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固(고); 본래, 원래.
常宜(상의); 변하지 않고 항상 원래의 모습을 간직하는 상태.
爾(이); 너(you), 鶴을 가리킨다.
[이해 및 감상] : 가져온 글
위 詩의 제목은 ‘鶴’이지만, 시 안에는 鶴이란 글자가 한 자도 없다. 제3구의 ‘爾’가 학을 나타내고 있을 뿐이다.
백거이는 鶴(학)이 소재로 포함된 시를 140수 이상 지었다고 하며, 그 가운데 鶴이 주제인 시도 25수가 넘는다고 한다.
옛 중국이나 조선의 선비들에게 학은 고결한 군자의 품격이나 신선 세계의 분위기를 보여주는 이미지를 가졌으니, 백거이가 왜 鶴을 소재로 한 시를 즐겨 지었는지 짐작이 간다.
그런데 옛날 선비들은 주변에서 학을 종종 볼 수 있었나 모르겠다. 요즘은 텔레비전이나 유튜브 영상을 통해서나 학을 볼 뿐인 것 같다만.
鶴을 우리말로는 ‘두루미’라고 한다. ‘두루두루’ 소리를 내며 운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란 이야기가 전해진다.
위의 시 ‘鶴’은 백거이가 학을 소재로 쓴 시 중에 비교적 가벼운 분위기의 오언절구다. 對句 같은 형식에 크게 얽매어 있지도 않은 것 같다.
起句(기구)는 ‘人有各所好’으로 쓴 판본도 존재하지만, ‘人各有所好’이 일반적인 판본 같다.
사람마다 각각 좋아하는 바가 있다는 것은 곧 모든 사람의 嗜好(기호)가 같지 않음을 말하고 있는 것이니, 백거이가 좋아하는 바가 남들과 다를 수 있음을 암시하고 있다.
承句(승구)의 ‘物固無常宜(물고무상의)’도 ‘人各有所好’와 상통하는 구절이다.
학의 경우 常宜(상의)는 멋지게 춤추는 모습, 실제로는 학이 우아하게 날아가는 모습이 학의 미적 기준인 것을 말한다.
그러나 백거이는 이러한 관습을 깨고, 사물에는 본래부터 정해진 ‘좋음’과 ‘나쁨’이 없다고 지적한다. 이는 뒤이어 ‘한가히 서 있는 모습’을 칭송하는 대목을 위한 복선이다(요샛말로 빌드업?).
轉句(전구)에서 誰謂(수위)는 직역하면 ‘누가 그렇게 말하느냐?’는 질문이지만, 사람들이 그렇게 말하는 것에 대한 완곡한 부정의 의미를 갖고 있다.
結句(결구)에서는 학이 춤추는 모습, 또는 우아하게 날아가는 모습을 찬미하는 사람들의 일반적 인식과 다른 백거이의 審美觀(심미관)을 드러낸다. 백거이에겐 한가로이 서 있는 학의 모습이 더 아름답다.
결국엔 洛陽(낙양)에서 閑職(한직)에 만족하며 安分知足(안분지족)하고 있는 자신의 모습이다.
반면에 ‘춤을 추는 학’의 모습이란 높은 벼슬자리를 찾아 이곳저곳을 기웃거리고 아부하는 長安(장안)의 관리들을 말한 게 아닌가 싶다.
이 시는 백거이가 60대의 나이로 낙양에서 명목상의 관직인 ‘태자소부’라는 한직에 머물고 있던 시점에 지은 것으로 추정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