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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1 야구는 펜스로 둘러싸인 경기장에서 감독이 지휘하는 9명의 선수로 구성된 두 팀이 한명 이상의 심판원의 주재 아래 규칙에 따라 치르는 경기이다.
1845년 <뉴욕 니커보커 클럽> 알렉산더 카트라이트가 최초의 야구규칙을 제정한 이후 136년이 넘도록 '야구는 9명이서 한다'는 야구규칙의 첫장 첫줄은 변하지 않았다. 그러나 야구는 9명이서 할 수 있지만 ‘팀’은 그보다 많은 선수를 필요로 한다. 왜냐? 투수는 매일 던질 수 없고 타자는 매번 잘 칠 수 없기 때문이다.
여기 9명의 선수를 구성하기에도 어려웠던 팀이 있다. 선수자원은 고사하고 선수자체가 부족해 해체 위기까지 몰렸던 정식 고교야구팀이 있다. 60년 전통을 자랑하는 부산 부경고(구 경남상고)가 그랬다.
60년 전통의 부경고 야구부
부경고는 1945년 11월 14일 부산제일 공립상업교로 개교했다. 1953년 교명을 경남상고로 바꾼 뒤 반세기동안 부산상고와 함께 부산을 대표하는 명문 상업계 고교로 발전했다. 2004년 9월 일반계 고교로 전환 확정하며 지금의 부경고로 교명을 변경했다. 그래서인가. 아직도 부경고와 경남상고가 같은 학교인줄 모르는 이들이 많다. 그 만큼 경남상고가 많은 이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기 때문일 것이다.
과거 경남상고가 유명했던 이유는 명문 상업계 고교인 까닭도 있었지만 야구부의 역할이 무척 컸다. 부경고 야구부는 1948년 창단해 올해로 60년째를 맞는 전통의 명문이다. 좋은 선수들도 많이 배출했다. 강성우(삼성 코치), 차명주(전 한화), 장문석(KIA), 곽재성(전 롯데), 김사율(롯데), 이택근(현대), 김건덕 등 유명 선수들이 이 학교 출신이다.
그러나 1986년까지는 오랜 역사에 비해 실력에서는 그저 그런 팀으로 평가받았다. 전국대회 우승은 고사하고 부산고, 경남고 등 지역 강호들에 밀려 전국대회 본선에 오르기도 힘들었다. 중학교 유망주들도 경남상고하면 고개를 흔들었다. 1987년 안병환(LA 다저스 한국 담당)코치가 감독으로 취임하며 그러한 편견을 사라졌다.
안 감독은 감독에 오르자마자 팀플레이를 강조했고 선수들을 강훈련으로 단련시켰다. 곽재성은 “입에서 단내가 날 정도가 아니라 숨이 넘어갈 만큼 고된 훈련을 받았다”며 “강훈련이 거듭될수록 모래알 같던 팀워크가 절묘한 팀플레이로 발전했다”고 회상했다.
그해 화랑기대회에서 부경고가 우승을 차지했을 때 야구관계자들이 깜짝 놀라기보다 고개를 끄덕인 건 어쩌면 당연한 반응이었다. 그러나 당시만 해도 부경고의 우승은‘우연’이라는 평가가 많았다. 게다가 화랑기는 전국대회가 아니었다.
1991년 대통령배대회에서 창단 첫 전국대회 우승을 차지한 부경고 |
4년이 지난 1991년 부경고는 또 한 번 우연과 만났다. 하지만 이때는 누구도 ‘우연’이란 단어를 입에 올리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이해 부경고가 대통령배, 청룡기 두 대회 우승기를 연달아 거머쥐며 고교 최강팀으로 우뚝 섰기 때문이다. 이때야말로 부경고가 창단한 이후 최고 전성기를 달리던 시절이었다.
부산지역 야구소년들은 하늘색 유니폼에 독일군 병정처럼 굳게 입을 다문 채 연습에만 몰두하던 부경고 야구부원들을 동경하게 시작했고 어느새 부산고, 경남고 못지않은 인기 고교야구팀이 됐다.
부경고는 이후 1994년 김건덕(부경고 코치)의 고군분투에 힘입어 황금사자기대회 결승까지 올랐지만 아깝게 준우승에 머물렀다. 그 뒤 별다른 활약을 보이지 않다가 1998년 김사율(롯데)의 맹활약으로 7년 만에 대통령배대회 우승기를 다시 흔들 수 있었다.
12명 미니야구단
그로부터 10년이 지난 2008년 6월 초순. 부경고를 방문했을 때 운동장에 깔린 고급 인조잔디에서 시선을 뗄 수 없었다. 언제부터인가 초· 중· 고교 운동장이 맨땅에서 인조잔디로 탈바꿈하고 있다. 과거 잔디라곤 구경도 할 수 없는 맨땅에서 슬라이딩 캐치를 하던 야구소년들은 이제 추억 속으로 사라지고 있다. 변한 건 그것만이 아니었다. 부경고 야구부의 위세도 예전에 비해 많이 쇠퇴했다.
“원래는 14명인데 가용인원은 총 12명이다. 3학년이 3명, 2학년 2명, 1학년 7명.” 지난해 연말 부경고 신임 사령탑에 오른 권두조 감독에게“선수들이 몇 명이나 되느냐”고 물었을 때 돌아온 답은 그랬다. 언뜻 팀원이 아니라 한 포지션에서 주전경쟁을 펼치는 선수들이 12명이라는 소리처럼 들렸다.
12명이라면 ‘팀’이라고 보기에도 힘들다. 3학년 3명이 졸업하면 딱 9명만 남게 된다. 동네야구로 전락하는 건 시간문제다. 선수부족은 투수도 예외가 아니다. 부경고의 투수는 단 2명이다. 여기다 두 선수 모두 1학년이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좋은 성적은 꿈도 꿀 수 없다.
지난 3월 황금사자기대회 예선 첫 경기에서 제물고포에 1-8 로 지며 바로 짐을 쌌지만 서울땅을 밟은 것만으로도 수확이다. 지난해는 서울에 올 일이 거의 없었다. 지역예선을 거치지 않는 봉황대기대회를 제외하고 다른 전국대회는 그림의 떡이었다.
권 감독은“솔직히 말해 같은 고교야구팀이라고 해도 부산고나 경남고에 비해 우리팀은 중학교 야구팀 수준”이라며 부경고의 실력을 냉정하게 평가했다. 이어“선수부족은 부경고만의 문제가 아니다”며“부산 고교야구가 벼랑 끝에 몰려 있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부산지역 초등학교 야구팀은 2008년 현재 6개교다. 이 가운데 대한야구협회에 등록된 선수는 93명이다. 1990년대 초반만 해도 12개교에 200명가량의 야구소년들이 ‘제2의 최동원’혹은 ‘제2의 김민호’가 되기 위해 학교 운동장을 누볐다. 그러나 지금 부산에서 초등학교 야구부원을 찾는 건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중학교 야구팀은 초등학교 팀보다 1개교가 적은 7개교다. 등록선수는 128명으로 전해에 비해 5명이 줄었다. 특히나 128명 가운데 1학년이 28명으로 전해와 비교해 11명이나 감소했다. 이는 중학교 진학 전 야구를 그만두는 초등학교 선수들이 그 만큼 많았다는 걸 의미한다.
부경고 야구부원들. 야구에겐 이들이 희망이고 이들에게 야구는 절망일 수 있다. |
야구를 비롯한 구기 종목은 조기교육이 중요하다. 특히나 배워야할 기술이 많고 기술습득 시간이 오래 걸리는 야구는 늦어도 초등학교 5학년부터 중학교 2학년 사이에는 시작해야한다는 게 야구관계자들의 중론이다.
구도(球都)부산의 야구소년들이 점차 줄어드는 이유는 무엇일까. 저출산과 인구유출은 부산도 예외가 아니다. 게다가 ‘돈이 많은 드는 스포츠’로 알려진 야구보다 축구, 농구를 선호하는 측면도 무시할 수 없다.
지난해 부임한 뒤 권 감독은 선수영입에 공을 들였다. 서울과 호남지역을 바쁘게 오가며 꿈나무들을 찾아 나섰다. 올해 1학년 7명은 권 감독이 영입한 선수들이다. 권 감독은 “1학년생들이 3학년이 될 때 부경고의 부활이 가능할 것”이라며 유명 내야수 출신 감독답게 “수비에 중점을 둔 기본기 야구를 선보일 예정”이라며 포부를 밝혔다.
부경고의 목표
부경고는 지난해 해체직전까지 갔다. 선수수급이 어려운 탓도 있었지만 야구부 내 잡음이 없지 않았다. 그러던 것이 총동창회와 후원회가 합심해 권 감독을 영입하며 야구부 활성화로 방향을 다잡았다.
롯데 명내야수 출신의 부경고 권두조 감독 |
코치진도 전 청소년대표 출신의 김건덕(33)을 영입해 권 감독의 투· 타 지도를 보좌하도록 했다. 전 KIA 배터리코치였던 정인교(51)씨를 수비 인스트럭터로 활용하는 참신한 시도를 하기도 했다. 아마추어 야구에서 타격, 투수 인스트럭터는 흔했지만 지금껏 포수와 수비를 지도하는 인스트럭터는 거의 없었다. 이유는 있다.
부경고는 투수만큼이나 포수가 취약하다. 포수라고는 2학년생 최봉천이 유일하다. 최봉천은 타격과 인사이드 워크는 좋으나 송구능력이 떨어지는 게 약점이다. 최봉천이 얼마나 성장하느냐에 따라 부경고의 미래가 달라진다.
올해 부경고는 김동준(17), 홍성무(17) 두 투수의 어깨에 희망을 걸어야 한다. 오른손 투수 김동준은 최고 구속 135km의 속구와 포크볼이 장점이다. 무엇보다 185cm.78kg의 뛰어난 체격이 인상적이다. 김건덕 코치는 “체중을 좀 더 늘리고 슬라이더 제구를 확실히 잡는다면 초고교급 투수가 될 것”이라며 “마운드 위에서 늘 자신감 있게 던지는 게 1학년생 투수 같지 않다”고 제자를 칭찬했다.
왼손 투수 홍성무는 부경고에 입학한 뒤 투수수업을 받았기 때문에 아직 이렇다 할 특징이 없다. 1년이 채 안된 투수경험치고는 제구가 좋다는 게 김 코치의 생각이다. 최봉천과 김동준이 착실히 성장한다면 내년 부산지역 고교팀 사이에서 돌풍을 일으킬 만하다.
부경고 김건덕 코치(사진 왼쪽부터)가 김동준과 홍성무의 투구폼을 지도하고 있다. |
부경고의 목표는 당연히 좋은 팀을 만드는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단순히 전국대회 우승을 뜻하는 건 아니다. 야구계가 부경고를 주목하는 이유는 따로 있다. 권 감독 영입 뒤 부경고는 새로운 실험을 통해 새로운 고교야구부의 대안을 제시하려 준비 중이다.
부경고의 실험. ‘돈 안 드는 야구’와 ‘공부하는 야구’
부경고는 공립고다. 따라서 사립고와는 달리 학교 지원이 거의 없다. 대개 공립고 운동부는 감독을 비롯한 코치 임금에서부터 합숙훈련, 제반 경비 등 각종 야구부 예산을 전액 학부모들의 회비와 총동창회, 야구부 후원회의 지원금에 의지하는 형편이다. 상황이 이런지라 일부 고교 야구부에서는 학부모들이 부담해야할 금액이 너무 커 큰 부담이 되기도 한다.
부경고도 시스템은 다른 학교와 다르지 않다. 야구부 운영비 대부분을 회비와 후원금으로 충당한다. 그러나 학부모들의 경제적 부담이 적다는 게 다른 학교와 다른 점이다.
부경고 야구부원들의 1달 회비는 20만 원이다. 합숙훈련비, 대회참가비 등 여타 경비가 따로 들어가는 달에만 30~40만 원으로 늘어난다. 그래도 다른 고교야구팀과 비교하면 꽤 저렴한 비용이다.
부경고 야구부원 학부모들. "아이들이 좋아하는 야구를 계속 할 수 있으면 좋겠다"는 게 학부모들의 유일한 바람이다. |
한 학부모는 “회비가 과외비보다 훨씬 적게 든다”며 “과외해서 공부로 대학에 입학하나 야구를 통해 대학에 가나 결국엔 큰 차이가 없다면 돈이 적게 드는 야구를 시키는 것도 나쁘지 않은 선택”이라고 말했다.
현재 부경고 선수들은 회비를 제외한 장비와 숙식비 일체를 공짜로 지원받고 있었다. 야구부 후원회의 막강한 지원 덕분에 가능한 일이다.
부경고 야구부 후원회는 30여명의 졸업생들로 이뤄졌다. 이들이 십시일반 돈을 거둬 1년에 1억 원이 넘는 지원금을 전달하고 있다. 예전부터 부경고 졸업생들의 모교 사랑은 유명했다. 몇 년 전에는 최신식 기숙사를 지어 학교에 기증하기도 했다.
‘돈 안 드는 야구’는 결과적으로 성적은 둘째치더라도 야구부에 더 많은 학생들이 몰리게 하는 등 긍정적인 측면이 많다. 요즘 들어 부산고, 경남고행을 고려했던 상당수 중학교 선수 학부모들이 부경고를 고려한다는 소리가 들리고 있다.
‘돈 안 드는 야구’는 야구부 내 잡음을 사전에 제거하는 효과를 내기도 한다. 선수기용문제로 갈등을 빚는 학부모와 감독의 그 흔한 대립을 부경고에서는 찾아볼 수 없다. 회비의 많고 적음에 따라 학부모들 사이의 이해다툼이 발생하기도 하지만 부경고에는 이마저도 과거사가 됐다.
부경고 야구부원들은 기본적으로 오전수업을 들어야 한다. 권 감독은 “야구선수 이전에 학생인 만큼 기본적 소양을 갖추기 위해선 반드시 수업을 들어야 한다”며 “고교 야구부는 야구기계를 만드는 곳이 아니라 야구직업교육을 하는 곳이니 만큼 건전한 직업인으로서의 품성과 교양을 쌓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학부모와 감독 사이의 잡음 그리고 구타가 사라진 부경고는 눈에 보이지 않는 성적에선 상위권이다. |
권 감독은 미국으로 야구유학을 간 적이 있다. 그때 미국 고교야구팀의 운영을 눈여겨봤다. “미국 고교야구부는 1, 2, 3학년으로 나눠 따로 경기를 한다”며 “1학년 가운데 실력이 좋은 선수는 2, 3학년 팀에서 뛰고 반대로 3학년 중에서 실력이 떨어지는 선수는 1, 2학년 팀에서 뛰는 등 선수 눈높이에 맞는 관리를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선수부족으로 몸살을 앓고 있는 부경고에서 미국 고교야구팀의 운영을 참고하기엔 무리가 있다. 그러나 권 감독은 머지않아 선수들이 보강되면 반드시 미국 고교야구팀의 운영방식을 도입해볼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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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비운의 투수 김건덕선수가 코치로 있는것으로 압니다.. 분발하셔서.. 좋은성적 내면 좋겠따..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