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력 사건이 발생할 때마다 가해자의 사이코패스 성향 유무에 관심이 쏠린다. 최근 발생한 '신당역 스토킹 살인'의 가해자는 사이코패스 성향이 아닌 것으로 분석됐다. 강력 범죄자라고 모두 사이코패스는 아닌 셈이다.
사이코패스는 소시오패스처럼 '반사회적 인격장애'(Antisocial Personality disorder)로 분류되지만 소시오패스와 차이가 있다. 다만 소시오패스 성향이 강해지면 사이코패스가 된다. 인구 100명 중 1명 이상은 사이코패스로 추정된다.
영화에서 '빌런'(악역)으로 자주 등장하는 사이코패스의 특징은 무엇이며 어떤 범죄자에 해당할까. 현직 경찰과 범죄심리학자의 의견, 각종 보도 등을 바탕으로 정리해봤다.
-사이코패스의 특징은 무엇인가.
▶사이코패스의 특징은 △과도한 자신감 △유창한 거짓말 △남을 잘 속이는 교활성 △냉담한 성격이다. 죄의식과 공감능력이 결여된 '정서적 둔감성' 때문에 매우 차갑고 냉담하며 교활한 성향을 보인다.
프로파일러들은 사이코패스 면담 때 특유의 음산한 느낌을 받는다고 한다. 다만 알려진 것과 달리 사이코패스는 '옳고 그름'을 구분할 수 있다. 히어로 영화 '배트맨'에 나오는 악당 조커처럼 선악 판단 없이 광기에 휩싸인 모습만은 아니라는 의미다.
-사이코패스와 소시오패스는 무엇이 다른가.
▶공감능력과 죄의식이 결여된 '반사회적 인격장애'라는 점은 같다. 다만 사이코패스는 '정서적 둔감성'이 심해 타인과 교류를 잘 하지 못한다.
반면 소시오패스는 일정 수준의 교류를 할 수 있다. 어느 정도 공감 능력이 있고 사회적 애착도 형성돼 있다. 소시오패스는 이익을 위해 본성을 숨기거나 타인의 심리도 이용한다. 소시오패스 성향이 강화되면 사이코패스 단계로 간다는 게 학계의 분석이다.
-어떻게 해야 사이코패스 진단을 받는가.
▶사회적 논란을 야기한 강력 사건이 터지면 경찰은 프로파일러를 투입해 가해자를 면담한다. 면담 과정에서 사이코패스 성향이 의심되면 사이코패스 진단평가(PCL-R)를 한다.
평가는 △대인관계 △감정·정서 △생활양식 △반사회성 등 네 가지 항목을 평가하는 20개 문항으로 이뤄진다. 문항마다 0점에서 2점까지 점수를 매기는 방식이다. 한국은 40점 만점에 25점 이상, 미국은 30점 이상이면 사이코패스로 판정한다.
-경찰은 '신당역 스토킹 살인범' 전주환이 프로파일러 면담에서 사이코패스가 아닌 것으로 판단하고 진단 평가를 하지 않았다.
▶경찰은 21일 브리핑에서 "사이코패스와 스토킹은 양립하기 힘들다"고 밝혔다. 차갑고 냉담한 사이코패스는 누구를 좋아하기 힘든데 스토킹범은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상대에 대한 호감이 병적으로 악화해 스토킹을 한다는 설명이다. 전주환이 특이한 경향을 보여 면담했으나 사이코패스로 보이지 않았다고 한다.
전문가들은 사이코패스를 판단할 때 사회적 관계에만 초점을 맞추면 오판할 수 있다고 지적한다. 2006년 9월부터 2008년 12월까지 여덟차례 연쇄살인한 강호순은 사회적 관계를 단절하지 않았고 주변에 인사성 밝은 사람으로 기억됐다.
공정식 경기대 범죄심리학과 교수는 "사이코패스냐 아니냐를 구분하는 가장 큰 기준은 '정서적 둔감성'"이라며 "사이코패스는 범행 전 상당히 불안해하다가 범행 후 안정적인 생활을 하는 '심리적 냉각기'를 보인다"고 설명했다. 그러다가 다시 불안감을 극도로 느끼면 범죄를 저지르는 반복성이 두드러진다는 것이다.
-강력 범죄자여서 사이코패스로 의심됐는데 아닌 경우가 있었는가.
▶지난해 3월 서울 노원구 아파트에서 세 모녀를 숨지게 한 김태현(26)도 PCL-R 결과 사이코패스가 아니었다. 김태현도 전주환처럼 범행 계획을 치밀하게 세우고 반사회적 성향도 일부 나타냈다. 그러나 사이코패스 기준 점수에는 도달하지 못했다.
-그동안 사이코패스로 진단받은 범죄자는 누구인가.
▶유영철·정남규·이춘재·강호순 등 연쇄살인범이 대표적이다. 특히 넷플릭스 다큐멘터리로 제작된 유영철은 PCL-R에서 한국 범죄자 중 역대 최고점인 38점(40점 만점)을 받았다.
2003년 9월부터 2004년 7월까지 20여명을 살해한 유영철은 훼손한 피해자 사체를 묵은 김치에 버무릴 정도로 잔혹했다. '어금니 아빠' 이영학과 아동 성범죄자 조두순도 사이코패스로 판명됐다. '계곡살인' 범죄자 이은해는 PCL-R에서 31점으로 강호순(27점)보다 점수가 높았다.
-사이코패스는 다 범죄자가 되는가.
▶그렇지 않다. 대표적인 예가 미국 캘리포니아 어바인대학교 제임스 팰런 교수다. 신경과학을 연구하는 그는 살인범의 뇌 구조를 분석하던 중 자신이 사이코패스라는 사실을 확인한다.
그러나 따뜻한 가정에서 자란 그는 아찔하고 험악한 상황을 경험하지 않았다. 자라온 환경이 선천적인 사이코패스 성향을 억제한 경우다. 사이코패스를 어린 시절부터 끌어안고 어루만지는 제도적 안전장치가 필요한 이유다.
이승환 기자
출처: https://www.news1.kr/articles/48095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