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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주굿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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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산(三山)돌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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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내림굿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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솟을굿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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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사굿(신사맞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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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무과정(신애기) 3개월~6개월 |
성무과정 1년~3년 |
성무 |
무당사회에서 ‘성무’라 지칭하는 시점은 어느 시기를 기준 하는 것인가. ‘성무’란 타인에게 신을 내려 신아들이나 신딸을 거느리거나, 단골들이 형성되어 무교 집단의 수장이 되었을 때 이를 지칭한다. 그러나 굿판에서는 성무라는 용어는 사용되지 않는다. 성무는 선생 혹은 신부모에 가깝기 때문이다. 따라서 성무는 입무와 성무과정을 소화하고 최소한 굿판을 혼자서 연행 할 수 있는 무당이며, 청배 문서를 갖고 있는 무당, 3년~5년 이상 무업을 수행한 자이다. <표-1>에 나타난 굿 종류는 반드시 거쳐야 되는 무당 개인의 굿 순서이다. 신사굿까지의 과정을 마쳐야 비로소 절차상 완전한 성무가 되는 것이다. 그러나 여러 가지 이유로 허주굿과 삼산돌기를 생략하고 바로 신내림굿을 하는 경우가 있다. 성무의 기준은 연구자마다 다를 수 있다. 그러나 무당에게 신사맞이(꽃맞이굿)을 한다는 것은 어느 정도의 원숙기라고 할 수 있다.
신내림굿은 입무과정에 있어서 세 번째 통과의례이며, 내림과정이다. 세 차례의 내림으로 신의 좌정이 끝나는 것은 결코 아니다. 세 차례에 걸쳐 좌정된 신이 몸주신과 밀접한 관계성을 가지며, 앞에서 말한 ‘원천’과 밀접한 관계를 갖는다. 이러함에도 신내림굿에만 초점을 두는 것은 산을 보지 않고 나무만을 보는 것과 같은 이치와 같다.
허주굿에 관한 기존의 간략한 연구는 김금화씨의 내림굿판을 다룬「황해도 내림굿」이다. 또한 김매물 만신, 유옥선 만신의 허주굿 연행을 다룬 『한국의 굿』에서도 나타난다. 그러나 이전부터 허주굿이 존재해 왔음을 김금화씨는 자서전에서 “나는 2월에 몸에 뜬신, 잡신을 벗겨내는 허주굿을 받고 여기저기 따라 다니며 굿 구경을 했다.”라고 밝히고 있다. 김매물 만신 역시 허주굿에 관하여 이야기한다. 『경기민속지』에 허주굿의 무가를 소개하고 있다.
내가 처음 굿판을 다닐 때가 1970후반~80년대까지는 허주굿을 거의 다했어. 절차나 법도를 모르는 선생들을 만나서 굿을 하면 바로 내림굿을 하게 돼, 내림굿을 받는 사람의 상황에 따라서, 김금화 선생도 경우에 따라서는 허주굿, 내림굿, 솟을굿을 한꺼번에 할 때도 있어... 왜 너랑 있는 상장구도 잘 알아, 그때가 처음 굿 배운다고 돌아다닐 때 많이 봤을 걸.(이명진)
허주굿은 옛날부터 했지, 허주를 벗기고, 말문을 여는 굿인데, 무당이 될 건지 아닌지를 보는 거야. 말문이 트이면 무당이 되겠다 안되겠다 알 수 있잖우, 그리고 신가물이라두 무조건 내리는게 아니라 허주굿을 해보고 말문이 트이고, 성수를 받아들이면 내림굿(솟을굿)을 하는거지, 무턱되고 내림굿을 하나 안하지. 허주굿에서는 걸립을 하지 않아요, 점상달래기는 해두, 말문이 트이고 신이 올라서 춤추다가 아무집이나 가서 점상 뜨러왔다 그러면 그 집에서 있는 상을 주는 거우, 그러면 그것으로 굿 점상을 하지, 빈상을 보내지 않아.(김정숙)
허주굿과 내림굿, 솟을굿을 한꺼번에 하는 경우는 최근에 생긴 일이다. 무계에 따라서 준비단계에서 다소 차이는 있으나 허주굿은 내림굿 이전에 치르는 통과의례로서 이미 오래전에 진행되어 왔음을 김금화, 김매물, 김정숙, 박인겸 등의 황해도 구 만신들의 채록 자료를 통해서 확인할 수 있다.
‘서울의 정식 입무제라고 하는 것도 허주굿, 내림굿, 집신굿의 세 단계로 분화되어 있다’라고 밝히고 있지만 서울굿(한양굿)의 경우 허주굿을 하지 않는다. 지금은 내림굿에서 허주굿을 대신하여 ‘고풀이’라는 것을 연행하면서 ‘허주쳐내기’를 행한다. 고풀이는 높이 올린 신대에 오색 천을 꼬아 말아 놓고 그것을 하나씩 풀면서 신명을 받는다. 고풀이를 하는 제자가 처음 잡은 오색 천(색깔)을 보고 신줄기를 확인한다. 적색의 천은 산신, 파란 천은 장군, 흰색 천은 천신, 노란색 천은 조상, 녹색 천은 서낭으로 판단하며, 경상도지역에서는 녹색 천을 용궁으로 여긴다.
서울지방의 ‘허주쳐내기’는 제자가 될 자를 밖을 보고 엎드리게 하고 오방기로 온몸을 덮는다. 그리고 바가지를 머리에 씌운다. 부정을 씻어내기 위해 조, 콩, 수수 쌀, 콩 등의 잿밥을 제자에게 쳐내듯이 던져서 허주를 쳐낸다. 다만 제자가 될 사람이므로 칼을 쓰지 않는다.
허주굿을 하였더라도 무당으로서 정식으로 무업을 시작하는 것이 아니다. 신 엄마 옆에서 무당이 되기 위한 준비 기간을 갖는다. 이 기간 동안 기도하는 법, 점사 보는 법, 치성 드리는 법, 초하룻날이나 보름날 같이 특정한 날에 기도하는 법, 무당으로서의 예법, 굿 절차 등을 포함한 문서들을 배우고 습득하여 온전한 무당으로서 무업에 대비하는 시간을 갖는다. 굿판에서 활동하고 있는 구 만신들의 채록에 의하면 “허주굿을 하고나서 신부모의 집에서 시집살이를 최소한 3년 이상 했어, 지금 시대가 빨라져서 모든지 앞당겨서 한다.”는 이야기를 들을 수 있다.
4. 신 가려내기와 신맞이
앞에서 밝혔듯이 허주굿은 여러 경로를 통해 신을 모시겠다고 정한 후에 제자가 되는 첫 굿이며 그 사람이 지니게 될 많은 신들을 가려내는 굿이다. 다시 말하면 모실 신과 단순히 내림굿판에서 놀려서 보낼 신을 구별하는 것이다 다른 용어로는 ‘신갈이굿’, ‘가리굿’이라할 수 있겠다. 그러나 근래에는 내림굿을 하여 신을 모시긴 하였으나 자신의 신을 잘못 받아들였을 때 다시 굿을 하여 신을 가려보는 것을 ‘가리굿’이라고도 한다.
허주굿의 중요한 행위는 2가지이다. 하나는 헛된 주인을 몰아내는 ‘허주벗기기’ 혹은 ‘허주쳐내기’이며, 둘째는 허주를 벗기고 나서 진행되는 ‘신가려내기’이다. ‘신가려내기’라는 것은 제자가 신당에 모시는 신과 그렇지 못한 신을 구분하는 것을 뜻한다. ‘신당에 모신다.’는 의미는 몸주신(무당의 주신)과 여러 주변 신을 함께 모신다는 뜻이다. ‘몸주신’의 역할은 제자에게 국한되어 모든 사항을 관장하고 이끌어가는 신격을 말한다.
대부분의 신선생들은 허주굿을 거행하는 이유가 허주 벗기기도 중요하지만 잘 불릴 제자인가를 판가름하는 굿이라고도 말한다. 또한 재수굿이나 병굿 등 본래의 허주굿을 거행하려고 의도한 것은 아니지만 결과적으로 허주굿이 된 경우가 조사 과정을 통해 적지 않음을 확인 된다.
허주굿의 특징은 여러 상징이나 행위가 다른 이의 눈치를 보려는 가식적인 행위와 거짓된 공수(발설)없이 거침없이 진행된다는 것에 있다. 신이 오시는 모양대로, 느끼는바 그대로 발설과 행동을 하는 것이다. 자칫 이러한 제시가 신내림 굿에서 이루어지는 것과 같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굿판에 참여한 신애기은 언제나 거침없는 행위와 발설을 한다. 허주굿이든 삼산돌기를 하든 신이 온전히 좌정될 때까지 이와 같은 행위를 반복하는 것이다.
허주와 ‘신갈이’에 관한 내용은 무당의 쓴 자서전에 잘 드러난다. 신명기 만신은 “엉터리 가짜 무당은 떠나라”고 자서전에 쓰면서 제대로 된 무당을 만들기 위해서 허주굿에서 행하는 ‘신갈이’의 중요성을 밝히고 있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신갈이가 내림굿이후에도 횡행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어느 정도 시기가 지난 제자에게 ‘가리굿’은 허주를 벗기는 의례가 아니다. 그 굿을 감수하는 제자의 ‘신줄’을 교체하는 굿이 아니라 신부모와 더불어 형성된 ‘신맥’을 교체하는 굿이다. 대부분 허주굿을 제외한 성무가 되는 과정에서 별도로 행하는 ‘갈이굿’의 이유가 신 선생을 다시 만났을 때 한다. 일종의 제자와 신선생의 '합의굿'인 셈이다.
몸주로 모셔진 신격이외에 좌정된 여타의 주변 신은 ‘몸주신’이 할 수 없는 여러 사항들은 협력하여 이루게 하는 ‘합심의 협동체’를 의미하는 개념이다. 전지전능한 신을 몸주로 모시는 무당은 없다. 그러므로 여러 신들을 아울러 모시는 것이다. 허주굿은 몸주신과 ‘합심의 협동체’를 모시는 최초의 과정이며, 신갈이는 몸주신을 지정하는 첫 과정이다. 따라서 허주굿에 관한 연구는 신내림의 순서를 밝히려는 것이 아니라 신체가 된 제자의 몸에 신이 내리는 처음 상태를 밝히는 연구이다.
허주굿의 과정을 밝히려는 것은 내림의 온전함을 찾을 수 있으며, 일반적인 내림굿과의 변별성을 찾는 작업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허주굿을 행하는 자들의 관념적인 인식은 ‘무당으로 예정된 사람은 무당이 되기 이전에 이미 신의 영향을 받는다.’는 것에서 출발한다. 무업에 영향을 미치는 신의 직능이나 위치, 혹은 귀신이라 할지라도 그것은 입무 이전에는 중요한 변수가 되지 않는다.
신맞이의 내림과정은 허주를 벗기고 모실 신과 보낼 신을 구분하는 ‘신가리’를 동시에 수반하는 과정이다. 처음 신을 맞이하는 것은 길고 지루한 상황을 연출하는 것이 대부분이다. 따라서 순조로운 ‘신맞이’를 위해 아래의 내림과정이 진행되어야 한다. 이러한 내림과정이 뒤따라야 수월하게 첫 말문이 열리는 것이다. 신을 모신다는 것을 단순히 접신 혹은 빙의의 과정으로 인식하고 있다. 그러나 접신이 되어서 인간의 몸에 신이 좌정하는 단계는 매우 복잡한 양상을 가진다. 객체(신)에게는 인간의 몸에 강압된 ‘내림’이지만 주체인 무당에서는 의도된 ‘신맞이’이다
<표-2> 내림과정의 단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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神明풀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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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모으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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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명받기 (神命,神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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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놀리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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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명닫기 (神命,神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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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모시기 |
강압된 ‘내림’과 의도된 ‘신맞이’에는 반드시 신명풀이가 필요하다. 신명풀이는 인간의 부정된 육신을 신이 좌정할 수 있도록 신체로 만드는 정화의 기능을 담당한다. 신의 신체로 만들기 위해 주체인 무당은 연희 목적의 신명을 풀어내는 것이 아니라 ‘의도된 행위’로 신명을 풀어낸다. ‘의도된 행위’라고 지칭하는 이유는 일반적인 신명풀이가 갖는 인간의 본성을 풀어내는 자연스러움이 아니기 때문이다.
내림과정에 첫 단초를 제공하는 신명풀이는 ‘사로잡힘의 과정’에 가깝다. ‘사로잡힘의 과정’이라고 하는 것은 상황에 대한 몰입과 망아, 나와 존재를 확인 할 수 없는 ‘나’가 혼재하는 상태를 말한다. 방향성 없이 들어오는 환청과 같은 ‘신의 소리’와 현존하지 않으나 눈에 선한 ‘환영(幻影)’들이 중첩되는 상태이기에 이성으로는 판단 할 수 없는 자각의 공멸(共滅)이 지속되는 혼돈의 상태이다. 그러나 이러한 혼재와 환청, 중첩의 상태가 그리 쉽게 일어나는 것은 아니다. 이러한 혼돈 상태는 사례조사에 잘 나타나 있으며, 내림굿을 하기 전까지 그 상태는 반복적으로 일어나는 것으로 조사된다.
신맞이 원리인 내림과정의 단계는 허주굿에서 최초로 진행되는 과정이며 빠짐없이 이루어진다. 내림과정은 입무에서 성무과정에 이르는 동안 행해지는 신도의 개인 굿에서도 이루어진다. 그러나 개인 굿에서의 내림은 허주굿에서 나타나는 ‘내림과정의 단계’가 아니라 별도의 ‘접신과정의 단계’로 진행된다. 왜 별도의 접신과정이 일어나는 것일까, 개별 굿거리의 신격은 몸주신이 아닌 거리를 관장하는 신격이기 때문이다. 접신과정을 내림과정과 비교하여 설명하면 다음과 같다.
<표-3> 접신과정의 단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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神明풀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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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모시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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神命받기 (공수내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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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놀리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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神命닫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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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보내기 |
위의 ‘접신과정’은 몸주로 모시는 신의 좌정(신모시기)과정이 생략된다. 신명풀이 다음으로 신을 모시는 것은 일반적인 몸주가 아니라 개별 굿거리를 관장하는 신격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오신(娛神)을 목적으로 모셔지는 것이기에 당연히 보내는 과정이 필요하다. 이와 같이 내림과 접신은 용어적 의미는 같으나 과정이 다르며 모셔지는 신격도 다르다.
다시 말하면 좌정이 이루어지는 현상은 ‘내림과정’이고, 단순히 청신․오신․송신의 개념인 것은 ‘접신과정’이라고 한다. 내림․접신과정의 첫 단초를 제공하는 것은 신명풀이이다. 신명풀이를 통해 신명(神名, 神命)받기가 이루어진다. ‘신명받기’란 신의 이름(名)을 받는 것과 신이 내린 이유(命)를 받는 과정을 의미한다. 허주굿에서는 이러한 신명받기가 명확하지는 않는다. 허주굿은 ‘벗기기’와 ‘가려내기’를 중점적으로 연행하는 통과의례이기 때문이다.
허주굿의 의례절차는 “① 일월맞이 ② 산천맞이③ 초영정/초감흥④ 영정물림”까지는 일반적인 굿의 절차와 같다. 따라서 ⑤ 신갈이거리를 별도로 소개한다.
<신가리 거리>
가. 신명 구분하기
모실 신과 보낼 신을 갈이는 거리이다. 일월맞이를 끝내면 칠성신의 무복, 신장신의 무복, 장군신의 무복 등의 옷을 차례로 입힌다. 그리고 다시 일월맞이대를 들거나 소창을 들게 한다. 그리고 다시 신을 받아 보라고 한다. ‘일월맞이대’가 흔들리거나 소창을 들고 격렬한 춤을 추면 신 선생과 제자의 문답이 반복되어 진행된다. 분명한 이유가 있는 신명을 찾는 거리이기 때문이다. 단순한 이유를 발설하는 신명의 경우 잘 드시고 가시라는 축원을 한다.
대개의 경우 조상이 와서 모셔주기를 원한다. 그때 신선생은 분명한 이유를 제자에게 묻는다. ‘도와주러 왔다거나 돈 많이 벌게 해주겠다.’라는 단순한 신명을 밝히는 거나, 모셔야 할 분명한 이유와 계율을 밝히지 못하면 모시기 않는다. 신선생은 “하실 말씀 있으시면 마음 놓고 하세요”라고 묻자 제자가 노려보면 말했다. “제기랄, 잘 불려 먹어라”(차선희)라고 답하자 참석한 모든 사람들은 대소하였다.
나. 7 그릇, 혹은 9 그룻 열기(녹타기)
그릇에 들어가는 내용물은 ⓐ물 ⓑ쌀 ⓒ콩 ⓓ돈 ⓔ팥 ⓕ여물 ⓖ뜸 물 ⓗ잿물 등이며 숫자의 순서대로 허주굿 당사자의 향후 무당 생활을 가름하는 방법으로 선택된다. 허주굿 당사자는 잘 불린다는 의미를 가진 ‘돈(화폐)’이 담긴 그릇을 열기 바라지만 신 선생들은 달가워하지 않는다. 그 이유로는 제자는 잘 불리나 돈을 밝히는바 선생과 문제가 발생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에서 ⓕ번까지는 긍정적인 의미를 갖는다. 나머지는 부정적인 의미를 가진다. 물과 쌀은 맑게 불리고 큰 무당이 된다는 것이며, 콩은 노적을 상징하나 어렵게 풀린다는 의미이다. 팥은 상문, 잿물과 뜸 물은 허주굿은 했으나 아직 허주가 다 벗겨지지 않았거나 허주굿에 부정이 있음을 의미하여 가장 안 좋은 것으로 여긴다. 이러한 경우 후에 신내림굿에서 다시 신갈이 거리를 하게 된다. 그러나 무계마다 그 의미의 해석에 있어서 조금씩 다르다.
다. 잿밥 넘기기
조, 콩 그리고 삼색을 썰어서 조밥을 만든다. 조밥을 작은 광주리에 얹고 머리에 이고 아홉 방위 방향으로 제자가 하고 싶은 지점에 당도하면 머리 뒤로 넘기는데 아홉 번을 반복한다. 만약 광주리를 뒤로 던졌을 때 뒤집어지면 허주가 먹지 않았다고 여겨 다시 한다.
라. 물베 바치기(물베 담그기)
항아리에 물을 담고 제자가 사용할 베를 그 속에 넣어 곰방대로 누른다. 누를 때 올라오는 물방울의 크기나 방울방울 올라오는 속도 등의 현상을 보고 앞으로 제자가 잘 불릴지, 아니면 고생을 할지를 판단하는 근거가 된다. 축원은 먼저 제자에 관계된 주소, 이름, 나이 등을 고하고 축원한다.
“사해용왕, 동해용왕, 북해용왕,‥ 명진주, 복진주, 금진주, 은진주, 외길진주, 불릴진주, 많이많이 돋아줘요, 진주많이 돋아줘요. 물베 바쳐 알아봅시다.”라고 축원하는데 잔잔하게 물방울이 올라오면 천천히 불릴 것이며, 방울이 크고 빠르게 올라오면 잘 불릴 것이라고 덕담을 한다.
신가리거리 이후 나머지 과정인 칠성제석거리에서 뒷전까지는 일반적인 굿(재수굿)과 같다. 여러 명의 제자를 내린 신 선생들은 제자가 될 가물에게는 굿을 보여주지 않는 것이 좋다고 한다. 그 이유는 굿을 많이 구경해본 사람일수록 신의 감응이 늦고 의심을 많이 하며, 신을 내리는데 힘이 든다고 한다.
실제 현장에서 확인해보면 제자의 발설이 수월하게 이루어지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장위동 만신 사례처럼 답답해하는 신선생의 심한 욕설이 듣는 것이 다반사이다. 처음 신내림을 받는 제자들은 정말 신이 오는가에 모든 신경이 곤두서있다. 따라서 신선생은 신이 왔음을 확인함에도 제자가 받지 못하면 그 이유를 들어 혼내곤 한다.
장위동 만신은 “신도 제자 성격 따라 내린다. 신도 제자가 다스리기 달렸다. 조상은 신과 다리를 놔준다.”고 하면서 “요즘엔 제자들이 신을 받을 때 신이 하나에서 열까지 다 말해주는 것으로 알고 있어서 탈이다.”라고 말한다. 반포 만신은 “허주굿은 굿당에 칼도 들고 나오지 않는 것”이라면서 말 그대로 “제자를 맑게 정화시키고 가리는 굿”이여야 한다고 강조한다. 허주굿에서 미비한 점이나 ‘신갈이 거리’에서 문제가 있었던 부분이 있다면 신내림굿에서 다시 신갈이를 한다.
허주굿을 통해서 내림받은 신명을 살피면 강득선의 경우 “하얀 느낌의 신령님”이라하였고, 차선희는 “할머니, 외조 할머니”라 하였으며, 박금자는 “대신할머니”라 하였다. 서원말 박수는 “천지신명, 천지신명, 괘씸한 놈, 끓어라 끊어라.”라고 발설하였다. 이러한 발설은 허주굿에서 대동소이하게 나타난다. 한 두 마디의 상징적이며 뜻 모를 내용을 발설하는 것이 정상적이다. 허주굿에서 신명을 분명히 확인하는 것은 불가능한 경우가 많다. 그러나 그 진위를 판단하는 것은 신선생의 몫이다. 내림의 진위를 파악하는 방법으로는 ‘발 뛰는 모양새’로 판단하거나 ‘오신 모양대로 행동하는 것’으로 1차 판단을 한다. 2차 판단은 제자와의 문답으로 확인한다.
Ⅲ. 삼산돌기의 신명받기와 신의 좌정
삼산돌기(삼산밟기)는 세 곳의 정기 있는 산을 도는 과정이다. 신명(내림)을 받기 위해 산에 가서 치성을 드리는 행위이다. 신명을 받는 것은 허주굿부터 이루어지지만 보다 정확히 확인하는 것은 삼산돌기 과정에서 이루어진다. 허주굿에서는 몸주신이 당도한 것만을 느낄 수 있다. 그러나 삼산돌기는 절차상 굿의 개념은 아니지만 실제로 무당 자신에게 오신 신을 정확히 확인하는 최초의 과정이다.
삼산(三山)을 도는(밟는) 행위는 신명받기를 위해 명산에 올라 허공에서 내림을 받는 것이다. 산을 밟는 것은 종교 수행자가 순례를 도는 이치와 같다. 신 선생에 따라 차이는 있으나 대체적으로 ‘삼산을 돈다.’ 혹은 ‘삼산을 밟는다.’라고 한다. 전대의 만신(무당)들은 ‘산문받이’라 하여 본인의 본향 산에 가서 산의 정기를 받거나 신내림 현장에서 가장 가까운 명산에서 ‘산신의 문’을 여는 행위를 했다.
삼산을 정할 때 2가지로 구분되는데 신 선생의 본향에 위치한 가장 큰 산과 신 제자의 본향 산, 드리고 결혼한 제자의 경우 남편 또는 부인의 본향 산을 도는 경우와 이러한 본향 산을 중심하지 않고 만신(무당)의 신맥과 통하는 지역의 신령스러운 곳을 방문하는 것이다. 예를 들면 대관령 국사성황당, 강릉 여 서낭당, 지리산 등 국내의 이름 있는 산과 서낭이라고 칭하는 곳을 방문하여 기도 및 치성을 드리는 방식으로 이루어진다.
삼산돌기 과정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은 각 지역의 이름난(정기 서린)서낭을 방문하는 것이다. 신명받기 과정에서 서낭을 도는 이유는 신이 거주하는 거처의 대문 구실을 하기 때문이다. 누군가의 집을 방문했을 때 대문 밖에서 본인의 존재를 알리듯이 무업의 시작을 알리고 이곳에 왔음을 고하는 뜻이 담겨있다. 서낭을 방문하는 것을 ‘서낭돌기’라고 한다. 서낭은 신이 거주하는 거처의 대문 구실을 한다. 신선생들은 서낭문이 열려야 잘 불린다고 강조한다. 서낭돌기는 ‘누구누구가 제자가 되었으니 잘 불리게 도와 달라’는 의미이다.
삼산돌기를 통해서 이루어지는 신내림은 앞으로 무업으로 삶을 영위해야하는 무당의 몸주신의 신명과 신격을 정확히 모시는 과정이다. 허주굿이 끝났다 할지라도 온전한 신의 좌정상태가 아니다. 무당과 신이 다른 객체로 혼재하기 때문이다.
삼산돌기를 통해 받은 신명과 신격에 따라 보여 지거나 상대방을 읽혀지는 바도 다르다. 예를 들면 무언가 투영되어 보인다하고 하여 ‘눈으로 보는 형’, 또는 눈앞에 있는 것 같은 착각을 가진다는 ‘착시형 제자’라고 하는데 조상이나 그 사람의 과거, 현재, 미래에 대한 예언이나 제시가 스크린에 투영되는 것 같다하여 그렇게 부른다. 그 조상이나 과거의 행적, 미래의 사항을 눈으로 엿보듯이 발설하는 제자를 뜻한다.
다음으로는 상대방의 조상이나 신당에 들어선 사람의 상태를 그대로 느껴서 그 아픔을 동시에 느끼고 발설(發說)한다는 의미로 ‘몸으로 받는 형’, 직접 체험한 것 같다하여 ‘체험형 제자‘라고 말한다. 후자인 경우 손님에게 더 사실적으로 받아들이는 경향이 있다.
‘조상형’제자는 첫 내림을 받을 때 조상에서 신에 문을 연 제자를 뜻한다. 삼산돌기를 진행할 때 조상에서 먼저 ‘앞녕 선’ 제자를 말함이다. 앞에서 밝힌 착시형이나 체험형과는 다른 특이성을 나타내는데, “변화가 많다”라고 제자를 여럿 둔 신 선생들은 지적한다. 변화라는 것은 행동을 가늠하기 어렵다는 것과 표정이나 점사를 볼 때, 신내림 굿거리를 연행할 때, 갑자기 우유가 먹고 싶다고 한다거나 그 우유를 먹고 ‘졸립다’고 자는 바람에 굿을 중단하는 등, 조상형의 제자는 예측이 불가능 하다는 것이다.
‘몸으로 받는 형’은 조상의 죽음에 관하여 몸으로 느낀다. 예를 들면 물에 빠져 죽음을 당한 조상이 있다면 무당의 몸이 차갑게 변화거나 ‘닭살’이 돋는 등의 현상을 가져온다. 또한 현재의 상태 역시 몸으로 받는다. 예를 들면 배가 아프다거나, 다리가 저리거나 쑤신다거나 하는 등의 현재의 몸 상태를 본인이 아픈 것처럼 받는 것이다.
그러나 무당들은 한 계통의 형질을 갖는 것은 아니다. 좌정 단계에 따라 그 속성이 바뀌거나 동시에 지니는 경우가 발생한다. 왜 동시에 지니게 되는 것인가. 배보살은 “三神의 도를 터야한다.”라고 한다. “어떤 제자라 할지라도, 처음에 어느 신이 오시더라도 차례로 삼신(천신, 산신(지신),용신)의 도를 터야 큰무당, 큰 만신이 됩니다. 처음 산신의 도를 받았으면 열심히 기도해서 그 도를 자기 것으로 만들고, 다시 천신의 도를 받고, 용신의 도를 받으세요.”라고 누누이 신 자손들에게 하던 말이다. 즉 제자인 신애기의 지속적인 분발을 요하는 말이며 그러한 일을 수행하는 것이 무당의 길임을 강조하는 말이다. 또한 앞서 말한 바와 같이 ‘신맥’에 의해 동시에 지니게 되는 경우가 있다.
삼산돌기의 과정은 개별 제자마다 다르게 나타난다. 서원말 박수는 태백산과 지리산, 그리고 관악산을 돌아서 신내림굿을 했고, 별성만신은 대관령의 국사성황, 태백산, 지리산을 밝은 다음 내림굿을 했다. 최보살은 대관령 국사성황, 강릉 서낭, 태백산, 대둔산 천왕봉을 거쳐서 내림굿을 했다. 강박수는 태백산, 문무대왕릉, 서울삼각산을 돌았다. 이와 같이 제자에 따라 다르게 나타나는 것은 제자의 출신과도 관계있지만 제자 스스로 어디를 가야한다고 지정하는 경우도 있다.
삼산돌기 전에 준비하는 것은 삼베와 일월다래 혹은 칠성다래 천으로 사용할 소창을 구매하여 7번을 세탁한다. 일월다래 천을 사용하는 것은 큰 신을 모시기 위해서이다. 신을 모실 제자는 육식은 금하여 소식소찬(小食素饌)한다. 또한 향을 담근 물에 목욕하여 늘 부정이 없도록 준비한다.
삼산돌기는 제(祭)를 올리는 과정이 아닌 까닭에 일반적인 굿의 절차가 아니다. 오로지 신명을 모시기 위한 축원 치성이다. 신을 받아들이기 위한 기도정성인 까닭에 경으로 주로 축원하며 그 축원이 끝나면 장구와 징의 지속적인 울림 속에서 애동 제자의 상태를 확인한 신 선생은 제자와의 문답을 통해 신명이 올곧게 오셨는지를 판가름 한다. 그리고 신이 내리는 하명(下命)이 무엇인지, 그 뜻을 확인하고 정상적이지 않다고 판단되면 울림을 반복한다. 신명받기를 위한 개별 절차는 부정물리기, 신명축원, 강림축원의 순으로 진행된다. 이러한 축원이 진행될 때 제자가 될 사람은 부채와 방울을 들고 신내림을 기다린다.
허주굿에서는 신명이 분명치 않으나 삼산돌기 과정은 신명의 양상이 분명하게 드러난다. 강득선은 “최일장군, 산신, 산신동자, 부적도사가 오셨다”라고 발설하였다. 차선희는 “학을 타고오신 백옥선관, 백마장군, 오방신장, 하얀 호랑이를 데리고 오신 태백산신, 팔선녀”라고 발설하면서 만 인간에 꽃이 되고 아픈 사람 고치라는 명을 받았다고 한다. 서원말박수는 “12신장, 팔선녀, 12항아리를 채우라”고 하고, 최보살은 “천하장군, 동자 잘 불리게 도와줄게. 우유 줘”라고 하였다.
입무과정에 있어서 허주굿과 삼산돌기의 차이는 무엇인가. 허주굿은 내림과정이 전부 이루어지지만 신모으기와 신명받기만을 중점적으로 진행되는 과정이 삼산돌기의 특징이다. 삼산돌기는 몸주로 모셔지는 신의 명칭과 신의 계율을 정확히 확인하는 과정이다.
삼산돌기를 할 때 신선생들은 가장 긴장한다고 한다. 따라서 모든 부정을 없애고, 정갈하고 정성되게 준비하는 것이기에 그들만이 은밀히 진행된다. 따라서 겉으로 보기에는 무당들이 산에 기도하러가는 것쯤으로 인식 되어왔다.
Ⅳ. 결론
한국 무교를 이해하는 여러 요소들 가운데 입무과정을 연구하는 것은 무당의 자질과 정체성을 규정짓기 때문에 매우 중요하다. 교육자를 기르는 교육이 일반 교육보다 더 중요하듯이 입무굿은 여러 가지 다양한 굿 가운데에서도 굿의 주재자인 무당을 생산하는 굿이므로 더욱 더 중요하다. 어떤 의미에서는 굿중에 굿이자 메타 굿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도 지금까지 입무굿에 중요한 과정인 허주굿과 삼산돌기에 대한 심층적인 연구가 없었다. 오히려 내림굿에 국한된 연구로 인해 한국 무교의 다양한 문화적 층위를 축소시키거나 희석시킨 결과를 가져왔다.
입무과정 연구에서 나타나는 고정관념과 무비판적 수용의 대표적인 사례는 신병양상에 대한 상투적 해석과 신내림굿에 관한 신비주의적 고찰에서 잘 드러나고 있다. 무당을 만드는 입무굿에 대한 현장론적 성찰이 없기 때문에 한국의 굿을 샤머니즘의 동일 범주에 속한다는 인식이 유지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최근의 연구동향이 기존 연구에 대한 비판적 인식과 굿문화의 독창성에 대한 논의가 여러 분과학문에서 활발히 이루어지고 있다.
그동안 주목하지 않았던 입무과정 중 허주굿과 삼산돌기 분석을 통해서 무당의 신모시기인 내림과정을 ‘신맞이’ 원리와 더불어 절차부터 새롭게 해석하였다. 한걸음 더 나아가 무교의 근원이 되는 입무과정을 새롭게 인식할 때 북방 샤먼의 입무과정과 비교함으로서 한국의 무당을 샤먼이라 지칭하는 것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이다.
애동 무당의 기간은 선택이 아니라 신벌의 ‘용서’를 구하는 시간이다. 또한 무당으로서는 큰 고비의 상향점이다. 그 고비를 잘 넘기는 사람은 제자로서 계속 나아갈 것이고, 그 고비를 넘지 못한 무당은 고초를 겪으며 살아갈 것이다.
허주굿과 삼산돌기의 현장은 늘 쉬쉬하며 진행된다. 남에 눈에 띄는 것조차 부정이라고 여기기 때문이다. 강신무의 굿 연행에 있어서 ‘누구누구 본’이라는 채록은 의미가 없다. 늘 현장 상황에 따라 수시로 변화되기 때문이다. 오히려 이러한 지속적인 변화가 무업을 지탱하는 근원이 되기도 한다. 물론 변하지 않는 ‘신의 법도’라는 것이 있다.
무당은 정성을 잘 드리는 것이 법도이며 본분임이 분명하다. 연희를 잘하는 무당과 용한 점쟁이가 무당사회를 대변하는 시대에서, 정성 잘 드리고, 제가의 문제를 잘 풀어내고, 정성스럽게 굿을 잘하는 참 무당이 무당사회를 대변하는 시대가 오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