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윤원(河允源)은 진주(晉州) 사람이다. 아버지 하즙(河楫)은 찬성사(贊成事)로 치사하고 진주군(晉州君)으로 봉해졌다가 죽으니 아들인 승려 하원규(河元珪)가 화장하였으며 시호를 원정(元正)이라고 하였다.
하윤원은 충혜왕(忠惠王) 말에 과거에 급제하여 전교교감(典校校勘)으로 보임되었다. 공민왕(恭愍王) 때 전리총랑(典理摠郞)으로서 여러 장수들을 따라 경성(京城)을 수복하니 공로를 기려 2등 공신이 되었다. 일찍이 경상도(慶尙道)·서해도(西海道)·양광도(楊廣道)·교주도(交州道) 4도의 안렴사(按廉使)로 나갔고 원주(原州)와 상주(尙州) 2주의 목사(牧使)가 되었는데, 가는 곳마다 명성과 공적이 있었다. 신돈(辛旽)이 권세를 잡자 하윤원은 아부하지 않았다. 신우(辛禑) 초에 대사헌(大司憲)에 임명되고 진산군(晉山君)으로 봉해지자 글을 짓기를, “그릇된 것을 알고도 잘못 판단하면 하늘이 벌을 내린다[知非誤斷 皇天降罰].”라는 8자를 쪽지에 써서 관청에 갈 때마다 반드시 그것을 걸어 놓은 후에 일을 보았다.
모친상(母親喪)을 당하여 여묘살이[廬墓] 하니 신우가 글을 내려 부르기를, “3년 상을 치르는 것이 비록 고금(古今)에 통용되는 제도지만 100일로 상을 끝내는 것도 시세(時勢)에 따라 마땅하니 효(孝)를 충(忠)으로 바꾸어 애통함을 참고 부름에 나오라.”고 하였으나 글이 당도하기 전에 죽었다. 아들은 하유종(河有宗)·하자종(河自宗)·하계종(河系宗)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