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워도 너무 춥다.
게다가 바람마저 불어대니
더 이상의 강행은 무리다 싶어
일정을 하루 앞당겨 돌아왔다.
아버지와 아들 단 둘만의 여행.
항상 그려왔던 순간이었다.
그러나 아직은 어린 7살 밖에 되지 않은
아들놈과의 여행이었기에
준비도 많았고 걱정도 있었다.
아무튼 큰 맘 먹고
천안 독립기념관을 향해 출발했다.
기차 안에서
대학시절 85학번이
처음으로 답사를 주도했던 것이
충남이었던가 충북이었던가
가물거리는 기억을 더듬는다.
답사 당일
그간 고쳐지지 않았던
코리안타임을 근절하기 위해
아침 아홉시 정각
답사버스는 시청앞을 출발했었다.
단 1분도 기다려주지 않고 말이다.
그날 저녁
우리가 묵고 있던 여관으로
84학번 여학생 둘이 경찰의 도움으로 도착했다.
10분 정도 늦게 약속장소에 나왔다나 어쨌다나.
하여간 포기하지 않고 따라온 열정만큼은...
옛 기억을 뒤로 하고
앞으로의 일정을 정리했다.
제 1일
독립기념관(점심)→ 온양민속박물관(저녁)→온양온천(1박)
제 2일
아산 현충사→솔뫼성지(천주교성지:점심)
→충북 괴산군 도안면(곡산 연씨 사당 및 종가)
→충주(저녁 및 2박)
제 3일
충주호(배타고)→ 단양(단양8경:점심)
→ 기차타고 영등포 도착
대충 이렇게 일정을 정했다.
아들놈 생각해서 최대한 천천히 진행하기로 했다.
겨울이라 이것 저것 챙기다 보니
짊어진 배낭이 제법 무겁다.
천안역에 내려
한참을 기다려서 버스(1,300원)를 타고 독립기념관에 도착.
매표소에서 전시관까지 꽤나 멀다.
찬바람이 세차게 분다.
평일이어서인지 우리 밖에 없다.
“와~ 장영실이 만든 물시계다!”
나의 손을 놓고 빠르게 달려간다.
‘흠~녀석 괜찮은데...’
식당을 찾았다. 모든 식당이 문을 닫았고
한 곳이 영업중이었지만,
한쪽에선 공사중이고 니스 냄새가 진동을 한다.
난방도 되지 않는다. 떨면서 점심을 먹었다.
시작부터 기분이 엉망이다.
한무리의 외국인들이 식당을 찾아왔다가 그냥 나간다.
일단의 가족들도 밖에서 보곤 가버렸다.
인터넷으로 보는 것과는 다르다.
독립기념관! 참으로 웃기는 곳이군...
식사후 제1 전시관부터 관람시작.
아들놈 이것 저것 질문을 쏟기 시작했다.
도대체 어떻게 설명을 해야 할 지...
일본, 빼앗긴 나라, 고문, 독립운동 등등
그로서는 이해하기가 너무나 어렵다.
“왜 대한민국을 뺏겼는데?”
“그건, 사람들이 공부도 안하고 맨날 놀기만 해가지고
힘이 없어서 그래...”
시작부터 어렵다. 최대한 그의 눈높이에 맞췄지만
쏟아지는 질문에 그저 허둥대기만 할 뿐이다.
시간을 재촉하는 나에게
“아빠~ 저건 아직 안봤어. 여기도...”
나의 손을 잡아끈다.
전시관 입구마다 무슨 설문조산지 갤럽인지
나의 앞을 가로막았다.
할 수 없이 조사에 응하여 설문지를 보니 가관이다.
꽤나 차원높고 양도 많다.
시설,직원태도...역사의식에 도움이...프로그램...
“직원은 만나보지 못해 모르겠고...역사의식은 다 못봤고...
프로그램은 뭐가 있는지 모르니...그만 둡시다. 내가 답할 수 있는게 없네요.”
4장 째를 답하다가 그만 둬버렸다.
제3 전시관에서 아들놈 지쳐버렸다.
이후 대충 구경하고
버스정류장으로 향했다.
배낭의 무게가 어깨를 짓누른다.
버스는 20분마다 1대씩 온단다.
탁트인 정류장 너무 춥다.
천안 터미널에서 다시 온양(아산)행 버스를 탔다.
차 안엔 아직도 은은한 시골냄새가 남아있다.
“아빠 냄새가 너무 지독해.”
온양박물관을 지나쳐 온양역에 도착.
여관을 찾았다.
30여년 전에 아버지와 함께 와본 곳인데
시설들이 너무나 낡았다.
겨우 그나마 깨끗한 여관을 찾아내어
“방 따뜻합니까.”
“글쎄요. 시간대별로 난방을 하기 때문에..”
“그럼 안되지요.”
1시간을 넘게 온양을 헤매다 포기하고 말았다.
‘온양온천은 이제 죽은 곳이군.’
아들놈 떨고 있는 것 안스러워 택시를 탔다.
“아산온천으로 갑시다.”
온양온천을 대신하여 새롭게 뜨는 곳?
산 속에 많지는 않았지만 여관(모텔)들이
불야성을 이루고 있다. 생긴지 6~7년 됐단다.
제일 괜찮아 보이는 곳을 골라 체크인.
보통은 4~5만원선이라 들었는데
여긴 6만원(평일이고 온돌방이므로)
침대방은 8만원. 온돌이 침대보다 좋은데 희안하다.
시설도 썩 마음엔 들지는 않지만
방도 뜨끈하고 물도 뜨겁다.
저녁을 먹고 이미 늦었기에 온천욕은 포기하고
구경만 하기로 했다.
2일째 아침.
일찍 아들놈 깨워 온천욕을 즐기기로 했다.
아산스파비스!
노천탕에 무슨 테마탕, 대중탕,어린이탕...
별게 다있네. 마치 부곡하와이 같다.
아들놈 성화에 수영복 빌려입고
거금 25000원(대인)을 내고 입장했다.
제법 괜찮은데.
특히 노천탕은 마음에 든다.
평일이라 사람도 많지 않고.
겨울에 수영복입은 아가씨들을 다보고 ㅎㅎ.
세시간을 넘게 뛰어노는 아들놈 때문에
하릴없이 여기저기 헤매다
점심 먹자는 핑계로 간신히 밖으로 나왔다.
아들놈 삐졌다.
버스시간 때문에 포장마차에서
어묵,삶은 달걀, 핫도그로 허겁지겁 때우고
정류장으로 달려갔다.
버스가 1시간에 한대이기에 놓치면
또 시간을 까먹는다.
여관에서 알려준 시간보다 10분 늦게
버스가 왔다. 입이 삐죽이 나온 아들놈
추워서 덜덜덜 떤다. 그래도 입으론
“이게 여행이지 뭐. 그치 아빠.”
“응, 맞아.”
현금 950원, 승차권은 930원.
버스를 타고 다시 온양으로.
온양에서 승차권 구입 현충사로 향했다.
아들놈 입장에서(어쩌면 일반인들도)
아무 볼거리 없는 현충사!
허허 벌판이다.
“아빠 뭐 볼꺼야?”
그래도 그 추위에서도 그놈은 잘도 떠들고 논다.
현충사에서도 세시간을 군말없이 나와 함께 돌아다녔다.
가끔 구경온 쌍들이 눈에 띈다.
방명록을 보니 결혼 10주년, 33주년.
방명록엔 채 10명도 되지 않은 사람들이 다녀갔다.
아들놈에게 조금은 미안했다.
다시 버스를 타고 오후 4시에 온양역에 도착.
이미 아산온천에서 시간을 다 써버린 관계로
일정을 수정해야 했다.
일단 식사(점심겸 저녁)를 하고.
뉴스에서 연일 추위가 계속된단다.
오늘 솔뫼는 가야하는데...
고민이 시작되었다.
바람만 안불어도...
나의 욕심이 지나쳤나보다.
마냥 즐겁게 밥을 먹고 있는 아들놈 보면서
이쯤해서 포기하고 돌아가기로 결정했다.
아직은 무리인가 보다.
가는 날이 장날이라더니 날씨까지 이 모양이니.
녀석의 기억엔 오직 아산온천만이 있을 것이다.
녀석은 스스로는 느끼지 못하지만,
나는 느낀다. 조금씩 역사에 눈을 뜨고 있다는 것을.
네 살 때부터 매년 박물관에 데려갔지만
갈 적마다 조금씩 반응이 달라지고 있다.
이제 종교에도 눈을 뜨게 하고 싶다.
그래서 솔뫼를 보여주고 싶다.
솔뫼는
나의 수도생활을 그만두게 한 결정적인 계기를 제공한 곳이다.
80년인가 81년인가 솔뫼성지 기공식이 있는 날.
전국에서 엄청난 가톨릭 신자들이 모였었다.
내가 몸담았던 프란체스코 수도회에서도
소속 신자들과 함께 갔었다.
아직 도로도 제대로 나있지 않아
약 4km 정도를 걸어가야했다.
나와 젊은 수사 한명이
할머니 한분을 부축하여 길을 재촉하고 있었다.
지나가던 타지의 신자들이
우리를 보고 욕을 하고 지나간다.
“젊은 놈들이 업고 가야지. 요즘은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혀를 차고, 째려보면서 마침내 옆에 와 한마디 하는 사람도 생겼다.
붉어진 얼굴을 제대로 들지도 못하고 우리는 땅만 보고 걸었다.
대전 목동성당의 신자들은
우리가 가면 모두가 길을 비켜준다.
수사님이 먼저 가셔야지 어떻게 자신들이 먼저 가느냐면서...
신자들은 우리를 보고 그런 것이 아니라
우리가 입고 있는 수도복을 보고 길을 비키는 것이다.
그 할머니도
처음부터 한사코 업히지 않았다.
부축도 받지 않으려 했다.
어떻게 수사님들한테 그럴 수 있느냐면서.
간신히 을러고 달래고 해서
겨우 부축이라도 할 수 있었는데.
타지의 신자들은 그 내용을 모른다.
우리가 수도복을 입고서 할머니를 부축해 갔더라면
어땠을까.
반응들이 달랐을까.
나의 생각엔 그랬으리라 여겨진다.
결국 수도복이란 하나의 허상에 의해
우리의 위상이 결정된 것이다.
나는 나의 아들을 성당에 데려간 적이 없다.
허상을 어렸을적부터 몸에 배이게 하고 싶지 않다.
서서히 종교를 느껴가게 하고 싶다.
스스로 깨닫게 하고 싶다.
그래서 솔뫼를 택한 것이다.
하긴, 그것도 허상일지 모르겠다.
아무튼, 다음으로 미뤄야겠다.
녀석을 신경쓰느라
나도 힘들었지만
아들놈은 무척이나 힘겨운 여행이을 것이다.
계획한 일정대로 다 이루진 못했지만.
나는 절반의 성공으로 자리매김하고 싶다.
이제 곧 초등학교에 들어간다.
8살이다.
좀 더 나은 모습으로 나와 함께 세상을 돌아볼 수 있으리라.
나의 아버지가 외국에서 몇 년에 한번 귀국하면
언제나 나를 데리고 여행을 갔었다.
이제 나도 그렇게 하고 있다.
아들에게 넓은 세상을 보여주고 싶다.
버스타고 기차타고 배타고 걷고...
첫댓글 부럽다 증말 부러버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