 집에 머물지 말고 빨리 피하라고 통보를 하는 이 모든 것이 비밀이 아닙니까? 하나님은 세상을 다스리고 계시는데 이런 비밀들을 당신의 종들에게는 반드시 가르쳐 주신다 그래서 구약 성경에 수없이 나타나는 선지자들 그들에게 장차 될 일을 전부 가르쳐 주셨습니다. 그 대표적인 것이 다니엘서 이 인류의 마지막 때에 어떤 일이 일어날 것인가?
우리 신약이 오면 예수님이 친히 이 말세에 일어날 일을 설명해 주시고 사도 바울도 베드로 도 요한 계시록에도 마지막 때 일어날 일들을 전부 소상하게 가르쳐 주셨습니다. 이것이 전부 비밀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이런 비밀을 잘 아는 사람이 되어야하겠습니다.
또 하나님이 누구에게 비밀을 가르쳐 주시느냐? 요한복음 15장 13절부터 보면
사람이 친구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버리면 이에서 더 큰 사랑이 없나니 14절 너희가 내가 명하는 대로 행하면 너희가 곳 나이에 친구라 15절 나는 내 아버지로부터 들은 것을 너희에게 이 비밀을 너희에게 가르쳐 주는데 내가 너희를 친구로 삼았기 때문에 내가 아버지에게 들은 것을 너희에게 알려준다. 이것이 하늘의 비밀이다. 이렇게 말씀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사람 사이에서도 비밀 이야기를 하는 거는요 아주 가까운 사이가 아니면 절대로 하면은 안 되는 것입니다.
그저 보통 아는 사이에 비밀 이야기했다가 나중에 그걸로 말미암아서 큰 어려움을 당하는 경우가 세상에는 얼마나 많습니까? 또 사람을 내가 좋은 친구라고 믿고 이야기를 했는데 그것으로 말미암아 내가 참 올무에 빠지게 되는 일들도 많이 일어납니다.
그래서 사람은 잘 모르기 때문에 이런 실수를 저지르지만 하나님은 결코 이런 실수를 저지르시는 일이 없습니다. 그래서 누구에게 비밀을 주십니까? “예수님이 너는 내 친구다” 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비밀을 주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열두 제자에게 이렇게 비밀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셨고, 사도 바울도 내가 하나님으로부터 비밀을 많이 받은 것을 감사한다고 합니다.
요한계시록 장차 세상에 일어날 일에 대해서 하나님은 요한에게 여러 가지 환상과 꿈과 계시를 통해서 장차 일어날 일을 전부 가르쳐 주셨습니다. 이것이 다니엘에게도 마찬가지입니다.
다니엘 앞부분은 음식을 가지고 테스트하시고, 꿈을 가지고 두 번 해석하는 일과 우상숭배하지 않고 거절하는 것, 그래서 하나님 앞에 기도하는 자는 사자굴속에 집어넣는다하는 아주 무시무시한 법을 만들어 놓은 속에서도 다니엘이 다 그것을 통과했기 때문에 7장부터는 장차 일어날 엄청난 비밀에 대해서 하나님께서 다니엘에게 계시를 내려주신 것입니다.
오늘날도 우리가 다니엘서를 읽기는 읽지만 무슨 소리인지 깨닫지 못하는 것이 얼마나 많아 않습니까? 그러나 누군가 하나님께서는 어떤 선지자들을 통해서 한 가지 한 가지 깨닫게 하시고, 이 놀라운 비밀의 세계를 열어주실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비밀이라고 하는 것은 구체적으로 무엇이냐? 우리가 이 세상 모든 걸 보면 전부 비밀이에요. 헬라 말로는 무스테리온이라고 했는데 영어의 미스터리라는 말이 나왔습니다. 미스터리 이것을 우리가 보통 신비라고 번역을 하지 않아요.
그래서 우리 눈에 보이는 이 모든 것이 다 의미를 가지고 있는데 그 의미를 우리가 제대로 알지 못해요. 이 세상에 있는 만물이 우리에게 뭐라고 말을 하고 있는데, 우리가 그 음성을 듣지를 못해요. 심지어 우리는 꿈을 꿨어도, 꿈의 뜻을 해석하지 못합니다. 더 명백하게 글자로 써서 우리에게 주셨는데도 우리가 글을 읽으면서도 이것이 무슨 뜻인지를 깨닫지를 못합니다.
이것이 얼마나 답답한 인간들입니까? 신명기 29장 4절에 하나님께서 이제까지 너희에게 무엇을 주시지 않았다. 보는 눈과 듣는 귀와 깨닫는 마음을 주시지 않았다. 이사야서 6장에서도 이사야를 부르셨을 때에도 똑같은 말씀을 하십니다. 가서 전하긴 전하지만 저들에게는 보는 눈이 없고 듣는 귀가 없고 깨닫는 마음이 없다. 그러니까 네가 가서 전해봤자 저들은 듣지 않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서 전하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너희 전에 있던 선지자들은 이때를 보기를 원했지만, 그들은 보지를 못하고 다 먼저 떠났는데 너희는 나를 만나서 드디어 이 비밀을 열어주는 말씀을 들을 수 있게 되었으니까 얼마나 복된 사람이냐 라고 말씀하시면서 이제로부터 새 시대가 열려 닫았던 것을 열어주고, 덮어 놓았던 것을 뚜껑을 벗겨서 열어줘서 다 볼수 있게 하시고, 또 감추어졌던 것을 들어나서 우리에게 무엇인지를 알게 하시는 놀라운 새 시대가 열렸다고 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말씀을 공부하는 이 마지막 시대의 사명자들 사역자들은 마땅히 이 비밀이 무엇인지를 깨달아서 우리가 미래 세계 속으로 들어가는 사람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둘째는 성경이 바로 하나님의 비밀입니다. 이 비밀의 책 아무리 읽어도 무슨 소린지를 제대로 깨달아 알지를 못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아요. 그러니까 한두 번 읽어보고 깨달아지지 않으니까 덮어 버리고, 목사니까 설교는 해야 하니까 성경구절 몇 개 알아가지고 설교를 하지만 그러나, 설교한 정말 이 비밀을 깨달은 것을 가지고 말씀을 전해야하는 것입니다.
내가 이제까지 살아오면서 나에게 영적인 스승들이 몇 분이 계셨는데 그분들이 한 결 같이 하시는 이야기가 당신이 깨달은 것을 전해라~ 깨달은 것을 전해라~ 깨닫지도 못한 것을 전하지 말고 ,깨달은 것을 전해야 한다. 이것이 얼마나 중요한 말씀입니까?
욥기 마지막 장 42장 3절 말씀 보면 무지한 말로 이치를 가리는 자가 누구니까 내가 스스로 깨달을 수 없는 일을 말하였고 알 수도 없고 헤아리기 어려운 일을 말하였나이다. 이렇게 고백을 합니다. 그러니까 인간들은 평생 자기가 잘났다고 하고 다 안다고 하고 떠들어댔던 말이 결국은 자기가 깨닫지 못한 말을 한 것이라는 이야기죠. 그래서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더 겸손하게 낮아져야 되는데 하나님께서 우리 우리에게 깨닫게 해 주신 그것을 전할 수 있는 이런 사람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그래서 이 성경이라고 하는 게 얼마나 중요한 말씀인가?
예수님도 친히 성령이 다 나에 대해서 증언하고 있는 것이다.
요한복음5장 39절이지요. 그러니까 성경에서 예수님을 찾아내는 사람은 성경을 아는 사람 성경을 깨닫는 사람이고 성경을 읽어도 예수님을 만나지 못하는 사람은 그냥 예수님의 이름을 빌려서 자기 먹고살기 위해서 장사하는 그런 가짜들입니다. 정말 우리가 가짜가 되지 말고 하나님의 진실한 종들이 되어야지만 하겠습니다. 그래서 이건 신약만이 아니라 구약성경을 읽을 때에도 사도 바울이 말했어요. 너희가 오늘까지 수건이 너희의 얼굴을 덮고 있다. 그러니까 수건이 얼굴을 덮고 있으면 뭐가 보이겠습니까? 보지도 못하면서 보는 척, 알지도 못하면서 아는 척, 이렇게 하고 살아가니까 비밀의 세계 깊은 은혜의 세계에 우리가 들어가지 못하는 것입니다. 정말 우리는 이 깊은 세계에 들어가야지 하겠습니다.
그런데 성경에 있어의 최고의 비밀은 뭐냐? 최고의 비밀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성경은 예수님을 가리켜 하나님의 비밀이다. 이렇게 말씀을 하시죠. 하나님의 비밀인 예수 그리스도, 에베소서 3장 4절 골로새서 4장 3절에 나타나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비밀입니다. 우리는 성경에서 예수님을 만나야지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 믿는다고 교회만 다니는 사람이 아니라 진짜로 예수님을 만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주님을 만나 감격하며 주님 말씀에 은혜로 내가 새 사람으로 변화를 받아 주님의 복음을 위해서 목숨까지도 바칠 수 있는 진실한 사람으로 되어야 하겠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모두에게 이 놀라운 은혜를 더하시고 복을 내려주시기를 축원합니다.
우리가 어떻게 해야지 하나님의 비밀을 맡은 사람이 될 것인가? 하나님의 비밀을 누구에게 맡기시나요? 첫째는 부르짖는 사람 둘째는 선지자 셋째는 예수님의 친구 이런 사람들 아닙니까 우리가 꼭 이런 사람들이 돼야 합니다. 첫 단계가 하나님께 부르짖어 기도하는 사람이 되
이 첫 단계가 부러지는 거예요. 하나님께 부르짖어 기도하는 사람이 되어라 그래서 하나님은 여러분들 하나하나를 하나님의 친 예수님의 친구를 만드시려고 어려움을 주십니다. 어려움을 주셔야 부르짖을 거니까 기도하지 않겠어요.
어려운 일 생긴 것은 하나님께서 나에게 기도하라고 하시는구나~ 하고 빨리 깨닫고 하나님 앞에 열심히 기도해서 우리가 예수님을 만나고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새 사람으로 변화를 받고 사명을 받아 주님 앞에 충성하는 일꾼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 느낀 글 : 결국 성경을 읽으며 깨닫기를 구하지 않는 자에게 하나님은 지혜를 주지 않으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나님을 간절히 사모하는 사람들을 통해 하나님은 그 비밀들을 말씀하여 주시고 이루시는 그 계획에 통로로 사용하셨듯이 말씀을 덮어놓고 믿는다고 하는 것이 얼마나 어리석은 믿음인지 생각해 보게 됩니다. 주의 종으로 부르심을 입은 우리 또한 하나님 말씀 앞에서 날마다 깨닫는 지혜를 간구하며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20. 복음에 빚진 자
로마서 1장 14절에서 16절 오늘 말씀의 제목은 복음의 빚진 자입니다. 말씀을 읽습니다.
14 헬라인이나 야만인이나 지혜 있는 자나 어리석은 자에게 다 내가 빚진 자라
15 그러므로, 나는 할 수 있는 대로 로마에 있는 너희에게도 복음 전하기를 원하노라
16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 먼저는 유대인에게요 그리고 헬라인에게로다 아멘
우리 인간은 다 빚지고 사는 사람이에요.
우리는 주님의 은혜, 하나님께 빚진 자다 첫째, 예수님께 빚지고 산다.
바울이 이렇게 복음의 빚진 자라고 말하는 거는 예수님의 구원에 대해서 고백하는 말씀이지만 우리가 가만히 생각해보면 하나님께만 빚지고 사는 게 아닙니다. 내가 이제까지 먹고 마시고 살아온 모든 것이 다 빚을 지고 사는 거예요. 그래서 기본적으로는 부모에게 많은 빚을 졌어요. 부모님이 나를 낳아 가지고 나를 기르기까지 얼마나 고생을 많이 하셨어요.
수고도 많이 하셨지만, 돈이 또 얼마나 많이 들어갔습니까?
또 내가 공부하는데 도와준 사람들 물질로 도와준 사람들이 많이 있지 않습니까? 전부 내가 빚을 지고 살았어요. 나를 가르쳐준 선생님들에게도 내가 빚을 졌어요. 성장하는데 큰 영향을 받은 사람이다. 또 이렇게 교회를 다니고 하면은 목사님들로부터 사랑을 받고 복음을 듣고 그래서 우리가 교회에서 목사님들로부터 받는 이 은혜라고 하는 거는 이게 돈으로 계산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잘못된 목사님을 만나 면은 이거는 그가 내 영혼을 망쳐놓는 게 되기 때문에 갚을 것이 없는 거예요. 그래서 우리는 부모의 은혜 스승의 은혜를 하지만 더 중요한 건 나라의 은혜를 알아야 되겠다. 특별히 좋은 나라에 사는 사람은 더 큰 은혜를 깨닫고 감사하는 사람이 되어야겠다. 하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우리가 또 무슨 빚을 지고 있느냐 우리는 우리 자식들에게도 빚을 많이 진출해요. 자식에게 무슨 빚을 줬느냐 자식들이 부모에게 빚졌지 그렇지만 자녀들이 부모에게 주는 인생의 행복과 기쁨과 보람이라고 하는 거는 이거는 말로 다 표현할 수가 없는 거죠.
세상이 망하려 면은 자식들을 안 낳아요. 이거는 망하는 세상이에요. 한 나라가 망할 때에도 보면 가장 첫째로 등장하는 게 왕실이 왕실의 자손이 끊겨요 후손이 안 나와요. 그러면은 이 다음에 왕을 누굴 세울까 이것이 큰 숙제거리가 되고 이것 때문에 문제가 터지죠 신하들 사이에서 패가 갈리고 이래 가지고 다툼이 일어나고
그래서 우리가 정말 이 마지막 때에 은혜를 아는 사람 돼야 되는데 이게 빚진 사람들이 있어야 한다. 자 이 빚진 사람이라고 하는 거는 나도 모르게 우리가 다 빚을 잔뜩 치고 지금 살고 있는 거예요.
그러면 예수님은 여기에 대해서 뭐라고 말씀을 하셨느냐
마태복음 5장에 보면은 예수님이 21절부터
옛사람에게 말한바 너희가 살인하지 말라 하는 말을 너희가 들었으나 나는 너희에게 이러면 이 형제에게 노하는 자마다 심판을 받게 되고 형제에게 라가라(바보)하는 자는 공회에 잡혀가게 되고 미련한 놈이라 하는 자는 지옥 불에 들어가게 되리라 이런 말씀을 하시고
그다음에 제단의 예물들이다가 형제에게 원망 들을 만한 일이 있는 것이 생각나거든. 예물은 거기다 두고 먼저 가서 형제와 화해해서 화목하게 되고 그다음에 와서 예물을 그려라 또 이 살인에 대해서 이게 다 살인에 대한 설명입니다. 살인에 대해서 하나 더 추가하는 것은 혹시 길에서 너를 송사하는 자를 만나거든. 어떡하라고 그랬어요. 급히 사과하라 그렇지 않으면 그가 너를 재판관에게 관리에게 넘겨주고 재판관이 너를 어떻게 한다고 그래요. 감옥에 가두게 돼. 왜? 이게 빚진 거죠.
그러면서 예수님이 결론적으로 하시라는 말씀이 너희가 남김없이 다 갚기 전에는 결단코 거기에서 나오지 못하리라 우리가 빚진 거는 다 갚아야 됩니다. 이 빚진 거를 다 갚는다?
이게 얼마나 어려운 말이에요. 마지막 때가 되면 사람들이 빚을 져놓고 도망가잖아요.
마태복음 18장에서 예수님께서는 임금에게 만 달란트 빚진 사람에 대한 비율을 이렇게 얘기하시면서 어떤 사람이 왕에게 만 달란트 빚을 쳤는데 왕을 찾아가서 사정을 하고 꼭 갚겠습니다. 조금만 말미를 주십시오. 하고 그냥 제발 제발 해대니까 왕이 사람을 불쌍히 여겨 가지고 다 탕감해줬다 그래 안 갚아도 된다. 가서 돈 열심히 벌고 열심히 일해서 돈 벌어가지고 내 자식들 잘 먹여 살리고 행복하게 살아라 왕의 입장에서는 그까짓 거 만 달러한테 있거나 없거나 백성 한 사람에게라도 자비를 베풀어 가지고 백성 하나라도 행복하게 만드는 사람 임금의 은혜에 감격하면서 살아갈 수 있는 사람 만드는 것이 이게 더 중요한 거잖아요.
그런데 그 사람이 기분이 좋아가지고, 돌아가다가 자기에게 백데나리온 빚진 사람을 만난다. 그래서 멱살을 지고 너 잘 만났다. 너 언제 갚을 거야. 빨리 당장 내 돈 갚아라 그랬더니, 이 친구가 더 막 제발제발하죠. 제발 내 사정 좀 봐달라고 해 가면서... 하 이렇게 비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놈은 돈 받아내려면 감옥에다 가둬버려야 된다. 그래 가지고 사람을 감옥에 다 처넣었다 어떤 사람이 이 사실을 알고 임금에게 가서 고자질을 했습니다. 그러니까 임금이 말을 듣고 용서해 주었던 관리 다시 불러가지고 너 이놈 내가 너의 빚 일만 달란트를 탕감해 주었는데 니 친구가 백데나리온 빚진 것도 탕감해 주지를 않고 그거를 감옥에다 넣었다 내가 너에게 용서한 탕감한다고 한 거 나 취소 전에 내렸던 명령은 취소다 다 갚아라 그리고 이 사람을 감옥에다가 쳐 넣어버렸다 하는 것입니다.
자 그래서 이 말씀 속에서 내가 말하려고 하는 거는 빚지면 감옥에 들어가야 된다. 이게 첫째, 포인트예요. 우리는 웬만큼 빚져 가지고야 감옥에다 그렇게 넣겠어요. 백데나리온이라고 하는 돈은 얼마나 되는 돈이냐 한 노동자가 100일 동안 하루 일한 품삯이 한 데나리온이니까. 백데나리온은 100일 동안 일한 품삯이에요.
예수님 당시에는 백데나리온이라고 하는 그런 돈 가지고도 잡아서 감옥에 넣을 수가 있었다는 얘기죠 그러니까 빚이라고 하는 거는 반드시 갚아야 된다. 자 그런데 우리 성경은 우리에게 뭐라고 하느냐 빚을 반드시 갚아야 된다고 하는 것을 가르치시는 이면에는 더 중요한 의미가 있거든요. 우리 주기도문에서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 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시옵소서 이런 기도가 있는데, 이 말을 우리말로는 죄지은 자라고 얘기를 했어요.
그런데 영어 성경을 보면 영어 성경은 하나같이 똑같은 말로 번역을 했습니다. 죄가 아니에요. 뭐라고 그랬습니까? 영어 성경은 이것을 죄라고 그러질 않고 빚이라고 했다.
우리가 우리에게 빚진 자를 사해 준 것 같이. 다 탕감해 줬대. 우리의 빚을 다 탕감해 주시옵소서 지금 이런 기도를 하라고 주님께서 가르쳐주신 것입니다. 마태복음 6장 9절에서 13절까지 주기도문인데 주기도문 13절에 끝나고 14절 15절에서 너희가 너희에게 죄지은 자를 사하여 줄 것 같으면 하나님께서도 너희의 죄를 사하여 주실 것이오 너희가 너희에게 죄 지은 자를 용서해 주지 아니하면 하나님께서도 너희의 죄를 용서하지 아니하실 것이다.
이렇게 다시 한 번 경고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이 말씀을 깊이 생각을 해야 돼요. 빚이라고 하는 거는 죄로구나 그러므로, 우리가 호리도 남김없이 갚아야 한다는 말씀은 죄라고 하는 것은 하나님과 나와 사이에서 첫째는 하나님과 나 사이에서의 관계고 둘째는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의 관계인데 이거 전부 갚아야! 이 문제를 해결하라고 하는 거예요. 그래서 하나님 앞에는 어떻게 하면 됩니까?
철저히 회개해야 합니다. 하나님 잘못했습니다. 진심으로 하나님 앞에 회개하면 하나님께서 용서 하신다 그러면 사람 앞에서 지은 죄에 대해서는 어떻게 합니까? 그거는 가서 회개해야 되겠죠. 내가 당신에게 이렇게 큰 죄를 지었습니다. 용서해 주세요. 용서를 받아야 돼요. 그런데 사람들은 용서를 안 해 주죠. 용서를 안 해줘요 어떻게 해야 됩니까? 그러면 당신이 어떤 벌을 내리시든지 내가 달게 받겠습니다. 그래서 벌을 달게 받는 모습을 보면 사람은 마음의 감동이 일어나요? 뻔뻔한 인간이니까. 얄밉고 그래서 더 벌을 주려고 하는 거지
벌을 달게 받겠다고 하는 사람에게는 그 사람도 용서하고 벌주는 거를 감해주고 하겠죠.
마찬가지 하나님 앞에서도 우리가 죄는 용서받았어도 벌은 받아야지만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하느냐 빚진 거는 내가 지금은 당장은 갚을 돈이 없어서 못 갚지만 나중에 내가 돈을 벌게 되면 꼭 갚겠습니다. 갚아야 돼요.
하나님은 그래서 우리가 주기도문에 우리가 우리에게 죄지은 자를 사해 준 것 같이
주여 우리의 죄도 사해 주시 옵소서. 그러니까 먼저 우리가 나에게 죄 지은 사람들을 용서해 주라는 거예요. 아무에게도 원한을 갖지 말고 저는 두고 보자 하는 마음 갖지 말고 남이 나에게 죄를 많이 지어요. 나도 남에게 많이 죄를 지어 마찬가지로 이게 똑같은 건데 그렇지만 먼저 용서해줘라 용서해주면 내가 마음이 편안하다. 이 평안한 마음을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이 평안한 마음을 가지고 살기 원하시는 하나님의 뜻 이것을 깨닫고 우리도 용서하면서 사는 한 해가 되어야 하겠고 하나님 앞에 회개를 잘하는 한 해가 되어야지만 하겠다. 하는 것입니다.
또 성경에는빚보증 서지 말라는 말씀도 이렇게 나오는데
이 말씀이 모세의 율법에는 안 나와요. 하나님께서는 그런 말씀을 하신 게 아니고 이거는 잠언에만 나옵니다. 빚보증을 서면은 너에게 괴로움이 있다. 빚보증 안서면 그냥 평안한데 보증을 서면은 나중에 사람 그 사람이 빚 못 갚을 때에는 내가 대신 갚아야 되니까. 내가 사람한테 매이게 된다. 말이죠. 그렇지만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은 정말 내가 도와줘야 될 사람에게는 도와주는 것이 하나님의 사랑에 맞는 거지 하나님의 사랑을 하나님께 내가 얼마나 큰 사랑을 받고 사는 사람인데 그 사랑을 모르고 남이 남에게 내가 사랑 조금 베푸는 걸 가지고 안 베풀겠다고 하는 거는 하나님께 죄를 짓는 게 되는 거죠.
그래서 우리는 이렇게 빚보증에 대한 것도 오해를 가지고 살지 말고
우리가 사랑을 가지고 살자 그래서 내가 사람 빚보증 서주고 할 때 내가 갚아줄 수 있다.
하는 마음이 있으면 하는 거고, 갚아줄 마음이 없을 때에는 안서는 거 그렇게 되는 거잖아요. 그래서 우리가 정말 하나님 말씀 앞에서 어떻게 바르게 살아가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뜻을 이룰 수 있을 것인가? 이것에 항상 고심하면서 충성하는 일꾼들이 돼야 하겠습니다.
예수님께서 이미 우리의 빚을 우리의 죄를 감해주시고 너희도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가서 이렇게 해라 하고 말씀하셨으니까 그것도 남에게 빚진 것 그것은 반드시 갚고 또 남이 나에게 빚진 것은 우리가 다 용서해 줄 수 있는 이러한 은혜로운 사람들이 되어야지만 하겠습니다. 새해에도 이런 은혜로 우리가 늘 승리하시기를 주관합니다.
■ 느낀 글 : 오늘에 내가 있기까지 참 많은 사람들의 수고와 헌신으로 여기 있다는 생각을 새삼 다시해보는 시간이었습니다. 한 사람이 성장하기까지 하나님의 도우심과 보살피심이 없었다면 과연 그 어떤 미생물인들 자랄 수 있을까... 하나님의 놀라우신 은혜에 감사하는 시간이었습니다. 이 감사가 내 주변에 함께하는 많은 이들에게로 흘러 보내고 함께하는 소통의 시간, 나눔의 시간으로 은혜의 장이 되길 소망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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