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상한 움직임들
최근 <월간 조선> 9월호에 심층취재 기사 하나가 실렸다. 제목부터 심상치 않다. <4대강에 빠진 천주교, 4대강 반대는 평신도와 소통 없는 ‘성직자 권위주의’의 산물>. 머리글로는 정진석 추기경의 말을 인용했다.
“4대강 사업은 과학적 · 전문적 분야이고, 과학자들 사이에서도 다른 의견이 있는 만큼 비전문가가 나서서 판단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반대하는 사람을 욕하는 소리, 추기경은 왜 가만히 있느냐는 소리도 왕왕 들리지만 그렇다고 내가 어느 편을 들 수 없습니다.”
제목과 머리글에서 드러나듯이, 이 기사는 지난 3월에 발표된 한국 천주교 주교회의의 4대강사업 유감 성명의 의미를, 더 나아가 한국 천주교 4대강 반대운동의 의미를 훼손하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월간 조선>은 이 기사를 통해 모든 주교와 사제들이 4대강 사업에 반대하는 것도 아니고, 대다수 천주교신자들이 4대강사업에 대해 반대하지 않는데도 일부 주교와 사제들이 나서서 천주교 전체가 반대하는 것처럼 행동하는 것은 교회 일치를 깨트리는 일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그 근거로 몇몇 평신도를 인터뷰했고, ‘뜻있는 천주교평신도모임’의 의견광고와 부산교구 김계춘 은퇴사제의 글을 인용하였다.
문제의 의견광고는 주교회의 반대 성명이 있은 지 2주일도 못 돼서 보수 성향 신문인 조선일보 · 중앙일보 · 동아일보 · 문화일보에만 실렸다. “성당에 가서 미사 드리기가 무섭습니다!”라는 제목도 아주 자극적이었다. 신문광고윤리강령에 따르면 최소한 광고주의 주소와 책임소재를 밝히는 연락처를 밝혀야 한다. 이 광고에는 달랑 단체 이름뿐이었다. 이 때문에 이 광고를 실은 4개 신문 모두가 한국신문윤리위원회로부터 주의 조처를 받았다. 몰라서 실수했을 리 없는 신문광고의 기초 중 기초이다. 그래서 혹시 신문사와 광고주가 담합하지 않았을까 하는 의혹마저 생긴다.
한국천주교주교회의가 주교회의 전체 이름으로 성명을 발표하는 일은 아주 드물다. 중요 사안이 아니면 산하 위원회 이름으로 성명을 발표한다. 주교회의 전체 이름으로 성명을 발표했다는 것은 그만큼 주교회의가 4대강사업에 대해 중대하게 여겼다는 뜻이다. 그런데 그 성명에 대해 평신도가 대놓고 이의를 제기하고 나섰다. 이런 일은 전에는 거의 없었던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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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조선> 9월호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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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 조선> 기사는 천주교 안에 이견이 있다는 중요 근거로 문제의 의견광고와 김계춘 신부의 글을 제시했다. 김계춘 신부의 글이 처음 공개된 것이 국제외교안보포럼을 통해서였다고 한다. 그런데 ‘뜻있는 천주교평신도모임’ 대표와 국제외교안보포럼 이사장은 같은 사람인 김현욱 전 국회의원으로 알려지고 있다. 주교회의 성명에 반기를 드는 움직임의 진원지가 하나라는 의심이 든다. 김현욱 씨는 자신이 대표로 있는 ‘뜻있는 천주교평신도전국협의회’와 광고주 ‘뜻있는 천주교평신도모임’은 우연히 이름이 비슷할 뿐 같은 단체가 아니라고 주장하지만 전후 사정을 고려하면 같은 단체가 거의 확실하다. <뉴데일리>와의 인터뷰에서 김 신부는 주교회의 성명 뒤 어떤 신자모임에 초청되어 평신도는 의견 표명이 어려우니 대신 나서달라는 요청을 받고 글을 썼다고 했다. 이들은 원래 김 신부 글이 주요 일간지에 기사로 실리기를 바랐지만 이루어지지 않자 광고로 낸 것이라고도 했다.
촛불시위가 한창이던 2008년 7월, 비슷한 광고가 조선일보 ․ 중앙일보 ․ 동아일보에 실린 적이 있었다. “한국천주교회는 더 이상 상처받을 수 없습니다” 이때의 광고 제목 역시 자극적이었다. 촛불시위를 주도한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을 비난하는 내용이었다. 광고주는 ‘뜻있는 천주교평신도전국협의회 ․ 천주교 뉴라이트 전국협의회 ․ 천주교 북한 인권과 민주화를 위한 기도회 회원 일동’이었다. 이때도 광고주 주소와 연락처가 없었다. 아이러니하게도 이들은 의견 광고에서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이 교회 인준을 받지 않은 단체라고 비난했지만, 자신들도 인준 받지 않은 단체로 보인다.
하지만 광고 당시 이 3개 단체의 대표는 모두 김현욱 전 국회의원으로 알려져 있었다. 김현욱 씨가 이사장으로 있는 국제외교안보포럼의 공식 카페에는 북한 인권과 민주화 기도회, 천주교나라사랑전국협의회, 성 김대건(소팔가자) 성역화 선교사업회, 뜻있는 가톨릭평신도전국협의회, 국가수호연합와 같이 이질적인 교회 안팎 단체들의 게시판이 함께 있다. 인맥이 서로 중첩되어 있지 않다면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조합이다.
이처럼 겉으로 드러난 일은 아니지만, 주목할 만한 일이 최근 한국천주교회 안에서 일어나고 있다. 최근 4대강사업 반대 사제들은 강론 도중이나 뒤에 신자들로부터 항의를 받는 일이 자주 있다고 한다. 주교회의 성명이 있었는데도 신자들 가운데 일부가 사제 강론에 대해 반발하고 있다. 심지어 어느 교구장 주교는 자기 교구 교수모임에 참석했다가 신자 교수로부터 직접 항의를 들었다고 했다. 그러니 4대강 관련 의견광고를 몇몇 가톨릭 극우평신도들의 경거망동이라고만 볼 수 없다.
이제 극우 성향 평신도들이 가톨릭사회교리나 복음정신을 거슬러가면서까지 자신들의 정치 견해를 교회 안팎에서 적극 주장하기 시작하고 있다. 이를 위해 보수언론과 극우단체와 같은 외부 수단과 인맥까지 적극 활용하고 있다. “일부 사제들에 의한 과격한 좌경운동을 우려하며 이들이 평신도들에게 악영향을 끼치는 것을 막기 위해 가톨릭 신앙관에 입각한 비판의 목소리를 발하는” 것을 목적으로 2006년 2월에 창간된 <광야의 소리>와 같은 인터넷 언론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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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동성당 들머리에서 열린 생명평화미사 (사진/한상봉 기자)
| 중산층교회를 넘어 중상층교회로
2005년 인구센서스 결과, 한국 천주교회는 크게 성장했고, 개신교는 줄었고, 불교는 정체되었다. 이 같은 천주교의 급성장을 보고 이웃종교도 놀랐지만 한국천주교회도 놀랐다. 1990년대에 들어서면서 신자 증가율, 주일미사와 판공성사(1년에 부활, 성탄을 앞두고 의무적으로 하는 고해성사) 참여율이 낮아지고 냉담신자(한국천주교회는 판공성사를 3년 이상 하지 않은 신자를 냉담신자로 집계한다)가 늘어나는 현실 때문에 위기의식을 퍼져있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외적 성장보다 내실에 힘을 기울여야 한다고 움츠렸던 한국천주교회는 크게 고무되었다. 개신교와 불교는 감소와 정체의 원인을 분석하느라 분주했지만, 한국천주교회는 느긋했다. 한국천주교회가 해마다 교회통계를 통해서 파악하고 있었던 신자수보다 인구센서스의 천주교 신자가 약 48만 명이나 더 많았으니 그럴 만도 했다.
특히 천주교는 잘 사는 지역에서 더 많이 성장했다. 지방교구보다는 수도권교구가 크게 성장했고, 같은 교구 안에서는 농촌지역보다 도시지역 신자가 크게 늘었다. 천주교 신자 비율이 높은 상위 지역 중에는 강남 3구 등 이른바 잘 사는 지역이 많았다. 주택 평당 가격 상위 10위권 지역 중 6곳은 천주교 신자 비율 상위 10위권 지역과도 일치하였다. 이 지역의 천주교 신자 비율은 평균 16.2%로 주택 평당 가격 하위 10위권 지역의 평균 8.2%에 비해 2배 정도 높았다. 평균 교육연수도 천주교가 12.5년으로 가장 길었다. 15세 이상 인구의 직업도 천주교는 개신교 신자와 함께 화이트칼라 직업군 비율이 높았다. 1980년대부터 한국천주교회가 중산층화되고 있다는 분석이 있었는데,2005년 인구센서스는 한국 천주교회가 중산층 교회를 넘어 중상층화교회로 나아가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월간 조선>의 걱정(?)처럼 천주교는 성직자 중심의 교회이다. 한국 천주교회는 다른 나라 천주교에 비해 성직자 권위주의가 더욱 심한 편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그래서 평신도들은 교회쇄신 방안으로 평신도 중심의 교회를 이야기해왔다. 천주교 진보 평신도들도 마찬가지 주장을 해왔다. 하지만 중산층교회를 넘어 중상층교회로 발돋움하는 한국천주교회에서 평신도 중심의 교회가 되면 교회쇄신이 이루어질 수 있을까?
한국천주교회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도시본당의 경우 적극 활동하는 평신도는 대개 경제 형편도 좋고 사회 지위도 있는 사람이다. 이들 대부분은 비슷한 계층의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보수 성향 신문을 구독하고 보수 정당에 소속되어 있다. 그러니 평신도 중심의 본당 운영은 교회 민주화가 아니라 교회 보수화를 가속화시킬 가능성이 더 많아졌다. 다시 말해 가난한 이를 우선 선택하는 복음적 교회가 아니라 이들의 고통에는 침묵하고 기득권 유지에 힘쓰는 세속적 교회가 될 것이다.
20대 80의 교회
20대 80 법칙에는 두 종류가 있다. 하나는 이탈리아 경제학자 빌프레도 파레토(Vilfredo Pareto, 1848-1923)가 처음 주장하였는데, 19세기 영국의 부와 소득의 유형을 연구하다가 보니 전 인구의 20%가 전체 부의 80%를 차지하더라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일본 홋카이도대학의 사카가미 교수가 발견한 것이다. 서로 도와가며 아주 열심히 일하는 곤충으로 알려진 개미사회를 관찰해보니, 열심히 일하는 개미는 전체의 20%에 지나지 않고 나머지는 빈둥댄다는 것이다. 열심히 일하는 20%의 개미만을 떼어놓았더니 같은 현상이 되풀이되었다고 한다. 한국천주교회에서 후자의 20대 80 법칙이 작동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2005년 인구센서스 결과상의 급성장을 보고 한국천주교회가 놀란 것은 그동안 사목현장에서 신자 증가를 거의 체감하지 못하였기 때문이다. 신자가 늘었다면 당연히 주일미사 참석신자가 늘었어야 하는데, 그 동안 거의 늘지를 않았으니 신자가 늘었다고 느끼지 못하는 게 당연했다. 한국천주교회통계에 따르면, 주일미사 참여비율이 해마다 줄어서 1995년 34.8%에서 2008년 24.0%로 줄었다. 신자의 기본의무라고 할 수 있는 주일미사에 신자 4명 중 1명만이 참여하고 있는 셈이다. 마산교구(19.1%), 부산교구(19.6%), 광주교구(20.9%)는 전체 평균보다 낮아 신자 5명중 1명만 주일미사에 참여하고 있다. 가장 미사참여율이 높은 춘천교구도 29.9%로 채 30%를 넘지 못한다.
이처럼 주일미사 참례비율이 해마다 줄었으니 1995년 이후 해마다 신자수가 평균 12만 명 정도 늘어났어도 주일미사 참여자수는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그러니 신자 증가를 체감할 수 없었던 게 당연하다 할 수 있다. 이는 새 신자들이 입교했다가 금세 빠져나갔거나 기존 신자들이 새 신자가 늘어나는 만큼 빠져나갔기 때문이라고 유추할 수 있다. 주일미사와 함께 한국천주교회에서 의무로 되어 있는 성탄 · 부활 판공성사의 2008년 참여율도 30.8%(부활), 32.7%(성탄)에 머물고 있다. 이런 통계를 고려해 볼 때, 한국천주교회는 세례 받은 신자의 약 20~30% 안팎만이 현재 교회 안에서 활동하고 있는 20대 80의 교회라고 할 수 있다.
한국천주교회에서 집계하고 있는 냉담신자를 그대로 한국천주교회를 떠난 신자라고 보기 어렵다. 정상적인 신앙생활을 하면서도 판공성사를 하지 않거나 판공성사표(판공성사 집계를 위해 신자 개인별로 발행되는 표)를 내지 않으면 냉담신자로 집계되기 때문이다. 그렇다 할지라도 냉담신자수가 늘어난다는 것은 한국천주교회를 떠난 신자가 늘어나고 있다는 것을 반영한다. 2008년 말 현재 주소확인 냉담신자가 812,094명으로 전체 신자의 16.2%, 거주미상 냉담신자가 670,524명으로 전체 신자의 13.4%로 나타나 전체 신자수의 약 30%에 이르는 약 130만 명이 냉담신자인 것으로 집계되었고, 그 수는 계속 늘어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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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사진(사진/한상봉 기자)
| 떠나간 여성신자들
한국천주교회는 개신교와 불교에 비해 여성신자 비율이 높은 편이다. 2005년 인구센서스 결과, 종교별 성비(여성 100명당 남성 수)를 살펴보면 불교 89.1, 개신교 86.8, 천주교 85.5의 순이었다. 1995년과 2005년 사이 한국 사회의 성비는 -1.2만큼 줄어들고 종교인구 역시 -0.3만큼 줄어들었다. 하지만 군종교구 세례자들이 꾸준히 늘어나는 반면 여성신자는 2000년 이후 계속 줄어들고 있어서 천주교 성비는 2.4만큼 늘어났다. 그래도 한국천주교회의 성비는 여전히 다른 종교에 비해 낮아 여성신자 비율이 높은 편이다. 이 같은 여성화 현상은 사목현장에서는 더욱 확실하게 느낄 수 있다. 한국천주교회 안에서 단체활동과 봉사활동의 대부분은 여성신자들이 맡고 있기 때문이다. 소공동체 참여는 거의 여성신자 중심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한국천주교회에서 냉담신자 문제가 심각해지면서 이들이 다시 본당에 나와 신앙생활을 하도록 돕는 캠페인이 유행하였다. 새로운 신자를 입교시키는 운동을 ‘새로운 양 찾기’이라고 했고, 냉담신자를 다시 나오도록 하는 운동을 ‘잃은 양 찾기’라고 했다. 이를 두고 ‘잃은 양’이라는 것은 교회의 관점이고, 당사자 관점에서 보면 스스로 ‘떠나간 양’이 많다는 지적이 있었다. 2005년 인구센서스는 그 떠나간 양 가운데 여성신자가 많을 것이라는 추측을 가능하게 했다. 1997년 외환위기 뒤부터 본당 사제들로부터 본당에서 봉사자를 구하는 일이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다는 이야기를 자주 들었다. 현상적으로 먹고 살기 힘들고 아이들 사교육비 때문에 맞벌이 가정이 늘어나기 때문이라고 하지만, 이런 상황이 장기화하면서 여성신자들이 아예 교회를 등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2005년 인구센서스 통계와 2005년 교회통계를 비교하면, 30대 이상의 천주교 여성신자는 교회통계상 신자수보다 인구센서스의 신자수가 훨씬 적다. 40대 여성 신자는 인구센서스의 신자수가 교회통계상 신자수보다 7만 명이나 적다. 이는 30대 이상의 여성 신자들 중 상당수가 천주교를 떠났다는 이야기이다. 세례를 받아 교회통계에 집계된 여성 신자들이 다른 종교로 개종했거나 비종교인이 되어 더 이상 천주교 신자로서의 정체성을 갖지 않아 인구센서스 조사 때는 천주교 신자가 아닌 것으로 응답했다고 보이기 때문이다. 물론 인구센서스 조사 방법의 한계에서 비롯된 오차일 수 있다. 이를 감안한다고 하더라도 세례를 받았어도 더 이상 천주교 신자가 아닌 이들이 상당수이고, 여성들에게서는 이러한 현상이 두드러지게 나타난다는 점이다.
신앙교육을 포함해 자녀교육을 주도하는 여성신자 층의 이탈은 곧바로 청소년신자의 이탈로 이어질 수 있다. 실제로 주일학교 참석률이 점점 낮아지고 있고, 7세 미만 유아세례자도 점점 줄어들고 있다. 20세 미만의 청소년의 인구센서스상 신자수와 교회통계상 신자수 차이는 약 46만 명으로, 전체 차이 48만 명의 대부분을 차지했다. 이는 천주교 신자인 부모가 아직 세례를 받지 않은 자녀들도 천주교 신자라고 응답했기 때문에 나타난 오차일 가능성이 높다. 즉 부모는 천주교 신자여도 자녀는 천주교 세례를 받지 않는 경우가 크게 늘고 있다는 이야기일 수 있다. 이렇듯 여성신자의 이탈은 당장 성당에서 봉사할 사람이 없다는 문제를 넘어 교회 미래가 달린 현상이라고 할 수 있다.
질적 성숙에서 양적 성장으로 다시 유턴?
앞서 말한 바대로 1990년대에 들어서면서 한국천주교회는 위기의식을 느끼기 시작했다. 70년대와 80년대에 가팔랐던 신자 증가율이 1990년에 들어서면서 점점 낮아지기 시작한 반면 냉담신자는 늘어나고 주일미사와 판공성사에 참여하는 신자비율은 점점 낮아졌기 때문이다. 질적 미성숙이 양적 성장의 둔화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분석 아래 이제는 양적 성장이 아니라 질적 성숙에 힘을 기울여야 할 때라는 주장이 힘을 얻었다. 이 같은 분위기에서 당시 서울교구 교구장이었던 김수환 추기경이 1993년부터 본격 추진한 것이 소공동체사목이었다.
도시본당이 대형화되면서 친교가 사라지고 주일미사 등 전례에만 참석하는 신앙생활에서 벗어나 소공동체 안에서 친교하고 복음나누기를 통해 실천하는 신앙생활을 하자는 취지였다. 서울교구는 이미 조직되어 있었던 구역과 반의 봉사자들(구역장, 반장)에게 소공동체 원리와 복음나누기 방법을 교육하는 등 소공동체사목을 위해 온힘을 기울였다. 그 뒤 다른 교구도 소공동체사목을 받아들여 추진하였고, 2001년부터는 소공동체전국모임을 통해 전국 교구에서 모인 사제 ․ 수도자 ․ 평신도들이 서로 경험과 사례를 교류하였다.
1998년 당시 대주교였던 정진석 추기경이 서울교구장이 되면서 서울교구 사목방향도 변화를 겪었다. 정진석 추기경의 사목방침은 ‘비전2020운동’으로 요약된다. 2020년에는 서울교구 신자 비율이 20%가 되도록 하자는 방침이다. 질적 성숙보다 양적 성장을 우선하겠다는 정 추기경의 의지가 엿보인다. 사목방향이 질적 성숙에서 양적 성장으로 선회하고 있다는 조짐은 다른 교구에서도 나타나고 있다. 이를테면 마산교구는 서울교구와 비슷하게 ‘비전1030운동’을 통해 2010년까지 신자비율은 10%로 높이고 주일미사 참석률을 30%까지 끌어올리겠다는 목표를 정해두고 있다.
반면 각 교구의 소공동체사목 추진 의지는 약해지고 있다. 소공동체사목의 진원지라고 할 수 있는 서울교구의 경우, 교구사목방침을 제시하는 교구장 사목교서에서 소공동체사목 관련 내용이 사라진 지 오래되었다. 소공동체사목 관련 자료를 가장 활발하게 연구 개발해 전국 교구에 제공하였던 통합사목연구소도 이제는 더 이상 소공동체 관련 연구를 진행하지 않는다. 가장 소공동체사목을 적극 추친하고 있는 교구는 수원교구와 제주교구이다. 제주교구는 서울교구 보좌주교로 있을 때부터 소공동체사목에 적극적이었던 강우일 주교가 교구장으로 부임하면서 적극 추진하기 시작하였고, 수원교구는 소공동체사목에 적극적이었던 최덕기 주교가 물러나고 새 교구장이 임명되었지만 소공동체사목이 적극 추진되고 있다.
소공동체사목은 15년 넘게 추진되었는데도 정착하지 못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교구장들의 추진 의지도 문제이지만, 추진 방식에도 문제가 있다는 지적도 있다. 소공동체사목은 밑으로부터의 자발성에 바탕을 두어야 하는데, 한국천주교회의 소공동체사목은 위로부터 추진되었기 때문에 생명력이 없다는 것이다. 또 하나 3-5년을 임기로 주임사제가 이동하는 한국천주교회 사제인사정책도 소공동체 정착에 걸림돌이 된다는 지적도 있다. 소공동체사목이 하나의 본당에 정착하려면, 오랜 시간이 필요한데 소공동체사목에 소극적인 주임사제가 후임으로 오는 경우 침체되는 악순환이 되풀이된다는 것이다. 이 같은 인사제도는 다른 사목사례를 유지 ․ 발전시키는 데도 한계로 작용하고 있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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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환 추기경 장례미사 (사진/김용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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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가 성공을 축복해서야
몇 해 전 차동엽 신부의 <무지개원리>가 베스트셀러에 올랐다. 지금도 영문판, 스마트판, 어린이판, 실천편 등 다양한 변형판이 꾸준히 팔리고 있다. 천주교 사제가 지은 책이 비신자까지 널리 읽히는 베스트셀러가 된 것은 처음 있는 일이었다. 이 책의 부제는 “하는 일마다 잘되리라”이다. 이 글귀를 스티커로 제작해서 널리 배포한 탓인지 가끔 식당이나 상점에 ‘부적’처럼 붙어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이 책은 저자가 창안한 무지개원리를 따라 살면 하는 일마다 잘되고 성공을 거둔다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 문제는 성공이라는 가치가 예수의 삶과 가르침과 거리가 멀다는 데 있다. 예수는 그 탄생부터 죽음에 이르기까지 성공과는 거리가 멀었고, 성공하지 못한 사람들이라 할 수 있는 죄인들과 어울려 살았다.
김수환 추기경이 돌아가셨을 때, 종교를 떠나 많은 국민들이 그의 죽음을 슬퍼했다. 김 추기경의 삶을 되돌아보는 특집 다큐멘터리에서는 철거민, 이주 노동자 등 실패한 사람들을 만나 따뜻하게 위로했던 그의 삶을 기렸다. 최근 <시사저널>이 조사한 바에 따르면, 김수환 추기경은 여전히 영향력 있는 종교인에서 1위였다. 그만큼 아직도 김 추기경의 삶이 많은 사람들에게 본받을만한 삶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김 추기경이 돌아가신 직후 그 삶에 이끌려 천주교 신자가 되고, 장기를 기증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았다. 이 같은 분위기에서 한국천주교회는 김 추기경을 내세운 선교자료를 만들었고 그 얼굴과 자화상을 담은 열쇠고리 등 액세서리도 유행하였다. 정진석 추기경은 영향력 평가에서 김 추기경 다음이었다. 3위는 현 조계종 총무원장 자승이었고, 4위는 얼마 전 입적한 법정 스님이었다. 법정 스님이 돌아가셨을 때에도 사람들은 김 추기경 때처럼 종교를 떠나 그분이 가르치신 무소유의 삶을 마음에 새겼다. 사람들이 종교에서 무엇을 기대하고 바라는지를 잘 보여주는 현상이다.
가톨릭 언론에는 정진석 추기경의 동정 기사가 자주 실린다. 주로 서울시장, 장관, 여당 대표와 당직자 등과 같은 정관계 유력인사들과 만난 짧은 소식이 사진과 함께 실린다. 물론 정진석 추기경이 유력 인사만을 만나지는 않겠지만, 이처럼 기사화된 동정기사만 보면 한국천주교회가 성공하고 힘 있는 사람들만 중요하게 여긴다는 느낌을 갖게 되지 않을까? 사람은 누구나 어떤 사람을 만나 어떤 이야기를 주로 듣는지에 따라서 생각이 달라지게 마련이다. 김 추기경을 가까이서 오랫동안 취재했던 어느 가톨릭언론인은 김 추기경이 건강이 나빠져 찾아오는 사람들만 만나면서 사회 현안에 대해 보수 의견을 갖게 되었다고 했다. 찾아가서 만날 때는 주로 가난하고 억울한 사람들을 만났지만, 찾아오는 사람들은 주로 보수 성향의 유력 인사들이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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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12월 24일 강남성모병원에서는 두 개의 각기 다른 미사가 열렸다. 오후 3시에는 병원 로비 밖에서 ‘강남성모병원 비정규직 노동자들과 함께 하는 성탄미사’가 열리고, 저녁 7시에는 병원 로비 안에서 병원측 주최로 미사가 봉헌되었다. (사진/한상봉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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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 있는 사용자가 되어버린 한국천주교회
2005년 인구센서스 발표 뒤 개신교와 불교에서 분석한 천주교 급성장 원인은 다음과 같이 종합할 수 있다.
(1)오랜 전통으로 내려오는 전례 의식과 문화예술 등에서 느껴지는 엄숙함, (2)개인 성찰을 강조하고, 억지로 강요하지 않는 자유로움, (3)독신으로 봉헌된 삶을 사는 사제 ․ 수도자의 상징성과 이들에 대한 신뢰, (4)체계를 갖춘 조직성, 전체가 하나의 교회라는 일치성, 이를 통한 재정투명성, (5)사회복지활동 등 세상 낮은 곳을 돌보며 섬기는 모습, (6)인권, 사회정의활동 등을 통해 세상을 일깨우고 바른 길을 제시하는 모습, (7)타종교와 한국 문화전통에 포용적인 태도.
(5), (6)의 분석에서 보듯이 사회정의와 사회복지분야에서 이루어진 천주교의 활동이 교세 성장에 긍정적인 영향을 주었다. 과거 사회복지활동은 교회 전체가 참여하는 가운데 이루어졌지만, 사회정의활동은 일부 진보세력에 의해 이루어졌다. 사회정의활동은 교회의 지지와 지원을 받지 못한 적이 더 많았다.
문화체육관광부의 실태 조사에 따르면, 2002년과 2008년 사이 불교와 개신교는 언론·출판매체와 사회복지기관이 2∼3배 이상 늘어났다. 하지만 천주교는 사회복지시설이 약간 늘어나고, 언론 ․ 출판매체가 오히려 줄어들었다. 매스 미디어의 중요성이 나날이 커지는 상황에서 다른 종교는 매체가 늘어나는데 천주교는 오히려 줄었다. 반면 천주교는 의료기관 수가 3배 가까이 늘어났다.
과거 천주교 의료기관은 대개 의료시설이 거의 없었던 때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진료를 목적으로 세워졌다. 이제는 의료시장 개방으로 병원이 대형화, 기업화되고 있다. 삼성, 현대 등 대기업이 의료시장에 뛰어들면서 점점 치열해지는 경쟁 상황에서 수도회들은 수도회 정신을 지키면서 병원을 운영하는 데 어려움을 느껴서 운영을 포기하였다.
2005년 한국순교복자수녀회는 부평성모병원(지금의 인천성모병원)을 인천교구에 넘겼고, 2007년 성가소비녀회는 성가병원(지금의 부천성모병원)을 서울교구에 넘겼다. 가톨릭계 병원은 가톨릭대학교 가톨릭중앙의료원(CMC)으로 통합해 한국 최대의 의료 기관으로 경쟁력을 높이고 있다. 2009년 3월에 1조원을 들여 신축 개원한 서울성모병원(이전의 강남성모병원)은 단일 병원 건물로는 한국 최대이며, 하루 입원비 4백만 원의 초호화 병실도 두고 있어서 가톨릭 정신에 맞지 않는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뿐만 아니라 가톨릭중앙의료원 병원들에서 일어나는 노조 탄압이나 비정규직 문제 등은 가톨릭 병원이 일반 병원이나 기업과 조금도 다를 바 없다는 부정적 이미지를 심어주고 있다. 이러한 모습들은 긍정적 대사회 이미지를 높여주었던 기존 대사회 활동과 상당히 다른 모습이다.
서울교구 산하 학교법인 가톨릭학원은 2004년에 수익사업체인 주식회사 평화드림을 설립하였다. 이 회사는 학교법인 산하 기관 가톨릭대학교 8개 병원과 대학교, 초 ․ 중 ․ 고등학교, 서울교구, 본당, 수도회에서 상시적으로 필요한 수요를 자체적으로 충족시킴으로써 외부로 유출되고 있는 수익을 학교법인과 교회 내부로 환원하고자 하며, 외부 기업과 병원에 대해 적극적인 영업을 통해 수익을 창출해, 이를 기반으로 학교법인 가톨릭학원의 고유목적 사업인 교육과 의료사업을 지원한다는 설립 목적을 가지고 있다.
그 사업 영역이 제법 넓다. 처음에는 의료품 사업, 가구사업, 출판사업, 식료품 지원 사업 등으로 시작해 지금은 여행사업, 건축사업, 상조사업, 외식사업, 전산개발사업, 레저사업 등으로 사업을 넓혔고 (주)평화상조, (주)미셸푸드, (주)평화이즈 등의 자회사도 설립하였다. 이 회사의 설립으로 말미암아 그 동안 가톨릭 기관에 납품하던 회사들이 큰 어려움을 겪게 되었다. 최근 우리 사회에서 SSM(기업형 슈퍼마켓)에 대해 논란이 되고 있다. 이들로 말미암아 작은 규모의 재래상권이 죽어가기 때문이다. 평화드림과 SSM, 이 둘 사이에는 뚜렷한 논리의 차이를 발견할 수 없다. 어느새 한국천주교회는 사고방식과 존재방식에서 사용자, 그것도 거대하고 권력 있는 사용자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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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0월 9일 대구에서 열린 전국성령대회에 참석한 평신도로 대회가 열린 성 김대건기념관이 가득 찼다.(사진/한상봉 기자) |
침체되는 천주교사회운동, 꾸준한 영성운동
올해 8월 의정부에서는 약 4천 명의 젊은이들이 참석한 가운데 한국청년대회가 열렸다. 2007년 약 3천 명이 참석한 가운데 제주에서 열렸던 제1회 한국청년대회에 이은 두 번째 대회였다. 이처럼 전국 규모 대회를 여는 것은 침체된 청년사목을 활성화하기 위함이다. 또 한국천주교회는 참가신청자들을 모아 세계 가톨릭청년들이 모인 가운데 3년마다 열리는 세계청년대회에 참가하고 있다. 과연 이러한 일회성 대회를 통해 청년사목이 얼마나 활성화될 수 있을지 의문이다.
1980년대에 들어서면서 그 어느 때보다 가톨릭청년 ․ 학생운동이 활발하게 이루어졌다. 이는 많은 청년 ․ 학생들이 반독재 민주화를 위해 나섰던 시대 상황과 무관하지 않았다.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 본당마다 청년회가 생겨났고, 본당 ․ 지구 ․ 교구 차원의 연합회를 조직해 다양한 활동을 펼쳤다. 지금은 청년성가대를 빼고 본당에서 청년단체를 찾아보기 힘들다. 참여하는 청년들의 수도 눈에 띄게 줄었다. 주로 청년들이 맡았던 주일학교 교리교사도 청년교사 부족으로 학부모가 맡기 시작한 지 오래되었다. 이처럼 한국천주교회에서 활동 청년이 줄어드는 데는 청년실업 등 교회 밖 원인이 크다. 하지만 청년의 고유성을 살린 청년사목프로그램을 개발하지 못하고 있는 것도 원인이다. 교회 안팎의 원인이 서로 영향을 주면서 사정은 더욱 심각해지고 있다.
청년활동 전반이 침체된 상황에서 그래도 유지되거나 발전되는 활동이 없는 게 아니다. 가톨릭청년성서모임과 청년성령쇄신봉사회는 꾸준히 유지되고 있다. 청년성령쇄신봉사회는 2001년부터 전국젊은이성령축제를 열고 있고, 2002년 전국 조직인 한국가톨릭청년성령쇄신연합을 설립하였으며, 2006년에는 제1회 세계젊은이성령대회를 개최하기도 하였다. 곧 사회운동 성격의 청년운동은 침체된 반면 영성운동 성격의 청년운동은 꾸준히 유지되는 셈이다.
이러한 현상은 청년운동에서만 나타나는 게 아니다. 가톨릭노동청년회, 가톨릭노동사목, 천주교도시빈민운동, 가톨릭농민회 등 천주교사회운동 전반이 침체되고 있다. 반면 성령쇄신운동은 계속 성장하고 있다. 1971년부터 시작된 한국천주교 성령쇄신운동은 해마다 3만 명 이상이 성령쇄신세미나를 이수하고 있을 정도 꾸준하다. 한국가톨릭성령쇄신봉사자협의회는 해마다 성령대회를 열고 있으며, 2009년에는 6만 명이 참가한 가운데 제1회 세계성령대회를 음성 꽃동네에서 개최하였다.
지금까지 살펴본 바와 같이 한국천주교회는 여러 한계와 문제에도 성장하고 있다. 하지만 성장이 곧 하느님의 축복이며, 현재 한국천주교회가 예수의 가르침에 충실하고 있다고 하기 어렵다. 한국천주교회는 카이사르에게 돌려야 할 것을 하느님께 돌리고, 하느님 대신 맘몬을 섬기는 ‘널찍하고 편한 길’로 가고 있기 때문이다. 이를 바로잡으려면 교회 안의 개혁세력이 조직되어야 하는데, 과거 그 역할을 했던 가톨릭청년 ․ 학생운동과 천주교사회운동이 침체된 상황은 미래를 어둡게 한다. 교회와 사회에 대한 성찰을 통해 영성과 실천, 삶과 신앙, 교회 안과 밖을 통합할 수 있는 새로운 생활영성운동을 시작할 때이다.
*이 기사는 <기독교사상> 2010년 10월호 특집 '당신들의 종교는 안녕하신가'에 기고한 글이다.
박영대 /우리신학연구소 소장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http://www.nahnews.net>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