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의 버트런드 러셀은“인간성 그 자체로 생각해 볼 때, 부모가 된다는 것은 인생이 제공하는 최대의, 그리고 가장 영속적인 행복을 심리적으로 줄 수 있다”고 말하면서 자식을 통하여 얻는 행복의 가치를 강조하였다.
부모는 무조건적인 사랑과 희생으로 자식을 키운다. 어떤 대가와 보상을 바라며 자식을 키우는 부모는 없다. 또한 자식을 키우면서 행하는 사랑과 희생으로 병들고 지치는 부모 역시 없다. 이는 사랑과 희생을 통해서 얻게 되는 마음의 행복이 육체의 고단함을 치유해주기 때문이다.
자연의 세계에서 인간처럼 나약한 존재가 있을까? 하나의 생명이 세상에 태어나서 자신의 힘으로 일어나 걷기까지 최소한 1년이란 시간이 걸린다. 또한 스스로 먹고 말하고 생명유지를 위한 모든 행동을 몸에 익히고 터득하기까지 수 삼년이 걸린다. 어디 그뿐이랴. 부모의 품을 벗어나 사회라는 세상으로 나가기 위하여 끝없는 돌봄과 학습이 필요한 존재인 것이다.
어린 시절에 집에서 키우던 어미 소가 송아지를 낳는 모습을 본 적이 있다. 어미 소의 몸에서 세상으로 내던져진 송아지는 버둥거리며 힘들게 다리를 일으켜 세우더니 어미의 젖을 문다. 그리고 어미의 초유를 힘차게 먹고는 하루도 채 안되어 걷는다. 생명유지를 위한 최소한의 행동을 연습도 없이 자신 앞에 놓인 삶을 척척 해내는 것을 보고 놀랐던 기억이 떠오른다. 송아지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동물들이 그러한 과정으로 자연스럽게 자라난다. 그러나 인간만이 오랜 시간에 걸쳐 부모의 사랑을 받아야 홀로 설 수 있는 완전체가 되는 것이다.
인간은 작은 가지에서 큰 나무로 성장하기까지 끊임없는 정성과 보살핌이 필요한 존재이다. 그러한 정성과 보살핌의 시간 속에서 건강한 몸과 올바른 사고를 하는 한 사람의 성인으로 성장하는 것이다.
세상에서 가장 영속적인 행복을 가져다주는 자식도 일정기간의 성장을 하고 나면 부모로서의 역할이 줄어든다. 오롯이 자신의 뜻을 세워 스스로의 결정으로 자립을 해야 하는 시기가 다가오는 것이다. 이 시기에 부모로서의 한계를 느끼게 된다. 때로는 절망감에도 빠지게 된다.
나의 두 딸 라니와 리니는 대학을 졸업하고 취업준비생 대열에 합류하여 고용 절벽이라는 거대한 세상에 맞서 싸우고 있는 '대한민국의 아픈 청춘'이다. 학교에서 배운 교과서와 지식들이 과연 사회에서 제대로 쓰임을 할 것인지 체험해 보기도 전에 취업을 위한 스펙 쌓기와 자기 소개서의 무게에 짓눌려 한숨의 세월을 살고 있는 모습을 보면 안타깝기 그지없다.
요즘 청춘들을 '취업','결혼','출산'을 포기한 3포 세대라 부르더니 최근에는 내 집 마련과 인간관계, 꿈과 희망마저 포기한 7포 세대라 일컫고 있으니 엄마인 나도 기성세대로서 죄책감 속에 살고 있다.
그 사회의 현실을 반영하는 책은 베스트셀러가 되는 것일까? 몇 년 전 취업난에 시달리는 청년들에게 큰 위안이 되어 준 <아프니까 청춘이다>에 이어서 <아플 수도 없는 마흔이다>라는 책이 구조 조정과 실업 위기 등 중장년의 아버지 세대를 대변하는 듯 읽혀졌다.
두 권의 책은 우리의 현실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다. 부모 세대와 자식 세대가 일자리를 놓고 서로의 삶이 충돌하고 있는 아이러니한 상황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아이가 자라나 취업을 하여 한 사람의 사회인으로 성장하기까지 끝없는 지원과 경제적 뒷받침을 해주었으나, 이제 자식의 일자리를 위하여 조기 퇴직과 임금 삭감을 종용당하고 있는 사회의 모순을 지켜보고만 있다.
큰 아이가 수능을 보고나서 크게 실망하여 좌절한 적이 있었다. 수능 점수를 본인이 납득할 수 없어하기에 나는 다시 한 번 도전해 볼 것을 권유하고 지지하여 주었다. 왜냐하면 나 또한 대학 입시의 실패와 함께 삶의 지형이 완전히 바뀌어버린 쓰라린 체험을 직접 겪어 보았기 때문이다.
나는 그 시절 꿈을 포기하고 현실을 택하였다. 그리고 살아가면서 몇 번이나 돌아보면서 후회하였기에 인생이 재미가 없었고, 삶이 행복하지가 않았다. 내가 주도하는 삶이 아닌 누군가에게 등 떠밀려 살아가는 삶이 되어 버렸기 때문이다.
대학은 인생이라는 무대에 있어서 처음으로 자신이 쓰고 연출해 나가야 할 삶의 2막을 준비하며 꿈을 펼쳐나가기 위한 연습 무대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자신이 납득하지 못하는 대본을 가지고 어찌 만족스런 무대를 연출할 수 있겠는가. 멀고 먼 인생의 길을 걸으며 자신의 무대의 막이 내릴 때까지 첫 번째의 선택이 혹시 잘못되지 않았는가를 후회하면서 뒤돌아보는 삶을 살게 하고 싶지 않았다.
큰 아이에 반해 작은 아이는 담담히 자신의 현실을 인정하고 대학을 선택하였다. 재수할 것을 은근히 권하는 나에게 자신은 절대로 하지 않겠다고 주장하였다. 그동안 공부를 지겹게 하였노라며 이제부터는 실컷 놀고 싶다더니 실제로 대학에 들어가서 일 년 넘게 공부에는 관심 없고, 이리 기웃 저리 기웃 그야말로 놀자 판이어서 은근 걱정이 들 지경이었다. 그러나 노는 것도 잠시 2학년 1학기가 끝나갈 무렵부터는 스스로 알아서 공부의 길로 들어서는 걸 보고 한 숨을 놓았던 기억이 있다.
두 아이는 서로 다른 선택으로 대학에 진학하였고, 이제는 서로를 격려하며 사회에 나가기 위한 준비를 하고 있다. 그 아이들도 하루를 보내고 한 해를 보내면서 점점 초조해하는 기색이 역력하다. 친구들의 취업 소식이나 결혼 소식을 이야기 하며 기뻐하고 축하의 인사를 보내는 모습을 보기도 하지만, 때로는 그 내면에 깔려 있는 막연한 불안감이 느껴질 때도 있다. 그럴 때마다 나는 실컷 즐기면서 꿈을 꾸어라. 먼 미래를 위하여 세상을 경험하라고 말하고 싶다. 그러나 그것도 생각뿐 입 밖으로는 말하지 못한다.
현실의 갑갑함을 이해하지 못하는 피상적 견해이고, 아무런 대책도 될 수 없음을 어찌 모르겠는가. 스스로가 잘 헤쳐나가리란 믿음을 갖고 아이들의 꿈을 응원하며, 즐거운 인생을 설계하고 잘 성장해 나갈 수 있도록 엄마의 자리에서 지켜볼 따름이다.
우리가 살아간다는 것이 어린 날의 소풍처럼 즐거운 것이었으면 좋겠다. 아니 천상병 시인이 그랬듯이 삶은 어쩌면 찰나의 소풍일지도 모른다. 햇살 좋은 어느 봄날이나 가을날에 우주의 어느 별에서 지구라는 별로 잠시 왔다가, 시간이 지나면 다시 돌아가는 소풍인 것이리라. 그러나 언제부터인가 우리는 소풍이 없는 삶을 강요받으며 살아간다. 소풍이라는 자리에는 어느새 현장학습이라는 어정쩡한 단어가 들어앉았다. 교실을 떠나서도 우리는 은연중에 아이들에게 학습을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예로부터 뜻을 세우고 자립하는 나이인 이립(而立)은 30세를 일컫는 말이었다. 공자 시대의 청춘들이 30세에 자립을 하였다니, 평균 수명 80세를 살고 있는 요즘 세대의 서른은 그 옛날의 지학(志學)인 15세의 댕기머리 소녀라고 생각한다. 그러니 아직 자신의 꿈을 찾지 못하여 방황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포기를 말하기에는 너무 아리따운 청춘인 것이다. 먼 미래의 멋진 자신들을 향하여 오늘의 실패와 좌절을 극복하고 내일의 꿈을 키워나가기에 충분한 시기이다.
무한경쟁의 세상을 살아가야 하는 오늘의 청춘에게 꿈을 가지라고 감히 말하고 싶다. 한 발 앞이 온통 절벽인 청춘의 시린 가슴에 꿈이 피어날 수 없는 현실임을 모르지 않는다. 그러나 그 아슬아슬한 절벽에서도 꽃은 피어난다. 단단한 바위틈에도 뿌리를 내릴 줄 아는 씨앗만이 꽃을 피우는 것이다.
현실의 무게를 당당히 받아들이고 자신만의 이야기를 자신만의 목소리로 펼쳐나가기를 바란다. 당장의 위기를 피하기보다는 더 먼 미래를 생각하고, 무엇을 할 것인지를 깊이 고민하는 시간을 충분히 가지기를 바란다. 그리고 조금은 더 높은 꿈을 키우는 아름다운 청춘이기를 희망한다.
무리들 속에서 현실에 안주하거나 현실을 비관하는 갈매기가 아니라, 꿈을 향한 도전과 끝없는 연습을 통하여 미래를 준비하라. 실패와 좌절에서 일어서는 지혜와 용기를 길러라. 더 높은 하늘을 날아가기 위한 꿈을 꾸고, 자신의 이상을 실현시켜나가는 리처드 바크의 갈매기‘조나단 리빙스턴’이 되라고 말하고 싶다.
우리 시대를 대변하는‘아픈 청춘’과‘아플 수도 없는 마흔’이 더불어 꿈을 꾸며, 미래를 향하여 나아가는 세상에 한 발 더 가까이 다가가는 사회를 만들어가고 싶다. 나의 두 딸 라니리니와 더불어 살아갈 이 시대의 청춘들이 부디 좌절하지 않고, 7포세대의 어두운 터널을 벗어나‘연애하고 결혼하고 꿈꾸는’즐거운 청춘이었으면 좋겠다.
첫댓글 두 딸 라니와 리니를 향한 엄마의 따뜻한 마음이,
한편으로는 안쓰럽고도 시린 마음이 담담하게 담겨 있군요..
요즘 취업 절벽 만만치 않습니다.. 다그칠 수도 없는 노릇이니..
'엄마의 자리에서 지켜볼 따름이다.'라는 작가의 글에 방점을 찍어 봅니다.. ^^
방점에 힘을 얻습니다.. 감사..
시험 점수가 바닥이어도 괜찮다 괜찮다 했더니 아빠 말 따라서 바닥으로 고등학교 졸업한 아들...
대학은 가기 싫다 하고 입대는 미루고, 알바해서 번 돈 한 번도 안 보여주고... 연애만 상위급 ^^
요즘 청춘들은 넘 슬퍼요..
괜찮다 괜찮다 등 두드려주시면 연애소설을 잘 쓰지않을까요?
동감하면서도 제 자식들도 걱정입니다.
더디게 오더라도.. 느리게 가더라도.. 과정인 거죠.. 좋은 소식을 기대해봅니다..
라니와 리니에게 깊은 응원을 보냅니다
유작가님께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