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보네 에세이 69
소백산은 사람을 살리는 산이다
풍기 · 북위 36.5도 ·
어머니의 품 같은 고향 산
소백산은 사람을 살리는 산이다.
이 말은 그냥 하는 말이 아니다.
수백 년 전 학자들이 기록으로 남겼고,
예언서가 땅으로 증명했으며,
산이 길러 낸 약초와
인삼이 몸으로 보여 줬다.
그 이유를 하나씩 짚어 보자.
사람의 체온과 같은 땅 —
북위 36.5도
소백산이 품고 있는 위치는
정확히 북위 36.5도다.
사람의 정상 체온, 바로 그 숫자다.
이 땅에서 뿌리를 내리는 약초와 산삼이
어쩌면 그토록 사람 몸에 잘 맞는지,
이제야 수긍이 간다.
사람의 체온과 같은 온도에서
자란 것들이니, 처음부터 사람 몸을
위해 태어난 것들이었다.
소백산은 울창한 활엽수림이다.
참나무와 피나무, 층층나무들이
능선 가득 숲을 이루고,
그 숲에서 피어나는 피톤치드의 기운은
도시의 탁한 폐를 단번에 씻어 낸다.
게다가 사계절 마르지 않는
계곡수와 폭포들 —그 물소리 앞에
서면 몸이 먼저 알아챈다.
여기가 내가 살아야 할 곳이라고.
소백산 정상
살아 천년, 죽어 천년 —
주목나무의 장관
산 아래가 사람을 살리는 땅이라면,
산 정상은 시간
그 자체를 살리는 자리다.
소백산 정상부에는 살아서 천 년,
죽어서도 천 년을 버티는
주목나무 군락이 장관을 이룬다.
붉은 속살을 드러낸 고목들이
능선 위에 늘어선 모습은
어떤 말로도 다 담을 수 없는 풍경이다.
저 나무들은 이 산이 얼마나 오래,
얼마나 깊이 사람 곁을 지켜왔는지를
몸으로 증언하고 있다.
음이온이 가득한 청정 공기,
끊이지 않는 계곡수,
그리고 천 년을 살아 낸
주목나무의 기운까지 — 소백산은
그 자체가 하나의 거대한 약이었다.
학자와 예언가가
모두 인정한 땅
말 위에서 한 사람이 내린다.
아무런 예고도 없이, 갑자기.
조선 중기
최고의 천문지리학자 남사고였다.
그는 소백산 앞에서 무릎을 꿇고
절을 올리며 말했다.
남사고 (南師古, 1509–1571)
천문지리학자 · 『남사고 비결』 ·
『남격암십승지론』 저자
"이 산은 사람을 살리는 산이다."
그는 소백산과 태백산 사이를
양백지간(兩白之間)이라 이름 붙이고,
이 땅을 가활만인지지(可活萬人之地) —
만 명의 목숨을 살릴 수 있는 터 —
라고 기록했다.
동쪽의 태백이 왜구를 막고,
서북의 소백이 칼바람을 막아,
그 안쪽은 언제나 따뜻하고
풍요로운 땅이라 했다.
이중환 (李重煥, 1690–1752)
실학자 · 『택리지(擇里志)』 저자
조선 후기 인문지리학의
집대성이라 불리는 『택리지』.
그 책 속에서 이중환은 단호하게 썼다 —
한반도 안에서 풍기와 같은
복지(福地)는 드물며,
견줄 만한 땅이 없다.
그에게도 소백산 아래는
사람이 살아야 할 최적의 땅이었다.
퇴계 이황 (李滉, 1501–1570)
풍기군수 역임 · 성리학의 대가 ·
『유소백산록』 저자
소백산을 오르며 그는 이렇게 말했다.
"거처에 따라 기운이 변하고
기르는 것에 따라 체질이 바뀌는 것이,
식물이나 사람이 무엇이 다르겠는가?
— 퇴계 이황,
『유소백산록(遊小白山錄)』 중에서
산이 사람을 바꾼다는 것을
그는 알고 있었다.
소백산 아래에 살면,
소백산의 기운을 닮는다.
맑고, 부드럽고, 오래간다.
『정감록』이 으뜸으로
꼽은 피난처
조선의 민초들이 가장 믿었던
예언서 『정감록』. 전쟁과 기근,
수해와 재난이 비껴 가는 열 곳의 땅 —
십승지(十勝地) 중 으뜸이
어디냐고 물으면,
책은 한결같이 대답했다.
소백산 아랫동네, 풍기라고.
두 물줄기 금계천과 남원천이 합쳐지는
이수지합(二水之合),
산을 등지고 물을 앞에 두는
부산대수(負山帶水)의 명당.
나라가 흔들리고 집이 무너져도,
사람들은 이 골짜기로 모여들었다.
산이 말없이 그들을 받아 안았다.
이것 또한 사람을 살리는
산의 다른 이름이었다.
산삼을 인삼으로 —
주세붕이 열어 놓은 길
주세붕 (周世鵬, 1495–1554)
풍기군수 · 신재(愼齋) · 소수서원 창설자
소백산 깊은 골짜기에서만 나던 산삼.
그것을 사람의 손으로 키울 수 있게
만든 것이 주세붕이었다.
인공재배의 길을 처음 열어,
하늘이 내리는 기적을
평범한 농부의 땅에서도
캘 수 있게 했다.
소백산 아래 사람들이
인삼으로 일어섰다.
산이 사람에게 먹을 것을
가르쳐 준 셈이었다.
같은 주세붕이 세운 백운동서원은
훗날 퇴계 이황이
임금의 하사를 청하여
우리나라 최초의 사액서원,
소수서원(紹修書院)으로 완성됐다.
산이 사람을 먹이더니,
이제는 사람을 가르치기 시작한 것이다.
몸을 살리고, 배움의 길까지 열어 준 산.
소백산을 사람을 살리는 산이라 부르는
이유가 이제 조금 더 분명해진다.
철쭉의 잔치 —
살아 있음을 증명하는 꽃
"석름·자개·국망 세 봉우리 사이에
철쭉이 숲을 이루어 바야흐로 한창 피어 있었다.
활짝 피고 아름다운 것이 마치
비단 장막 사이를 다니는 것 같았다.
— 퇴계 이황, 『유소백산록』 중에서
5월이면 소백산이 붉어진다.
석름봉, 자개봉, 국망봉 세 봉우리
사이로 분홍 철쭉이 불꽃처럼 터진다.
퇴계가 비단 장막이라 했던 그 꽃밭이,
수백 년이 지난 지금도
해마다 다시 태어난다.
저 꽃은 그냥 아름다운 것이 아니다.
산이 살아 있다는 증거다.
사람을 살리는 산은,
봄마다 이렇게 스스로 피어올라
"나는 지금도 여기 있다"고 외친다.
남사고가 무릎을 꿇었던 그 산,
이중환이 복지라 칭송했던 그 땅,
정감록이 으뜸 피난처로 삼았던
그 골짜기, 퇴계가 오르며 시를 짓고
학문을 펼쳤던 그 능선 —
그것이 모두 하나의 산에 모여 있다.
소백산이다.
그러니 소백산은 사람을 살리는 산이다.
과거에도, 지금도, 앞으로도.
태어나면서부터 바라보았고 지켜준 산
가슴을 녹이는 시원한 바람결도
세찬 괴성으로 울부짖던 바람도 불었지
그 모든 것이
소백산이 살아 있다는 증거다
고마워
그리고 사랑한단다
아낌없이 주며
변함없는 소백산아, 너를
2026.7.10
시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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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보네 에세이 69 / 소백산은 사람을 살리는 산이다
신광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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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07.13 20: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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