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골이 빚은 가장 외롭게 빛나는 별자리
입력 : 2024-04-15 10:06:23 수정 : 2024-04-15 17:52:08
박종호 기자 nleader@busan.com
동길산 시인 시집 ‘거기’ 출간
경남 고성 산골서 30년 생활
자연과의 허심탄회한 대화
고성 산골 동길산 시인이 사는 집 옆집 외양간 지붕에 비가 떨어지고 있다.박정화 사진가 제공
동길산 시인이 일곱 번째 시집 <거기>를 냈다. 지시대명사 ‘거기’는 대체 어딜 가리키는 것일까. 그걸 알아차리려면 좀 유별나다는 평가를 받는 동 시인에 대한 사전 설명이 필요하다. 부산에서 나고 자란 동 시인은 1992년 경남 고성 대가면 산골로 들어갔다. 버스가 하루 두세 번 다니는 깊은 산골, 바로 거기다. 이번 시집은 산골 생활 30년의 기록이다. 대체 산골에서 30년간 뭘 하고 지낸 것일까.
동 시인이 이번 시집에 수록한 유일한 산문 ‘산골의 보름밤’을 보면 짐작이 간다. ‘산골은 다 좋은데 하루가 지나치게 길다. 매화나무에 달린 매실을 헤아리고 헤아려도 여전히 그날이 그날이고 감나무에 걸린 홍시를 헤아리고 헤아려도 여전히 그날이 그날이다.’ 그렇게 심심하니 결국 자연을 새(파트1), 나무·풀·꽃(파트2), 비(파트3), 산골(파트4)로 나눠서까지 각별한 관심을 기울일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이번 시집에는 산골살이하는 시인의 참으로 인간적인(?) 모습이 잘 담겨 있다. ‘빗물 냇물’에는 비가 내려 빗물이 냇물이 되어 돌담을 허문, 선을 넘은 사건을 시로 승화시켰다. 처음에는 산에다 집을 들인 자신의 잘못을 반성하다, 오죽하면 자신이 이런 산골짝에 살겠느냐며 섭섭해한다. ‘괘씸한 놈’에서는 안 되는 삽질을 힘으로 억지를 부리다가 삽자루를 뚝 부러뜨리고 누군가에게 괘씸한 놈이라며 화를 내다, 어쩌면 땅에게 자신이 괘씸한 놈이지 않을까 반성하는 모습이 담겼다.
그의 전업과 부업은 텃밭을 가꾸는 과정을 담은 시 ‘모종을 심다’에 잘 담겼다. ‘흙을 묻히고 흙에 굽히면서/ 첫날이 가고 다음 날이 가고 또 하루/ 전업이면 하루 반나절이면 끝날 일거리를/ 내 전업인 글쓰기 속도의/ 반의반의, 또 그 반의반의 속도로 하면서/ 한 달이나 두 달 후에 실릴 글을 생각하듯/ 한 계절이나 두 계절 후에 매달릴 그것들을 생각한다/ 매운 고추, 안 매운 고추/ 큰 토마토, 흑토마토, 방울토마토.’
다음은 손택수 시인이 “한국시의 가장 외롭게 빛나는 별자리에 올려놓겠다”고 상찬한 ‘새는’의 일부다. ‘그냥 우는 것 같아도/ 그냥 우는 새는 없다/ 울어야 할 때 울고/ 서로 나누어서 운다/ 혼자서 감당해야 하는 슬픔/ 새인들 왜 없겠느냐만/ 어느 새도/ 혼자서 울게 내버려두지 않는다/ 한 새가 울면/ 다음새, 그다음 새 또는 동시에/ 새는 운다/ 새 우는 소리에 맞춰서/ 날은 밝는다.’ 그가 사는 산골의 마당에서 제멋대로 나댄다는 반딧불이가 보고 싶어진다. 그 많은 빛을 찾아다녔지만, 내가 잡은 빛은 무엇이었을까.
동길산 시인. 박정화 사진가 제공
동길산 시인의 일곱 번째 시집 <거기>.
동길산 시인의 일곱 번째 시집 <거기>.