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의 대표적 화랑인 갤러리현대가 지난 10월 기획한 전시 《가상선》전(展)은 45세 이하 작가들을 중심으로 내세웠다. 7명의 출품 작가 중 출신 대학(학부 기준)으로 봤을 때 서울대나 홍익대는 홍익대 서양화과를 나온 이용백이 유일했다. 갤러리현대가 지난 2월 기획한 《Do Window》전은 젊은 작가의 등용문이랄 수 있는 전시였다. 이 역시 10명의 작가 중 서울대나 홍익대 출신은 안두진과 이상원 두 사람에 그쳤다.
한국 미술계의 양대 산맥으로 꼽혀온 서울대와 홍익대 출신 작가들의 활약이 주춤하면서 타 대학 출신 작가들의 활약이 두드러지고 있다. 오랫동안 두 학교 출신들이 학계는 물론 작가로서 전시와 작품 판매를 독식하다 싶을 정도였지만 이제는 양상이 달라져 '학벌 파괴'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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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갤러리현대가 지난 2월 기획한《DoWindow》전의 전시장 내부(위)와 10월에 마련한《가상선》의 전시장 외부 전경.45세 이하 작가를 중심으로 한 두 전시에서 서울대와 홍익대 미대 출신 작가들의 참여가 과거만큼 활발하지 않았다./갤러리현대 제공
해외 아트페어나 해외 옥션에 진출하는 젊은 작가들이 늘어나는 것도 학벌 파괴 현상을 가속화시키고 있다. 가나아트의 이호재 회장은 "홍콩 경매에서 인기를 얻는 작가를 보면 서울대나 홍익대가 아닌 다른 학교 출신들이 많다"면서 "해외 시장에서는 톡톡 튀는 아이디어를 보여주는 작가를 선호한다"고 말했다. 이런 현상은 홍콩 크리스티 등 해외 옥션과 아트페어 등에서 고가에 작품이 팔려 스타로 부상한 김동유(목원대)를 비롯해 홍경택(경원대) 강형구(중앙대) 등에서 볼 수 있다.
다른 대학 미술대들의 적극성 역시 서울대와 홍익대 미대의 '정체'를 두드러져 보이게 한다. 울산대는 1년에 2차례 졸업전시를 열고 있으며 하반기 졸업전시는 해외에서 갖는다. 울산대 미대에서 열고 있는 특강에는 서울뿐 아니라 국내외에서 활약하고 있는 내로라하는 작가와 교수·전문가를 불러들이고 있다. 이들 대학 교수들은 또 각 대학 학생들이 실력을 겨루는 《아시아프》 참여를 독려함으로써 학생들에게 자극을 주고 있다. 한남대 신영진 교수는 "학생들과 내년 아시아프를 함께 준비하기로 했다"면서 "아시아프에 참여하는 것 자체만으로 학생들에게 용기와 경험을 준다"고 말했다.
이에 비해 서울대와 홍익대는 일류 대학이라는 명성에 안주하여 교수들의 적극성이 부족하다는 지적이 많다. 독립 큐레이터인 김성원씨는 "서울대와 홍익대 미대 교수들은 21세기 미술이 어떻게 변하고 있는지 모르고, 알고 싶어하지도 않는 것 같다"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홍익대의 한 교수는 "일부 교수는 자기가 가르치는 대로 따르지 않고 튀게 그리는 학생은 점수를 제대로 주지 않는 등 권위적인 게 사실이다"라면서 "'더 이상 홍대에서는 훌륭한 작가가 나오기 힘들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심각하다"고 털어놓았다.
서울대의 한 교수는 "서울대가 과거만큼 미술계를 선도하지 못하고 있다는 세간의 평은 사실이다"라면서 "변화를 시도하려고 해도 옴짝 못하게 하는 제도도 문제"라고 말했다. 홍익대 학장을 지낸 신상호 전 교수는 "서울대와 홍익대같이 중요한 대학이 전체 미술대학에 미치는 영향은 굉장히 크다"면서 "이 두 대학의 변화가 시급하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