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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3.17(주일) 민수기 20:1~13 하나님의 거룩함을 나타내려면 예산수정교회 이몽용 목사
오늘은 민수기 20:1~13 본문을 통해서 “하나님의 거룩함을 나타내려면‘이라는 제목으로 하나님 말씀을 증거하고 주님의 음성을 듣기를 원합니다. 우리 성도들은 하나님을 아버지로 모시고 살아갑니다. 하늘의 아버지인 셈이지요. 마찬가지로 하나님은 우리에게 육신의 부모님을 허락해주셨습니다. 우리는 하나님 아버지를 잘 섬겨야 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육신의 부모님도 잘 섬기고 기쁘게 해드려야 합니다.
인터넷 글에 ‘부모님을 잘 모시는 9가지 방법’이라는 글이 있었습니다.
1) 지금 사랑의 마음을 표현하라 ~ 다음에 형편이 나아지면, 아이들이 좀 더 크며, 돈 많이 벌면 효도하겠다고 결심하는 사이 부모님의 허리는 더욱 휘어져 있을 것입니다. 지금 효도하겠다는 마음 그대로를 표현해 드리라는 내용입니다. 2) 부모님과 가능한 많은 대화를 나눠라. 부모는 자식과의 대화시간을 가장 즐거워하십니다. 밖에 다녀온 후엔 잠깐이라도 좋으니 오늘일에 대해 얘기드리라는 권면입니다. 3) 부모님을 이해하려고 노력하라 연세가 드시면 기억력도 쇠약해지고, 잔소리도 늘게 되고, 공연한 고집도 부릴 때가 있습니다. 누구나 나이가 들면 거쳐가는 과정입니다. 내가 내 부모님을 가장 먼저 이해하지 못한다면 누가 나의 부모님을 이해해 드리겠습니까? 4) 집안의 작은 일이라도 의논드려라 공연히 걱정을 끼쳐 드릴지 모른다는 생각에 “저희가 알아서 할 테니 걱정마세요”라고 말씀드리는 것이 도리어 부모의 마음을 서운하게 할 수 있습니다. 역전노장이신 우리의 부모님은 우리보다 한 수 위 이십니다. 5) 부모님도 취미를 가지시도록 도와드려라 사회단체나 교회에서 친구들과 어울려 즐길 수 있도록 권유해보라는 것입니다. 6) 집에 손님이 오면 부모님께 먼저 인사드린 후에 대화를 나눠라 나이가 드실수록 작은 결례에도 민감해 지시기 때문입니다. 7) 사소한 병이라도 나시면 꼭 병원으로 모시고 가라 자녀를 돌보는 것처럼 부모님도 늘 살펴드려야 합니다. 8) 부모님께 일감을 드려라 부모님을 아무것도 하지 않고 가만히 편히 계시게 한다고 효도가 아닙니다. 집안일도, 사회활동도 뇌활동을 활발하게하고 건강하게 해 젊고 건강하게 사실 수 있도록 할 것입니다. 9) 부모님과 함께 여행하라 부모님과 함께 여행하는 것은 부모님과 자녀의 관계를 돈독하게 하는데 너무나 좋은 기회입니다.
우리 성도는 하나님의 은혜에 늘 감사하며, 어떤 상황 속에서도 하나님의 거룩함을 나타내야 합니다. 오늘 본문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의 거룩함을 나타내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살펴보며 주님의 음성듣기를 원합니다.
1. 불평하지 말고 감사하고 기도해야 합니다(1~5절).
하나님의 거룩함을 나타내려면 불평하지 말고 감사해야 합니다. 가데스에 도착한 이스라엘 백성은 물이 없다며 모세와 아론에게 불평합니다. 그들은 “어찌하여 우리를 애굽에서 나오게 하여 여기서 다 죽게 하느냐”(4,5절)고 원망을 쏟아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머물던 가데스는 38년 전 정탐꾼들의 부정적인 보고를 들은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으로 향하려다가 하나님의 진노로 약속의 땅 앞에서 다시 광야로 돌아가야 했던 장소입니다(민13:26). 민수기 13, 14장에 의하면 이스라엘 백성이 출애굽한지 2년 만에 바로 이곳에 도착했어요. 그리고 12명의 정탐꾼을 가나안 땅에 파송했는데 12명이 돌아와서 보고를 했습니다.
10명은 아주 부정적인 보고를 했습니다. 그 땅을 악평하면서 말했습니다. 그 땅은 사람을 삼키는 땅이요. 사람이 살 수 없는 땅이요. 그들은 키가 크고 아낙 자손이기 때문에 우리는 그들에 비하면 메뚜기와 같습니다. 그들은 장대와 같고 우리는 메뚜기와 같습니다.
이 말에 온 백성들은 통곡하며 돌아가자고 그리고 후회하면서 모세와 아론을 원망하기 시작했습니다. 심지어는 돌을 들어서 치려고까지 했습니다. 결국 하나님은 그들 위에 영광으로 임하셔서 그들을 심판하시는데 “너희의 원망이 내 귀에 들린대로 내가 너희에게 갚아 줄 것이다. 너희의 시신은 이 광야에서 다 시체가 될 것이다”라고 말씀하십니다. 38년 동안 그들은 광야를 뺑뺑이 돌았지요. 20대 이상의 성인들은 다 광야에서 하나님의 명령대로 죽었습니다. 그리고 20대 이하의 젊은이들이 성장해서 38년 만에 다시 이 가데스바네아에 왔는데 그들 또한 똑같이 1세대의 전철, 부모세대의 전철을 밟고 있다는 것입니다. 물이 없다고 또 불평하면서 원망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38년 후 같은 장소에서 이스라엘 백성의 모습은 전과 다르지 않습니다. 그들은 이제껏 광야생활 동안 의복이 해지지 않고 발로 부르트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은혜를 잊고 끊임없이 불평합니다(신8:4). 토마스 왓슨은 그의 「거룩한 열정」이란 책에서 “불평한다는 것은 감사치 못하는 죄인데, 왜냐하면 실상 우리는 고난보다는 은혜를 더 많이 받고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또한 사려 깊지 못한 죄인데, 왜냐하면 고난은 우리에게 선을 이루기 때문이다. 불평은 우리에게 죄를 짓게 하는 또 하나의 죄다”라고 했습니다. 이렇게 우리 인생 여정에 물이 없을 때 우리는 하나님께 불평하며 다투지 말고 하나님께 지금까지 돌보신 은혜를 감사하며 물을 주시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사도바울은 이렇게 간증합니다. “나의 하나님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영광 가운데 그 풍성한대로 너희 모든 쓸 것을 채우시리라.”(빌4:19)
적용) 나의 인생 여정에 무엇이 없다고 하나님과 다투며 지도자에게 원망을 쏟아내고 있습니까?
2. 혈기를 부리지 말고 온유해야 합니다(6~11절).
하나님의 거룩함을 나타내려면 혈기를 부리지 말고 온유해야 합니다.
모세와 아론은 자신들의 힘으로 이 불평의 문제를 해결할 수 없음을 알고, 즉시 회중을 떠나 회막 문 앞으로 나가 하나님 앞에 엎드립니다. 하나님은 모세에게 반석에 명령하여 물을 내게 하라고 하십니다(8절). 그러자 모세와 아론은 10절에 “반역한 너희여 들으라 우리가 너희를 위하여 이 반석에서 물을 내랴?”
“반역한 너희여” 이 말은 패역한 자들이여 그런 꾸지람과 책망, 저주의 말입니다. 하나님은 모세에게 그런 말을 허락한 적이 없습니다. 그런데 모세는 감히 그 백성들을 향해서 자기의 혈기를 드러냅니다. “패역한 자들이여 반역한 자들이여 우리가 너희를 위하여 이 반석에서 물을 내랴?” 이 말은 마치 모세와 아론이 이 반석에서 물을 내는 것처럼 자기를 과시하고 드러내는 말입니다. 하나님의 거룩함을 드러내야 하는데 말입니다. 모세는 분노를 폭발시키고 하나님이 말씀하신 대로 그 반석에 명령하는 대신 반석을 두 번 ‘쳐서’ 물을 냅니다(11절). 물론 모세의 이런 분노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그 반석에서 물이 많이 솟아나오게 하셔서 회중과 그들의 짐승이 마시게 합니다. 그리고 모세는 “우리가 너희를 위하여 이 반석에서 물을 내랴”(10절)하며 하나님을 신뢰하지 않고 반역한 백성에게 혈기를 부립니다. 이것은 하나님 앞에 불순종입니다. 하나님 앞에 혈기를 내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것을 너무 싫어하십니다. 그가 아무리 천하의 모세일지라도 하나님은 용납하시지 않습니다. 모세가 이렇게 하나님의 명령을 따르지 않고 불평하는 회중에 대한 격한 감정으로 이렇게 행하는 근원에는 하나님께 대한 불신앙이 있었습니다. 아빠가 아이에게 아빠 약 좀 먹게 물 좀 떠와라. 아이가 물을 떠오긴 하는데 하기 싫은 것을 하니까 책상 위에 물을 탕 하고 놔서 물이 쏟아졌다. 이것은 순종이 아니라 거역이지요. 모세의 이런 행동에 하나님은 12절에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여호와께서 모세와 아론에게 이르시되 너희가 나를 믿지 아니하고 이스라엘 자손의 목전에서 내 거룩함을 나타내지 아니한 고로 너희는 이 회중을 내가 그들에게 준 땅으로 인도하여 들이지 못하리라 하시니라” 이 말씀의 결과로 모세는 가나안을 앞에 두고 그 땅을 들어가지 못했습니다. 모세는 느보산에서 가나안 땅을 바라볼 뿐 들어가지 못했습니다. 왜 그랬습니까? 모세는 자기 생각으로 하나님을 오해했습니다. 하나님께서 말도 안듣고 불평하는 백성들을 한 칼에 베 버리든지 큰 징계를 내리면 좋겠는데, 하나님은 그 불평을 다 들으시고 심지어 그들에게 물을 내시니까 마음에 들지 않았던 것입니다. 이렇게 하기 싫은 일을 억지로 하다보니 참던 모세는 혈기를 드러내고 분노를 폭발해서 결국 하나님 앞에 불순종의 행동을 하게 된 것입니다.
“사람의 성내는 것이 하나님의 의를 이루지 못함이니라”(약1:20)고 했습니다. 모세는 그 온유함이 지면에서 가장 승한 사람이었습니다(민12:3). 모세가 첫 번째 부인이 죽고 두 번째 부인으로 구스 여자를 선택했어요. 그랬더니 이 누이인 미리암과 형 아론이 이 모세를 비난하고 비방합니다. 그러나 모세는 대꾸하지 않습니다. 그 때에 하나님께서는 왜 내 종 모세를 비방하느냐면서 미리암에게 무서운 문둥병을 내리셨어요. 온유한 모세는 그들을 위하여 하나님 앞에 나아가서 엎드려서 기도합니다. 하나님 저 미리암에게서 저 문둥병을 떠나게 해달라고 기도합니다. 모세가 성품이 온유하고 부드러운 거죠. 바로 이런 모세였는데 그 모세가 오늘 본문 속에서 넘어지게 됩니다. 온유함을 잃어버리고 분노와 혈기를 터트리게 됩니다.
므리바 물가에서 이 잘못된 혈기부림이 빌미가 되어 가나안에 들어가지 못하게 되었는데, 결국 모세의 그 성냄이 하나님의 의를 이루지 못한 성냄이었습니다. 우리는 성낼 환경 속에서 하나님의 온유함을 드러내야 합니다.
스승을 매우 존경하고 따르는 제자가 있었습니다. 어느 날 자신의 스승이 연로해서 이제 임종이 임박했다는 소식을 듣게 됩니다. 제자는 안타깝게 스승을 향해서 달려갔습니다.
그리고 이제는 기진맥진한 스승님을 향해서
“스승님 돌아가시기 전에 제게 마지막 가르침을 주십시요.” 라고 부탁을 했습니다.
스승은 힘겨운 듯 얼굴을 들어서 이 제자를 바라봅니다. 그리고 이렇게 말합니다.
“여보게 내 얼굴 좀 보게나 지금 내게 아직도 이빨이 남아 있는가?” 라고 물었습니다.
제자는 스스의 얼굴을 유심히 쳐다 보더니
“스승님 이빨이 다 빠지셔서 이빨이 없습니다.”
“아 그런가? 그럼 내 얼굴을 다시 한 번 봐주게. 혹시 내게 아직 혀가 남아 있는가?”
“아! 그럼요 혀는 아직 건재 합니다.”
“바로 그걸세. 내가 자네에게 마지막 가르칠 교훈은 바로 그거야”
그랬더니 제자가 “스승님 참 감사합니다. 제 생애에 꼭 명심하고 살겠습니다.” 라고 답변했다고 합니다.
자 이게 무슨 얘기일까요? 무슨 얘기입니까?
날카롭고 강한 이빨은 세월 속에 다 빠져 버린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부드러운 혀는 세월이 흘러도 결국 남아 있다는 것입니다.
무슨 이야기 입니까? 온유한 자가 승리한다. 강한 것은 부러지고 만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연약한 것 같지만 부드러운 것은 오래토록 살아남는다는 가르침을 우리에게 주고 있습니다. 뒷동산에 올라가면 어디 맹수가 어디 있습니까? 강한 사자나 호랑이들이 없잖아요. 다 죽었어요. 어디 동물원에나 가야 있지 뒷동산에 가면 없어요. 그러나 다람쥐는 많이 있어요. 집에서 키우는 토끼도 많이 있어요. 부드럽고 온유한 것들은 살아남습니다.
본문의 ‘온유’라는 히브리어 ‘아나브’는 ‘대답하다’라는 단어에서 파생된 단어로, 고대시대 주인만이 질문할 수 있고, 대답은 종에게 주어진 몫이었습니다. 그런 점에서 성도가 혈기부릴 상황 속에서 나타내야 할 온유함은 주인되신 하나님 앞에 종으로서 자신을 낮추는 겸허함입니다.
팔복 중 세 번째 복은 온유한 자의 복입니다. “온유한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임이요”(마5:5). ‘강한 자’가 땅을 기업으로 받는 것이 아니라 ‘온유한 자’가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이다. 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온유’라고 번역된 헬라어 프라우스(πραουσ)라는 말은 '짐승을 길들이다' 는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 서커스단에서 보면 사나운 호랑이도 잘 길들여서 그 조련사가 자기 마음대로 움직이지요. 호랑이 등에 타기도 하고 같이 놀기도 합니다. 그래도 그 호랑이는 사람을 해치지 않아요. 왜냐하면 그건 '잘 길들여졌기 때문입니다. ‘이 짐승을 잘 길들이다’ 이런 의미가 바로 ‘프라우스’ 온유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존 칼빈은 온유를 이렇게 정의 했습니다.
‘온유란 부드러운 마음으로 살며 노하기를 더디하며 절제할 수 있는 성품이다.’
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거룩함을 나타내려면 혈기를 부리지 말고 온유해야 합니다.
적용) 겉으로는 순종의 모습처럼 보이지만 하나님을 믿지 않고 내 이름과 열심히 나타내려고 하는 나의 혈기와 말실수를 통한 불신앙은 무엇입니까?
3. 불순종이 아니라 순종해야 합니다(12~13절).
하나님의 거룩함을 나타내려면 불순종이 아니라 순종해야 합니다.
모세와 아론은 불평하는 이스라엘 백성 앞에서 불순종함으로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나타내지 못했습니다(13절). 모세는 홍해를 가를 때처럼 지팡이를 하나님 권위의 상징으로 쳐들고서 너희가 지금부터 하나님의 영광을 보리라고 선언했어야 했습니다. 하나님은 광야생활을 마감하는 시점에 모든 백성들로 사람은 오직 하나님의 말씀으로만 살아야 한다는 것을 최종적으로 확실하게 보여주고 싶으셨던 것입니다.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나님의 은혜와 권능이 얼마나 놀랍고 풍성한지를 생생하게 보여 주어야 했지만, 그 기회를 허사로 만들고 말았습니다. 그런 불순종의 대가로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하게 됩니다. 모세 개인에게는 가혹해 보여도 백성들을 생각해서 지도자에게 본이 되는 징계를 내려야 했습니다. 모세는 개인의 믿음보다도 지도자로서 참 순종의 본을 보여야만 했습니다. 온전한 헌신과 순종은 절대적인 믿음의 바탕에서 나옵니다. 진정한 믿음은 아무리 힘들고 억울한 경우에 처해도, 심지어 온 천지가 다 망해도 하나님만 바라보고 그 분의 말씀대로만 사는 것입니다. 특별히 지도자는 자기의 잘남보다 오직 하나님의 거룩함을 드러내야 함을 이 사건이 교훈해줍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는 내 뜻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다고 해서 불평을 해서는 안됩니다. 왜요? 성도들에게는 내 생각보다는 하나님의 뜻이 우선이니까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행동하심이 내 마음에 안 들고, 내 생각과 달라도 그냥 순종하고 따라가야 합니다. 왜요? 그것이 주님의 뜻이기 때문입니다.
불순종한 모세는 약속의 땅 가나안에 들어가지 못하는 비운의 주인공이 되었구요, 그 형 아론도 여호와를 거역한 죄 때문에 결국 죽임을 당하게 됩니다. 아론은 운명하고 그 아들 엘르아살이 제사장의 직임을 이어 받게 됩니다. 민수기 20장 1절에는 미리암의 죽음이 나옵니다. 모세를 비방했던 미리암이 먼저 죽고 20장 마지막 26절에 보면 아론이 죽습니다. 그리고 모세도 이제 얼마 안돼서 마지막 숨을 거두게 됩니다. 이 모든 것이 바로 하나님을 거역한 대가라는 것입니다. 진실로 하나님은 우리 모두가 하나님께 혈기부리지 않고 온유함으로 순종하기 원합니다.
적용) 내가 하나님의 거룩함을 나타내지 못해 주께 심판받게 된 사건이 있습니까?
[큐티인간증] ‘지방대 예비 4번의 물’ 양신재
몇 년 전 대학 입시를 치른 아들은 수시 전형으로 지방대 한 곳과 수도권 대학 다섯 곳에 원서를 넣었습니다. 그중 수도권대학은 모두 떨어지고 보험처럼 넣은 지방대에만 1차 합격을 했습니다. 그런데 저의 합격의 기쁨도 잠시, 물이 없음으로 모세와 다투어 말하며 원망한 백성처럼 “어떻게 지방대 물을 주실 수 있냐”며 하나님을 원망했습니다(2~3절). 그러고는 그 주 예배도 가지 않고 종일 원망의 눈물을 흘리면서 “어찌하여 우리를 이 나쁜 곳으로 인도하였느냐”며 근심과 원망을 더했습니다(5절)
그러다 지방대 2차 합격자는 두 명을 뽑는데, 아들이 ‘예비 4번’이란 사실을 알게 된 순간 저는 ‘그렇게 무시하던 지방대로 떨어지겠구냐’하는 생각에 잠시 충격을 받았습니다. 아들도 충격을 받았는지 최종 결과를 기다리지 않고 학기 중에 친구들과 해외여행을 떠났습니다. 이후 저는 이런 상황을 공동체 지체들에게 나눴습니다. 그러자 지체들은 아들의 여행이 얼마나 위험한지 자신들의 경험을 나누며 “아들에게 왜 돈을 주셨어요”라고 했습니다. 그 말에 저는 돈으로 아들 비위를 맞춰 정시 원서는 내가 원하는 대학에 쓰게 하려던 저의 욕심이 결국 아들을 위험에 빠뜨렸다는 현실이 공포로 다가왔습니다. 그제야 저는 공동체에 중보기도를 요청했고, 감사하게도 이튿날 아들은 여행 도중에 친구에게 사정이 생겨 여행을 취소하고 집으로 돌아오겠다고 연락을 해왔습니다.
내 열심히 남편도 아들도 내가 원하는 대로 만들려고 많은 시간과 에너지를 들였지만, 결국은 하나님의 말씀과 지체들의 기도로 만들어 가신다는 것을 깨달은 제게 하나님은 ‘최종합격’이라는 물을 주셨습니다(11절). 품질 좋은 아들을 자랑삼고 고졸이라는 나의 열등감을 포장하고자 아들을 내 야망의 도구로 사용했음을 회개합니다. 원하지 않던 지방대 합격이 저를 향한 하나님의 거룩한 공의임을 깨닫게 하신 성령님, 감사합니다(13절) 적용) 내가 자랑하고 싶은 것을 얻고자 사람의 비위를 맞추지 않겠습니다. 예배가 회복된 아들이 교회 공동체에 잘 속해 가도록 아들을 위해 매일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의 거룩함을 나타내려면 불순종이 아니라 순종해야 합니다.
결 론
바라기는 저와 여러분들이 하나님 아버지의 거룩함을 나타내기를 원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내가 하나님께 불평과 원망 대신 감사로 나아가야 합니다. 또한 하나님의 뜻과 인도하심이 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혈기 부리는 대신 온유함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께 불순종대신 순종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그럴 때 하나님의 거룩함을 나타내는 하나님의 자녀들이 될 수 있습니다. 우리 수정교회 성도님들이 이런 성도님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