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지수를 잘못짚은
학생인권조례 공격 중단하라
지난 달 18일, 서울의 한 초등학교 교실에서 선생님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안타까운 죽음에 다시 한 번 삼가 조의를 표한다.
교사 개인의 일상이 좌지우지 될만큼 사생활 침해가 심각하고 괴롭힘으로 이어지는 일이 다수 발생하고 있다는 폭로가 이어지고 있다. 이 사건을 계기로 터져나오는 문제점들에 대한 마땅한 해결방안을 모색해야하는 책임자들은 그 원인의 일부를 학생인권조례에서 찾으려는 모양이다. 대통령, 국회의원, 심지어는 교육부장차관까지도 ‘학생인권에 대한 과도한 보장’이 학교현장에서 발생하는 문제의 주된 원인인양 호도하고 있다.
연일 기사를 장식하는 비상식적인 사례의 원인은 교사의 노동환경 보장을 비롯한 기본적인 인권이 보장되지 못하는 구조적 문제이다. 수많은 감정노동자들, 공무원 등이 호소하는 악성민원과 그 행태가 비슷하다. 특히 교실에서는 모든 문제를 교사 홀로 감당해야하는 점에 대한 지적이 꾸준히 제기되어 왔다. 그러나 이번 사건과 계속되는 증언들에 의하면 여전히 반복되는 문제상황에서 교사들은 철저히 고립되어 있다. 지난 7월 25일 전국교직원노동조합에서 재발 방지 대책 수립에 관한 의견조사 결과를 발표하였다. 단 이틀만에 14,400여명의 교사들이 응답하였다. 조사결과에 따르면 응답자의 84.1%가 학교공동체의 지지와 보호체계 부재를 어려움으로 꼽았다. 악성, 과다민원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을 때 도움을 받을 곳은 동료교사의 지원이 65.2%, 도움을 준 곳이 없다는 응답이 28.6%였다. 교사들은 교실에서 서로간의 도움이 아니면 아무런 지원을 기대할 수 없는 형국이다.
이에 교사들이 악성민원과 같은 어려움에서 바라는 대책으로 지목한 것은 가해자 처벌 강화, 학교의 교육방침과 교사의 생활지도권한에 대한 학부모 인식 제고 교육 등, 개인 교사가 아닌 관리자가 직접 민원에 대응하는 제도, 개인연락처를 통한 괴롭힘 방지 제도 등이었다. 교사노동조합연맹과 교육부의 교육활동 보호를 위한 간담회 자리에서는 '학생인권과 교사인권은 서로 존중받아 마땅한 가치임에도 불구하고 양립불가능한 것처럼 논의되는 대책에 반대한다'는 의견이 나왔다. 누구도 학생인권조례의 전면개정이나 폐지가 지금의 교육현장에서 지적되는 문제해결의 단초라 생각하지 않는다.
학생인권조례는 미성년이라는 이유로, 학생이라는 이유로 기본적 인권의 주체로 존중받지 못하는 학생의 존엄과 자유를 보장하기 위해 제정되었다. 누구나 학교에서 차별과 폭력으로부터 자유로워야 한다는 당연한 원칙 실현이 어떻게 교사의 인권을 침해하는가? 오히려 2020년 7월 발표된 자료에 따르면 학생인권조례가 있는 서울, 광주, 전북에서 교사 인권 침해가 줄어든 것으로 나타나기도 했다. 학생의 인권이 보장될 때에만 학교 구성원 모두의 인권도 보장된다. 학생, 교사, 교육공무원, 학부모 등 모든 구성원들이 서로 마땅히 보장받아야할 권리를 진단하고 그에 대한 존중과 신뢰가 바탕되어야 한다. 인권은 총량이 있는 것도, 나눌 수 있는 것도 아니라는 당연한 사실을 다시 한 번 상기한다.
누구도 혼자 남겨지지 않을 학교를 원한다. 고유한 다양성으로 차별받는 학생이 없기를, 괴롭힘적인 상황에서 홀로 감내해야하는 선생님이 없기를 바란다. 교사들의 외침을 학생인권을 찍어눌러서 해결할 수 있다고 착각하지마라. 우리는 학생의 인권이 보장받고 교사의 노동권이 보장되며 부당한 괴롭힘으로부터 학생과 교사 모두를 보호할 수 있는 근본적인 대책을 정부와 교육당국이 내놓을 것을 촉구한다.
2023년 8월 7일
차별금지법제정연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