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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 19,13-15 2004년 8월 14일 성 막시밀리아노 마리아 콜베 사제기념 | ||
13 그때에 사람들이 어린이들을 예수께 데리고 와서 머리에 손을 얹어 기도해 주시기를 청하였다. 제자들이 그들을 나무라자 14 예수께서는 "어린이들이 나에게 오는 것을 막지 말고 그대로 두어라. 하늘 나라는 이런 어린이와 같은 사람들의 것이다" 하고 말씀하셨다. 15 그리고 그들의 머리 위에 손을 얹어 축복해 주시고 나서 그 곳을 떠나셨다. | ||
성 막시밀리아노 마리아 콜베(1894-1941) | ||
폴란드 즈둔스카볼라에서 태어나 라이문도라는 세례명으로 세례를 받은 그는 콘벤투알 프란치스코회에서 막시밀리안이라는 이름을 얻었습니다. 1911년에 유기서원을 하였고,1917년 천주의 성모 동정 마리아에 대한 효성으로 ‘성모의 기사회’라는 신심단체를 설립하였습니다. 1918년 로마에서 사제서품을 받고 폴란드로 귀향하여 ‘성모의 기사’를 창간하였습니다. 1927년 와르소 근교에 무염성모의 마을을 세웠는데, 이런 마을을 일본과 인도에도 세웠습니다. 독일이 폴란드를 침공할 때 1941년 2월 27일 그는 게슈타포에 의해 체포되어 아우슈비츠 노동수용소에 감금되었습니다. 어느 날 막시밀리안 신부가 있는 감방의 한 죄수가 탈출하였는데, 소장은 한 사람이 탈출하면 그 감방의 20명을 아사 감방으로 보낸다는 방침을 발표한 적이 있습니다. 다으 말 아침 점호시간에 아직도 찾지 못하여 그 감방사람들은 태양 아래서 쓰러져가고 있었습니다. 막시밀리안 신부는 “성모님과 함께라면 못할 일이 없다‘하면서 버티었습니다. 오후3시에 10명을 우선 선발하여 아사감방으로 보내는데, 그는 끌려가는 어떤 기혼자의 절규를 듣고 그 사람을 대신하여 자신이 아사감방으로 들어가기를 청하여 허락을 받았습니다. 그는 끌려가면서 ”남의 모후, 나의 주님, 나의 어머니, 오 원죄 없으신 동정녀여, 당신은 약속을 지키시는 분이십니다. 나는 이 시간을 위해 태어났습니다” 하였습니다. 그는 죽어가는 사람들을 위로하면서 끝까지 남으니, 성모승천축일 전날 석탄산 주사를 주어 사랑의 제물이 되었습니다. 그는 1930년 8월 31일 부산을 지났는데 “원죄 없으신 성모님께서는 언제나 이렇게 아름다운 나라를 다스리실 것이며, 거룩한 당신 아들 나라를 세우실 것인가!”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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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식 몬시뇰 강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