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 느헤미야 4장 1- 6절
제목: 변화에 대한 반응과 대응
서언: 지난주에 느헤미야 3장 1절부터 32절까지의 말씀을 통하여 “부분적으고 이어진 몸의
회복”에 대아여 함께 살펴보았습니다. 예루살렘 성은 각자가 부분적으로 맡아서 재건하였
습니다 그 보수하는 것이 각기 달랐고, 그 보수하는 이들의 직업은 각기 달랐으며, 그 보수
하는 일에 참여하는 그 정도가 각기 달랐는데 성경에 그 이름들이 기록되었다는 것은 하나
님께서 기억하신다는 뜻입니다. 성을 보수하는 이들 둥에서 성실하게 보수한 사람은 단 한
사람이엇고 자기 것으로 성을 쌓은 이 역시 단 한사람이었고 500미터나 보수한 사람 역시
단 한 사람이었음을 언급하였으니 그 중에 특별한 사람들이 있었으니 이 얼마나 놀라운가?
예루살렘성은 이어서(next to, after) 재건되었습니다. 이와 같이 우리 몸의 회복 역시 이
어지는 것입니다. 몸의 변화는 한 곳의 변화로만 끝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줍니다.
마음과 몸의 변화는 부분적으로 그리고 이어서 나타난다는 것을 예루살렘의 재건을 통하여
볼 수 있습니다. 오늘은 느헤미야 4장 1절부터 6절까지의 말씀을 통하여 “변화에 대한 반응
과 대응“에 대하여 함께 살펴보고자 합니다:
1. 예루실렘을 재건하기 시작할 때에 외부에서 보이는 현상이 있습니다.
이와 같이 마음과 몸의 변화가 시작될 때 주변의 사람들로부터 여러 가지의 현상이 있습니다.
a. 산발랏은 예루살렘 성멱을 보수되기 시작했다는 것을 듣고서 노하여 크게 분노하였습니다
여러분, 산발랏은 왜 예루살렘 성의 재건에 대하여 그렇게 화를 내었을까요?
그는 예루살렘성이 재건되는 것을 싫어하였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는 왜 예루살렘성의 재건을 싫어하였을까요?
그 이유는 그가 예루실렘 성이 재건되지 않아야 그의 이득과 권세가 유지되기 때문입니다
사탄은 어떠할까요?
우리 혼과 몸의 변화가 일어나면 사탄은 어떠할까요?
산발랏의 말을 들으면 성을 쌓던 유대인들은 어떻게 될까요?
b, 산발랐은 조롱하였습니다.
그가 자기 형제들과 사마리아 군대 앞에서 유대인들을 조롱하면서 어떻게 말하였습니까?
유대인들을 미약한 자들이라고 조롱하였습니다.
미약한 자들이 “무슨 일을 하려 하는가?”라고 말하면서 조롱하였는데 그의 말은 유대인들이 아무
일도 할 수 없다는 말입니다.
“스스로 견고하게 하여는가?”
“희생물을 드리려는가?”
“하루에 일을 끝내려는가?”
“불탄 쓰레기 더미에서 돌들을 내어 다시 살게 하려는가?”(2절)
c. 도비야 역시 모욕하였습니다.
그와 함께 섰다가 도비야는 “그들이 건축하는 돌 성벽은 여우가 올라가도 곧 무너지
리라“고 모욕하고 유대인들을 조롱하였습니다.
이 말을 들으면 유대인들은 어떤 반응을 보일까요?
마음과 몸의 변화를 마귀뿐만 아니라 주변의 사람들도 싫어하여 심지어 크게 화를 내며 조롱하는
반응이 나타납니다.
그때 우리의 대응은 어떠할까요?
2. 예루살렘성의 재건이 시작될 때에 나타난 분노와 조롱에 대하여 느헤미야가 보인 대응은 하나님께 간구
의 기도를 드리는 것이었습니다(4- 6절)
a.“우리가 업신여김을 받았으니 하나님께서 자신의 말을 들어주십사” 하고 간구하였습니다.
그가 하나님께 나아간 것은 자신이 그들의 조롱에 대처할 힘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유대인을) 모욕하는 것을 그들의 머리 위로 돌시도록”
“그들을 내어주어 포로로 잡혀가 탈취물이 되게 해 주시도록”
“주님 앞에서 그들의 불법을 덮어 두지 마시도록”
“그들의 죄를 지우지 마시도록” 하나님께 간창하였습니다
b. 느헤미야는 그 간구의 이유를 하나님께 말씀드렸습니다.
그 이유는 그들이 건축하는 자들 앞에서 주님의 분노를 일으켰기 때문이라“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는 산발랏의 분노와 조롱 그리고 도미야의 모욕이 하나님의 분노를 일으킨 것으로 보았던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하나님의 어떤 말씀도 듣지 아니한 때도 하나님의 분노를 짐작하였던 것입니다.
c. 느헤미야가 이러한 건청을 하나님께 드린 것은 유대인들의 하는 예루살렘 성의 재건을 생각하엿기
때문입니다.
유대인들이 성벽을 건축하여 성벽이 다 연결된 상태였고 그 높이가 절반 정도 수축된 그 이유를
느헤미야는 그 백성 곧 유대인들이 일하고자 하는 생각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하였습니다.
느헤미야가 하나님께 간청한 그 이유는 그 성벽이 다 완성되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들의 분노와 그들의 조롱과 모욕으로 유대인들의 마음이 흔들릴까 하여 하나님께 간구한 것입니다.
그들의 조롱과 모욕으로 일하고자 하는 유대인들의 생각이 사라져 그 성을 완공하지 못할까 하여
섭니다.
우리 마음과 몸의 변화가 시작되기만 하면 외부아 주변의 사람들이 조롱하고 모욕할 때 우리는 어떻
게 대응해야 할까요?
느헤미야와 그 대응이 같을까요?
아니라면 그 이유는 무엇일까요?
아시다시피 우리 마음과 몸은 아무런 힘이 없으니 변화의 시작이 우리 구주 그리스도 예수님의 피와
하나님의 생명으로 시작되었으니 그러한 조롱과 모옥 앞에서 하나님께 간청함과 함께 우리 구주 그리
스도 예수님의 피와 생명을 보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들에 대한 사랑과 축복 그리고 선을 행함과 함께 중보의 기도를 드려야 하지 않겠습니까?
우리의 혼과 몸으로인가요, 아니면 우리 속의 생명으로인가요
첫댓글 https://youtu.be/ZZgFtoIkP_8?si=18VIt9DEVKfPh-6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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